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국사-근현대

자서전) 백범일지 - 김구선생 일대기 (하권) 19

올드코난 2010. 7. 10.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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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일지 (하권)

김구선생 일대기

 


그러나 모든 계급독재 중에도 가장 무서운 것은 철학을 기초로 한 계급독재이다.

수백년 동안 이조 조선에 행하여 온 계급독재는 유교 그 중에서도 주자학파의 철학을

기초로 한 것이어서 다만 정치에 있어서만 독재가 아니라 사상. 학문. 사회생활.

가정생활, 개인생활까지도 규정하는 독재였었다. 이 독재정치 밑에서 우리 민족의

문화는 소멸되고 원기는 마멸된 것이었다. 주자학 이외의 학문은 발달하지 못하니 이

영향은 예술, 경제, 산업에까지 미쳤다.

  우리 나라가 망하고 민력이 쇠잔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이 실로 여기 있었다.

그런고 하면 국민의 머리 속에 아무리 좋은 사상과 경륜이 생기더라도 그가

직권계급의 사람이 아닌 이상, 또 그것이 사문난적이라는 범주 밖에 나지 않는 이상

세상에 발표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싹이 트려다가 눌려 죽은 새 사상,

싹도 트지 못하고 밟혀 버린 경륜이 얼마나 많았을까. 언론의 자유가 어떻게나 중요한

것임을 통감하지 아니할 수 없다. 오직 언론의 자유가 있는 나라에만 진보가 있는

것이다.

  시방 공산당이 주장하는 소련식 민주주의란 것은 이러한 독재정치 중에도 가장

철저한 것이어서 독재정치의 모든 특징을 극단으로 발휘하고 있다. 즉 헤겔에게서

받은 변증법, 포이에르바하의 유물론 이 두 가지와 아담 스미드의 노동가치론을

가미한 마르크스의 학설을 최후의 것으로 믿어, 공산당과 소련의 법률과 군대와

경찰의 힘을 한데 모아서 마르크스의 학설에 일점 일획이라도 반대는 고사하고 비판만

하는 것도 엄금하여 이에 위반하는 자는 죽음의 숙청으로써 대하니 이는 옛날의

조선의 사문난적에 대한 것 이상이다.

만일 이러한 정치가 세계에 퍼진다면 전인류의 사상은 마르크스주의 하나로 통일될

법도 하거니와 설사 그렇게 통일이 된다 하더라도 그것이 불행히 잘못된 이론일진대,

그런 큰 인류의 불행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마르크스의 학설의 기초인 헤겔의

변증법의 이론이란 것이 이미 여러 학자의 비판으로 말미암아 전면적 진리가 아닌

것이 알려지지 아니하였는가. 자연계의 변천이 변증법에 의하지 아니함은 뉴튼,

아인슈타인 등 모든 과학자들의 학설을 보아서 분명하다.

  그러므로 어느 한 학설을 표준으로 하여서 국민의 사상을 속박하는 것은 어느 한

종교를 국교로 정하여서 국민의 신앙을 강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옳지 아니한

일이다. 산에 한 가지 나무만 나지 아니하고 들에 한 가지 꽃만 피지 아니한다. 여러

가지 나무가 어울려서 위대한 삼림의 아름다움을 이루고 백 가지 꽃이 섞여 피어서

봄들의 풍성한 경치를 이루는 것이다. 우리가 세우는 나라에는 유교도 성하고 불교도,

예수교도 자유로 발달하고 또 철학으로 보더라도 인류의 위대한 사상이 다 들어와서

꽃이 피고 열매를 맺게 할 것이니 이러하고야만 비로소 자유의 나라라 할 것이요,

이러한 자유의 나라에서만 인류의 가장 크고 가장 높은 문화가 발생할 것이다.

  나는 노자의 무위를 그대로 믿는 자는 아니거니와, 정치에 있어서 너무 인공을

가하는 것을 옳지 않게 생각하는 자이다.

대개 사람이란 전지전능할 수가 없고 학설이란 완전무결할 수 없는 것이므로 한

사람의 생각, 한 학설의 원리로 국민을 통제하는 것은 일시 빠른 진보를 보이는

듯하더라도 필경은 병통이 생겨서 그야말로 변증법적인 폭력의 혁명을 부르게 되는

것이다.

  모든 생물에는 다 환경에 순응하여 저를 보존하는 본능이 있으므로 가장 좋은 길은

가만히 두는 길이다. 작은 꾀로 자주 건드리면 이익보다도 해가 많다. 개인 생활에

너무 잘게 간섭하는 것은 결코 좋은 정치가 아니다. 국민은 군대의 병정도 아니요,

감옥의 죄수도 아니다.

한 사람 또는 몇 사람의 호령으로 끌고가는 것이 극히 부자연하고 또 위대한 일인

것은 파시스트 이탈리아와 나치스 독일이 불행하게도 가장 잘 증명하고 있지

아니한가.

  미국은 이러한 독재국에 비겨서는 심히 통일이 무력한 것 같고 일의 진행이 느린

듯하여도 그 결과로 보건대 가장 큰 힘을 발하고 있으니 이것은 그 나라의 민주주의

정치의 효과이다. 무슨 일을 의논할 때에 처음에는 백성들이 저마다 제 의견을

발표하여서 헌헌효효하여 귀일할 바를 모르는 것 같지마는 갑론을박으로 서로

토론하는 동안에 의견이 차차 정리되어서 마침내 두어 큰 진영으로 포섭되었다가 다시

다수결의 방법으로 한 결론에 달하여 국회의 결의가 되고 원수의 결제를 얻어 법률이

이루어지면 이에 국민의 의사가 결정되어 요지부동하게 되는 것이다.

  이 모양으로 민주주의란 국민의 의사를 알아보는 한 절차, 또는 방식이요, 그 내용은

아니다. 즉 언론의 자유, 투표의 자유, 다수결에 복종--이 세 가지가 곧 민주주의다.

국론, 즉 국민의 의사의 내용은 그때그때의 국민의 언론전으로 결정되는 것이어서

어느 개인이나 당파의 특정한 철학적 이론에 좌우되는 것이 아님이 미국식 민주주의의

특색이다. 다시 말하면 언론, 투표, 다수결 복종이라는 절차만 밟으면 어떠한 철학에

기초한 법률도, 정책도 만들 수 있으니 이것을 제한하는 것은 오직 그 헌법의

조문뿐이다. 그런데 헌법도 결코 독재국의 그것과 같이 신성불가침의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절차로 개정할 수가 있는 것이니, 이러므로 민주, 즉 백성이 나라의

주권자라 하는 것이다. 이러한 나라에서 국론을 움직이려면 그 중에서 어떤 개인이나

당파를 움직여서는 되지 아니하고 그 나라 국민의 의견을 움직여야 된다. 백성들의

작은 의견은 이해관계로 결정되거니와 큰 의견은 그 국민성과 신앙과 철학으로

결정된다. 여기서 문화와 교육의 중요성이 생긴다.

  국민성을 보존하는 것이나 수정하고 향상하는 것이 문화와 교육의 힘이요, 산업의

방향도 문화와 교육으로 결정됨이 큰 까닭이다. 교육이란 결코 생활의 기술을

가르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교육의 기초가 되는 것은 우주와 인생과

정치에 대한 철학이다. 어떠한 철학의 기초 위에 어떠한 생활의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

곧 국민교육이다. 그러므로 좋은 민주주의의 정치는 좋은 교육에서 시작될 것이다.

건전한 철학의 기초 위에 서지 아니한 지식과 기술의 교육은 그 개인과 그를 포함한

국가에 해가 된다. 인류 전체로 보아도 그러하다.

  이상에 말한 것으로 내 정치 이념이 대강 짐작될 것이다. 나는 어떠한 의미로든지

독재정치를 배격한다. 나는 우리 동포를 향하여서 부르짖는다. 결코결코 독재정치가

아니 되도록 조심하라고, 우리 동초 각 개인이 십분의 언론 자유를 누려서 국민 전체의

의견대로 되는 정치를 하는 나라를 건설하자고, 일부 당파나 어떠한 계급의 철학으로

다른 다수를 강제함이 없고, 또 현재의 우리들의 이론으로 우리 자손의 사상과 신앙의

자유를 속박함이 없는 나라, 천지와 같이 넓고 자유로운 나라, 그러면서도 사랑의 덕과

법의 질서가 우주 자연의 법칙과 같이 준수되는 나라가 되도록 우리 나라를

건설하자고.

  그렇다고 나는 미국의 민주주의 제도를 그대로 직역하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소련의 독재적인 '민주주의'에 대하여 미국의 언론자유적인 민주주의를 비교하여서 그

가치를 판단하였을 뿐이다. 둘 중에서 하나를 택한다면 사상과 언론의 자유를 기초로

한 것을 취한다는 말이다.


 (다음페이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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