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국사-근현대

가쓰라-태프트 밀약 (桂・タフト協定) 일본의 대한제국 지배 묵인.

올드코난 2017. 1. 30.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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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쓰라-태프트 밀약(Taft-Katsura Secret Agreement, TKSA; 桂.タフト協定 (かつら・タフト きょうてい)은 러일 전쟁 직후 미국의 필리핀에 대한 지배권과 일본 제국의 대한제국에 대한 지배권을 상호 승인하는 문제를 놓고 일본 도쿄에서 1905년 7월 29일 당시 미국 육군 장관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와 일본 제국 내각총리대신 가쓰라 다로가 도쿄에서 회담한 대화 기록으로 서명된 조약이나 협정 같은 것은 없었고, 일본-미국 관계를 다룬 대화에 대한 각서(memorandum)만이 있었다. 내용은 1924년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정리해 본다.


1. 배경

1904년 2월 일본은 대한제국과 한일의정서를 맺고 아서항을 공격해 러일 전쟁이 발발한다. 러일 전쟁이 사실상 일본의 승리로 끝날 즈음 미국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1905년 7월 당시 미국 육군 장관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를 도쿄에 파견 일본 수상 가쓰라 다로와 비밀회담을 갖게 한다. 가쓰라-태프트 밀약(각서)은 일본 총리 가쓰라와 미국 육군장관 태프트가 1905년 7월 27일 회동에서 나눴던 대화 중 기밀로 분류된 대화 내용을 담고 있고 각서는 1905년 7월 29일 만들어졌다.


2. 각서 주요 내용 3가지

첫째 동아시아 전반에 관한 논의: 가쓰라는 동아시아의 평화가 일본 외교의 근본적인 원칙이며 이러한 동아시아의 평화는 일본, 미국, 영국 간의 협조가 있을 때에 가장 잘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들째 필리핀에 관한 논의: 태프트는 미국과 같이 강력하고 일본에 우호적인 나라가 필리핀을 점령하는 것이 일본에 최선이라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해 가쓰라는 일본은 필리핀에 대한 어떠한 공격계획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셋째 대한제국에 관한 논의: 가쓰라는 러일전쟁의 직접적 원인을 제공한 것은 대한제국으로 일본이 대한제국에 특별한 조처를 하지 않는다면 대한제국은 또다시 다른 세력과 조약이나 협정을 맺어 러일전쟁을 일으켰던 것과 같은 상태로 돌아가는 경솔한 모습을 보일 것이므로 대한제국 문제에 대한 종합적인 해결책을 도출하는 것이야말로 러일 전쟁의 논리적인 귀결이라고 주장했다. 가쓰라는 대한제국이 일본과 다른 나라 사이에 전쟁하도록 만드는 상황을 반복하지 않게 하도록 일본은 대한제국에 대해 적절한 조처를 할 것이며, 이는 일본에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말했다. 태프트는 일본이 대한제국에 대한 보호권을 갖는 것이 동아시아의 안정에 이바지할 것이라고 동의했다.

태프트는 이 내용에 대해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 역시 이에 동의할 것이라고 우회적으로 말한다.

이 3가지 각서내용을 주요한 점을 요약해 보면 미국이 필리핀을 식민지하는데 일본은 반대하지 않겠다는 것이며 일본이 대한제국을 식민지화하는데 미국은 막지 않겠다는 것으로 일본은 한반도와 만주 타이완을 영국은 만주를 제외한 중국 대륙에 대해, 미국은 필리핀에 이익을 갖고 서로 지배영역을 침범하지 않는다는 걸 재확인해 준 것이다.


3. 결과

이 비밀협정 이전부터 미국은 일본이 한반도 지역을 식민지배하는 것이 미국의 이익에 들어맞는다는 입장을 갖고 있었다는 점에서 가쓰라-태프트 밀약은 이를 재확인한 것에 불과하다는 의견이 많다. 이 밀약으로 강대국은 한반도를 사실상 일본의 식민지로 인정을 해 버린 것으로 일본은 1905년 8월 12일 제2차 영일동맹과 1905년 9월 5일 포츠머스 조약을 체결해 세계열강들로부터 한반도 지배권을 인정받게 된다. 이후 1905년 11월 17일 을사늑약을 통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강탈하고 미국은 이를 묵인하고 결국 1910년 8월 22일 한일 병합 조약으로 대한제국은 멸망하고 만다.


4. 비판

일부 미국 역사가들은 두 사람이 나눴던 대화에서 새로운 정책이 만들어지거나 조약이 체결된 것은 아니므로 이는 미국이 일제의 대한제국 침략에 협력한 근거가 될 수 없으며 태프트 의견이 미국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 자신만의 의견이라고 말했다고 하지만 그전부터 미국은 일본이 한반도 지배를 인정하고 있던 상황이기에 가쓰라-태프트 밀약은 재확인한 것에 불과하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많은 이들이 미국에 대해 자유민주주의의 수호자로 여기고 있지만 이 시기 미국은 왕이 없을뿐 제국주의 국가였다는 사실을 명심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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