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해외

영화 이야기 - HOLLY WOOD COLUMNS 6 - 1980-1990

올드코난 2010. 6. 25.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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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야기
HOLLY WOOD COLUMNS

(출처: 내일)


6탄 (1980~1990)

MOVIE GOD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우리의 옛말이 있다. 유수와 같은 세월을 절감케해 주는 선인의 얘기다.

  태생기로부터 100. 21세기를 목전에 둔 할리우드의 영화 산업은 벌써 100년이란 세월의 영욕을 견디어 냈으며, 우리식으로 친다면 강산이 10번은 변한 셈이다.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할리우드는 거대화 되는 한편, 인체의 신경 세포마냥 복잡화되는 양상을 띠게 되었다. 사회 여느분야나 조직체와 마찬가지로 거대와, 세분화,  전문화, 다양화의 추세는 할리우드에도 예외는 아것이다. 또한, 과학화에 따라 컴퓨터가 모든 데이터를 장악해 한 주간의 흥행 실적이 마치 중대 뉴스나 되는 듯 라디오의 전파를 타고 세계 곳곳으로 흘러 다닌다.

  한 세기의 역사와 함께 흘러 온 할리우드의 100, 과연 잃은 것은 무엇이고 변한 것은

무엇일까.

 

  메이저의 변화

  80년대도 할리우드를 구성하는 유력한 영화 회사들의 변화가 나타났다.

  먼저 채플린, 메어리 히크포드, 더글러스 페어뱅크스, 그리고 데이비드 W. 그리피스에 의해 설립된 전통 있는 유나이티드 아티스트(UA) 81년에 MGM에 매수된 것이다.   합병극은 종종 그 전해 마이켈 티미노의 <천국의 문>의 대실패와 연결되곤 하지만  그것보다는 78중역진의 대다수가 퇴진해 버린 시점에서 이미 유나이티드 아티스트는 회사로서의 기능을 사실상 상실해 버렸는지도 모른다.

  UA를 떠난 중역진들은 새로이 '오라이온'이라는 회사를 창설하여 그 회사는 새로운 메이저의 맴버로서 활동하게 되었지만 이에 이어 82-83년에 걸쳐 예전부터 있었던 콜럼비아와 케이블 텔레비전의 HBO, 게다가 네트워크국의 하나인 CBS가 협력하여 설립한 트라이 스타가 생겨났다.

  더욱이 1980년대에 새로이 경영진을 맞아들인 디즈니사가 이제까지의 애니메이션 등 가족 영화중심의 작품에만 매달렸던 성향에서 과감히 벗어나 신세력으로 성장, 메이저의 하나로서의 위치를 굳히게 되었다.

  이리하여 80년대는 오랜 역사를 가진 파라마운트, 워너, 20세기 폭스, 콜럼비아, 유니버설, MGM/UA에 덧붙여 디즈니, 오라이언, 트라이 스타가 가세, 할리우드의 메이저로서 중심 세력을 구성하게 되었다. 각 메이저들은 나름대로의 전략과 구성으로 영화 시장을 공략, 80년대 이후 90년대까지 이들 메이저의 위치는 큰 흔들림 없이 유지되고 있고, 이러한 각사의 경쟁과 노력으로 영화 관객 역시 크게 늘지도 줄지도 않는 안정 상태가 계속 유지되어오고 있다. 따라서 입장료가 오르면 오른 만큼 수입도 늘어나 89년에는 연간 흥행 수입이 50억달러에 달했다.

  <대부>이후 흥행에 있어서 기록 깨기 행진이 잇달았지만 이것은 82년의 <E. T>의 등장에 따라 잠시 휴지기에 들어간다. 뛰어난 영상미나 불후의 명작으로 일컬어 질 만한 작품은아니지만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초히트작 기록을 깬다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의 무한한 잠재력과 기발한 아이디어, 뛰어나다 못해 지나친 상상력은 시공을 초월한 스펙터클 영상창출로 나타난다. 그의 기막힌 영상은 감각적인 인스턴트 세대의 구미에 딱 들어맞는 것임은 부언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비디오의 본격적인 보급과 케이블 TV의 활성화 등에 따라 <스타워즈> <E. T>비슷한 작품을 여러 번 감상할 수 있게 된 영화팬들은 한동안 극장의 대형 화면으로의 유혹보다는 안방을 즐겨 찾게 되었다.

  전후 TV의 보급으로 영화가 불황을 맞았던 것처럼 한동안 할리우드는 초긴장 상태를 맞았다.

그러나 실제 나타난 결과는 이와는 상당히 달랐다. , 같은 역사를 되풀이할 수 없다는 일부 영화계 인사의 노심 초사 덕택이었는지 비디오나 케이블 TV를 오히려 잘 이용하는 방식으로 전개되어 갔다.

  현재 비디오나 케이블TV는 영화 회사의 중요한 수입원이 되어, 예를 들어 흥행에 참패한 경우라도 쉽사리 재정이 흔들리지 않도록 비디오나 케이블TV가 보조적 시장이 된 것이다.

아무리 흥행 참패작이라 하더라도 판권을 넘기거나 비디오로 제작, 보급하면 최소한 제작비는 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흥행 성공작이라면 프리미엄까지 얹을 수도 있다.   할리우드는 안정된 '젖줄'과도 같은 비디오, 케이블 TV 덕택에 전화위복, 흥행작 탄생을 위한 맹노력을 하고 있으며 이러한 노력의 결실이 바로 꾸준히 영화 관객을 끌어 모으는 것 아닌가 생각된다.

 

  상업주의에 물든 할리우드

  20세기 폭스 사의 중역인 발리 딜러는 CATV에서 영화계로 들어온 최초의 인물이다. 지금은 중역이 되었지만 그가 당시 영화계에서 받은 취급은 쓰레기 내지는 인간 찌꺼기 정도였다.

에이전트는 물론 프로듀서, 중역들 모두 TV를 영화와는 수준이 다른 열등하고 예술성 없는 매체라 여겼기 때문이다. 딜러가 영화계에 발을 내디딘 것이 74, 그러니까 그리 오래 된 일이아니었지만 당시를 회고하는 그의 얘기를 들어보면 1800년대쯤의 별세계가 바로 할리우드다.

개방적이고 화려하고 떠들썩해 보이는 그곳이지만 그러한 고집스럽고 보수적인 면 또한 갖추고 있다. 그렇지만 완고하리만큼 TV등의 매체에 고집스러울 수 있던 할리우드였기에 그 나름이 예술 세계가 거기 존재해 있었다.

  하지만 CATV나 비디오와 서로 공존하게 되면서, 비상한 머리와 뛰어난 수단으로 할리우드를 주무르는 대기업의 하수인들이 점점 세력을 확장하면서, 그리고 상업적 매체인 TV의 인재들이 서서히 영화계로 스며들면서 할리우드도 예술성만을 고집하던 예전의 모습에서 서서히 상업성을 강조하는 기업군의 집합체로 변화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는 어쩌면 예고된 시나리오에 불과할는지도 모른다. 꿈을 먹고 살면서 고집불통의 연예인들이 운영하던 메이저들이 쓰러질 때(조직적인 대기업의 손 아래) 부터 이미 예견되기 시작한 일이다.

  경쟁보다는 인간적인 유대가, 소문보다는 정보가, 인간의 땀방울보다는 데이터가 중시되는 할리우드-----.

  "오늘날의 영화계는 시니시즘(Cynicism)이 과거와 같은 예는 거의 볼 수 없을 정도로 지독한 경쟁, 수익주의로 치닫고 있습니다. 물론 낡고 좋은 시대라서 이득이 되는 건 아니었죠. 하지만 요즘 이곳 할리우드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자연스럽지 못해요. 영화 배우의 개런티가 어떻구, 감독이 어떻다는 등의 얘기들----."

  할리우드의 귀재 스티븐 스필버그는 이즈음의 미국 영화계를 이렇게 평가한다. 그의 평가 역시 상업주의의 노예화로 줄달음치는 할리우드의 잃어버린 꿈과 사랑을 안타까워하는 마음에서 출발한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비즈니스화된 영화로 인해 할리우드에는 별난 변화도 있었다. 그것은 바로 유능한 인재의 유입이다. 인간은 꿈만으로 살 수 없다. 꿈과 달러가 함께 쏟아지는 곳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조직력과 자금력을 갖춘 대기업군에 할리우드의 환상이 팔리기 시작하면서 영화는 상품으로 변화하였고, 이에 따라 더욱 부가 가치를 지닌 산업으로서 주가가 높아졌다. '경쟁 동물'이라는 일본인들이 할리우드에 손을 뻗친 것도 결코 우연이랄 수 없다. 그들은 부가 가치가 높을 뿐 아니라 홍보 효과가 뛰어나 투자 가치가 확실한 영화 산업에 손대(특히 특수 효과가 뛰어난 작품에 투자, 많은 수익을 올렸다)어 자국의 이익 도모에 충실하고 있다. 이러한 이익은 결코 눈앞에 떨어지는게 아니다. 말초적이 되어 버린 관객의 성향 파악에서부터 감독의 수배, 유명 배우의 스카웃, 뛰어난 촬영 감독의 섭외 등 날로 경쟁이 치열해져 가는 삭막한 할리우드에서 흥행 성공을 하기 위해 끝없는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이런 노력은 인재 없이 이루어질 수 없다. 뛰어난 재목이 없이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기에 앞다투어 엘리트들을 차지하려는 메이저들의 노력 또한 뜨겁다. 70년대 이후 스필버그를 비롯, 대학에서 영화를 공부한 감독들이 속속 할리우드를 장악하기 시작한 이후, 프로듀서, 에이전트들도 뛰어난 지략으로 할리우드의 경쟁 체제를 준비하였다. 그 결과, 이제 할리우드에서는 인맥으로 일할 수 없는 여느 사회 조직과 마찬가지로 변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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