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국사-근현대

6월 항쟁 (6.10 민주항쟁) 배경과 의미 설명

올드코난 2016. 12. 19.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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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기전] 지금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위기와 새로운 도약이라는 갈림길에 서 있다고 생각한다. 박근혜 정부가 헌법을 유린하며 국가의 근간을 흔들고 있지만, 한편으로 생각하며면 박근혜 때문에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깨달았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게 촛불집회로 이어진 것이다. 민주주의는 권력자와의 끝없는 투쟁의 결과이며 절대 멈춰서는 안된다. 그런 점에서 대한민국 민주사에 큰 이정표를 남겼던 6월 항쟁의 의미를 되새겨 보는게 좋을 것 같다 간략히 정리해 본다.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의 한 획을 그었고, 촛불집회의 모태이며 평화시위였으며 대통령 직선제 6.29선언을 이끈 6월 항쟁 (6.10 민주항쟁) 배경과 의미 설명


1. 개요

6월 항쟁(六月抗爭)은 1987년 6월 10일부터 6월 29일까지 전국적으로 벌어진 반독재, 민주화 운동이다. 6월 민주항쟁, 6.10 민주항쟁, 6월 민주화운동, 6월 민중항쟁 등으로 불린다.


2. 배경

1979년 10·26 사건으로 김재규 의사에 의해 박정희가 처단된다. 문제는 국민들의 민주주의 열망을 무시하고 전두환과 하나회 등 정치군인들이 반란을 일으켜 권력을 장악 체육관에서 치러진 간접선거로 대통령에 취임 7년간 독재정치를 펼쳤다. 그리고 1987년 전두환 마지막 임기 년에 국민들은 다음 대통령 선거를 직선제로 할 것을 요구하지만, 전두환은 간접선거를 하려든다.


3.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이한열 사망

1987년 1월 13일 자정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이던 박종철 군이 하숙집에서 치안본부 대공분실 수사관 6명에게 연행된후 경찰에 의해 잔혹한 폭행과 전기고문, 물고문 등을 당하다 1987년 1월 14일 사망했는데 문제는 사망원인을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쓰러졌다'라는 정부의 발표에 학생과 국민들은 분노한다. 전국 주요 도시에서 "박종철군 범국민추도식" 및 도심 시위가 열렸고 이 분위기는 6월까지 그대로 이어진다.

그리고 6월 9일 당시 연세대학교 학생 이한열 군이 학교 앞 시위 중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부상을 입었다. (7월 5일 사망) 이한열 열사가 취루탄을 맞고 쓰러지는 사진이 공개되면서 전국민이 분노를 일으키고, 다음날 6월 항쟁이 시작된다.


4. 6월 항쟁

1987년 6월 10일 잠실체육관에서 노태우가 민정당의 제13대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고 이날 전국에서 반정부 시위가 일어난다. 박종철군 고문치사 조작과 은폐를 규탄했고 호헌철폐와 대통령 직선제 요구, 전두환 독재 타도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학생들뿐만이 아니라 일반 시민들까지 참여한 전국민들의 들고 일어난 것이다. 결국 6월 29일 노태우가 직선제 형태의 대통령 선거를 골자로 하는 내용의 6·29 선언을 발표하며 6월 항쟁은 대단원이 막을 내린다. (6월 항쟁 당시 자세한 상황은 위키백과 참조)


5. 6월 항쟁의 의미 (올드코난 생각)

6월 항쟁이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에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이전부터 민주주의에 대한 투쟁은 있어왔지만 1987년 6월 항쟁은 크게 달랐는데, 이전에는 주로 학생 혹은 가난한 근로자들 중심의 생존권이 달린 문제들이 있었다면 1987년 6월 항쟁은 남녀노소, 학생, 근로자, 지식인, 농민 등 다양한 분야의 사회 구성원들이 하나가 되어 독재타도와 민주주의를 열망했던 순수한 민주화운동이었다. 


그리고 6월 항쟁 기간중 공권력에 맞서기 위해 화염병과 돌맹이 등이 쓰이기는 했지만, 시민들이 먼저 쓴 것이 아니다. 이시기에는 대다수 국민들이 고등학교 졸업 학력을 가진 기본적인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에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주장들이 많이 나왔고 이런 주장들이 한데 모여 이성적으로 6.29선언을 이끌어 낸 것이지 폭력시위로 승리한 것이 아니다. 


이는 중요한 문제다. 아직도 보수단체들은 6월항쟁을 폭력시위 혹은 종북세력으로 매도하는 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6월항쟁은 절대 폭력시위가 아니었다. 폭력을 쓴 것은 전두환이었다. 6월 10일부터 29일까지 20일의 시간동안 국민들 대다수는 평화적인 시위를 했다는 점을 명심해야한다. 6월 항쟁부터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의 이념과 제도 같은 것이 정착되었다고 보는 시각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근 30년 후인 2016년 12월 광화문 촛불집회는 바로 6월항쟁이 모태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끝으로 매우 아쉬운 점은 노태우가 대통령에 당선이 되어 군부독재가 5년 더 연장되었다는 점이다. 당시 야권의 분열의 책임이 크다. 2017년 대선에서 야권은 이런 실수를 하지 말아야겠다.


글 작성/편집 올드코난 (Old Con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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