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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인지문(동대문), 동대문 시장

올드코난 2016. 3. 20.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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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인지문(興仁之門)은 조선 수도 한양의 4대문(大門) 중의 하나로 동쪽의 대문이다. 흔히 동대문(東大門)으로 불린다. 한양도성의 축조와 함께 1396년에 지어졌고 1453년(단종 1년)과 1869년(고종 6년)에 고쳐지었다. 흥인지문은 동대문구에 속했지만 몇차례 행정구역이 조정되면서 지금은 종로구에 속해 있다.

서울볼거리 3탄 - 흥인지문(동대문), 동대문 시장


1. 흥인지문(興仁之門)

화강석으로 된 홍예문의 축석 위에 지어졌으며, 도성의 8개 성문 중 유일하게 옹성을 갖추고 있다. 앞면 5칸·옆면 2칸 규모의 2층 건물로, 지붕은 앞면에서 볼 때 사다리꼴모양을 한 우진각 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인데, 그 형태가 가늘고 약하며 지나치게 장식한 부분이 많아 조선 후기의 특징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또한 바깥쪽으로는 성문을 보호하고 튼튼히 지키기 위하여 반원 모양의 옹성(甕城)을 쌓았는데, 이는 적을 공격하기에 합리적으로 계획된 시설이라 할 수 있다. 숭례문이 조선 초기 양식으로 지어졌지만 흥인지문은 조선 후기 양식으로 되었다.

흥인지문 일대의 지반이 낮아 땅을 돋운 뒤 건설 1396년(태조 5년) 9월 다른 성문을 건립할 때에도 공사중이었고, 1398년(태조 7년)에 완성되었다. 이때의 이름은 흥인문(興仁門)이었다. 이후 수차례 유지보수를 하다. 1907년(고종 44년) 3월 흥인지문과 숭례문의 좌우측 성벽을 8칸씩 헐어 전차 선로를 부설한다. 1999년에는 옹성이 붕괴되어 8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3억여원을 들여 보수하였으나, 옹성 아랫부분이 튀어나오는 '배부름 현상'이 일어나 재시공을 결정하였다. 지하철이 개통된 이후 지하수위가 낮아지고 지반이 침하되었고, 2002년 12월부터 2007년 8월까지 옹성을 해체하여 지반 보강 후 복원하였다. 2015년에는 문 북쪽의 도성과 연계하여 석재를 포장하는 과정이 진행되었다흥인문이 보물1호로 처음 지정된 것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에 의해서였다.



2.동대문 시장

동대문 시장은 일제강점기에는 배오개시장으로 알려졌었고 1905년 김종한 외 3인이 광장주식회사를 설립하고 동대문시장 (현재 광장시장)을 등록해 최초의 근대 시장으로 출발했다. 전차의 부설로 동대문시장은 상권이 더 넓어졌고 한국전쟁 이후 평화시장이 생겨난 후에 남대문시장과 함께 서울의 양대 시장으로 발전한다. 1994년에 팀 204가 들어선 이후 동대문길을 따라 아트프라자, 우노꼬레, 혜양엘리시움, 디자이너클럽, 프레야타운, 밀리오레, 두산타워가 생겨나서 현대화되었다. 현재 중국 바이어들이 동대문 시장의 주요 고객이라고 전한다.


3.주변 볼거리

한양도성박물관, 동대문성곽공원, 동대문 역사문화 공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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