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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 빈센트 해전

올드코난 2010. 6. 7.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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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 빈센트 해전

 

18세기 유럽은 격변의 시기였다. 한편 1789년 프랑스에서는 군주체제의 압박으로 벗어나려는 반란으로 혁명이 일어나게 되었다. 처음에는 정의와 사회적 개정을 위하여 발단이 되었지만점점 더 과격해지고 피를 부르는 대혁명으로까지 전개 되어갔다.

수천에 달하는 귀족들은 단두대에서 목이 잘려나갈 것을 두려워해 이웃하는 나라들로 몸을 피했고, 한편 오스트리아(Austria), 프러시아(Prussia (프로이센) : 독일북부의 주(옛 왕국, 1701 - 1918))등의 왕국(Monarch)에서는 이들 프랑스 혁명군에 맞서 대항했다.


1793
1 21, 프랑스의 국왕 루이 16세는 단두대로 보내져 목이 잘려져 나갔고, 혁명군은 네덜란드의 남부지방까지 진격하여 약탈을 일삼아 황폐화 시켰다. 결국 이 사건이 영국과의 전쟁 계기가 되었고, 뒤이어 나폴레옹의 전쟁으로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같은 해, 나폴레옹은 Toulon의 포병대 지휘관으로 임명되었고, Toulon이 점령되자 파리로 돌아왔다. 곧이어 오스트리아와의 전면전에 돌입하게 되자 이를 대비하여 스페인과 평화 협정을 맺었다. 한편 Ligurian해안의 프랑스 수송항로를 저지하던 영국의 프리깃함대 해군제독 Hotham은 모든 지휘권을 Nelson선장에게 맡기고 본국으로 귀환하였다.

Nelson은 곧바로 프랑스와 이탈리아와의 무역루트를 차단시켰고, 영국 해군제독 Jervis Nelson의 요청에 따라 프랑스 남부 Toulon 연안을 봉쇄하였다. 이에 나폴레옹은 Leghorn Genoa 루트를 확보하기 위해 군을 좀더 남쪽으로 배치하여 넬슨의 전술에 맞섰다.

 

프랑스와 동맹을 맺은 스페인은 모든 스페인의 함대를 프랑스가 지휘할 수 있도록 허가를 해주었고, 영국해군의 봉쇄망을 피하기 위해 수송함대(Convoy)를 두함대로 나누어, 적어도 하나의 함대는 무사히 통과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에 Minerve, Romulus 해운사는 Toulon(프랑스 남동부, 마르세이유 동편) Cartagena(스페인 남동부)항로를 다시 재게할 수 있게 되었고, 이때즈음 영국 해군본부에서는 막중한 임무를 부여키 위해 Nelson을 해군제독에 임명하였다.

 

1797 1 29일 컨보이들은 Elba에서 출항하여 저녁무렵 프랑스 Toulon으로 무사히 입항하였고, 스페인 함대를 추적중이던 Nelson 제독은 스페인 연안 Cartagena로 향했지만 그의 예상과는 달리 스페인의 Cartagena항은 텅 비어 있었다. 또한 Jervis 제독은 북쪽으로 향할 거라 예상했던 스페인 함대를 저지하기 위해 이미 그의 함대를 움직여 지중해를 떠나 대서양의 St. Vicent곷 연안 순찰하고 있었던 터라 지중해에는 단 한척의 영국 해군함이 남아 있지 않았다.

게다가 Jervis제독이 이끄는 전함 10척은 수 차례의 교전으로 인해 모두 손상을 입은 상태여서 하는 수 없이 그대로 영국으로 귀항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2 5일 영국에 도착한 그는 기쁨을 금치 못했다. 영국해군에 새로이 건조된 Orion을 비롯한 Colossus, Lrresistible, Namur, Prince George 5척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Jervis 해군제독은 이 배들을 보고는 매우 기뻐했고, 또한 더더욱 그를 흡족해 했던 것은 해군 소장이던 Parker 제독을 비롯한 유능한 선장들이 대거 그를 맞아 주었기 때문이었다. Jervis는 그 즉시 해군본부에 "훌륭한 인재들과 군함들을 선사해주어 매우 감사하다"는 편지를 보냄과 동시에 그의 함대는 모두 15척으로 늘어났다.

 

한편, 프랑스군은 영국의 대대적인 공격에 대비하기 위하여 프랑스 함대 제독 Morard de Galles에게 Brest(프랑스 북서쪽) Cartagena에 정박중인 모든 함대를 소집케 하였다. 이들 함대들은 넬슨제독이 눈치채기 전 지브롤터 해협(Straits of Gibraltar)에 위치한 카디즈항(Cadiz)으로 집결하는 것이었지만 2 5 Cartagena에서 출항하려던 스페인 함대들은 대서양에서 불어오는 강한 동풍을 만나 카디즈로 향하지 못했다.

 

2 11, 넬슨제독은 지브롤터로 향했고, 또한 Jervis제독 역시 보강된 함대를 이끌고 서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2 13일 밤, 대서양에서 불어오던 바람은 밤이 되자 갑자기 짖은 안개를 동반한 서풍으로 바뀌었고, 스페인함대들은 카디즈로 이동을 개시할 수가 있었다. 짙은 안개가 깔린 으스스한 밤, 스페인의 경비병들은 모두 깊은 잠에 빠져들어 있었지만 짙은 안개덕분에 넬슨제독에게 발각되지 않고, 무사히 새벽에까지 항해를 계속 할 수가 있었다.

 

한편, 넬슨 제독은 새벽이 되어서야 세인트 빈센트 곷으로 항해를 계속 할 수가 있었고, Jervis 제독 또한 빈센트에 도달한 후 최후의 희망을 걸었다.

 

스페인 함대는 Cartagena를 출항하여 Cadiz를 향해 1797 2 5일 지브롤터 해협을 통과하여 대서양으로 접어들었고, 또한 이들과 합류하기 위하여 프랑스 함대 역시 Cadiz를 향해 Brest 항을 출항 하였다. 한편 넬슨 제독은 이들을 저지하기 위하여 2 11일 지브롤터에서 출항하였지만 짙은 안개로 인하여 스페인 함대를 놓쳐 버리게 된다. 또한 그에게 있어 가장 시급한 문제는 Jervis 제독과의 연락 두절이었다.

2 13, 넬슨 제독은 St. Vicent 곷에서 영국함대를 만날 수 있었고, 그 즉시 Jervis 제독의 기함 Victory에서 작전 회의에 들어갔다. 그날 밤, Jervis 제독은 Nelson제독과 William Elliott, Hallowell선장, Calder선장과 함께 저녁을 같이 했고, 모두가 잠든 늦은 밤까지도 침실로 가지 않고 다가오는 해전을 기다리고 있었다.

1797 2 14일 새벽 2 50, 15마일 전방에 스페인연합함대가 접근했다는 보고가 들어 왔다. 새벽 5 30, 저멀리 짙은 안개 사이로 신호소리와 함께 스페인 함대들이 한척 한척씩 나타나기 시작했고 그들과의 사이가 점점 좁혀져 갔다.

짙은 안개가 깔린 싸늘한 2월의 아침, 두개의 대열을 지어 다가오는 스페인의 함대를 주시하며 Quarter-deck에 서있던 Jervis 제독은 돌아서서 잉글랜드의 승리를 외치며, 즉시 명령을 하달 하였다. Culloden의 선장 Thomas Troubridge가 앞장선 가운데 전 함대는 대열에 맞추어 바다위를 미끄러져 나가기 시작 하였고, 6 30분 남동쪽으로 다가오는 5척의 스페인 전함을 향해 Culloden Prince George, Blenheim가 선회에 들어갔다.

 

짙은 안개사이로 계속해서 쏟아져 나오는 거대한 스페인 함대를 바라보던 Jervis 제독의 부관은 적함을 헤아리기 시작했다.

 

스페인 함대는 2개의 그룹으로 나뉘어 한쪽은 18, 다른 한쪽은 9척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18척으로 구성된 함대는 바람을 안은채(lee division), 다른 9척은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windward)으로 느리게 선회를 시작했다.

수적으로 불리했던 영국의 함대로서는 분할된 스페인 함대를 보며 전술적 희망을 기대할 수 있었다.

 

오전 11, Jervis 제독은 다시 명령을 내려 대열을 곧장 남쪽으로 향하도록 하여 스페인의 함대 사이로 질주해 나갔다. 12분 후, 교전명령이 내려졌고, 오전 11 30분에 접전이 시작되었다.

 

 

전쟁의 경과


<The Battle of Cape St. Vincent had begun.>
하나의 대열로 남쪽으로 향해 미끄러져 내려오는 영국함대를 본 스페인 함대는 풍향으로 봐서 선수를 가로지르지 못하고 곧장 북동쪽으로 선수를 돌릴 것이라 예상했다. 5분후 영국함대의 선봉에 있던 Culloden(74Guns)에서 불이 뿜어져 나왔고 곧장 남동쪽으로 선회를 시작했다. 뒤이어 따르는 각 함선들 사이에서도 적함들을 향해 발포하기 시작했다.

가운데로 돌파해 들어간 영국함대들은 모두 양쪽으로 불이 뿜어대었고, 선봉에 있었던 Culloden의 선장 Troubridge는 스페인의 함대 대열이 끝나기 전에 재장전하여 스페인의 대열 후미를 따라 붙기 시작했다. 그는 이미 전술을 예상했었기 때문에 기함과의 신호가 두절되기도 전에 벌써 응답신호기부터 올렸다.

 

<Ships will tack in succession.>

오후 12 30, 스페인의 주 종렬함대의 예상대로 남동쪽으로 향하던 Culloden는 갑자기 방향을 바꾸어 바람을 안고 나아가던 함대(lee division)를 추격했고, 이어서 Blenheim Prince George역시 같은 쪽으로 선회하기 시작했다. 영국의 전 함대는 'U'자를 그리며 스페인 함대의 선두를 잡기위해 맹렬히 추격하였지만, 스페인의 lee division의 마지막 군함마저도 추격하는 영국 함대를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도망치는 가운데에서도 스페인의 후미함선들은 1588 Armada의 패전 때와 같이 추격하는 영국 함대의 공격을 계속해서 받으며 약탈당했고 고전을 면치 못했다. 얼마 후 나머지 windward 스페인 함대는 lee division과 합류할 수 있었고, 스페인 Cadiz항으로 전속력으로 향했다.

"The Royal Navy - Vol. IV, Laird Clowes, 1899"

 

<Decisive action - Nelson orders HMS Captain to wear ship>

한편, 이대로는 더 이상 스페인 lee division을 따라잡을 수 없다고 판단하였던 Nelson 제독은, 74문의 함포를 탑재했던 그의 기함 Captain을 대열에서 이탈시켜 Diadem Excellent 사이를 가로질러 windward 함대를 맹렬히 추격하기 시작하였다.

사실 windward함대는 130문의 함포를 탑재시킨 전열함 Santissima Trinidad를 포함하여 the Mexicano(112guns) San josef(112guns), Salvador del Mundo(112guns), San Nicolas(84guns), San Ysidro(74guns)로 구성된 초대형 전열함 함대였던 것이다.

 

명령 불복종과 만약에 따를 임무 실패에 대한 치욕스런 불명예에는 아랑곳 하지 않고, 매우 중대했던 결정을 내린 넬슨은 신참 제독답지 않게 함대사령관 Jervis 제독의 명령을 어기고 독단적으로 함대를 지휘해 나갔다.

 

오후 1 30, Nelson 제독과 함께 영국의 Culloden은 차츰 스페인함대에 접근해갔고, 뒤어어 따르던 Excellent Jervis제독의 신호에 따라 좌측으로 침로를 잡았다. 몇분 후 Blenheim Prince George가 합류하여 스페인 함대의 후미를 붙잡았고, 오후 2시 스페인함대의 측면에서 모든 함포를 쏟아 붓기 시작하였다.

 

오후 2 30, Excellent가 스페인의 3층갑판선 Salvator del Mundo를 측면에 붙잡아 두었고, 이어 몇분 후 San Ysidro역시 영국함대에 의해 붙들려 맹렬히 방어에 임했지만 오후 2 50분 스페인 깃발을 내려 항복의 의사를 밝히자, 결국 Salvator del Mundo 역시 Top 마스트와 Mizzen마스트가 부러진채 깃발을 내려 항복하였다.

 

한편 Excellent를 피해 우현하여 지나가던 스페인의 San Nicolas는 다시 Excellent의 측면에서 함포 사격을 받아 저지 당했고, Nelson 제독과 Miller 선장은 혼란에 빠진 스페인 전열함 San Josef을 나포 한 후, 그의 기함 CaptainSan Nicolas의 우측에 붙여 San Nicolas의 항복을 요구했다. Boarders away !

 

<Glorious Victory>

오후 3시경, fore mast가 부러진 San Nicolas mizzen mast가 부러진 San Josef는 영국전함 Excellent Captain과의 교전을 멈추었고, 승리를 맞은 해군준장 Nelson 제독은 선상에서 영광스런 승리를 외쳤다. 한편 오후 4시 스페인의 초대형 전열함이었던 Santissima Trinidad는 다른 2척의 호위를 받으며 무사히 빠져나와 구조된 후, 1805년 트라팔가 해전에 프랑스-스페인 연합함대의 기함으로 다시 등장하게 된다.

 

< HMS Captain Capturing the San Nicholas >

 

<The battle ends>

종전 후, Nelson 제독은 자신을 믿고 따라준 Miller 선장에게 먼저 감사의 말을 전했고, 패배를 인정한 스페인 San Nicolas의 선장은 그에게 자신의 장검을 선사했다. 오후 5시 그는 사령관의 방침을 어기고 독단적으로 장기를를 올려 행동을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령관의 명령에 따라 화염에 휩싸여 위태로웠던 그의 기함 Captain에서 Irresistible로 자리를 옮기게 되고, 이어서 나포한 스페인 전함을 이끌고 영국해군의 환호속에 영국으로 무사히 귀환하게 되었다.

 

 

결과

The Battle of Cape St.

 

빈센트 해전에서 영국 해군은 73명을 제외한 227명 이상의 전사자와 중상자(목숨이 위독한 선원포함)가 발생했고, 또한 스페인 해군은 San Nicolas만해도 수병 144명이 전사하여 전체로 본다면 피해가 더 많았던 것으로 추측된다.

 

해군 사령관 Jervis는 연기에 검게 그을린 Nelson 제독에게 비록 군법은 어겼지만 대승을 거두어 고맙다는 말과 함께 기쁨의 표시로 그를 따뜻하게 포옹해 주었다. 스페인 Don Jose Cordoba의 해군은 영국에 비해 월등히 많은 수병과 함포를 포함하여 27척의 함대를 거느렸지만 Jervis 제독 아래서 고도의 훈련을 마친 영국 최정예 해군에 맞서 맥없이 무너져 버렸고 수치심과 함께 영국해군에 대한 두려움을 쌓게 되었다.

 

스페인 전함에 탑승했던 600 - 900명의 수병들 중 극히 일부인 60 - 80명 만이 해군훈련을 받은 자들이었고, 그 나머지 대부분은 경험이라고는 전혀 없었던 일반인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불균형 속에서도 스페인 해군 역시 용감히 싸워 주웠다.

스페인 전열함 San Josef가 나포된 뒤 밝혀진 사실이지만, 해전이 종결될 때 까지도 함포의 마개조차 열려져 있지 않았다고 한다. 게다가 스페인의 전함에는 화약과 함포조차 다룰 수 없었던 자들이 많았기 때문에 영국의 전함들은 그나마 피해가 적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또한 영국의 승리는 다가올 전투를 대비하여 제독 John Jervis경의 오랜 훈련이 충분히 뒷받침 되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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