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인물

정조의 정비 효의왕후 김씨(孝懿王后 金氏) 설명

올드코난 2016. 3. 15.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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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품이 좋기로 평가되고 있는정조의 정비 효의왕후 김씨에 대해 알아 본다.

1.개요

효의왕후 김씨(孝懿王后 金氏, 1754년 1월 5일 (1753년 음력 12월 13일) ~ 1821년 4월 10일 (음력 3월 9일)) 조선 정조의 왕비 본관은 청풍(淸風). 시호와 존호는 장휘예경자수효의왕후(莊徽睿敬慈粹孝懿王后). 1899년 고종황제가 정조를 선황제(宣皇帝)로 추존하면서 효의선황후(孝懿宣皇后)로 추존되었다.

아버지는 좌참찬 증 영의정 청원부원군 정익공 김시묵(左參贊 贈 領議政 淸原府院君 靖翼公 金時默, 1722~1772)이고, 어머니는 당성 부부인(唐城府夫人) 홍씨이다. 사촌여동생이 시모인 혜경궁의 남동생과 혼인하여 왕실과 여러겹의 인척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2. 왕대비까지.

세손비가 된 이유는 현종비 명성왕후의 친정집안인 청풍김씨였기때문인데 이는 명성왕후가 숙종을 낳았듯이 세손(정조)의 후손을 낳기를 바라는 영조의 마음이 담겼던 것이다. 삼간택을 거쳐 별궁으로 들어갔지만 천연두를 앓아 이듬해 1762년(영조 38년) 2월 10살에 세손(정조)과 가례를 올리고 세손빈(世孫嬪)으로 책봉되었다. 1776년 정조가 즉위하면서 왕비로 책봉되었다.

슬하에 소생이 없어 영조의 3년상을 치른후 후궁을 들여 오는데, 이 과정에서 당시 권력을 잡은 홍국영의 집안 여식들이 후궁으로 들어오지만, 일찍 죽고 정조의 다른 자식들도 일찍 죽는등 정조의 자식 복은 없는 편이었다. 그러가 수빈 박씨가 아들 공(순조)을 낳았고 효의왕후가 양자로 삼았다.

정조 승하 후 왕대비에 올랐다. 정조 때부터 순조 때까지 수많은 존호가 올랐으나 검소하고 깨끗한 탓에 모두 거절하여 사후에 존호로 예경자수를 받았고, 효심이 깊어 정순왕후 등을 극진히 모셨다.


3.사후

1821년 4월 10일 (음력 3월 9일) 69세에 죽었다. 정조와 함께 합장한 건릉(健陵)에 능이 있다. 사후 시호는 예경자수효의왕후(睿敬慈粹孝懿王后)였다가 고종때 장휘(莊徽)의 존호가 추시되었고 1898년 대한제국 때 선황후(宣皇后)로 추존되었다.



4. 평가

효심이 깊었다고 전한다. 이 점에 영조에게 이쁨을 받았고, 성품도 좋아 정조와는 금실이 좋았다고 전한다. 단지, 자식을 낳지 못했는데 이는 본인이 아픔이기도 하지만, 조선에게는 비극이었다. 만일 효의왕후가 원자를 낳아 대를 이었다면 자연스레 효의왕후가 수렴청정을 하거나 혹은 큰 영향을 줄 수 있었다. 순조시기 수렴청정을 한 정순왕후 대신 효의왕후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면 조선은 많은 것이 달라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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