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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세상 85

영원한 가객 김광석 20주기 (김광석 생애와 평가)

오늘 1월 6일은 故 김광석 (金光石, 1964년 1월 22일 ~ 1996년 1월 6일)추모 20주기가 되는 날이다. 영원한 가객 김광석에 대해 정리해 본다. 1.초기 생애1964년 1월 22일 경상북도 대구시 대봉동 방천시장 번개전업사에서 3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종교는 불교.초등학교 입학 전 서울 동대문구 창신동(현재 종로구 관할)으로 이주 창신초등학교, 경희중학교, 대광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중학교 시절 현악부 활동을 하였고 이때 선배들로부터 바이올린을 다루고 악보를 보는 법을 배웠고 대광고등학교 시절 합창부로 활동을 하면서 음악을 배워 나갔다.1982년 명지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해 대학연합 동아리에 가입하면서 민중가요를 부르고 선배들과 함께 소극장에서 공연을 시작한다. 2.음악생활1984년 ..

사람과 세상 2016.01.06

미운데 미워할 수 없었던 만화 주인공 독고탁, 이상무 화백 별세

어제 2016.1.3. 만화가 이상무 화백이 별세했다고 한다. 본명 박노철 님으로 1946년 경북 김천 출생이다. 고등학교 재학중이던 1963년 대구 영남일보 어린이 지면에 4칸 만화를 연재했다고 전하며 다음해 1964년 서울로 상경해 박기정, 기준 작가 문하생으로 만화를 배웠고 1966년 ‘여학생’에 ‘노미호와 주리혜’를 연재하면서 작가명 이상무로 공식 데뷔했다. 이상무 화백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캐릭터는 바로 ‘독고 탁’이다. 1971년 ‘주근깨’에 처음 등장한 캐릭터인 독고탁이 큰 사랑을 받게 되는데, 특히 독고탁은 당시 프로야구 개막과 함께 한 시대를 풍미하는 만화 주인공이 된다.7080시대에 청소년기를 보낸 이들에게 독고탁은 가장 사랑받는 캐릭터였고, 추억의 이름이었다.나 역시 청소년 시절에 ..

사람과 세상 2016.01.04

일본 프로레슬링의 아버지, 천황아래 역도산 (김신락) 생애

1963년 12월 15일 오늘 한국계 일본인 프로레슬러 역도산(力道山, 일본어: 力道山 りきどうざん 리키도우잔, 1924년 11월 14일 ~ 1963년 12월 15일)이 사망했다.일본 프로레슬링의 기초를 닦아 일본 프로레슬링의 아버지’라고 불리고 있다. 본명은 김신락(金信洛)으로, 일본 이름은 모모타 미쓰히로(百田光浩)였다. 김일의 스승으로도 유명하다. 역도산에 대해 정리해 본다.일본 프로레슬링의 아버지, 천황아래 역도산 (김신락) 생애 1.생애역도산 (김신락)은 일제강점기였던 1924년 함경남도 홍원군에서 태어났다. 나가사키 현 오무라의 부농에게 양자로 들어가 모모타 미쓰히로 (百田 光浩 ももた みつひろ)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된다. 어려서부 힘이 쎄 씨름 소년 장사로 1939년 16살 때 현해탄을 건너..

사람과 세상 2015.12.15

대한민국 의회민주주의 공로자 미스터 쓴 소리 이만섭 국회의장 생애와 평가

오늘 2015.12.14. 이만섭 전 국회의장이 별세했다. 향년 83세였다. 지난달에는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나셨는데, 연이어 정치 원로들이 세상을 등지고 있다. 미스터 쓴 소리로 한시대를 풍미했던 이만섭 전 국회의장에 대해 정리해 본다.대한민국의 의회민주주의에 큰 공로를 세웠고, 권력자에게 굴복하지 않았던 미스터 쓴 소리 이만섭 국회의장 생애와 평가 1.정계 입문이만섭(李萬燮, 1932년 2월 25일 ~ 2015년 12월 14일) 국회의장은 원래 언론인 출신이었다. 1957년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 후 동아일보에 입사해 정치부 기자로 활동하다 31살이던 1963년 민주공화당 전국구의원으로 제6대 국회에 진출하며 정계에 입문한다. 2. 운이 좋은 8선 의원1965년 민주공화당 원내 부총무를 ..

사람과 세상 2015.12.14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45주기, 전태일 열사 생애와 편견들

1970년 11월 13일은 전태일 열사가 세상을 떠난 날이다. 어느덧 45년이 흘렀다. 한국의 노동시장은 전태일 이후 분명히 개선이 되고 있다. 아직 차별은 여전하지만, 전태일 열사의 희생은 당시 노동자들을 자각시키고, 노동환경을 변화시키는데 큰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하다. 전태일 열사에 대해 소개해 본다.(전태일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위키백과, 전태일재단 홈페이지를 방문해 보기를 바란다.)“전태일은 빨갱이도 반정부 인사도 아니었다. 사람사는 세상을 원했을뿐이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열사 생애와 편견들에 대해 설명해 본다. 1.전태일 프로필전태일(全泰壹, 1948년 8월 26일 대구 (당시 대구부 남산동) 출생 ~ 1970년 11월 13일) 노동운동가, 인권 운동가. 1960년대 평화시장 봉재공장의 ..

사람과 세상 2015.11.13

이윤상 납치 살해 사건 (이윤상 유괴살인사건) 설명, 이윤상 동시 지우개

어제 JTBC뉴스룸에 오래동안 잊고 있던 이윤상군 유괴 살인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당시 전두환의 신군부가 권력을 잡은지 얼마안된 시기에 벌어진 이 사건은 전국민들을 분노와 슬픔에 빠지게 했었는데, 그 사건 요약해 본다. (기사 참고 및 캡쳐사진: JTBC뉴스룸 소년은 돌아 오지 않았다. 이윤상 납치사건)1980년 11월13일 이윤상 납치 살해 사건(李潤相誘拐殺害事件, *혹은 이윤상 유괴살인사건) 전말과 이윤상이 남긴 동시 '지우개' 1.개요1980년 11월 13일 소아마비를 앓던 중학생 이윤상이 납치되어 살해된 사건으로 사건 발생 다음해인 1981년 11월 30일 검거된 납치살해범은 이윤상의 중학교 체육교사 주영형으로 밝혀졌고 이윤상은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2.사건 발생당시 중학교 1학년에 재학 ..

사람과 세상 2015.11.13

1977년 11월 11일 발생한 최악의 철도사고 이리역 폭발사고 원인과 결과

11월11일 빼빼로데이로 전국이 즐거운 이때 한번쯤은 돌이켜 봐야할 사건이 있다. 마침 JTBC뉴스룸에서 소개한 이리역 폭발사고에 대해 정리를 해본다. (JTBC뉴스룸, 당시 사건기록 참고)1977년 11월 11일 발생한 최악의 철도사고 이리역 폭발사고 원인과 결과 [참고:이리역 ] 이리역은 일제강점기인 1915년 1월 1일 보통역으로 영업을 개시하고 1929년 9월 20일 역사를 근대양식으로 신축 준공해 쓰여지다 1977년 11월 11일 역 구내에서 화약열차의 폭발사고로 역사가 파손되고 1978년 11월 10일 새로운 역사를 준공한다. 1995년 9월 1일 익산역으로 역명을 변경했다. 1.개요이리역 폭발 사고(裡里驛爆發事故)는 1977년 11월 11일 오후 9시 15분, 전북 이리시(현 익산시)의 이리..

사람과 세상 2015.11.11

박정희에 굴복하지 않았던 판사 유수호 의원 삶과 평가

늦은감이 있습니다. 오늘 2017.4.19 이 글을 삭제합니다. 앞으로 한 인물을 평가할때 더 자세히 알아보고 객관적으로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어제 11월 7일 유승민 의원이 아버지 되시는 故 유수호 의원이 별세했다. 정치인으로서는 몰라도 판사로서는 훌륭했던 소신이 있었던 故 유수호 의원의 명복을 빌며 그의 삶을 간략히 정리해 본다.박정희에 굴복하지 않았던 원칙있던 판사 故 유수호 의원 별세, 그의 삶과 평가 (아버지 유수호는 박정희에 굴복하지 않았고, 유수호 아들은 박정희 딸에 맞서고 있다.) 1.故 유수호 의원 프로필故 유수호(劉守鎬, 1931년 12월 16일 ~ 2015년 11월 7일) 의원은 박정희 정권시절 판사였었다. 유수호라는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군사정권 반대시위를 주동한 부산대 총..

사람과 세상 2015.11.09

아름다움이 필요없던 명배우 비비안 리 (Vivien Leigh) 생애와 평가

[들어가기전: 비비언 리 요약] 비비언 리(Vivien Leigh, 1913년 11월 5일 ~ 1967년 7월 7일)는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1939)의 전형적인 남부 여인 스칼릿 오하라 역으로 첫 번째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고 영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1951)의 블랑슈 뒤부아 역으로 두 번째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당시 영화보다는 연극배우로 더 많이 알려졌고 30년의 무대 경력 동안, 노엘 카워드나 조지 버나드 쇼의 희극 여주인공부터 오필리아, 클레오파트라, 줄리엣, 맥베스 부인 등의 고전적 셰익스피어 캐릭터까지 두루 소화했다.리 자신은 아름다움이 진정한 배우의 길에 걸림돌일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건강 악화가 가장 큰 장애물이었다. 성년 대부분을 조울증으로 보내 함께 일하..

사람과 세상 2015.11.09

유전무죄 무전유죄 (有錢無罪 無錢有罪) 지강헌 인질사건 이유와 의미

'돈 있으면 무죄, 돈 없으면 유죄' 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無錢有罪)를 외쳤던 일명 지강헌 인질극 사건은 1988년 10월 16일 지강헌이 최후를 맞이하면서 사건은 끝을 맺었다. 27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그가 남긴 말은 지금도 국민들의 감정을 자극한다. 한국 사회의 문제를 꼬집은 지강헌 사건을 요약해 본다. 1988년 10월 16일 지강헌 인질극 사건을 끝났지만 지강헌이 남긴 유전무죄 무전유죄 (有錢無罪 無錢有罪)의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1. 지강헌 사건 요약노태우가 대통령으로 취임한 해이며 88 서울올림픽이 끝난 직후인 1988년 10월 8일, 영등포 교도소에서 공주교도소로 이송되던 25명중 12명이 탈출한다. 이들의 탈출 이유는 보호감호제 때문에 징역형을 마치고도 보호감호처분을 받아야 한..

사람과 세상 2015.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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