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국사-근현대

전두환 대통령 만들기 K-공작계획 (King 工作計劃)

올드코난 2017. 2. 6.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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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사태로 권력을 장악한 신군부는 집권을 위한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특히 여론 조작의 중요성을 잘아는 신군부는 일명 K-공작계획 (King 工作計劃)을 시작한다. 전두환 대통령 만들기였던 K-공작계획 (King 工作計劃)에 대해 정리해 본다. (참고, 한국현대사사, 위키백과, 근대사 자료 참고)


1. 개요

K-공작계획은 1980년 3월 당시 보안사 언론반장 이상재가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결재를 받아 단결된 군부의 기반을 주축으로 지속적인 국력 신장을 위한 안정 세력을 구축이라는 목적으로 실행한 언론 회유 공작 계획으로 언론을 장악하고 전두환을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한 공작이었다. K-공작계획의 K는 KING의 약자로 전두환을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한 언론공작이었다.


2. 주도자

K-공작계획을 주도한 이는 전두환의 5인방이라 불리는 보안사 권정달 정보처장, 정도영 보안처장, 허삼수 인사처장, 이학봉 대공처장 그리고 허화평 사령관 비서실장 등이었다. 실무 총책은 보안사 언론반장 이상재 준위였다.


3. 계획과 구성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가 죽고 12.12. 사태로 권력을 사실상 장악한 전두환과 신군부는 언론을 장악하고 여론을 조작할 계획 등을 구상했다. 보안사령부는 1980년 2월 1일경부터 보안사에 정보처를 신설하고 정보처 내에 언론관계 업무를 담당하는 언론계를 두고 이상재를 책임자로 하는 ‘언론반’을 가동했다. 그리고 언론반장 이상재 준위는 1980년 3월 보도검열단을 실질적으로 조종·감독하고 언론사 간부들의 성향을 파악하고, 언론인에 대한 회유와 공작을 핵심으로 하는 'K-공작계획'을 만들었고 4월에는 이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언론조종반(대책반)을 구성했다.

K-공작반은 차장급 이상을 회유하기 위한 반장 1명, 중진기자 이상을 상대로 여론을 수집하는 분석관(문공부 직원) 2명, 여론수집 및 언론사 행사일정을 입수하는 수집관 5명 등 모두 14명으로 편성됐다.


3. 언론반의 주요 업무

언론반(언론조종반)의 주요 업무는 검열 조종 업무와 공작 업무로 나뉘었는데 검열 조종 업무는 시청 검열단에서 매일 실시하는 언론·출판 보도검열 업무를 조종․감독하는 것이고, 공작 업무는 설정된 임무수행을 위해 각 언론기관의 주요인사에 대한 접촉공작을 시행하는 것이다. 언론반의 보도검열단은 외근요원 5명은 각 언론사의 정보를 수집하고 수집된 정보를 바탕으로 검열 조종 및 언론인 회유 업무를 했다.


4. K-공작 주요 계획

주요 계획은 크게 2가지로 첫째, 당시 3김(김대중, 김영삼, 김종필)을 민주정치세력으로 하고 신군부를 안정구축 세력으로 차별화 한다는 선안정 이론 확산. 둘째, 언론계 간부들의 성향을 분석하고 협조 가능한 언론인들 포섭 등이다. 그리고 구체적인 실행 계획으로는 당시 학생들의 시위와 노동자 파업등의 쟁의 활동들을 모두 사회 혼란 세력으로 매도하고 3김을 구태정치와 파벌싸움으로 몰아간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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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이상재 준위

보안사 언론반장 이상재 준위는 전두환의 부관을 했던 인연으로 신임을 얻고 있었던 인물로 K-공작계획의 실무 책임자였다. 강기덕 보안사사령관 보좌관이라는 가명으로 활동했다.


6. 실행

신군부는 언론인 간담회를 개최해 전두환에 대한 언론사주와 언론사 간부 등의 반응을 살피고 신군부에 협조하도록 요구했고 이후 간담회 내용이 기사에 어떻게 반영되는지 파악했고 접촉한 언론인들의 정치적 성향과 정책 주장을 분석하고 비고란에 접촉 회수와 양호, 협조희망, 적극, 경계, 소극 등으로 구분했다.

그리고 언론사들이 전두환의 이미지에 대해 이렇게 쓰라고 했다. ‘전두환은 정의감이 강하고 포용력 있는 대범한 인물이며 우국충정에 불타는 사심 없고 청렴결백한 전형적인 군인이고 농촌출신으로 서민적이고 소박 인자한 범국민적 인물, 해외유학, 시찰 등 문무 겸비한 민주주의 신봉자로 어려운 시기에 국가의 운명을 걸머지고 가시밭길을 걷고 있는 애국자’ 등으로 기사를 쓰라 요구한다.

그리고 5.18광주학살(광주민주화운동)이 발생했을 때 광주소요사태의 조속한 진정과 질서회복 유지를 위해 노력한다는 보도를 하게 만들었다.

K-공작계획은 전두환 집권 이전에는 전두환과 신군부의 이미지를 위한 여론조작이었다면 전두환이 대통령으로 집권한 이후에는 언론인 강제 해직, 언론사 강제 통폐합 과정에 활용된다.


7. 언론 부역자

요즘에는 기레기(기자쓰레기)라는 표현을 쓰는데, 이때는 언론부역자로 표현하는게 맞을 것 같다. 대표적인 언론사는 조선일보 였고 전두환과 노태우 정권은 물론 지금까지도 보수를 대변하는 언론사인 조선일보는 신군부의 충실한 협력자가 된다. 다른 보수 언론들도 마찬가지다.


8. 평가

K-공작계획은 대표적인 공작정치로 전두환을 집권하는데 큰 도움을 주고 이후 대통령 재임 중에서 전두환은 위대한 군인, 참군인, 그리고 위대한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씌어준다. 당시 청소년들의 장래 희망 1위가 대통령이었다는 것은 전두환의 대표적인 공작정치 K-공작계획 등으로 대중들을 제대로 속였다고 볼 수 있다. 다행스런 것은 1980년대에는 고졸 이상의 학력을 가진 국민들이 많아서인지 박정희 시대만큼 속지 않았다는 점이다. 결국 1987년 6.29선언을 이끌어낸 대다수 대한민국 국민들은 절대 바보가 아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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