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인물

마지막 황후 순정효황후 윤씨(純貞孝皇后 尹氏) 설명

올드코난 2016. 3. 16.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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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역사에 마지막 왕후 혹은 황후인 순정효황후 윤씨(純貞孝皇后 尹氏)에 대해 정리해 본다.

1.개요

순정효황후 윤씨(純貞孝皇后 尹氏, 1894년 양력 9월 19일(음력 8월 20일) ~ 1966년 양력 2월 3일) 대한제국 순종 황제의 계후(繼后), 본관은 해평(海平)이다. 박영효, 이재각 등과 함께 일본 정부로부터 후작 작위를 받았던 친일파 윤택영의 딸. 정식 시호는 헌의자인순정효황후(獻儀慈仁純貞孝皇后), 순종과 사이에 자녀는 없다. 양평군 서종면 문호리 출생.


2. 황후

1904년에 당시 황태자비였던 순명효황후 민씨가 사망하자 1906년에 13살의 어린 나이에 동궁계비(東宮繼妃)로 책봉되었고, 이때 아버지 윤택영과 시서모 순헌황귀비 엄씨 사이에 거액의 뇌물이 오갔다는 풍설이 돌았다. 이듬해인 1907년에 부군 순종 임금이 황제로 즉위함에 따라 그녀는 황후가 되었다.

순정효황후는 1910년 병풍 뒤에서 어전 회의를 엿듣고 있다가 친일 성향의 대신들이 순종에게 한일병합조약의 날인을 강요하자, 국새(國璽)를 자신의 치마 속에 감추고 내주지 않았는데, 결국 백부 윤덕영에게 강제로 빼앗겼고 일제에게 대한제국의 국권을 뺏기는 상황을 보게된다.



3.일제강점기

순종의 지위가 이왕(李王)으로 격하되고 순정효황후는 이왕비(李王妃)가 되어 창덕궁 대조전(大造殿)에 머물렀다. 1926년 4월 순종이 죽자 대비(大妃)로 불리며 창덕궁 낙선재로 거처를 옮긴다.


4.해방이후

1950년 한국 전쟁 당시 창덕궁에 남아 황실을 지키고자 했고, 궁궐에 들이닥쳐 행패를 부리는 북한인민군을 행해 크게 호통을 쳤다는 일화가 전해지는 여걸이었다. 1953년 휴전협정으로 전쟁이 끝나자 환궁하려 했지만 이승만이 방해를 하고 정릉의 수인제(修仁齊)로 거처를 옮겼다.

1959년 비구니로 불교에 귀의 대지월(大地月)이라는 법명을 얻었고, 이듬해 1960년 前 구황실사무총국장 오재경(吳在璟)의 노력으로 환궁하고, 이후 일본에서 귀국한 덕혜옹주 및 의민태자 일가와 함께 창덕궁 낙선재에서 지내며 독서와 피아노 연주로 소일했다 전한다.


5.최후

1966년 2월 3일, 창덕궁 석복헌(錫福軒)에서 심장마비로 73살의 나이에 불우한 일생을 마감하였다.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에 있는 유릉(裕陵)에 순종과 합장되었다.



6.평가

죽는 그 순간까지 온화한 성정과 기품을 잃지 않았던 순정효황후는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후로서, 당당함과 냉철함으로 황실을 이끌어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았다. 또 여성들이 배워야 한다는 열린 사고를 가진 사람이었다. 자신도 평생 영어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아 타임지를 읽어낼 정도였다고 전한다. 영조시대부터 100여년동안 조선 말기의 왕비들은 하나같이 권력욕이 앞섰다면 순정효황후는 조선의 왕비를 통틀어서도 훌륭한 성품을 가진 분이였다는 것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동의한다. 이런 분이 조선의 마지막 황후였다는 것이 안타까울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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