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전쟁은 이제 막바지로 치닫고 있었다. 중부를 차지한 북베트남군은 이제 사이공을 함락해 긴 전쟁을 끝내려 한다.
베트남 전쟁 이야기 18회: 호찌민 작전, 사이공 함락과 종전
1.최종 공격 호찌민 작전
베트남의 과반 이상을 얻게 되자 북베트남 정치국은 중 장군에게 사이공을 공격하라는 최종 공격 명령을 내렸다. 호찌민 작전이라고 불린 이 작전은 5월 1일 이전에 사이공을 함락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5월 이후 우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남베트남군이 전열을 재정비하게 될 경우 작전에 어려움이 닥칠 것을 우려하였기 때문이다. 북베트남군은 빠른 속도로 냐짱, 깜란, 달랏을 점령해 나갔다.
남북 베트남 군대는 4월 7일 사이공 동쪽 64 Km 부근에서 쑤언록 전투를 치렀다. 남베트남군 18사단은 수도를 방어하기 위해 옥쇄하기로 결정하고 북베트남군에 맞섰다.
그러나, 4월 20일 남베트남군 지휘부는 18사단에게 사이공으로 후퇴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같은 날 공포에 휩쌓인 남베트남의 티에우 대통령은 미국이 남베트남을 배반하였다고 비난하였다.
티에우는 헨리 키신저 미국 국무장관에게 2년 전 자신이 파리 평화 협정에 서명하도록 종용하면서 만약의 경우 군사 지원을 약속하지 않았냐고 전문을 보냈다. 4월 25일 티에우는 타이완에 있던 쩐반흐엉(Trần Văn Hương)에게 권력을 이양하고 비밀리에 미국으로 망명하였다.
4월 말 메콩 강 삼각주 지역에서는 명령 체계가 무너진 채 고립된 남베트남군이 여기 저기 흩어진 채 북베트남군과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사이공에는 수도방위군 3만명이 남아 있었지만 이미 사기는 극도로 떨어져 있었다.
2.사이공 함락과 종전
티에우가 망명하자 많은 남베트남 공직자와 시민들이 공포에 휩싸인 채 사이공을 떠났다. 사이공에는 계엄이 선포되었고, 미군 헬리콥터들이 미국대사관에서 미국 시민들과 남베트남인, 한국 교민들과 총영사관 직원들이 헬기를 타고 사이공을 탈출하고 있었다. 당시 사이공 인근 바다에는 미해군 7함대가 시누크 대형 헬기를 대기 시키고 있었으나, 작전 개시시간을 베트남 현지시간이 아닌 영국 시간으로 지정해 놓고 있어서 현지 시간보다 7시간 늦은 시간에 작전을 개시하도록 되어있었다. 이를 모르는 한국 영사관 직원들과 현지 특파원들은 미국 대사관이 반드시 탈출 시켜주겠다는 말을 믿고 여유를 부리고 있었다. 구조 헬기가 보이고는 있었으나 이것은 미해군 헬기가 아닌 CIA소속 헬기여서 많은 인원을 탑승 시킬수 없었다.
한편 백악관에서는 상황의 위급함을 뒤늦게 알아차리고 급히 시누크를 출동시키라고 명령했다. 대사관에서 시누크가 보이자 1만명이 넘는 군중들이 일제히 진입하려고 하자 그곳에 있었던 미국 해병대들은 이를 막으려고 노력했다. 시누크의 탑승인원은 40명이 였으나 실제로는 90명이 탑승했다. 그러나 시누크는 1대가 올 때마다 1시간이 걸렸다. 그이유는 탑승한 인원들을 내려주고 나서 연료까지 주입하는데에만 1시간이 걸렸던 것이다. 미국 대사였던 마틴은 애완견과 베트남인인 가정부를 데리고 혼자 탈출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시간이 흘러 저녁이 되자 투입 가능한 시누크는 고작 6대였다. 6대 남은 시누크에는 한국 대사와 특파원, 영사관 직원들과 기타 사람들하고 같이 탈출했다.
1975년 4월 30일 북베트남군은 사이공을 함락했다. 324호 탱크가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 깃발을 들고 사이공 대통령궁의 철문을 부수고 들어간 시간은 11시 30분이었다. 이틀 전 쩐반흐엉으로부터 대통령직을 이양받은 즈엉반민은 항복했다.
1956년 12월부터 시작된 베트남 전쟁이 19년만에 끝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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