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국사-근현대

허문도 별세, 전두환의 괴벨스 허문도의 무덤에 침을 뱉어라!

올드코난 2016. 3. 5.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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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허문도 사망 소식에 깜짝 놀랐다. 한동안 잊고 있었던 허문도의 죽음은 어느덧 세월이 흘렀음과 역사를 바로 세우지 못한 아쉬움을 느끼게 한다. 허문도에 대해 간략히 정리해 본다.

5공화국 실세이며 언론인들에게 피눈물을 쏟게 만들었던 허문도 별세, 전두환의 괴벨스로 불리었던 허문도(許文道) 그의 무덤에 침을 뱉어라! 


1.개요

허문도(許文道, 1940년 2월 26일 ~ 2016년 3월 5일)는 본관은 김해(金海)이며 경상남도 고성 출생으로 전두환 정권 당시 실세로 허삼수, 허화평과 함께 삼허(3許)라 불린 인물이다. 전두환 정권 당시 괴벨스로도 불리었는데, 이런 허문도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고 있는 것은 허문도는 군출신이 아니다. 조선일보 기자출신였다. 1964년 조선일보 기자로 입사해 일본 도쿄 특파원등을 지낸 허문도가 권력에 빌 붙기 시작한 것은 박정희 유신 말기였다. 1979년 6월 일본 주재 한국 대사관 공보관으로 시작한 그의 정치인생은 그해 박정희가 죽고 (10 26사태) 얼마 안되어 전두환 등의 하나회 출신들이 일으킨 12·12 군사 반란 사건으로 큰 전환점을 맞이 하게 된다.


2. 5공화국 실세

전두환의 정권을 잡은 직후인 1979년 12월 ~ 1980년 4월동안 중앙정보부장 특별보좌관을 맡은 것을 시작으로 8월 28일까지 중앙정보부장 비서실장과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문화공보위원을 겸직하면서 5공화국 실세로 떠 오르게 된다. 이 시기 전두환은 5.18 광주 학살을 거치며 대통령 권한대행 직을 맡은 사실상 대통령으로 허문도는 이때 대통령 비서실 정무 제1비서관, 대통령 비서실 공보비서관 (별정관리관) 자리를 차지하고 ‘국풍81’에 참여한다. 대통령 비서실 정무수석비서관 직함을 갖은 허문도는 1981년 3월 3일 전두환이 대통령으로 정식 취임하고부터는 문화공보부 차관, 문화공보부 장관 직무대리, 국토통일원 장관 등의 요직을 맡게 된다.


3. 최후

전두화 정권의 끝과 함께 허문도의 권력도 끝을 맺는다. 노태우 정권 시절인 1989년 2월 1980년 당시 기자 해직 혐의로 국회 문공위에 출두하기도 했지만 일본으로 도피하고 그해 10월 최일남(崔一男) ‘80년해직언론인협의회’ 위원장 등 530명으로부터 고소를 당했다.

하지만, 1990년 1월 : 언론 해직관련 무혐의 처분을 받았고 항소가 있었지만 그해 5월 언론 해직관련 최종 무혐의 처분을 받아 많은 국민들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

특히, 허문도는 자성의 시간을 보내는가 하더니 1992년 2월 14대 총선거에 경남 통영 충무 선거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낙선했고 1998년 4월 지방자치단체장 선거 당시 무소속으로 경상남도지사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 낙선했다. 이후 선거에는 출마하지 못했지만, 보수우익으로 활동을 하다 2016년 3월 5일 사망했다.



4. 한국의 괴벨스

전두환의 5공 시절의 허문도에 대해 많은 이들이 비판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언론을 권력의 개로 만든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허문도하면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1980년 신문/방송/통신을 통폐합한 언론통폐합을 주도했는데 당시 전국의 신문사 11개, 방송사 27개, 통신사 6개 등 44개 언론매체를 통폐합시켜 버렸다. 허문도를 '전두환 정권의 괴벨스'라고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인데 괴벨스는 나치 선전 및 미화를 주도한 대표적인 정치 선동가였다.

허문도가 지탄을 받고 있는 것도 조선일보 기자 시절의 경험으로 언론의 생리를 잘 알고 있기에 언론을 전두환의 꼭두각시로 만드는데 매우 큰 공헌을 하면서 대한민국의 언론자유와 공정성을 심각하게 훼손시켰기 때문이다.

여기에 1981년 5·18민주화운동 1주년을 무마시키기 위해 관제집회에 수천 명을 동원한 '국풍 81'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되는데, 국풍 81 행사는 당시에는 매우 성공적이었고, 그로 인해 1980. 5.18 광주시민 대학살의 진실을 많은 국민들이 모르거나 왜곡된 사실을 알게 된다.


5.올드코난 생각

허문도에 대해 더 많은 자료가 확보되면 추가로 다시 설명해 보기로 하고 오늘은 이렇게 정리를 해 본다. 허문도는 칼보다는 펜이 더 무섭다는 사실을 보여준 인물이며, 언론인이 권력과 결탁을 하게 되면 언론이 심각한 위기를 맞게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최근 이명박과 박근혜 정부에서도 확실히 알수 있다. KBS MBC 앵커출신들이 청와대 대변인 노릇을 하다 국회의원 선거에도 나오고, 조선일보 출신들이 요직을 차지하면서 대한민국의 언론의 자유와 공정성이 후퇴해 버렸다는 것은 분명하다. 최근들어 이런 언론인들에게 기레기라는 단어로 쉽게 표현하는데 허문도가 바로 기레기의 대표적인 인물인 것이다.

조선일보 신문사에 오랜 근무로 알게된 언론사의 생리를 권력자를 위해 활용하면서 많은 언론인들이 고통 받았고, 국민들은 왜곡된 보도를 보면서 생각의 자유를 빼앗기고 말았다.


허문도를 용서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그는 죽는 순간까지 권력을 추구했고, 자신의 행위에 대해 반성하지 않았다. 죽는순간까지는 그는 좌익타도를 외치며 민주주의와 인권 운동가에게 몹쓸 말을 퍼부었던 자였다. 그리고, 그에게 피해를 당한 많은 언론인들과, 국민들에게 죽는 순간까지 사죄를 하지 않았다. 

이런 허문도에게는 장례식도 아깝다. 그의 무덤에 침을 뱉고 싶다는 말로 마무리하겠다.


글 작성/편집 올드코난 (Old Con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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