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국사-근현대

자서전) 백범일지 - 김구선생 일대기 11

올드코난 2010. 7. 10.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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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일지

김구선생 일대기

        

이 혼사에 훼사를 놓은 김가라는 사람은 함경도 정평에 본적을 둔 김치경이다. 10

년 전에 아버지께서 술집에서 그를 만나 술을 같이 자시다가 김에게 8, 9세 되는 딸이

있단 말을 들으시고 취담으로, "내 아들과 혼사하자." 하여 서로 언약을 하고 그 후에

아버지는 그 언약을 지키셔서 내 사주도 보내시고 또 그 계집애를 가끔 우리 집에

데려다 두기로 하셨는데, 서당 동무들이 '함지박장수 사위'라고 나를 놀리는 것도

싫었고, 또 한 번은 얼음판에 핑구를 돌리고 있는데 그 계집애가 따라와서 제게도

핑구를 하나 만들어 달라고 나를 조르는 것이 싫고 미워서, 집에 돌아와 어머니께

떼를 써서 그 애를 제 집으로 돌려 보내고 말았다. 그러나 약혼을 깨뜨린 것은

아니었다.

  그 후 여러 해를 지내어서 갑오년 청일전쟁이 일어나자 사람들은 아들딸을 혼인이나

시켜야 한다고 어린 것들까지도 부랴부랴 성례를 하는 것이 유행하였다. 그때 동학

접주로 동분서주하던 내가 하루는 여행을 하고 돌아오니 집에서는 그 여자와 나와

성례를 한다고 술과 떡을 마련하고 모든 혼구를 다 차려 놓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한사코 싫다고 버티어서 마침내 김치경도 도리어 무방하게 생각하여 아주

이 혼인은 파혼이 되고 김은 그 딸을 돈을 받고 다른 사람에게 정혼까지 한 것이었다.

그런데 내가 고씨 집에 장가든다는 소문을 듣고 김은 돈이라도 좀 얻어먹을 양으로 고

선생댁에 와서 야료를 한 것이었다. 아버지께서는 크게 분노하여 김치경을 찾아가서

김과 한바탕 싸우셨으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 다시 주워담을 수는 없었다. 이리하여

내 혼인 문제는 불행한 끝을 맺고 고 선생도 청계동에 더 계실 뜻이 없어 해주 비동의

고향으로 돌아가시고 나는 금주 서씨의 집으로 가노라고 역시 청계동을 떠났다.

이리하여 내 방랑의 길을 다시 계속되었다.

  평양 감영에 다다르니 관찰사 이하로 관리 전부가 벌써 단발을 하였고, 이제는

길목을 막고 행인을 막 붙들어서 상투를 자르고 있었다. 사람들은 머리를 아니

깎으려고 슬몃슬몃 평양을 빠져나와 촌으로 산 읍으로 피난을 가고 백성의 원망하는

소리가 길에 찼다. 이것을 보고 나는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 올랐다. 어떻게

하여서라도 왜의 손에 노는 이 나쁜 정부를 들어 엎어야 한다고 주먹을 불끈불끈

쥐었다.

  안주 병영에 도착하니 게시판에 단발을 정지하라는 영이 붙어 있었다. 임금은

개혁파가 싫어서 러시아 공사관으로 도망하시고 수구파들은 러시아의 세력에 등을

대고 총리 대신 김홍집을 때려 죽이고 개혁의 수레바퀴를 뒤로 돌려 놓은 것이었다.

이로부터 우리나라에 러시아와 일본과의 세력 다툼이 시작되고 친아파와 친일파의

갈등이 벌어지게 되었다.

  나는 한성 정국의 변동으로 심기가 일전하였다. 구태여 외국으로 갈 것이 무엇이냐,

삼남에서는 곳곳에 의병이 일어난다고 하니 본국에 머물러 시세를 관망하여서 새로

거취를 정하기로 하고 길을 돌려 용강을 거쳐서 안악으로 가기로 하였다.

  나는 치하포 나룻배에 올랐다. 때는 병신년 2월 하순이라 대동강 하류인 이 물길에는

얼음산이 수없이 흘러내렸다. 남녀 15, 6명을 태운 우리 나룻배는 얼음산에 싸여서

행동의 자유를 잃고 진남포 아래까지 밀려 내려갔다가 조수를 따라서 다시 상류로

오르락내리락하게 되었다. 선객은 말할 것도 없고 선부들까지 이제는 죽었다고

울고불고하였다. 해마다 이때 이목에서는 이런 참변이 생기는 일이 많았는데 우리가

지금 그것을 당하게 된 것이었다. 배에는 양식이 없으면 비록 파선하기를 면하더라도

사람들이 얼어 죽거나 굶어 죽을 것이다. 다행히 나귀 한 마리가 있으니 이 모양으로

여러 날이 가게 될 경우에는 잔인하나마 잡아 먹기로 하고 한갖 울고만 있어도 쓸데

없으니 선객들도 선부들과 함께 힘을 써 보자고 내가 발론하였다. 여럿이 힘을

합하여서 얼음산을 떠밀어 보자는 것이다.

  나는 몸을 날려 성큼 얼음산에 뛰어올라서 형세를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큰 산을

의지하여 작은 산을 떠밀고, 이러한 방법을 반복하여서 간신히 한 줄기 산길을 찾았다.

이리하여 치하포에서 5리쯤 떨어진 강언덕에 내리니 강 건너 서쪽 산에 지는 달이

아직 빛을 남기고 있었다. 찬 바람 속에 밤길을 걸어서 치하포 배주인 집에 드니

풍랑으로 뱃길이 막혀서 묵는 손님이 삼간방에 가득히 누워서 코를 골고 있었다.

  우리 일행도 그 틈에 끼어 막 잠이 들려 할 즈음에 벌써 먼저 들었던 사람들이

일어나서 오늘 일기가 좋으니 새벽물에 배를 건네 달라고 야단들이다. 이윽고

아랫방에서부터 벌써 밥상이 들기 시작한다.

  나도 할 수 없이 일어나 앉아서 내 상이 오기를 기다리면서 방 안을 휘 둘러보았다.

가운뎃방에 단발한 사람 하나가 눈에 띄었다. 그가 어떤 행객과 인사하는 것을 들으니

그의 성은 정씨요, 장연에 산다고 한다. 장연에서는 일찍 단발령이 실시되어서

민간인들도 머리를 깎은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그 말씨가 장연 사투리가 아니요,

서울말이었다. 조선말이 썩 능숙하지마는 내 눈에는 분명 왜놈이었다. 자세히 살펴

보니 그의 흰 두루마기 밑으로 군도집이 보였다. 어디로 가느냐 한즉 그는 진남포로

가는 길이라고 한다. 보통으로 장사나 공업을 하는 일인 같으면 이렇게 변복, 변성명을

할 까닭이 없으니 이는 필시 국모(민비)를 죽인 삼포오루 놈이거나 그렇지 아니하면

그의 일당일 것이요, 설사 이도 저도 아니라 하더라도 우리 국가와 민족에 독균이

되기는 분명한 일이니 저놈 한 놈을 죽여서라도 하나의 수치를 씻어보리라고 나는

결심하였다. 그리고 나는 내 힘과 환경을 헤아려 보았다. 삼간방 40여 명 손님 중에

그놈의 패가 몇이나 더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열 일여덟 살 되어 보이는 총각 하나가

그의 곁에서 수종을 들고 있었다.

  나는 궁리하였다. 저놈은 둘이요 또 칼이 있고, 나는 혼자요 또 적수공권이다.

게다가 내가 저놈에게 손을 대면 필시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이 달려들어 말릴 것이요,

사람들이 나를 붙들고 있는 틈을 타서 저놈의 칼은 내 목에 떨어질 것이다. 이렇게

망설일 때에 내 가슴은 울렁거리고 심신이 혼란하여 진정할 수가 없이 심히 마음에

고민하였다. 그 때에 문득 고 선생의 교훈 중에,

  '들수반지부족기 현애철수장부아'라는 글이 생각났다. 벌레를 잡은 손을 탁 놓아라

그것이 대장부다. 나는 가슴 속에 한 줄기 광명이 비침을 깨달았다. 그리고

자문자답하였다.

  "저 왜놈을 죽이는 것이 옳으냐?"

  "옳다."

  "네가 어려서부터 마음 좋은 사람이 되기를 원하였느냐?"

  "그렇다."

  "의를 보았거든 할 것이요, 일의 성불성을 교계하고 망설이는 것은 몸을 좋아하고

이름을 좋아하는 자의 일이 아니냐."

  "그렇다. 나는 의를 위하는 자요, 몸이나 이름을 위하는 자가 아니다."

  이렇게 자문자답하고 나니 내 마음의 바다에 바람은 자고 물결은 고요하여 모든

계교가 저절로 솟아오른다. 나는 40명 객과 수백 명 동민을 눈에 안 보이는 줄로 꽁꽁

동여 수족을 못 놀리게 하여 놓고, 다음에는 저 왜놈에게 티끌 만한 의심도 일으키지

말아서 안심하고 있게 하여 놓고, 나 한 사람만이 자유자재로 연극을 할 방법을

취하기로 하였다.

  다른 손님들이 자던 입에 새벽 밥상을 받아 아직 삼분지 일도 밥을 먹기 전에

그보다 나중 상을 받은 나는 네댓 술에 한 그릇 밥을 다 먹고 일어나서 주인을 불러

내가 오늘 해 전으로 7백 리 길을 걸어야 하겠으니, 밥 일곱 상을 더 차려 오라고

하였다. 37,8세 됨직한 골격이 준수한 주인은 내 말에 대답은 아니하고 방 안에 있는

다른 손님들을 둘러보며,

  "젊은 사람이 불쌍하다. 미친놈이로군."

하고 들어가 버렸다.

  나는 목침을 베고 한편에 드러누워서 방 안의 물의와 그 왜놈의 동정을 살피고

있었다. 어떤 유식한 듯한 청년은 주인의 말을 받아 나를 미친 놈이라 하고,

담뱃대를 붙여 문 어떤 노인은 그 젊은 사람을 책하는 말로,

  "여보게, 말을 함부로 말게. 지금인들 이인이 없으란 법이 있겠나. 이러한 말세에

이인이 나는 법일세."

  하고 슬쩍 나를 바라보았다. 그 젊은 사람도 노인의 눈을 따라 나를 흘끗 보더니

입을 삐죽하고 비웃는 어조로,

  "이인이 없을 리야 없겠죠마는 아 저 사람 생긴 꼴을 보세요. 무슨 이인이

저렇겠어요."

하고 내게 들려라 하고 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그 왜는 별로 내게 주목하는 기색도 없이 식사를 필하고는 밖으로 나가

문설주에 몸을 기대고 서서 방 안을 들여다보면서 총각이 연가(밥값) 회계하는 것을

보고 있었다.

 (다음페이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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