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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국사-근현대 127

광주 베트남 동일시한 전두환 광주는 전쟁터였다.(수류탄 클레이모어 66mm 로우 TNT가 시위진압용인가!)

어제 JTBC뉴스룸이 입수한 5·18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이 작성한 군 장비와 무기 지급현황을 다룬 '보급지원 현황' 문건을 확인해 보면 5.18 초기부터 수류탄 4989발, TNT 450파운드을 지급했다는게 드러났다. 여기에 전차와 장갑차 등을 공격하는 대전차로켓탄인 66mm 로우 74발, 대인 지뢰인 클레이모어 180개, 20mm 벌컨포 1500발 또 특전사를 포함한 계엄군에 지급된 실탄만 130만발로 광주에 투입된 무기들을 보면 이는 자위권도 진압용도 아닌 전쟁용이었다. 전두환과 신군부는 광주에서 시위를 진압하려한 것이 아니라 애초에 광주시민들과 전쟁을 벌였고 학살을 할 목적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광주를 베트남과 동일시 한 것이다. 군필자들은 이 무기들이 의미하는 것에 대해 잘 알겠지만 이..

전두환 광주학살 책임, 실탄 정조준 사격이 증거다.(5.18은 분명한 학살사건이다.)

[들어가기전] 이틀전 8월25일 금요일 넷이서 영화 택시운전사를 봤습니다. 무려 2번을 봤습니다. 원래는 아침 조조할인을 보고 나올 예정이었습니다. 영화를 본 후 마침 딱 점심 시간대라 같이 식사를 하던중 전라도 사나이 김 형이 “내가 (표)살테니 한 번 더 보자!”라는 제안에 점심 먹고 오후 2시 상영시간에 영화 택시운전사를 또 봤습니다. 같은 날 같은 영화를 2번 본 이날은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참고: 영화 택시운전사 후기 => 진실에 목숨을 걸었던 5.18광주민주화운동 영화 택시운전사 ] 그런데, 어제 토요일 저녁에 같이 영화를 본 김형 집에 사람들이 모여 한 잔 하면서 영화 택시운전사 이야기를 하면서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 있었습니다. 여성들이 이해를 못하는 것은 군필자 입자에서 아주 작은..

6.15 남북 공동선언 [6.15 남북 공동선언문] 한반도 평화를 위한 첫걸음이었다.

김대중 정부 후반기였던 2000년 6월 15일 평양으로 간 김대중 대통령과 북한 김정일 위원장은 역사적인 정상회담을 거쳐 공동 선언을 발표한다. 6·15 남북 공동선언(6·15 南北 共同宣言)이다. 이명박근혜 9년동안 보수들의 비난을 받았던 6·15 남북 공동선언은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정리해 본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첫걸음 6·15 남북 공동선언(6·15 南北 共同宣言)1. 과정2000년 6월 13일 김대중 대통령은 비행기를 타고 대한민국 대통령 최초로 북한을 방문한다.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한 김대중 대통령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직접 환대했는데, 비행기 트랩 앞에서 영접하고 두 정상이 악수하는 장면이 전국민에게 생중계를 통해 보여졌고, 해외에도 큰 관심을 갖는다. 두 정상은 ..

제암리 학살 사건(提巖里虐殺事件, 제암리 사건), 수촌리학살사건(水村里虐殺事件) 설명

일제강점기인 1919년 3월1일 독립만세운동이 발생하고 전국적으로 확대되는데 이 시기인 4월 5일 수촌리 학살 사건과 4월 15일 경기도 수원군 향남면(현재의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 제암리 제암리교회에서 제암리 학살 사건(提巖里虐殺事件)이 발생한다. 정리해 본다. (위키배과, 다음 백과 참고) 1. 제암리와 제암리교회제암리는 두렁바위로 주로 안씨들이 모여사는 집성촌으로 일찍부터 천도교의 교세로 민족정신이 고양되고 제암리 교회에서는 문맹퇴치 교육이 이루어졌고 대한제국 시위대 해산군인 홍원식이 낙향해 동리 사람들을 모아 교육하고 동지들을 규합하여 구국동지회를 만들었던 민중저변의 의식화가 이루어진 지역이었다.제암리교회(현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 제암리 소재)는 1905년 8월 5일 처음 건립되고 H. G. 아펜..

한신교육투쟁(阪神教育鬪爭) 설명 [재일 조선인 민족교육투쟁 한신교육사건 의미]

한신교육투쟁(阪神教育鬪爭)은 일본에서는 한신교육사건(阪神教育事件)이라고도 불리며 조선인 학교사건, 오사카에서는 오사카 조선인 소요사건, 고베에서는 고베 조선인 학교 사건 등으로 불린다. 재일조선인과 일본 공산당이 1948년 4월 14일부터 4월 26일까지 (혹은 3.24~5.3) 일본 오사카부와 효고현에서 벌인 민족교육투쟁이다. 이 사건으로 연합군최고사령부는 전후 유일하게 비상사태를 선언했다. 정리해 본다. 1. 배경2차 세계대전 종전후에도 일본에는 강제로 끌려온 많은 한국인(조선인)들이 살고 있었는데 이들 재일 조선인들의 아이들은 전쟁과 황민화교육으로 조선어를 읽고 쓰기가 어려웠다. 이에 뜻있는 조선인들은 독자적으로 제작한 한글 교재를 만들고 일본 각지에 국어 강습회를 개최한다. 국어 강습회는 재일본조..

민주학생운동 2.28 대구 학생의거 설명

이승만 정권 시절 1960년 2월 28일 3.15 대선을 앞두고 자유당 독재에 항거, 대구에서 일어난 학생의거를 2·28 대구 학생의거라 한다. 2.28 대구 학생의거는 마산의 3.15 부정선거 항의시위로 이어졌고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된 대한민국 민주주의 운동의 매우 중요한 사건이다. 정리해 본다. 4.19혁명의 도화선, 민주주의 학생운동의 효시로 고둥학생이 주도했던 2.28 대구 학생의거(2.28 大邱學生義擧) 설명 1. 배경1960년 3월 15일 제 4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당시 4선을 하려는 이승만과 여당 자유당과 야당이었던 민주당의 대결이 치열했는데, 대통령 후보 조병욱 박사가 갑자기 죽으면서 대통령은 이승민이 사실상 확정적이었고, 결국 가장 큰 관심사는 바로 부통령이었다. 더구나 이승만이 ..

충정훈련(忠情訓練)과 충정작전, 5.18은 계획된 학살이었다.

1980년 2월 신군부는 특전사를 중심으로 강도높은 폭동진압 훈련 즉 충정훈련(忠情訓練)을 시작한다. 이때 충정훈련을 받은 공수 여단이 1980년 5월 광주에 투입해 광주시민들을 엄청난 폭력과 학살을 자행하게 된다. 충정훈련과 충정작전에 대해 정리해 본다. 1. 충정훈련 개요1980년 2월 18일 사실상 신군부의 명령인 육군본부 특별지시가 1·2·3야전군사령관과 특전사령관, 수경사령관, 치안본부장에게 내려졌는데 1/4분기의 충정훈련을 2월 중 조기 실시해 완료하라는 것이었다. 이에 충정부대 병사들의 외출과 외박이 중지되고 진압훈련이 실시되는데 특히 특전사에 강도 높은 훈련이 실시된다. 이 훈련은 군인들에게 불특정 다수들에게 불만을 표출하게 만들어 결국 5.18 당시 광주시민에 대한 잔혹한 살상행위로 이어..

전두환 대통령 만들기 K-공작계획 (King 工作計劃)

12.12.사태로 권력을 장악한 신군부는 집권을 위한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특히 여론 조작의 중요성을 잘아는 신군부는 일명 K-공작계획 (King 工作計劃)을 시작한다. 전두환 대통령 만들기였던 K-공작계획 (King 工作計劃)에 대해 정리해 본다. (참고, 한국현대사사, 위키백과, 근대사 자료 참고) 1. 개요K-공작계획은 1980년 3월 당시 보안사 언론반장 이상재가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결재를 받아 단결된 군부의 기반을 주축으로 지속적인 국력 신장을 위한 안정 세력을 구축이라는 목적으로 실행한 언론 회유 공작 계획으로 언론을 장악하고 전두환을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한 공작이었다. K-공작계획의 K는 KING의 약자로 전두환을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한 언론공작이었다. 2. 주도자K-공작계획을 주도한 이는 ..

가쓰라-태프트 밀약 (桂・タフト協定) 일본의 대한제국 지배 묵인.

가쓰라-태프트 밀약(Taft-Katsura Secret Agreement, TKSA; 桂.タフト協定 (かつら・タフト きょうてい)은 러일 전쟁 직후 미국의 필리핀에 대한 지배권과 일본 제국의 대한제국에 대한 지배권을 상호 승인하는 문제를 놓고 일본 도쿄에서 1905년 7월 29일 당시 미국 육군 장관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와 일본 제국 내각총리대신 가쓰라 다로가 도쿄에서 회담한 대화 기록으로 서명된 조약이나 협정 같은 것은 없었고, 일본-미국 관계를 다룬 대화에 대한 각서(memorandum)만이 있었다. 내용은 1924년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정리해 본다. 1. 배경1904년 2월 일본은 대한제국과 한일의정서를 맺고 아서항을 공격해 러일 전쟁이 발발한다. 러일 전쟁이 사실상 일본의 승리로 끝날 즈음 미국..

국립과학수사연구원 5.18 당시 헬기 사격 있었다, 계엄군 광주시민 학살했다는 증거.

오래전부터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이 광주 시민들을 향해 헬기에서 기관총으로 사격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어 왔다. 물론 국방부는 현재까지도 당일 항공 작전일지 자체가 없다는 이유를 대며 부인하고 있다. 그런데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지난해 9월부터 3차례에 현장조사를 벌인 끝에 어제 광주 금남로 옛 전남도청 앞 전일빌딩의 외벽과 최고층인 10층의 내부 기둥 주변에서 발견된 185개 총탄 흔적을 분석한 결과 헬기 사격이 있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광주시와 국과수는 세 차례에 걸친 조사를 통해 모두 185개의 총탄 흔적을 확인하고 정밀 분석했는데 5.18 당시 광주에 UH-1기종과 500MD 기종의 헬기가 기동했고 이들 헬기의 무장은 7.62㎜ 실탄을 사용하는 M-60 계열의 기관총이나 M-134 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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