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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제271호 경희궁 터 경희궁지 설명

올드코난 2016. 8. 8.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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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경희궁지 (慶熙宮址) 개요

사적 제271호. 면적 10만 1221.5㎡, 현 주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신문로2가 1-126

경희궁지 (慶熙宮址)는 조선 14대 왕 선조의 다섯 번째 아들 원종(元宗, 1580∼1619)의 집터에 광해군이 세운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이궁(離宮)이다. 1616년(광해군 8)에 세워졌는데 원래 이름은 경덕궁이었다. 1760년(영조36)에 경덕이라는 명칭이 원종의 익호(諡號)와 동음이라는 이유로 경희궁으로 바뀌었다. 원래 규모는 7만여 평이었으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철저히 파괴되어 현재의 규모로 축소되었다. 현재 이 자리에는 정전이었던 숭정전의 기단부와, 제자리에서 옮겨진 석수, 노주석, 댓돌 등이 있고, 이밖에 바위에 새긴 명문이 남아 있다.


2. 경희궁 역사

경희궁은 광해군 때 창건되어 조선 후기 동안 중요한 정치공간으로 활용되었다. 숭정전(崇政殿)·융복전(隆福殿)·집경당(集慶堂)·흥정당(興政堂)·회상전(會祥殿)·흥화문(與化門) 등의 여러 부속건물이 세워져 있었으나 1829년(순조 29) 일어난 화재로 대부분이 소실(燒失)되었다가, 1831년에 중건되었다. 이후 일제가 조선을 병합하면서 경복궁과 더불어 총독부 소유로 넘어갔다. 1907년 일제는 경희궁 안에 통감부 중학교를 세우면서 기존 건물들을 대부분 철거해 버렸고 지형도 높은 곳을 깎아 낮은 곳을 메우는 등 크게 변형시켰다. 남아 있던 숭정전·회상전·흥정당·흥화문·황학정 등도 다른 곳으로 팔려가거나 이전되었다. 숭정전은 1926년동국대학교 구내로 이전되고, 흥정당은 2년 후에 광운사(光雲寺)로 이건 되었고 흥화문은 1932년에 박문사(博文寺)의 산문(山門)으로 이축되었다가 장충동 영빈관 정문으로 사용되었다. 황학정은 1922년사직단(社稷壇) 뒤 등과정(登科亭) 터로 이건 되었다. 경희궁 부지 2만 5천여 평을 떼어내어 전매국관사를 짓기도 했다.

해방후 1946년 일본인학교가 서울중·고등학교로 이어졌고 1978년 5월 이 학교가 강남으로 이전함에 따라 현대가 매입해 연수원 등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1985년 서울시에서 궁터를 사적지로 지정하면서 시민들의 공원으로 개방하였다.

1988년 들어서는 경희궁 복원작업에 착수하여 흥화문은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이건하고 원래의 위치에서 벗어난 곳에 세우고, 숭정전은 새 건물을 지어 복원하였다. 1988년에는 궁의 서쪽 구역에 있던 구 서울고등학교 건물을 보수하여 서울시립미술관으로 활용하다가 현재는 이 미술관의 분관으로 활용하고 있다. 그리고 궁궐 동쪽 구역에는 2002년 5월 개관한 서울역사박물관이 세워져 있다.

서울시「경희궁지 복원과 시민사적공원 조성계획」에 따라 숭정전과 숭정문, 동서남북 회랑의 정확한 위치를 확인하기 위하여 1985년부터 7차례에 걸쳐 발굴조사를 실시한 결과 기와조각과 자기조각이 철기·석기·토기 등이 발견되고 2개의 건물지, 담당지, 배수지 등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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