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인물

조선의 요부 소용 조씨 (귀인 조씨 貴人 趙氏) 설명

올드코난 2016. 3. 7.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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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많은 독살 음모가 있지만 인조의 장남이었던 소현세자는 실제로 독살된 것으로 보여지는데, 인조가 소현세자빈마저 죽인 이면에는 소용 조씨가 있었다. 정리해 본다.

소현세자빈을 죽게 만든 조선의 요부, 인조의 후궁 소용 조씨(귀인 조씨 貴人 趙氏)


1. 개요

귀인 조씨(貴人 趙氏, ? ~ 1652년 1월 24일 (1651년 음력 12월 14일))는 조선의 제16대 임금 인조의 총관후궁으로 본관은 순창(淳昌). 조기(趙琦)의 딸로 어머니는 한옥(漢玉)이라고 하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1630년 여시(女侍: 궁궐 안에서 임금, 왕비, 왕세자를 모시고, 궁중의 일을 보던 여자를 통틀어 이르는 말)로 뽑혀 입궁했다.


2.인조의 총애

원래 숙원(淑媛:내명부 종사품)이었다가 1638년(인조 16년) 소원(昭媛), 1640년(인조 18년) 소용(昭容), 1645년(인조 23년)에 소의(昭儀)를 거쳐 1649년(인조 27년) 종1품 귀인(貴人)에 책봉되었다.

소의였을때 인조의 사랑을 받아 당시 계비 장렬왕후를 포함해 다른 후궁들은 인조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데, 성품이 매우 응큼하고 간사해 그녀의 눈 밖에 나면 인조에게 모함을 해 후궁과 궁녀들은 조씨를 두려워했다고 전한다. 실록에도 패악무도하다고 기록될 정도로 악행이 많았다.


3. 소현세자빈을 죽게 하다.

특히 조씨는 소현세자빈을 미워했다. 소용 시절 수시로 인조에게 소현세자와 세지빈을 모함했는데, 이로인해 훗날 소현세자의 독살 주범이 조시라는 설도 있지만, 소현세자는 인조가 죽인게 확실하다.

문제는 소현세자가 죽고나서부터인데, 세자빈마저 죽이는 것은 심하다는 조정 신료들 대다수가 막아섰지만, 인조 옆에서 세자빈을 죽여야 된다고 계속해서 부추기고, 결국 인조는 세자빈과 세아들(인조에게는 손자)중 두 아들을 죽이고 막내아들을 어리다는 이유로 귀양을 보내게 된다.

사실, 인조는 이미 소현세자를 죽였을 때 세자빈과 그 가족들마저 죽일 생각은 있었다. 조씨 때문만은 아니다. 단지, 조금은 망설였던 인조에게 확실하게 칼을 뽑게 만든 것이 바로 조씨였던 것이다.


4.최후

귀인 조씨의 권세는 인조에게서 나온 것이다. 인조의 죽음으로 조씨는 힘을 잃게되는데 1651년(효종 2년) 음력 11월 23일 조씨의 사돈 김자점과 함께 장렬왕후와 숭선군부인 신씨를 저주한 사건이 밝혀지고 관련자들이 처형당했는데 이를 김자점의 옥이라고 한다. 이 사건에 귀인 조씨의 딸 효명옹주와 여종도 관련이 되어 조정에서는 귀인 조씨와 효명옹주를 모두 치죄할 것을 요청했으나, 효종은 효명옹주에게는 죄를 묻지 않고 옹주의 남편 김세룡만 국문하고, 1651년 음력 12월 14일 귀인 조씨만 사사시킨다. 효종은 아버지 인조가 조씨를 총애했다는 이유로 작호를 폐하지 않았고 장례도 종1품 귀인으로 예장으로 치렀다. 죽이기는 했지만 명예는 지켜준 것이다.



5. 올드코난 생각

작년 2015년에 MBC 드라마 화정에도 나왔고, 2013년 JTBC드라마 궁중잔혹사 - 꽃들의 전쟁에도 소용조씨가 나왔다. 소용조씨에 대해서는 대체적으로 악녀이며 요부로 묘사가 되고 그게 맞다고 생각한다.

근데, 간혹 '팜므 파탈'로도 비유가 되는데 팜므 파탈은 남자를 유혹하는 거부할 수 없는 치명적인 매력을 가진 여성에게 쓰여지는 말이지, 악행을 저지르는 개념은 아니다. 귀인조씨는 악녀나 요부가 맞는 표현이다.


그리고, 여기서 꼭 알아야 할 것은 인조는 이런 여자를 탐했다는 사실이다. 

이런 요부에 빠져 헤어나지 못한 인조의 인간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조씨는 많은 죄를 저질렀지만, 그 이면에는 이을 알면서도 묵인하고 오히려 이런 조씨에게 힘을 실어준 인조에게 더 많은 비판을 해야 한다고 본다.

인조가 조씨를 멀리하거나, 제지하지 않았기에 조씨가 기고만장해 당시 왕비였던 장렬왕후에게까지 무례했던 것이고, 세자빈마저 우습게 여겼던 것이다.

인조와 선조는 여러모로 못난 점을 닮았다는 말로 마무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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