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인물

조선 최초의 왕대비 정종 왕비 정안왕후 김씨(定安王后 金氏) 생애

올드코난 2016. 2. 1.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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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2대 임금이며 동생 태종(정안군)에게 양위를 하고 상왕으로 물러난 정종의 왕비 정안왕후김씨는 조선 최초의 왕대비였다. 그럼에도 역사에서 다루어지지 않은 것은 정종의 치세가 짧기도 하지만, 어떤 논란도 일으킨 적이 없는 욕심 없던 성품때문이었다. 정안왕후에 대해 정리해 본다.

조선 최초의 왕대비 정종 왕비 정안왕후 김씨(定安王后 金氏) 생애


1.개요

정안왕후 김씨(定安王后 金氏, 1355년 1월 22일/음력 1월 9일~ 1412년 8월 2일/음력 6월 25일)는 조선 정종의 왕비로 별호는 덕비(德妃) 시호는 온명장의정안왕후(溫明莊懿定安王后)이다. 월성부원군 김천서(月城府院君 金天瑞)의 딸로 본관은 경주이다. 조선 최초의 왕대비로 안정왕후(安定王后)라고도 한다.


2.생애

고려 공민왕 4년 1355년 1월 22일(음력 1월 9일) 월성부원군 김천서(金天瑞)의 딸로 태어났다. 1398년 영안군(永安君)의 정부인으로 영안군이 세자가 되자 세자빈으로 책봉되었다. 같은 해 영안군이 2대 왕 정종으로 즉위하면서 왕비가 되고 2년 뒤 1400년에 남편 정종이 동생인 세자 정안군(靖安君: 태종)에게 양위하고 상왕으로 물러나자 순덕 왕대비(順德王大妃)의 존호를 받았다.

태종 12년 1412년 8월 2일 (음력 6월 25일)에 58세로 사망하고 270년 뒤인 1681년(숙종 7년)에 온명장의(溫明莊懿)의 존호가 추상되었다. 능은 황해북도 개풍군 영정리에 위치한 후릉(厚陵)으로, 후에 남편 정종도 이곳에 묻혀 쌍릉으로 조성되었다.



3. 좋은 성품이 천수를 누리게 하다.

정안왕후는 당대 부드러운 성격에 검소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친척들과도 무난하게 지냈는데, 여기에 남편 정종 역시 정직하고 바른 성격의 인물로 어찌 보면 이들 부부는 궁합이 잘 맞았던 것 같다.

이들 부부는 공식적으로 상왕으로 물러난 것이지만, 실재로는 동생인 태종에 의해 물러난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이런 경우는 권력 싸움에 말려들어 비참한 결과를 보이고는 하는데, 정종과 정안왕후가 천수를 누리게 된 것은 현실을 이해하고 큰 욕심을 갖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일 정종의 동생이며 태종의 바로 윗 형 되는 방간처럼 왕위에 욕심을 부렸다면 멸문을 당할 수도 있었다.

정종에게 왕위를 태종에게 물려주라고 계속해서 충언을 했던 사람이 정안왕후였다는 점은 태종에게도 고마움을 느끼게 해주었는데, 왕대비로서도 예우를 받게 된다.

그리고, 정안왕후는 아이를 낳지 못했는데, 정종의 7명의 후궁들에게서 난 17명의 아들과 8명의 옹주들에게도 잘 대해준 것으로 보인다.


4.평가

정안왕후의 좋은 점은 나는 국모였다고 하는 그런 마음을 버렸다는 점이다. 과거에도 그랬고, 요즘에도 간혹 자신이 날 나갔던 그 시절을 잊지 못해 악수를 두는 우를 범하는 사람들이 많다. 과거의 영광에 미련 두지 말고 현실을 직시하고, 큰 욕심을 버린 사람들은 끝이 편안했다. 정안왕후에게서 배울 점이 바로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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