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인물

조선 임금의 어머니 신의왕후 한씨 (神懿王后 韓氏) 생애

올드코난 2015. 12. 10.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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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왕후 한씨(神懿王后 韓氏, 1337년 음력 9월 ~ 1391년 10월 21일(음력 9월 23일))는 조선 태조(太祖)의 첫 아내로 정종과 태종의 생모이다.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여 왕으로 등극하기 1년 전인 1391년에 지병인 위장병이 악화되어 사망하였다. 생전에는 단 한번도 왕비기 된 적이 없지만, 그녀의 아들 태종 이방원과 그 후손이 조선의 임금이기에 조선 임금의 어머니라 할 수 있다. 한씨에 대해 정리해 본다.

조선태조 이성계의 첫 부인이며, 조선 임금의 어머니 신의왕후 한씨 생애


1.생애 요약

신의왕후 한씨(神懿王后 韓氏)는 1337년 음력 9월 당시 고려 동북면 영흥(永興) 풍류산 아래 금리(琴理)에서 호족으로 태어났다. 원신택주, 절비 등으로 봉해졌고 추존왕후로 신의왕후 (신의고황후)로 불린다.

한씨가 태어날 때, 하늘에서 아름다운 음악소리가 들려오고 뒷산에는 오색 영롱한 구름이 감돌았다 하여 이산을 풍류산(風流山)이라 이름 지었다고 전하며 훗날 왕비의 탄생을 기념하기 위하여 순조 24년(1824년)에 이 마을에 기념비를 세웠다고 한다.

1351년 15세에 2살 연상인 이성계(태조)와 혼인을 하고 슬하에 6남 2녀를 낳았다. 공민왕 13년(1364년) 이성계가 삼선(三善)·삼개(三介)의 난을 진압한 공으로 봉익대부밀직부사(奉翊大夫密直副使)에 오르고 단성양절익대공신호(端誠亮節翊戴功臣號)를 받자 부인 한씨도 원신택주(元信宅主)에 봉해졌다. 남편 이성계가 이북의 땅을 회복시키는 등 전쟁터를 누비던 동안 고향 집에서 자녀들을 양육했다. 이후 이성계가 개경에서 고려 명문가의 딸인 강씨(신덕왕후)를 경처(京妻)로 맞이하자 한씨는 향처(鄕妻)로 고향에서 여생을 보내게 된다.

1388년 위화도 회군 때에는 생명의 위협이 염려되어 식구들을 데리고 개경에서 벗어나 동북면으로 피신을 갔고 조선 개국 1년 전인 1391년 10월 21일(음력 9월 23일)에 위장병이 악화되어 5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2.사후 추존

1차 왕자의 난으로 한씨 소생의 둘째 아들인 방과(정종)가 왕으로 등극하고 정종은 아버지에게 외면 받았던 생모 한씨를 왕후로 격상하여 신의왕후(神懿王后)로 추존해 후궁의 오명을 벗긴다. 정종의 뒤를 즉위한 태종은 부왕인 태조(이성계)가 사망하자 강씨 곁에 묻히고자 했던 태조의 유명을 거스르고 따로 장사를 한다. 1408년(태종 8년) 9월 25일(음력 9월 6일) 생모 한씨를 왕후보다 위인 왕태후(王太后)로 다시금 격상하여 승인순성신의왕태후(承仁順聖神懿王太后)로 추상했다.

태종 10년(1410년)에는 대상을 마친 태조의 신주를 태묘(太廟)로 부묘하며 마땅히 왕후의 신주도 함께 부묘해야 했지만 생모인 한씨의 신주만을 옮김으로써 강씨는 정식 왕후가 아님을 내비친다.

1683년(숙종 9년) 7월 6일(음력 6월 12일)에는 태종이 한씨에게 올린 왕태후의 작위가 옳지 않다고 하여 승인순성신의왕후(承仁順聖神懿王后)로 한단계 낮아진다.

1899년(광무 3년) 양력 12월 19일 고종은 황후로 격상해 신의고황후(神懿高皇后)로 추존되었다.


3.능의 위치

능은 황해북도 개풍군 대련리에 위치한 제릉(齊陵)이다. 수도 천도 이전에 만들어진 능묘이기 때문에 개성에 위치하고 있다. 후릉 등과 함께 북한에 있는 조선 왕릉 중 하나.


4. 한씨의 자식들 (6남 2녀)

장남 : 진안대군 방우 (鎭安大君 芳雨, 1354~1393)

차남 : 제2대 정종대왕(定宗大王 芳果, 1357~1419)

3남 : 익안대군 방의(益安大君 芳毅, 1360~1404)

4남 : 회안대군 방간(懷安大君 芳幹, 1364~1421)

5남 : 제3대 태종대왕(太宗大王 芳遠, 1367~1422) *이방원

6남 : 덕안대군 방연(德安大君 芳衍, ?~?)

장녀 : 경신공주(慶愼公主, ?~1426) : 정사좌명공신 상당부원군 이애(定社佐命功臣 上黨府院君 李薆)와 혼인

차녀 : 경선공주(慶善公主, ?~?) : 청원군 심종(靑原君 沈淙)과 혼인


5. 평가

고려시대의 현모양처의 여성으로 6남 2녀를 낳아 기르는데 전쟁터로 주로 나간 남편을 대신해 아버지의 역할까지 한 것으로 보인다. 태종이 사후 한씨에 대해 극진한 것은 어머니로서 한 여인으로 한씨의 삶이 순탄치 않았기 때문이다. 역사에는 그녀에 대한 기록이 별로 없어 이 정도로 마무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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