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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 76

시) 만해 한용운(韓龍雲) – 길이 막혀, 달을 보며, 후 회

만해 한용운(韓龍雲)의 詩 길이 막혀 당신의 얼굴은 달도 아니건만 산 넘고 물 넘어 나의 마음을 바칩니다. 나의 손길은 왜 그리 짧아서 눈 앞에 보이는 당신의 가슴을 못 만지나요. 당신이 오기로 못 올 것이 무엇이며 내가 가기로 못 갈 것이 없지마는 산에는 사다리가 없고 물에는 배가 없어요. 뉘라서 사다리를 떼고 배를 깨뜨렸습니까. 나는 보석으로 사다리를 놓고 진주로 배 모아요. 오시려도 길이 막혀 못 오시는 당신을 기루어요. 달을 보며 달은 밝고 당신이 하도 기루었습니다. 자던 옷을 고쳐 입고, 뜰에 나와 퍼지르고 앉아서, 달을 한참 보았습니다. 달은 차차차 당신의 얼굴이 되더니 넓은 이마, 둥근 코, 아름다운 수욤이 역력히 보입니다. 간 해에는 당신의 얼굴이 달로 보이더니, 오늘 밤에는 달이 당신의 ..

배움/시 2010.07.08

시) 이병기 - 난초, 아차산, 오동꽃

시인 이병기 作 난초 빼어난 가는 잎새 굳은 듯 보드랍고, 자짓빛 굵은 대공 하얀 꽃이 벌고, 이슬은 구슬이 되어 마디마디 달렸다. 본디 그 마음은 깨끗함을 즐겨하여, 정한 모래 틈에 뿌리를 서려 두고 미진도 가까이 않고 우로 받아 사느니라. 아차산 고개 고개 넘어 호젓은 하다마는 풀섶 바위 서리 빨간 딸기 패랭이꽃. 가다가 다가도 보며 휘휘한 줄 모르겠다. 묵은 기와쪽이 발끝에 부딪히고, 성을 고인 돌은 검은 버섯 돋아나고, 성긋이 벌어진 틈엔 다람쥐나 넘나든다. 그리운 옛날 자취 물어도 알 이 없고, 벌건 메 검은 바위 파란 물 하얀 모래, 맑고도 고운 그 모양 눈에 모여 어린다. 오동꽃 담머리 넘어드는 달빛은 은은하고 한두 개 소리 없이 내려지는 오동꽃을 가랴다 발을 멈추고 다시 돌아보노라. ---..

배움/시 2010.07.06

시) 만해 한용운(韓龍雲) – 비밀, 거짓 이별, 참말인가요

늙은코난(OLD CONAN) 추천 문학, 시, 소설 만해 한용운(韓龍雲) 비밀 비밀입니까, 비밀이라니요, 나에게 무슨 비밀이 있겠습니까. 나는 당신에게 대하여 비밀을 지키려고 하였습니다마는, 비밀은 야속히도 지켜지지 아니하였습니다. 나의 비밀은 눈물을 거쳐서 당신의 시각(視覺)으로 들어갔습니다. 나의 비밀은 한숨을 거쳐서 당신의 청각(聽覺)으로 들어갔습니다. 나의 비밀은 떨리는 가슴을 거쳐서 당신의 촉각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밖의 비밀은 한 조각 붉은 마음이 되어서 당신의 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비밀은 소리 없는 메아리와 같아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거짓 이별 당신과 나와 이별한 대가 언제인지 아십니까. 가령 우리가 좋을데로 말하는 것과같이, 거짓 이별이라 할 지..

배움/시 2010.07.03

시) 만해 한용운(韓龍雲) – 오셔요, 가지 마셔요

늙은코난(OLD CONAN) 추천 문학, 시, 소설 만해 한용운(韓龍雲) 오셔요 오셔요. 당신은 오실 때가 되었어요, 어서 오셔요. 당신은 당신이 오실 때가 언제인지 아십니까. 당신이 오실 때는 나의 기다리는 때입니다. 당신은 나의 꽃밭으로 오셔요. 나의 꽃밭에는 꽃들이 피어있습니다. 만일 당신을 쫓아오는 사람이 있으면, 당신은 꽃 속으로 들어가서 숨으십시요. 나는 나비가 되어서 당신이 숨은 꽃 위에 가서 앉겠습니다. 그러면 쫓아오는 사람은 당신을 찿을 수는 없습니다. 오셔요. 당신은 오실 때가 되었습니다. 어서 이리 오셔요. 당신은 나의 품으로 오셔요. 나의 품에는 부드러운 가슴이 있습니다. 만일 당신을 쫓아오는 사람이 있으면, 당신은 머리를 숙여서 나의 가슴에 대십시오. 나의 가슴은 당신이 만질 때에..

배움/시 2010.07.03

시) 만해 한용운(韓龍雲) – 비, 어느 것이 참이냐, 여름밤이 길어

늙은코난(OLD CONAN) 추천 문학, 시, 소설 만해 한용운(韓龍雲) 비 비는 가장 큰 권위를 가지고, 가장 좋은 기회를 줍니다. 비는 해를 가리고 하늘을 가리고, 세상 사람들의 눈을 가립니다. 그러나 비는 번개와 무지개를 가리지 않습니다. 나는 번개가 되어 무지개를 타고, 당신에게 가서 사랑의 팔에 감기고자 합니다. 비오는 날 가만히 가서 당신의 침묵을 가져온대도, 당신의 주인은 알 수가 없습니다. 만일 당신이 비오는 날에 오신다면, 나는 연잎으로 웃옷을 지어서 보내겠습니다. 당신이 비오는 날에 연잎옷을 입고 오시면, 이 세상에는 알 사람이 없습니다. 당신이 비 가운데로 가만히 오셔서 나의 눈물을 가져 가신대도 영원한 비밀이 될 것입니다. 비는 가장 큰 권위를 가지고, 가장 좋은 기회를 줍니다. 어..

배움/시 2010.07.03

시) 만해 한용운(韓龍雲) – 하나가 되어 주셔요, 나의 꿈, 명 상

늙은코난(OLD CONAN) 추천 문학, 시, 소설 만해 한용운(韓龍雲) 하나가 되어 주셔요 님이여, 나의 마음을 가져가려거든 마음을 가진 나에게서 가져가셔요. 그리하여 나로 하여금 님에게서 하나가 되게 하셔요. 그렇지 아니하거든 나에게 고통만 주지 마시고 님의 마음을 다 주셔요. 그리고 마음을 가진 님에게서 나에게 주셔요. 그래서 님으로 하여금 나에게서 하나가 되게 하셔요. 그렇지 아니하거든 나의 마음을 돌려 주셔요. 그리고 나에게 고통을 주셔요. 그러면 나는 나의 마름을 가지고 님이 주시는 고통을 사랑하겠습니다. 나의 꿈 당신이 맑은 새벽에 나무 그늘 사이에서 산보할 때에, 나의 꿈은 작은 별이 되어서 당신의 머리 위를 지키고 있겠습니다. 당신이 여름날에 더위를 못 이기어 낮잠을 자거든, 나의 꿈은 ..

배움/시 2010.07.03

시) 만해 한용운(韓龍雲) – 나의 노래, 고적한 밤

늙은코난(OLD CONAN) 추천 문학, 시, 소설 만해 한용운(韓龍雲) 나의 노래 나의 노래가락의 고저 장단은 대중이 없습니다. 그래서 세속의 노래 곡조와는 조금도 맞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는 나의 오래가 세속 곡조에 맞지 않는 것을 조금도 애달파하지 않습니다. 나의 노래는 세속의 노래와 다르지 아니하면 아니 되는 까닭입니다. 곡조는 노래의 결함을 억지로 조절하려는 것입니다. 곡조는 부자연한 노래를 사람의 망상으로 토막쳐 놓은 것입니다. 참된 노래에 곡조를 붙이는 것은 노래의 자연에 치욕입니다. 님의 얼굴에 단장을 하는 것이 도리어 흠이 되는 것과 같이, 나의 노래에 곡조를 붙이면 도리어 결함이 됩니다. 나의 노래는 사랑의 신(神)을 울립니다. 나의 노래는 처녀의 청춘을 쥐어짜서, 보기도 어려운 맑은 ..

배움/시 2010.07.03

시) 만해 한용운(韓龍雲) – 나는 잊고자, 당신이 가신 때, 떠날 때의 님의 얼굴

늙은코난(OLD CONAN) 추천 문학, 시, 소설 만해 한용운(韓龍雲) 나는 잊고자 남들은 님을 생각한다지만 나는 님을 잊고자 하여요. 잊고자 할수록 생각하기로 행여 잊을까 하고 생각하여 보았습니다. 잊으려면 생각하고 생각하면 잊히지 아니하니, 잊지도 말고 생각도 말아 볼까요. 잊든지 생각하든지 내버려 두어 볼까요. 그러나 그리도 아니 되고 끊임없는 생각생각에 님뿐인데 어찌하여요. 구태여 잊으려면 잊을 수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잠시 죽음뿐이기로 님 두고는 못하여요. 아아, 잊히지 않는 생각보다 잊고자 하는 그것이 더욱 괴롭습니다. 당신이 가신 때 당신이 가시 때에 나는 다른 시골에 병들어 누워서 이별의 키스도 못하였습니다. 그때는 가을바람이 처음으로 와서 단풍이 한 가지에 두서너 잎이 붉었습니다. 나는..

배움/시 2010.07.03

시) 만해 한용운(韓龍雲) – 당신이 아니더면, 사랑의 존재, 사랑의 측량

늙은코난(OLD CONAN) 추천 문학, 시, 소설 만해 한용운(韓龍雲) 당신이 아니더면 당신이 아니더면 포시럽고 매끄럽던 얼굴에 왜 주름살이 접혀요. 당신이 기룹지만 않다면, 언제까지라도 나는 늙지 아니할 테여요. 맨 처름에 당신에게 안기던 그때대로 있을 테여요. 그러나 늙고 병들고 죽기까지라도, 당신 때문이라면 나는 싫지 않아요. 나에게 생명을 주든지 죽음을 주든지 당신의 뜻대로만 하셔요. 나는 곧 당신이어요. 사랑의 존재 사랑을 사랑이라고 하면, 벌써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을 이름지을 만한 말이나 글이 어디있습니까. 미소에 눌려서 괴로운 듯한 장미빛 입술인들 그것을 스칠 수가 있습니까. 눈물의 뒤에 숨어서 슬픔의 흑암면(黑闇面)을 반사하는 가을 물결의 눈인들 그것을 비칠 수가 있습니까. 그림자 없는..

배움/시 2010.07.03

시) 만해 한용운(韓龍雲) – 이별은 미의 창조, 참아주셔요 (참아주세요), 그를 보내며

늙은코난(OLD CONAN) 추천 문학, 시, 소설 만해 한용운(韓龍雲) 이별은 미의 창조 이별은 미의 창조입니다. 이별의 미는 아침의 바탕(質)없는 황금과 밤의 올 없는 검은 비단과, 죽음 없는 영원한 생명과, 시들지 않는 하늘의 푸른 꽃에도 없습니다. 님이여, 이별이 아니면 나는 눈물에서 죽었다가 웃음에서 다시 살아날 수가 없습니다. 오오, 이별이여. 미는 이별의 창조입니다. 참아주셔요 (참아 주세요) 나는 당신의 이별하지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님이여, 나의 이별을 참아주셔요. 당신은 고개를 넘어갈 때에 나를 돌아보지 마셔요. 나의 몸은 한 작은 모래 속으로 들어가려 합니다. 님이여, 이별을 참을 수가 없거든, 나의 죽음을 참아주셔요 나의 생명의 배는 부끄럼의 땀과 바다에서, 스스로 폭침(爆沈)하려..

배움/시 2010.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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