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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숭이의노래 18

시) 시인 백기만 作 청개구리, 은행나무 그늘

청개구리 청개구리는 장마 때에 운다. 차디찬 비 맞은 나뭇잎에서 하늘을 원망하듯 치어다보며 목이 터지도록 소리쳐 운다. 청개구리는 불효한 자식이었다. 어미의 말을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었다. 어미 청개구리가 하면 그는 물에 가서 놀았고, 또, 하면 그는 기어이 산으로 갔었느리라. 알뜰하게 애태우던 어미 청개구리가 이 세상을 다 살고 떠나려 할 때, 그의 시체를 산에 묻어 주기를 바랬다. 그리하여 모로만 가는 자식의 머리를 만지며 하였다. 청개구리는 어미의 죽음을 보았을 때 비로소 천지가 아득하였다. 그제서야 어미의 생전에 한 번도 순종하지 않았던 것이 뼈 아프게 뉘우쳐졌다. 청개구리는 조그만 가슴에 슬픔을 안고, 어미의 마지막 부탁을 쫓아 물 맑은 강가에 시체를 묻고, 무덤 위에 쓰러져 발버둥치며 통곡하..

배움/시 2010.07.13

시)시인 박종화 作 청자부

박종화 詩 청자부 선은 가냘픈 푸른 선은 아리따웁게 구을려 보살같이 아담하고 날씬한 어깨여 4월 훈풍에 제비 한 마리 방금 물을 박차 빠람을 끊는다. 그러나 이것은 천 년의 꿈 고려 청자기! 빛깔 오호 빛깔! 살포시 음영을 던진 갸륵한 빛깔아 조촐하고 깨끗한 비취여 가을 소나기 마악 지나간 구멍 뚫린 가을 하늘 한 조각, 물방울 뚝뚝 서리어 곧 흰 구름장 이는 듯하다. 그러나 오호 이것은 천년 묵은 고려 청자기! 술병, 물병, 바리, 사발 향로, 향합, 필통, 연적 화병, 장고, 술잔, 벼개 흙이면서 옥이더라. 구름무늬 물결무늬 구슬무늬 칠보무늬 꽃무늬 백학무늬 보상화문 불타무늬 토공이요 화가더냐 진흙 속 조각가다. 그러나, 이것은 천년의 꿈, 고려 청자기! -------------------------..

배움/시 2010.07.13

시) 김동환 作 산너머 남촌에는, 북청 물장수, 강이 풀리면

김동환 詩 산 너머 남촌에는 1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해마다 봄바람이 남으로 오네. 꽃 피는 사월이면 진달래 향기 밀 익는 오월이면 보리 내음새. 어느 것 한 가진들 실어 안 오리. 남촌서 남풍 불 제 나는 좋데나. 2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저 하늘 저 빛깔이 저리 고울까? 금잔디 넓은 벌엔 호랑나비떼. 버들밭 실개천엔 종달새 노래. 어느 것 한 가진들 들려 안 오리. 남촌서 남풍 불 제 나는 좋데나. 3 산 너머 남촌에는 배나무 있고, 배나무 꽃 아래엔 누가 섰다기, 그리운 생각에 영에 오르니, 구름에 가리어 아니 보이네. 끊였다 이어 오는 가느단 노래 바람을 타고서 고이 들리네. 북청 물장수 새벽마다 고요히 꿈길을 밟고 와서 머리맡에 찬물을 쏴-퍼붓고는 그만 가슴을 디디면서 멀리 사..

배움/시 2010.07.13

시) 한하운 作 보리피리, 여인 (시인 한하운 소개, 설명)

한하운 詩 보리피리 보리피리 불며, 봄 언덕 고향 그리워 피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꽃 청산 어린 때 그리워 피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인환의 거리 인간사 그리워 피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방랑의 기산하 눈물의 언덕을 피닐니리. 여인 눈여겨 낯익은 듯한 여인 하나 어깨 넓직한 사나이와 함께 나란히 아가를 거느리고 내 앞을 무심히 지나간다. 아무리 보아도 나이가 스무살 남짓한 저 여인은 뒷모습 걸음걸이 하며 몸맵시 틀림없는 저... 누구라 할까... 어쩌면 엷은 혀 끝에 맴도는 이름이요! 어쩌면 아슬아슬 눈 감길 듯 떠오르는 추억이요! 옛날엔 아무렇게나 행복해 버렸나 보지? 아니 아니 정말로 이제금 행복해 버렸나 보지? -------------------------------------------------..

배움/시 2010.07.12

시) 홍사용 作 나는 왕이로소이다, (시인 홍사용 설멍)

홍사용 詩 나는 왕이로소이다 나는 왕이로소이다. 나는 왕이로소이다. 어머님의 가장 어여쁜 아들 나는 왕이로소이다. 가장 가난한 농군의 아들로서... 그러나 시왕전에서도 쫓기어난 눈물의 왕이로소이다. 이렇게 어머니께서 물으시며는 하겠나이다. 다른 것도 많지요마는... 이렇게 어머니께서 물으시며는 하겠나이다. 다른 말씀도 많지요마는... 이것은 노상 왕에게 들리어 주신 어머님의 말씀인데요. 왕이 처음으로 이 세상에 올 때에는 어머님의 흘리신 피를 몸에다 휘감고 왔더랍니다. 그 말에 동네의 늙은이와 젊은이들은 모두 고 쓸데없는 물음질로 한창 바쁘게 오고갈 때에도 어머님께서는 기꺼움보다도 아무 대답도 없이 속아픈 눈물울 흘리셨답니다. 벌거숭이 어린 왕 나도 어머니의 눈물을 따라서 발버둥질치며, 으아 소리쳐 울더..

배움/시 2010.07.12

시) 남궁벽 作 말, (시인 남궁벽 생애 설명,해설)

남궁벽 詩 말 말님. 나는 당신이 웃는 것을 본 일이 없읍니다. 언제든지 숙명을 체관한 것 같은 얼굴로 간혹 웃는 일은 있으나 그것은 좀처럼 하여서는 없는 일이외다. 대개는 침묵하고 있읍니다. 그리고 온순하게 물건을 운반도 하고 사람을 태워 가지고 달아나기도 합니다. 말님, 당신의 운명은 다만 그것뿐입니까. 그러하다는 것은 너무나 섭섭한 일이외다. 나는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사람의 악을 볼 때 항상 내세의 심판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와 같이 당신의 은명을 생각할 때 항상 당신도 사람이 될 때가 있고 사람도 당신이 될 때가 있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합니다. ------------------------------------------------------------ 시인 남궁벽 (18..

배움/시 2010.07.12

시) 오상순 作 첫날밤, (시인 오상순 해설)

오상순 詩 첫날밤 어어 밤은 깊어 화촉동방의 촛불은 꺼졌다. 허영의 의상은 그림자마저 사라지고... 그 청춘의 알몸이 깊은 어둠 바다 속에서 어족인 양 노니는데 홀연 그윽히 들리는 소리 있어, 아야... 야! 태초 생명의 비밀 터지는 소리 한 생명 무궁한 생명으로 통하는 소리 열반의 문 열리는 소리 오오 구원의 성모 현빈이여! 머언 하늘의 뭇 성좌는 이 빰을 위하여 새로 빛날진저! 밤은 새벽을 배고 침침히 깊어 간다. -------------------------------------- 시인 오상순 (1894 - 1963) 서울 출생. 호가 공초인 그는 동인으로 문단에 데뷔(1920)했다가 일제시에는 절필, 해방후 다시 붓을 들어 허무와 명상의 구도적 작품을 다수 발표했다. 중앙고보, 보성고보 등에서 교..

배움/시 2010.07.12

시) 김형원 作 벌거숭이의 노래

김형원 詩 벌거숭이의 노래 1 나는 벌거숭이다. 옷같은 것은 나에게 쓸 데 없다. 나는 벌거숭이다. 제도 인습은 고인의 옷이다. 나는 벌거숭이다. 시비도 모르는, 선악도 모르는. 2 나는 벌거숭이다. 그러나 나는 두루마기까지 갖추어 단정히 옷을 입은 제도와 인습에 추파를 보내어 악수하는 썩은 내가 몰씬몰씬 나는 구도덕에 코를 박은, 본능의 폭풍 앞에 힘없이 항복한 어린 풀이다. 3 나는 어린 풀이다. 나는 벌거숭이다. 나에게는 오직 생명이 있을 뿐이다. 태양과 모든 성신이 운명하기까지, 나에게는 생명의 감로가 내릴 뿐이다. 온 누리의 모든 생물들로 더불어, 나는 영원히 생장의 축배를 올리련다. 4 그리하여 나는 노래하려 한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감투를 쓴 사람으로부터 똥통을 우주로 아는 구더기까지. 그러..

배움/시 2010.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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