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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중국 162

중국 서진 시대 황제 계보

삼국시대를 마감하고 사마 씨가 진나라(서진)를 건국한다. 서진는 이후 내분으로 인해 흉노에 멸망하고 사마예가 남하해 동진을 세운다. 이전까지를 서진 시대라 부른다. 서진(西晉)시대는 265년 ~ 317년까지 불과 52년 밖에 되지 않아 멸망하며 공식 황제는 4명이었다. 서진 시대 황제 명단을 정리해 본다. 중국 서진 시대 황제 계보* (대+시호+이름: 생애) 추존항제 선황제(宣皇帝) 사마의(司馬懿, 179년 ~ 251년 8월 5일)-묘호 진 고조(晉高祖)(서진 무제 추숭),능호 고원릉(高原陵)- 중국 삼국시대 위나라의 군략가, 자는 중달(仲達), 묘호는 고조(高祖), 시호는 선황제(宣皇帝). 제갈량의 북벌을 막고 사마 가문을 위나라 실세로 만든 인물 추존황제 경황제(景皇帝) 사마사(司馬師, 208년 ~ ..

역사/중국 2016.09.11

중국 삼국 시대 역대 황제 계보

중국의 삼국 시대는 짧지만 여러명의 황제가 있었다. 대략적으로 정리를 해본다.중국 삼국 시대 역대 황제1. 위(魏); 220년 ~ 265년추존황제고황제(高皇帝) 조등(曹騰) 위 문제 추숭태황제(太皇帝) 조숭(曹嵩) 위 문제 추숭무황제(武皇帝) 조조(曹操) 위 문제 추승: 묘호 위 태조(魏太祖) , 능호 고릉 제1대문황제 (文皇帝) 조비(曹丕)- 재위 220년 ~ 226년- 묘호 위 세조(魏世祖) , 능호 수양릉(首陽陵) - 연호 황초(黃初) 220년 ~ 226년 제2대명황제 (明皇帝) 조예(曹叡) - 재위 226년 ~ 239년- 묘호 위 열조(魏烈祖), 능호 고평릉(高平陵)- 연호 태화(太和) 227년 ~ 233년/ 청룡(靑龍) 233년 ~ 237년/ 경초(景初) 237년 ~ 239년 제3대(소황제(少皇..

역사/중국 2016.09.11

삼국의 멸망과 통일-개요

삼국이 정립된 상황에서 위나라 1대 황제 문황제(조비)가 죽고 명황제(조예)가 황제가 된다. 얼마후 조예가 죽고 8살 밖에 되지 않은 어린 황제 조방(소제)가 황제가 오르면서부터 조씨 가문과 사마씨 가문사이에 긴장감이 두드러지기 시작한다. 대장군 조상은 젊었기에 사마의가 마음을 놓았었지만, 갈수록 세력을 확대시켜 나가자 사마의는 사태를 주의깊게 살피는 등 조상과 사마의는 서로에게 경계심을 갖게 되는 데 사마의가 뛰어난 전략가라는 사실을 조상은 잘 몰랐다. 사마의는 병들어 죽어가는 것처럼 연기를 하고 이에 조상은 안도하며 방심을 하게 된다. 그러던 중 조상과 가족들이 고평릉으로 간 틈을 타 사마의는 낙양에서 쿠데타를 일으켰다. 이를 고평릉 사변이라고 한다. 이때 많은 사람들이 사마씨 가문에 대해 대항하지만..

역사/중국 2016.07.02

후한의 멸망과 삼국의 정립

원소가 관도대전에서 조조에게 패한다. 202년 원소의 죽음 이후 원소의 아들들의 내분을 기회로 삼아 황하 북쪽으로 진격해 204년에 업을 함락시키고, 기주, 병주, 청주, 유주를 점령하고 207년 말, 오환을 상대로 한 북방 정벌에서 승리를 거둔 후 화베이 평원에 대한 확실한 지배권을 얻었다. 이제 손권의 장강 남쪽만 평정하면 분열되었던 중원이 하나가 될 수 있었다. 조조는 우선 유표의 아들 유종에게서 형주를 넘겨받는다. 이로 인해 조조에게 취약했던 유능한 수군과 함대를 얻을 수 있었다. 조조는 자신감을 얻었고, 드디어 손권가의 일전을 준비하는데, 적벽대전이 시작된 것이다. 손권은 주유를 포함한 유능한 장수와 신하들 그리고 유비와 손을 잡고 조조와의 대결에서 승리를 거둔다. 소설 삼국지연의 속에서 적벽대..

역사/중국 2016.07.02

조조의 등장과 관도대전 승리

191년 반동탁 연합군 사이에서 동탁의 허수아비 황제 헌제를 폐하고 황실의 친척이었던 유우를 황제로 추대하려는 움직임에 자신들의 기득권 등 여러 가지 이유로 반동탁연합군은 와해되기 시작했다. 이들은 한나라(후한)의 재건보다는 자신의 기반을 구축하는 데 더 관심이 갖게 되는데 이는 동탁을 타도한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실상은 자신들이 권력을 장악하겠다는 욕심을 내보인 것이다. 이로인해 반동탁 연합군은 와해된다. 이 시기 가장 독보적인 힘과 횡보를 보인 것은 원소였고 원소는 자신이 황제가 될 욕심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동탁이 죽은 후 장안은 권력다툼으로 치열한 살육전이 벌어지고 이를 피해 헌제는 196년에 낙양으로 돌아오게 되지만, 낙양은 폐허가 된 상태로 먹을 것 조차 없어 초근 목피로 생명을 유지할 지경..

역사/중국 2016.07.02

후한 소제 폐위와 헌제 옹립, 동탁 권력장악

184년 2월 태평도 교도 장각은 형제 장보와 장량과 함께 황건의 난을 일으켰다. 수십만이 가담했고 중국 곳곳에서 많은 지지를 받았다. 황건적은 "창천이사 황천당립 세재갑자 천하대길(蒼天已死 黃天當立 歲在甲子 天下大吉: 푸른 하늘이 죽고 노란 하늘이 일어나니, 갑자년에 천하가 크게 길해지리라)"라는 구호를 내세웠다. 황건적은 36개의 요새(방)에 큰 요새는 만명 이상, 작은 요새는 6~7천명 정도의 군사를 가졌다. 군사 수만으로는 당시 후한 군대와 비슷한 규모였다. 조정에서 황건적의 난을 두려워한 것도 이처럼 세가 매우 컸기 때문이다. 후한 영제는 황보숭과 노식, 주준을 보내 황건적을 물리치도록 했고, 지방의 관리들에게 군사를 보내 이를 돕도록 명해 황건적은 패배하고 중국 각지로 흩어져 산지에서 도적이 ..

역사/중국 2016.07.02

위진 남북조 시대(魏晉南北朝時代), 삼국 시대(三國時代) 개요

위진 남북조 시대(魏晉南北朝時代, 220년 ~ 589년) 후한 멸망 후 위나라와 위를 이은 사마씨의 진나라 시대와 이후 남북조 시대를 통틀어 일컫는 시대 구분 용어로 위진 시대(魏晉時代, 220년 ~ 420년)는 삼국 시대의 위나라로부터 서진을 거쳐 동진에 이르기까지의 약 2백년간의 시기다.남북조 시대(南北朝時代, 439년 ~ 589년)는 한족이 세운 남조와 한족을 장강 이남으로 밀어낸 유목민족이 세운 북조가 대립하다가 수나라에 의해 통일될 때까지의 시기를 말한다.중국 철학사에서 위진 시대는 노장학(老莊學)과 현학(玄學)이 주류를 이루었던 시대였다. 남북조 시대는 불교가 중국 철학의 주류를 이룬 시대로, 이러한 경향은 남북조 시대 이후의 수나라를 거쳐 당나라 시대까지 이어졌다 삼국 시대(三國時代)는 후한..

역사/중국 2016.07.02

후한 말기 황건적의 난(黃巾賊亂) 봉기 배경과 의의

머리에 황색 띄를 써 황건적(黃巾賊)이라고 불리었던 황건적의 난(黃巾賊亂)에 대해 정리해 본다. 1.배경외척과 환관들의 전횡과 부패에 관직을 매관매직하면서 전국 각처에서 탐관오리들에 의해 백성들의 삶은 고통 그 자체였다. 이런 어지러운 상황 속에서백성들은 미신적인 민간신앙 등 현세구제(現世救濟)의 종교를 찾게 된다.또 조정을 불신하게 된 농민들은 반란을 일으키고 이중 가장 컸던 반란이며 후한시대에서 삼국시대로 넘어가게 만든 황건적의 난(黃巾賊亂)이 일어난다. 2. 장각 태평도(太平道) 창시후한 영제 때 거록(鋸鹿)의 장각(張角)은 스스로 대현량사(大賢良師)라 호를 짓고 황천(黃天)의 신의 사자라고 일컬으며 병으로 고통을 겪는 사람들의 치료를 하기 시작했고 아홉 마디(九節)가 나 있는 지팡이를 짚고 설교하..

역사/중국 2016.07.01

후한시대 환관의 권력장악 당고의 금 (당고의 화) 설명

당고의 화(黨錮之禍)는 후한 말기에 일어난 탄압 사건으로 당고의 옥(黨錮之獄) 또는 당고의 금(黨錮之禁)이라고도 불린다. 후한 시대를 사실상 멸망에 이르게 한 계기이며 삼국지 시대의 사실상 시작을 알린 사건으로 2차례에 걸쳐서 발생했다. 정리해 본다. 1. 1차 당고의 화(黨錮之禍)환제는 간신 양기를 죽이는데는 성공했지만, 문제는 이에 공이 큰 환관들이 권력을 장악한데에 있다. 권력을 장악한 환관들은 국정을 농락하고, 이에 많은 재야 지식인들이 이를 비판한다. 특히 수도 낙양의 태학(太學)의 유생들이 환관타도를 부르짖고 환관들은 위기 의식을 느낀다. 해서 환관들은 166년 환제(桓帝)에게 이응 등이 도당을 모아 조정을 비방하고 민심을 어지럽힌다는 상소를 올리게 한다. 분노한 환제는 환관 공격의 선봉에 선..

역사/중국 2016.07.01

후한 제11대 황제 환제 시기, 양기의 전횡

제 7대 후한 황제 소제 (한 소황제 유의 漢 少皇帝 劉懿, ? ~ 125년)는 제북혜왕 유수(濟北惠王 劉壽)의 아들이며 제3대 황제 장제의 손자이다. 제6대 황제 안제의 사후, 황후 염씨(閻氏)에 의해서 옹립 되지만 즉위 후 200일 쯤 병에 걸려 곧 사망한다. 그 후, 환관 손정에 의해 염씨 일족은 살해당하여 유의는 황제의 지위가 박탈되어 왕의 예를 가지고 매장했다. 묘호, 시호, 능호, 연호도 없다. 소제가 죽은후 손정을 비롯한 19인의 환관들이 집권자인 염현을 죽이고 폐태자 유보를 황제로 즉위시키니 이가 후한 순제 유보다. 한 효순황제 유보(漢 孝順皇帝 劉保, 115년 ~ 144년, 재위 125년 ~ 144년)는 후한의 8대 황제로 후한 상제 유융과 후한 안제 유호와 후한 소제 유의의 5촌 종조카..

역사/중국 2016.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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