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국사-근현대

충정훈련(忠情訓練)과 충정작전, 5.18은 계획된 학살이었다.

올드코난 2017. 2. 6.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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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2월 신군부는 특전사를 중심으로 강도높은 폭동진압 훈련 즉 충정훈련(忠情訓練)을 시작한다. 이때 충정훈련을 받은 공수 여단이 1980년 5월 광주에 투입해 광주시민들을 엄청난 폭력과 학살을 자행하게 된다. 충정훈련과 충정작전에 대해 정리해 본다.


1. 충정훈련 개요

1980년 2월 18일 사실상 신군부의 명령인 육군본부 특별지시가 1·2·3야전군사령관과 특전사령관, 수경사령관, 치안본부장에게 내려졌는데 1/4분기의 충정훈련을 2월 중 조기 실시해 완료하라는 것이었다. 이에 충정부대 병사들의 외출과 외박이 중지되고 진압훈련이 실시되는데 특히 특전사에 강도 높은 훈련이 실시된다. 이 훈련은 군인들에게 불특정 다수들에게 불만을 표출하게 만들어 결국 5.18 당시 광주시민에 대한 잔혹한 살상행위로 이어지게 만든다.

2. 충정부대

소요를 진압한다는 명분으로 진압작전에 투입된 충정부대는 수도권에 있던 부대들인 수방사 예하사단, 특전사 제1 제3 제7 제9여단 그리고 육군 제17, 20, 26, 30사단 등이다.


3. 충정작전회의

수도경비사령부(수경사)에서 3월 4일에서 6일까지 2박 3일간 제1차 충정회의가 열렸다. 노태우 수경사령관과 정호용 특전사령관, 1·3·5·7·9·11공수특전여단장, 20/26/30사단장들과 작전참모, 치안본부장, 시경국장 등 수도권의 주요 지휘관이 참가한 중요한 회의로 당시 국민들의 민주화 열기가 시위로 이어질 것을 예견한 신군부는 이를 진압하기 위해 충정 훈련을 강화하고 즉각적인 출동 태세를 유지한다는 결정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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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광주 투입전

특전사 대원들이 광주로 투입되기 직전까지 충정훈련의 훈련의 강도도 매우 셌고 부대에서 퇴근도 하지 못하게 만들어 결국은 불특정 다수에게 적개심을 갖게 되었는데 이는 신군부가 원했던 것이다. 1980년 4월 12일 특전사령관 정호용은 충정작전용 차량 배치를 육군참모총장에게 요청하고 육군본부는 제1항공여단에 중앙기동부대 5개의 항공조를 편성 대기하도록 지시했고 특전사에는 공중지원에 소요되는 화학탄과 화염방사기 및 병력을 1항공여단에 지원하고 각급 부대는 500MD 운용계획을 수립하고 필요한 훈련을 실시토록 지시한다.


5. 평가

충정훈련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신군부가 5.18 광주 학살을 자행한 것은 철저히 계획된 것이라는 점이다. 장소가 수도권이 아닌 광주가 되었던 것일뿐 충정훈련은 국민들을 진압하는 정도를 넘어 살상을 위한 목적이 강했다. 특히 광주에 투입된 특전사들은 월남 참전 용사들도 많았고 원래 특전사 대원들은 최정예 군인들이었다는 점에서 특전사를 대상으로 했던 충정작전은 어떤 이유에서는 정당화 될 수 없는 계획된 대국민 학살작전이었다. 

5.18 광주 시민 학살 이후 언론에서는 광주시민들을 폭도로 몰고갔고, 피해 규모를 축소하는 등 치밀하고 교활하고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데 이는 신군부과 전두환이 박정희 시대부터 권력 장악에 대한 준비를 시작했으며, 단지 박정희 죽음으로 조금 앞당겨졌던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충정훈련을 실시한 목적과 과정 등에서 이들 신군부는 자신들의 권력을 위해 국민들을 죽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던 반민주 반민족주의자들이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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