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국사-근현대

삼일절 3·1 운동. 국민들은 순수했고, 주동자들은 그렇지 못했다.

올드코난 2014. 2. 28. 11:01
반응형

삼일절은 쉬는날? 대체근무일? 3·1 운동 제대로 알아 봅시다. 3·1 운동 민족대표 33인들은 모두 다 존경받을 인물들이었는가? 3·1 운동을 주도했던 사람들이 모두다 순수한 애국자들은 아니었다는 사실에 대해 같이 생각해 봅시다.

삼일절 3·1 운동을 주도한 민족대표 33인들은 종교인들이었다. 국민들은 순수했고, 주동자들이었던 종교인은 그렇지 못했다.

 

우선 3·1 운동에 대해 간략히 알아 봅니다. (글출처: 위키백과)

1.개요

3·1 만세 운동(三一萬歲運動 이하 3·1 운동) 1910년 일본에 나라를 뺏긴 조선의 국민들이 자주독립을 외쳤던 첫 번째 비무장 운동이다. 1919년 3월 1일 독립을 선언하고 만세운동을 시작한 사건이다. 기미독립운동 또는 3·1 인민봉기라고도 부른다.

3·1 운동을 주도한 인물들을 민족대표 33인으로 부른다. 그리고 직접 서명하지는 않았지만 직접, 간접적으로 3·1 운동을 준비한 이들까지 합쳐서 보통 민족대표 48인 또는 프랭크 스코필드를 포함 민족대표 49인으로도 부른다. 이들은 모두 만세 운동이 실패한 후에 구속되거나 재판정에 서게 된다. 약 3개월 가량의 시위가 발생하였으며, 조선총독부는 강경하게 진압했다. 조선총독부의 공식 기록에는 집회인수가 106 만여 명이고, 그 중 사망자가 7,509명, 구속된 자가 4만 7천여 명이었다. 한편 신복룡 교수나 일본 측 야마기 겐타로 등 학자들의 견해에 의하면 약 50만 명 정도가 참여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3·1 운동을 계기로 군사, 경찰에 의한 강경책을 펴던 조선총독부는 문화통치로 정책을 바꾸게 된다.

1946년 3월 1일 제27회 기념식을 시초로 국가 경축일로 지정되고, 1949년 10월 1일 <국경일에관한법률>을 공포함으로써 국경일로 지정되었다.

 

2.민족대표 33인

민족대표 33인(民族代表三十三人)은 1919년 3·1 운동 때 발표된 기미독립선언서에 서명한 33명을 가리킨다. 종교별로 나누어 대표를 선정하여 천도교, 기독교, 불교에서 각 15명, 16명, 2명씩 참가했다. 이 가운데 1919년 3월 1일에 약속 장속인 태화관에 나오지 않은 사람은 길선주, 유여대, 김병조, 정춘수이다.

상하이로 망명해 체포를 피한 김병조와 나중에 무죄 판결을 받은 길선주, 그리고 체포 직후 구금 중에 사망한 양한묵을 제외하고는 모두 이 사건으로 징역 1년 6개월에서 3년형을 선고 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들중 손병희등은 복역 중 병사하였다.

민족대표 33인 중 일부는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포함되어 있다. 최린, 박희도, 정춘수 등이 대표적이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겠다.

 

위에 열거된 민족대표 33인들은 한용운 백용성을 제외하고는 대다수 천도교와 개신교 관계자들이었다. 최린, 박희도, 정춘수 등은 후일 친일파로 활동하기도 했다.

3.1운동의 전국적인 확산으로 일본에 의해 수 많은 사람들이 학살되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일본이 조선에 대한 통치는 무척 교활해졌다.

 

3.1운동 이전에는 대놓고 강압적인 방식이었다면 3.1운동 이후는 철저히 이간질적인 정책을 보인다. 교육을 해준다는 핑계로 일본에 적극 협력하는 친일파들을 양성하기 시작했고 독립운동가들을 찾아내기 위해 '고등 경찰제'를 도입했다. 3.1운동 이후 민족 말살 정책이 아주 교활하게 이루어 지게 된다.

 

그리고 이런 일본에 적극적으로 협력을 한 것은 3.1운동을 주도했던 기독교인들이다.

 

3.1운동 당시 수 많은 유언비어가 난무하고 평화 시위는 폭력시위로 돌변하면서 3.1운동을 주도했던 종교인들 상당수가 슬그머니 빠져나갔다. 선동을 하고 도망치는 비열한 행동을 한 것이다.  3.1운동 이후 일본이 조선에 대한 민족 말살정책을 펼치자 기독교인들은 일본 편에서 당시 국민들을 더욱더 힘들게 만들었다.

 

1919년 3.1운동 이후 95년이 지난 2014년 3월 1일이 된 지금도 기독교인들의 권력자에 대한 비굴한 행태는 비난의 대상이다.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에 협력하고 독재시기에는 독재자의 개 노릇을 자처하는 종교인들이 앞장섰던 3.1운동은 순진했던 당시 백성들이 선동을 당하고 희생을 당했던 것이다.

 

3.1운동은 분명 우리 한국인들이 자부심을 느껴야 한다. 하지만 제대로 된 준비없이 종교인들이 현실감 없이 당장 국민들이 독립이 될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고 선동했던 3.1운동은 결과적으로 이후 26년간 조선 백성들에게 더 큰 시련을 안겨주었다.

3.1 운동 이후 해방될때까지 일본 앞잡이 노릇을 한 당시 기독교인들에게 책임을 물을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마지막으로 3·1 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삼일절은 분명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에게는 자부심을 느끼고 기념해야 할 소중한 날이다. 그저 노는 날로만 생각하지 말자.

3.1 운동의 상징 유관순 열사처럼 진심으로 대한 독립을 외쳤던 대다수 국민들의 그 마음을 후손된 우리는 절대 잊어서는 안되겠다. 

 

글 작성 올드코난 (Old Conan)

글에 공감하신다면 SNS (요즘,트위터,미투데이, 페이스북)로 널리 널리 알려 주세요. ★ 글의 오타, 하고픈 말, 그리고 동영상 등이 재생이 안되는 등 문제가 발견 되면 본문 하단에 댓글로 남겨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