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국사-조선

조선 수군의 대승 절이도 해전(折爾島海戰)이 평가 절하된 이유 설명

올드코난 2015. 7. 24.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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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이도 해전(折爾島海戰, 1598년)은 선조 31년인 1598년 8월 20일(무술년 음력 7월 19일) 절이도(거금도)에서 조명 연합 수군과 왜의 수군 사이에 벌어진 해전으로 수정실록에는 상세한 기록이 빠져있다. 대승이라고만 기록이 되었는데, 절이도 해전이 왜 평가가 절하되었는지 정리해 본다.

정유재란, 조선 수군의 대승 절이도 해전(折爾島海戰)이 평가 절하된 이유 설명


1. 전투 전 상황

명량해전이후 왜의 수군의 사기는 떨어졌지만, 수적으로는 여전히 많았다. 당시 왜의 수군의 요새지는 예교(광양만)로 그전에 전라도 지역의 왜의 수군을 공략해 전라도 앞바다를 장악해야 했다. 문제는 명의 제독 진린이 겁쟁이면서도 공명심이 많은 자였는데, 전공 욕심에 이순신을 방해하고 났다.

이순신은 진린의 행태를 조선 조정에 장계를 올려 고한다. 이에 조정은 명군 경략(총사령관격)에게 건의하여 진린을 육장으로 전임시키고 수군 유격장 계금으로 하여금 명나라 수군과 조선 수군을 통합 지휘 수륙합공으로 예교를 점령하자는 계책을 내놓는데, 이 소식을 알게된 진린은 대노하여 이순신에게 호통을 치고 선조는 진린에게 약점만 잡히게 되고 없던 일이 된다. 조선 수군에게 당시 진린의 존재는 내부의 적과 같은 상황이었다. (물론 이후 진린은 이순신의 사람이 된다.)


2. 전투 진행과정

적함대 100여 척이 금당도(고금도와 거금도 중간의 섬)로 침범해 온다는 급보에 접하고서 이순신은 전함대에 출동태세를 갖추도록 한 다음 그날 밤에 길목인 금당도로 전진 결진하여 그 곳에서 밤을 샌다.

명의 제독 진린의 수군이 도착한 지 2일째 되는 날인 1598년 7월 18일 전투가 시작된다. 그러나 이때 명나라 수군은 합세하지 않고 안전해역에서 후행하면서 관전하는 자세를 취한다. 7월 19일 새벽에 왜의 수군이 거금도(절이도)와 녹도(소록도 근처) 사이 금당도로 나오고 조선와 거금도 북방해역에서 해상 요격전이 벌어진다. 전투의 세세한 과정은 자세히 모르지만, 이때 50척의 왜 함선을 침몰시켰고, 나머지 50척도 대파시킨 것으로 파악된다. 조선 수군의 피해는 거의 없었으며 일본군의 피해는 대략 1만명이 넘는 것으로 여겨지는 대승이었다. 절이도 해전의 승리로 조선 수군은 고금도에서 거금도까지 지배해역을 확대함으로써 고흥반도 이서의 제해권을 장악하는데 크게 기여한다.



3. 절이도 해전이 평가 절하된 이유

하지만, 이 큰 승리가 난중일기 이 당시 부분이 망실되었고 이충무공전서에도 이 사실을 자세히 기록하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명의 장수 진린 때문이다. 전투 당시 진린은 멀리서 구경만 하고 있다가 전과가 욕심이 나서 이순신에게 와서 협박을 하게 되고 이순신은 할 수 없이 적의 수급 40개를 진린에게 넘겨주게 된다. 진린의 이런 행동은 명군과 명의 황제를 모욕한다는 취지에서 의도적으로 누락시킨 것이고, 그래서 이 전투가 평가 절하된 것이다.

선조 실록과 수정실록에 전힌 내용을 비교해 보면 알 것이다.


4. 참고: 역사에 기록된 내용

(1) 이충무공 전서

1795년에 윤행님(尹行恁)이 편찬한 「이충무공 전서」에는 녹도만호 송여송이 진린에게 적전선 6척과 수급 69개를 상납한 사실이 명기되어 있다.

(2)선조실록

선조 105권, 31년(1598 무술 / 명 만력(萬曆) 26년) 10월 4일(병진) 5번째기사 “비변사가【이항복·한응인·이준(李準)·홍이상(洪履祥). 】 아뢰었다.

‘이순신(李舜臣)이 절이도(折爾島)의 전투에서 적의 머리 71급(級)을 베었는데 진 도독(陳都督)이 40급을 빼앗고 계 유격(季遊擊)이 5급을 빼앗았습니다. 그리고 도독이 순신에게 독촉하여 다만 26급을 벤 것으로 장계를 꾸미게 하였으므로 순신은 도독의 말대로 26급을 베었다고 거짓 장계를 만들어 보내고 또 별도로 장계를 만들어 사실대로 치계하였습니다. 왕 안찰(王按察)이 남쪽으로 내려와서 그 소문을 듣고 우리 나라에 공문을 보내 수급(首級)에 관련된 일을 묻고 아울러 그 장계를 보내라고 명하였습니다. 지금 만약 실제 장계를 보내면 반드시 도독을 큰 죄에 빠뜨릴 것이니 거짓 장계를 보내는 것이 합당할 듯하므로 감히 품합니다.’ 【동정 장사(東征將士)들이 모두 욕심이 많았다. 진인(陳璘)은 남의 공로를 가로채어 자기의 공으로 삼으니 이와 같은데 성공을 바라는 것은 어렵지 않겠는가. 】”

(3)선조 수정실록

선수 32권, 31년(1598 무술 / 명 만력(萬曆) 26년) 8월 1일(갑인) 3번째기사

“통제사 이순신(李舜臣)이 적병을 강진(康津)의 고금도(古今島)에서 크게 격파했다. 순신이 진인(陳璘)과 더불어 연회하려고 하는데, 적이 습격하려 한다는 보고를 듣고는 제장(諸將)으로 하여금 군사를 정돈해 대기하게 하였다. 얼마 후 적선(賊船)이 크게 이르자 순신은 스스로 수군을 거느리고 적중으로 돌격해 들어가면서 화포(火砲)를 쏘아 50여 척을 불사르니, 적이 마침내 도망하였다.”

*선조수정 실록에는 명나라의 행태가 많이 빠져있다.


글 작성/편집 올드코난 (Old Con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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