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국사-조선

정유재란, 이순신의 복귀와 첫 해전 어란포 해전 의미

올드코난 2015. 7. 6.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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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균에 의해 조선의 수군은 전멸하고 만다. 결국 선조는 이순신을 복귀시키는데,

정유재란, 이순신의 복귀와 첫 해전 어란포 해전 의미


1.이순신의 복귀

1597년 8월 28일(음력 7월 16일) 삼도수군통제사 원균이 이끄는 조선 함대가 칠천량 해전에서 일본군의 기습을 받아 춘원포로 후퇴, 수군들은 상륙하여 도주하고 판옥선 대부분이 불타거나 왜군에게 노획당해 오사카로 끌려간다. 이를 수습하기 위하여 조선 조정에서는 경림군(慶林君) 김명원(金命元), 병조 판서 이항복(李恒福)의 건의로 이순신을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한다. 


하지만 이순신이 다시 조선 수군을 모아 정비했을 때 함선은 배설의 함대 12척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선조는 이 병력으로 적을 대항키 어렵다 하여 수군을 폐지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하지만 이때 이순신은 ‘신에게는 아직도 12척의 배가 남아 있으며 내가 죽지 않는 한 적이 감히 우리의 수군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라는 비장한 결의를 보이며 수군 해체를 막는다.


2.어란포 해전

어란포는 현재의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어란리에 있는 지명으로 어란포 해전(於蘭浦海戰; 1597년 10월 7일(음력 8월 27일)) 이순신 장군이 삼도수군통제사로 복귀한 이후 치른 첫 번째 전투다.

당시 칠천량 해전 패전 후 남은 13척의 판옥선을 수습한 이순신 장군은 왜선 8척이 남해 어란포(於蘭浦) 에 출현하자 이를 격퇴하는데, 이런 소규모 전투를 벌인 이유는 자신을 노출시켜 왜군을 유인하기 위한 목적과 조선 수군의 사기를 높이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서이며, 이 목적은 충분히 달성이 되었다.

그리고 어란포 해전 후 전열을 재정비하기 위해 이틀 후인 10월 9일(음력 8월 29일)에 진도 벽파진으로 진을 옮긴다. 명랑대첩을 위한 과정인 것이다.



글 작성/편집 올드코난 (Old Con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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