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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국사-근현대 127

여성근로자 차별에 맞선 세계 여성의 날 유래 의미 설명 (3월 8일 국제 여성의 날)

3월8일은 세계 여성의 날 (국제 여성의 날, International Women's Day)이다. 1909년 시작된 것으로 1910년 알렉산드라 콜론타이와 클라라 체트킨에 의해 세계적 기념일로 제안되었고 1975년부터 국제연합에 의해 매년 3월 8일이 세계 여성의 날로 공식 지정되었다. 정리해 본다.근로자의 권리, 인권, 민주주의와 여성 근로자들의 권익에 큰 영향과 도움을 주고 있는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 (국제 여성의 날) 유래 의미 설명 1.최초의 여성 노동조합산업 혁명과 시민 혁명 그리고 자본주의 발전은 가사만을 하던 여성들에게 노동력을 요구하게 되는데, 문제는 남성보다 더 열악한 노동환경과 조건에 더 낮은 임금에 여성차별까지 심각해 여성노동자들의 불만은 극에 달한다. 결국 1857년 미국 뉴..

허문도 별세, 전두환의 괴벨스 허문도의 무덤에 침을 뱉어라!

방금 허문도 사망 소식에 깜짝 놀랐다. 한동안 잊고 있었던 허문도의 죽음은 어느덧 세월이 흘렀음과 역사를 바로 세우지 못한 아쉬움을 느끼게 한다. 허문도에 대해 간략히 정리해 본다.5공화국 실세이며 언론인들에게 피눈물을 쏟게 만들었던 허문도 별세, 전두환의 괴벨스로 불리었던 허문도(許文道) 그의 무덤에 침을 뱉어라! 1.개요허문도(許文道, 1940년 2월 26일 ~ 2016년 3월 5일)는 본관은 김해(金海)이며 경상남도 고성 출생으로 전두환 정권 당시 실세로 허삼수, 허화평과 함께 삼허(3許)라 불린 인물이다. 전두환 정권 당시 괴벨스로도 불리었는데, 이런 허문도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고 있는 것은 허문도는 군출신이 아니다. 조선일보 기자출신였다. 1964년 조선일보 기자로 입사해 일본 도쿄 특파..

1910년 2월 14일 안중근 사형 선고일, [안중근 의사 유해를 찾지 못한 이유]

2월14일 쵸콜렛주는 날로만 여겨겨지는 이날은 우리 한민족의 아픔이 있는 날이다. 1910년 2월 14일 안중근 의사가 사형을 선고 받았다. 안중근 의사에 대해서는 인터넷에 많은 글들이 올라있으니 참고하기를 바라며 아직도 유해조차 찾지못한 안타까운 마음에 몇자 적는다. 1.개요안중근(安重根, 1879년 9월 2일 ~ 1910년 3월 26일) 본관은 순흥(順興), 고려조의 유학자 안향(安珦)의 26대손. 어려서 안응칠(安應七)이라는 아명으로 불렸고 천주교 세례명은 토마스(도마; 多默). 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 만주의 하얼빈 역 근처에서 초대 한국통감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다. 현장에서 체포되어 뤼순 감옥에 수감되었고 1910년 2월 14일 일본에 의해 사형선고를 받았고, 한달후인 1910년 3..

박정희가 만든 국민노비문서 국민교육헌장 전문 분석(國民敎育憲章)

최근 그네공주의 간신들이 서서히 마각을 드러내고 있다. 애국가4절에 공무원 임명을 하는데 민주성 대신 애국심을 평가한다. 여기서 애국심은 당연히 권력자에 대한 충성이다. 간신 황교안 국무총리는 어찌 보면 박정희 유신 시대 세뇌를 당한 대표적인 로봇형 인간이 아닐지. 과거 박정희 시절 발표되어 당시 청소년기를 보냈던 우리 세대들이 무조건 외워야 했던 국민교육헌장을 기억하는가. 총 393자로 이루어진 대표적인 군부독재의 유산으로 아직도 이 전문내용 대부분을 기억하는 내 자신이 놀랍고 한편으로는 두렵다. 국민교육헌장에 대해 정리해 본다.일본천황을 동경했던 박정희가 만든 국민노비문서 국민교육헌장(國民敎育憲章) 1. 국민교육헌장 전문 내용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조상의 빛난 얼을 ..

박정희 유신으로 이어진 1·21 사태 (김신조 사건) 설명

1·21 사태(1.21.事態)는 김일성의 명령으로 1968년 1월 21일 박정희를 암살하기 위해 남파된 북한 공작원(공비) 31명이 청와대를 기습한 사건으로 유일하게 생포되었던 김신조의 이름을 따 김신조 사건이라고도 한다. 이 사건에 대해 설명해 본다.1968년 청와대 기습사건 1·21 사태 (김신조 사건) 박정희 유신으로 이어지다.*주로 김신조의 진실에 의해 정리가 되었음을 알린다. 1.사건 개요1968년 1월 13일 북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민족보위성 정찰국의 124부대 소속 31명이 조선인민군 정찰국장 ‘김정태로’부터 청와대 습격과 요인 암살 지령을 받았다. 당시 국군의 복장과 수류탄 및 기관단총으로 무장하고, 1월 17일 자정을 기해 휴전선 군사분계선을 넘어 야간을 이용 남한 수도권에 잠입하는..

이승만에 의해 공비로 조작된 문경 양민학살 사건 진실

1949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에 자행된 민간인 학살이며 이승만에 의해 공비로 조작된 문경 양민학살 사건에 대해서 살펴 본다. 1.사건 개요문경 양민학살 사건(聞慶良民虐殺事件, Mungyeong Massacre)은 1949년 12월 24일 국군 제2사단 25연대 2대대 7중대 2소대 및 3소대원 70여 명이 경상북도 문경군 산북면 석봉리 석달마을을 대상으로 공비에 협력했다는 이유로 국군이 무차별총격과 불을 지르고 남녀노소 주민들을 살해한 민간인 대량학살 사건을 말한다. 당시 학살로 마을 주민 136명 중 어린이 9명과 여성 44명을 포함해 모두 86명이 목숨을 잃었다. 2.드러난 진실참여정부 들어 발족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의 과거사 청산에 의해 국가의 불법행위임이 명백..

YH 무역 사건 (YH 무역 여공 농성 사건) 내용과 평가

YH 사건은 가발수출업체였던 YH 무역 회사 여성 근로자들이 회사 폐업조치에 항의해 1979년 8월 9일부터 8월 11일 사이에 당시 야당인 신민당 당사에서 농성시위를 벌였는데 경찰이 강제 해산하는 과정에서 여공 1명이 추락사한 사건으로 이 사건의 영향으로 김영삼 의원제명 파동과 부마민중항쟁, 10·26 사태로 이어지는 박정희 정권 종말의 도화선이 되었다고 평가를 받고 있다. 그리고 이 당시 김영삼 전 대통령이 한 말인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독재에 굴하지 않는 명언으로 남아있다. 어제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분향소에 YH 무역사건 당사자였던 여공들이 분향소를 참배했다. 36년 전 부당해고를 외치던 당시 20대 여공들은 이제는 할머니 되었다. YH 사건은 왜 일어났고,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

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 민주화 업적은 인정해 주어야 한다.

2015.11.22. 0시 21분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숨을 거두었다. 그의 인생을 한 페이지에 담을 수가 없어, 여기에는 생전의 잘한 부문에 대한 평가만을 다루어 보겠다.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 과도 있었지만 공도 있었다. 대한민국의 민주화에 앞장선 김영삼 전 대통령의 업적은 인정해 주어야 한다. 고인의 명복을 빌며. 1.개요故 김영삼(金泳三, 1927년 12월 20일 ~ 2015년 11월 22일)은 1927년 12월 20일에 경상남도 거제(통영군)에서 아버지 김홍조와 어머니 박부련 사이에서 1남 5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김녕(金寧) 김씨 28대손으로 사육신 사건 무렵 살해된 김문기의 후손이다. 1954년 거제에서 제3대 민의원 선거에 출마해 28세로 당선 역대 최연소 ..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 선감도 선감학원 편, 박정희 시대가 만든 지옥이었다.

11월 13일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 사상 최악의 소년 인권 유린 사건 '선감학원' 편이 방송되었다. 방송에서 나온 내용은 실재 그곳에서 자행된 사건들을 모두 다 보여주지는 못했다. 방송내용을 요약해 보며, 개인적인 생각을 정리해 본다.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 선감도 선감학원 진실편, 요약 정리 및 같이 생각해 볼 점을 정리해 본다. 누가 이 지옥을 만들었는가! 박정희 독재시대의 유산인 것이다. 1.선감학원 설립선감도에 선감학원(仙甘學園))이 세워진 것은 일제강점기였던 1942년이었다. 1942년 부랑아 수용시설로 설립되었는데, 소년범죄의 절멸과 부랑아동들의 갱생을 꾀하기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웠고 소년의 낙원 선감학원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관련자료 매일신보 1942년 4월 17일) 이미..

1900년 11월 12일 경인선 전구간 개통식, 근대화가 아니라 일제 약탈의 시작이었다.

[들어가기전: 경인선 설명] 경인선(京仁線)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구로구의 구로역과 인천광역시 중구의 인천역을 잇는 총 연장 27 km의 철도 노선이다. 대한민국에서 공식적인 기록상 최초의 철도로[1][2], 1897년 3월 22일에 미국의 지원을 받아 기공하여 1899년 9월 18일에 일부 구간이 개통되었다. 1974년 8월 15일부터 전 구간을 수도권 전철이 운행하고 있다. 현재 서울과 인천시와 부천시를 연결하고 연선의 교통량 절반 이상을 분담하고 있다. 경원선 용산역 ~ 광운대역 구간과 함께 철저하게 도시철도화되고 있는 노선이다. 1900년 11월 12일 경인선 전구간 개통식, 조선 근대화의 상징이 아니라 일제에 의한 식민화의 시작이었다. 한민족의 한이 서린 경인선에 대해 알아 본다. (JTBC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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