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시

시) 작가 심훈 作 그날이 오면, 밤

올드코난 2010. 7. 13.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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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훈 詩

그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면은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 날이

  이 목숨이 끊어지기 전에 와 주기만 하량이면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드리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그날이 와서, 오오 그날이 와서

  육조 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뒹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쳐 메고는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거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 깊은 밤 바람이 뒤설레며

  문풍지가 운다.

  , 텅 비인 방안에는

  등잔불의 기름 조는 소리뿐...

 

  쥐가 천정을 모조리 써는데

  어둠은 아직도 창 밖을 지키고

  내 마음은 무거운 근심에 짓눌려

  깊이 모를 연못 속에서 자맥질한다.

 

  아아, 기나긴 겨울 밤에

  가늘게 떨며 흐느끼는

  고달픈 영혼의 울음소리...

  별 없는 하늘 밑에 들어 줄 사람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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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훈. 1901 - 1936. 서울 출생. 본명은 대섭이다. 1935년 동아일보에 소설 상록수가 당선하여 문단에 확고한 자리를 잡게 되었다. 그가 남긴 저항시는 해방 후에 출간 되었는데 시에 담긴 고귀한 정신은 중요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시집으로는 <그날이 오면>(1949)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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