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해외

영화 이야기 - HOLLY WOOD COLUMNS 5 - 1975-1988

올드코난 2010. 6. 25.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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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야기
HOLLY WOOD COLUMNS

(출처: 내일)


5탄 (1975~1988)

SLY, MIKE & DAWN


 
1971
, 미국 할리우드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초상집 그대로였다. 영화 관객수가 주단위로 1
600만 명씩 곤두박질쳐 버렸기 때문이다. 이미 한정된 관객만을 상대하며 영화 제작에 참여해야한 메이저들은 대기업의 합병, 흡수의 위협을 뛰어넘으며 나름의 노력에 매진해 나간다.

  '5'(RKO는 이미 사라졌다) '리틀3'이라 불리는 유력 영화사들은 이러한 현실에 두 가지 방책을 세우기에 이른다. 첫째는 제작 편수의 삭감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69년에는 225편의 작품을 개봉했던 것이 70년대 후반에는 그 절반까지 감소하였다. 또 하나는 편당 제작비의 억제다. 이 방법은 이미 <졸업> <내일을 향해 쏴라> <이지 라이더>등의 작품의 성공으로 톡톡히 재미를 본 터라 재고의 여지가 없었다.

  꿈을 먹고 살면서 꿈을 표현해 내는 데에는 뛰어났지만 경영에 있어서는 다각적인 활로 모색에 둔감한 영화인들이 취한 방도는 단순하고 즉흥적인 일면이 없지 않다.

  따라서 위의 두 번째의 방책은 곧 한 작품의 출현으로 깨져 버리게 된다.
그 작품은 바로
1972년에 공개된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대부>.

  <대부>란 작품은 처음부터 대작으로 예산이 책정된 건 아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예산이 초과, 대작이 됐지만 개봉하자마자 관객이 벌떼처럼 몰려들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히트기록은 <사운드 오브 뮤직>이 깨기까지는 26년이 걸렸던 것이 이 <대부>에 이르러서는 7경과되었다. 그리고 이어 <조스> <대부>의 기록을 3년 만에 극복하였고 그 2년 후에는 <스타워즈>가 그 기록을 갱신하였다.

  여하튼 <대부>의 놀라운 히트는 할리우드 메이저들의 자구책에 새로운 전략을 소개한 셈이되었다.

  <대부>는 대작이라는 점 외에도 메이저계의 배급 작품으로서는 전례없이 개봉과 동시에 전국 600개 극장에서 일제 공개가 시행되었다. 지금의 관점에서 본다면 그다지 놀랄 필요도 없겠지만 그 당시 실정으로서는 일대 도박으로 여겨졌다. 또 동시에 개봉을 알리기 위해 전국적인 전파를 쏘는 TV방송국을 통해 선전도 감행했다. 이것 역시 할리우드의 상식을 초월한 정신 병자와 같은 행위였다.

  '성공하면 영도자, 실패하면 반역자' 이것이 정치사의 불문율이듯 <대부>의 대성공 역시 할리우드의 영화 공개 방식을 일시에 전환시켰다. 즉 히트가 기대되는 작품은 모범 답안 같은 <대부>처럼 TV방송을 활용, 대량 선전을 실시하면서 전국에서 동시에 공개하는 방식으로-----.

이로써 직접적인 제작비를 제외하고도 선전이나 동시 개봉을 위한 부대 비용이 들어 전체 코스트는 상승했지만 이와 반대로의 결과가 나타나 흑자를 기록하기도 한다.

  영화 산업에 활기를 불어넣은 것은 코폴라 외에도 스티븐 스필버그, 조지 루카스 등이

중심부에서 뒷받침해 준 업적 탓인데, 이들은 모두 대학에서 영화를 공부한 후 60년대의

과도기에 제작 현장에 뛰어들었던 감독들이다. 이들의 활약으로 기록적인 관객 감소의 악몽들이 일시에 사라지고 '할리우드 르네상스'라 불리는 황금기가 찾아왔다.

 

  아메리칸 드림의 실현

  "1973 7 2 LA에 도착했을 때 내수중에는 단돈 1 400달러밖에 없었다. 도회지의 각박한 생활로 뛰어든 나는 돈이 없을 땐 무작정 걸으며 시간을 보냈다. 실제로 록키 발보아라는 역의 이름은 바레이의 발보아 대로의 명칭에서 따온 것이다. 그 무렵의 나는 발보아 공원에서 하루종일 꿈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느 날 나는 모하메드 알리와 처크 웨브너의 권투 시합을 보러 갔다. 거기서 나는 돌연 눈을 떴다. '이거다! 이것이야말로 나의 인생이다'라는 것을. 알리란 남자는 거물이며 꿈을 이룩한 남자이며, 그리고----, 그렇다. 록키---- 록키---- 록키---- 발보아-----."

  미국의 위대한 꿈의 실현자 실베스타 스탤론. 그는 <록키> 시리즈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록키의 탄생을 이렇게 설명하였다. <록키> 시리즈에 나오는 록키는 모두 인생의 패배자,

낙오자다. 그러나 3년 후 그는 놀랄 만한 변신을 이룩, 아메리칸 드림을 이룩해 내는 히어로, 마지막 히어로로 등장한다.

  <록키>에 이은 <람보> 역시 월남전의 패배로 허탈감, 자괴감에 빠져 있던 미국인들에게 새로운 희망과 꿈을 심어 주었다. <록키>의 히트는 바로 미국인들에겐 자존심이었고, 영화계에 있어선 영화 세계의 신항로 개척이었다.

  코폴라, 루카스, 스필버그의 아성에 또 다른 주제로 할리우드에 뛰어든 스탤론은 모하메드 알리가 이룩한 미국의 꿈을 영화 속에 용해시켰다. 그의 도전은 영화계에 큰 활력소가 되었을 뿐 아니라 영화로써 조국에 대한 사랑을 재확인시키는 한편 대외적으로는 미국의 이미지업 효과까지 드러냈다. 록키는 '위대한 미국인'의 상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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