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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 시인 정지용에 대한 평가 – 문혜원 평론가의 평

올드코난 2010. 7. 6.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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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의 도시에서 자연으로의 회귀

 

문혜원(문학평론가)

 

(향수)의 시인으로 잘 알려져 있는 정지용은 모더니즘적인 시에서 동양화적인 산수시의 세계까지 비교적 다양한 작품의 경향을 보여주는 시인이다. <정지용시집><백록담>에 실려있는 시들은 이미즘적인 경향의 시와카톨릭 귀의 시, 동양화적인 산수시로 나우어질 수 있다.

이 중 <정지용시집>에 실려있는 시들은 다시 모더니즘과 전통 지향이라는 이율배반적인 두 축으로 구분된다. 모더니즘 계열의 시들이 기존의 운율을 파괴하고 자유로운 리듬으로 쓰여져 있는 반면, 전통지향적인 시들은 2, 3, 4마디를 바탕으로 하는 민요나 동요의 전통 율격을 병형시킨 리듬을 가지고 있고, 전자가 슬픔과 외로움의 감정을 기본 정조로 한다면 후자는 그리움과 평온함으로 둘러싸여 있다. 표면상 모순되는 것 같은 두 경향은 <백록담>에 이르러 조화를 이루게 된다. 이렇게 볼때 지용의 시세계는 크게는 <정지용시집>이 발간되기까지의 청년기와 <백록담> 시절의 장년기로 구분지어질 것이다. 전자에서 보이는 갈등과 방황은 후자에 이르러 어느 정도의 균형과 안정감을 확보하고 있다.

 

  <정지용시집>에 실린 시들은 크게 모더니즘 취양의시와 유년의 정서를 담은 시들로 구분되지만, 둘 다 상실감에 연유한 것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시인이느끼는 상실감은 "...앓는 피에로의 설움과 /첫길에 고달픈 /청제비의 푸념겨운 지줄댐과, /꾀집어 아즉 붉어오르는 /피에 맺혀, /비 날리는 이국 거리를 /탄식하며 헤매노나"(<조약돌> 일부)에서 나타나는 바와 같이 표면상 이국에서의 향수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실제 화자는 이국의 문물 앞에 서있는 식민지 지식인의 갈등과 번민을 감추고 있다. 그 증거로 이국 문물을 받아들이는 통로인 '바다'는 활기와 희망의 상징이 아닌 어둡고 쓸쓸한 화자의 내면 풍경을 보여주는 상관물로 등장한다. 적막한 밤바다의 물결 소리, 끼루룩거리며 날아가는 갈매기, 깜박이는 등대, 이 모든 것들은 낮 동안의 활기참이 사라진 쓸쓸한 풍경들이다. (<바다 4>, <바다 7>) 근대 문명의 상징인 '기차'를 보면서 느끼는 화자의 감정 역시 슬픔과 우울함으로 채색되어 있다. (파충류동몰)이나 (슬픈 기차)에서 '기차'는 외부와 단절되어 있는 자신만의 생각의 공간을 제공하는 구실을 할 뿐, 근대문명이 주는 경쾌함이나 편리함의 상징은 아니다. 낯선 이국의 거리를 정처없이 해매는 화자는 '나라도 집도 없'거나(<카페 프란스>), '멧천리 물 건너' 온 바나나처럼 한밤에 누워있는 시름의 인간 (<파충류동물>)이며, <슬픈 기차>, <바다 3>, <슬픈 도회> 등의 시에 등장하는 외로움, 서러움, 시름은 화자가 느끼는 슬픔과 동일한 감정들이다. 이러한 슬픔은 유년의 평온했던 기억과 대조를 이루면서, 현실의 시간 질서에 적응하지 못하는 화자의 좌절감을 두드러지게 한다. 화자가 처해있는 현실은 합리적 질서와 자연적이고 물리적인 시간이 지배하는 '도시'이다. 지쳐있는 화자는 '도시'라는 인위적인 공간의 질서뿐만 아니라 시간의 질서까지를 부정함으로써 이 좌절감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이때 그 돌파구로 제시되는 '고향'은 물리적인 시간과 상관없이 화자의 기억 속에 자리잡고 있는 인상으로서만 의미를 갖는다. '회상'은 그 자체가 정지해 있는 '경험적 시간'속에 위치하는 것이다.

기억 속에서는 모든 현재의 시간질서는 붕괴되고, 평안했던 시간의 마디마디만이 지속적으로 존재한다. 이는공적이고 객관적인 시간 또는 자연에 있어서 '시간 관계의 객관적인 구조'에 의하여 정의되는 '자연적 시간'이 아니라 사적이고 개인적이며 주관적인 또는 심리적인 '경험적 시간'의 영역이다. 화자는 유년의 기억 속으로 회귀함으로써 도시의 시간의 질서 속에서 탈출하고, 일상의삶에서의 좌절을 무화시키려 하는 것이다. 도시에서 지친 화자가 돌아가 쉴 수 있는 곳으로 설정된 '고향'은 정적이고 평화로우며 일상에서 벗어나 있는 공간으로, 노동의 고달픔이나 가난한 생활 등 실생활이 빠져있는 곳이다. 고향을 기억하는 시인의 정신은 유년으로 돌아가있어서 감성적인 추억만이 자리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널리 알려져 있는 (향수)의 세계이다.

  그러나 유년으로 돌아감으로써 갈등을 잊으려는 시도는 실패로 끝나고 마는데, 왜냐하면 시인은 자신이 이미' 어린 아들이 버얼서 아닌것'(<슬픈 기차>)을 깨들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깨달음 뒤에 청년기의 갈등과 방황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는 종교에의 귀의로 시화되어 나타나는바, 중기시로 구분되는 카톨릭적인 시들이 이에 해당한다. 이때 쓰여지는 지용의 종교시는 초기의 시에서와는 달리 '자아'가 뚜렷이 드러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즉 초기의 시에서는 자신의 주관적인 처지와 심정을 표현하는 시적인 화자가 존재하는 반면 카톨릭적인 시에서는 주관적인 '자아'가 사라진 대신에 오로지 신을 향한'신앙적 자아'만이 존재하게 된다. 시의 화자는 신과의 관계에서만 의미를 부여 받고 있는데, (임종), (1),

(은혜), (갈리레아 바다) <카톨닉천년>에 발표된 지용의 시들이 모두 반성의 여지없는 일방적인 믿음만으로 일관되고 있는 것은 이를 잘 증명해 준다. 특이하게도 지용의 종교시에는 신앙과 세속적인 자아 사이의 갈등이나 회의가 드러나 있지 않다. 지용의 종교시들이 일방적인 믿음을 보여 줌에도 불구하고 시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즉 거기에는 믿음에 이르기까지의 인간적인 번민과 갈등의 과정이 생략된 초월적인 공간만이 제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용의 종교시는 갈등과 안식이라는 구도로 볼 때 진정한 의미의 시적 해결책이라고 보기 어렵다.

  청년기의 갈등과 방황에 대한 시적인 해결책은 오히려 지용의 후기 시에 나타난 자연에의 귀의 속에서 발견되고있다. 이미지즘적인 색채를 선명하게 보여 주었던 초기의 시들과 비교할 때 후기의 산수시들은 표면상 상당히 이질적이다. 그러나 지용의 후기 산수시들이 자아를 감추고 풍경을 베끼듯이 그려내고 있는 점은 이미지즘의 수법을 원용하고 있는 것이다. 비록 시의 소재나 배경이 동양적인 자연으로 바뀌었다고 하더라도 시를 짓는 방법상으로는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다만 초기의 시들이 현실 안에서 부대끼는 젊은이의 오갈 데 없는 심경을 표현한 것이라면 후기의 시는 정면에서 어느 정도 비껴선 자리에서 쓰여지는 관조의 시라는 차별성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동양적인 관조의 미를 보여 주는 후기의 시들은 내용상 단순히 자연을 관조하는 시와 인간적인 감상이 덧붙여진 시로 나누어진다. (옥류동), (구성동), (비로봉2) 등은 전자의 예로서, 이 시에서 시인은 화자가 그림을 그리듯이 풍경을 관찰하고 그대로 옮겨놓는 구실만을 하고 있다. 자연에 대한 예찬의 마음이 극대화된 자리에서 시인은 "...나도 내더져 앉다  일즉이 진달래 꽃그림자에 붉었던  절벽 보이한 자리 우에"(<장수산2>일부)와 같이 그 자신이 자연의 일부가 된듯한 체험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지용의 산수시에서 역시 서러움은 시인이 자연을 완상하는 가운데서도 마음을 짓누르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앉음새 갈히여

  양지 쪽에 쪼그리고,

 

  서러운 새 되어

  흰 밥알을 쫏다.

    -(조찬) 중 일부

 

어름 금가고 바람 새로 따르거니

흰 옷고름 절로 향긔롭어라.

 

  옹승거리고 살어난 양이

  아아 꿈 같기에 설어라.

    -(춘설) 중 일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러움이 단순한 영탄으로 끝나지 않고 견고해 보이는 것은 슬픔을 인내하는 시인의 태도 때문이다. 자연은 적막한 곳에 변화가 있고, 변화 속에서 영원이 자리하고 있는 곳이다. 그 속에서 시간은 정지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부패가 아니라 불변하는 자연의 진리를 뜻하는 것일 뿐이다. 이러한 자연의 이치를 깨달음으로써 시인은 방황과 갈등을 안으로 갈무리하는 시적 해결책을 찾아내고 있다. (장수산1)은 젊은 날의 상채기를 안으로 삭히는 장년의 어른스러움이 돋보이는 수작이며, 지용의 시적인 결론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벌목정정 이랬거니  아람도리 큰솔이 베혀짐 즉도 하이  골이 울어 멩아리 소리  쩌르렁  돌아 옴즉도 하이  다람쥐도 좇지 않고  뫼ㅅ새도 울지 않어  깊은 산 고요가 차라리 뼈를 저리 우는데  눈과 밤이 조히보담 희고녀!  달도 보름을 기다려 흰 뜻은 한밤 이골을 걸음이랸다?  웃절 중이 여섯판에 여섯 번 지고 웃고 올라간 뒤  조찰히 늙은 사나이의 남긴 내음새를 줏는다?  시름은 바람도 일지 않는 고요에 심히 흔들리우노니  오오 견디랸다  차고 올연히  슬픔도 꿈도 없이  장수산 속 겨울 한밤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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