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국사-근현대

자서전) 백범일지 - 김구선생 일대기 35

올드코난 2010. 7. 10.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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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일지

김구선생 일대기

 


그랬더니 그날 저녁에 우리들이 벌거벗고 공장에서 감방으로 들어올 때에 그 역시

벌거벗고 우리 뒤를 따라서,

  "오늘부터 이 방에서 괴로움을 끼치게 됩니다."

하고 내가 있는 감방으로 들어왔다. 나는 퍽이나 반가워서,

  "이 방으로 전방이 되셨소?"

하고 물은즉 그는,

  ". , 노형 계신 방이구려."

하고 그도 기쁜 빛을 보인다. 옷을 입고 점검도 끝난 뒤에 나는 죄수 두 사람에게

부탁하여 철창에 귀를 대어 간수가 오는 소리를 지켜 달라 하고 김진사와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내가 먼저 입을 열어, 아까 공장에서는 서로 할 말을 다 못하여서 유감일러니 이제

한 방에 있게 되니 다행이란 말을 하였더니 그도 동감이라고 말하고는 계속하여서

그는 마치 목사가 신입 교인에게 세례문답을 하듯이 내게 여러 가지를 물었다. 그 첫

질문은,

  "노형은 강도 15년이라 하셨지요?"

하는 것이었다.

  ", 그렇소이다."

  "그러면 어느 계통이시오, 추설이요, 목단설이시요? 북대요? 또 행락은 얼마

동안이나 하셨소?"

  나는 이게 다 무슨 소린지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추설', '목단설'

무엇이요, '북대'는 무엇이며, '행락'은 대체 무엇일까? 내가 어리둥절하고 있는 것을

보더니 김진사는 빙긋 웃으며,

  "노형이 북대인가 싶으오."

하고 경멸하는 빛을 보였다.

  내 옆에서 우리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죄수 하나가 김진사를 대하여 나를

가리키며, 나는 국사범 강도라, 그런 말을 하여도 못 알아 들을 것이라고 변명하여

주었다. 그는 찰강도라 계통 있는 도적이었다. 그의 설명을 듣고야 김진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 어째 이상하다 했소. 아까 공장에서 노형이 강도 15년이라기에 위아래로

훑어보아도 강도 냄새가 안 나기에 아마 북대인가 보다 하였소이다."

한다.

  나는 연전에 양산학교 사무실에서 교원들과 함께 하던 이야기를 생각하지 아니할 수

없었다. 세상에 활빈당이니 불한당이니 하는 큰 도적 떼가 있어서 능히 장거리와 큰

고을을 쳐서 관원을 죽이고 전재를 빼앗되 단결이 굳고 용기가 있으며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동작이 민활하여 나라 군사의 힘으로도 그들을 잡지 못한단 말을 들었는데,

우리가 독립운동을 하자면 견고한 조직과 기민한 훈련이 필요한즉 이 도적 떼의

결사와 훈련의 방법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 하여 두루 탐문해 보았으나 마침내 아무

단서도 얻지 못하고만 일이었다.

  사흘을 굶으면 도적질할 마음이 난다고 하지마는 마음만으로 도적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니 거지도 용기와 공부가 필요할 것이다. 담을 넘고 구멍을 뚫는 좀도둑은 몰라도,

수십 명 수백 명 떼를 지어 다니는 도적이라면 거기는 조직도 있고 훈련도 있고

의리도 있으려니와 무엇보다도 두목되는 지도자가 있을 것인즉 수십 명 수백 명 도적

떼의 지도자가 될 만한 인물이면 능히 한 나라를 다스려 갈 만한 지혜와 용기와

위엄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김진사에게 도적 떼의 조직에 관한 것을 물었다. 그런즉 진사는

의외에도 은휘함 없이 내 요구에 응하였다.

  "우리 나라의 기상이 다 해이한 이때까지도 그대로 남은 것은 벌과 도적의

법뿐이외다."

라는 허두로 시작된 김진사의 말에 의하면, 고려 이전은 상고할 길이 없으나

이조시대의 도적 떼의 기원은 이성계의 이신벌군의 불의에 분개한 지사들이 도당을

모아 일변 이성계를 따라서 부귀영화를 누리는 소위 양반들의 생명과 재물을 빼앗고

일변 그들이 세우려는 질서를 파괴하여서 불의에 대한 보복을 하려는 데서 나왔으니,

그 정신에 있어서는 두문동 72현과 같았다. 그러므로 그들은 도적이라 하나 약한

백성의 것은 건드리지 아니하고 나라 재물이나 관원이나 양반의 것을 약탈하여서

가난하고 불쌍한 자를 구제함으로 쾌사를 삼았다. 이 모양으로 나라를 상대로 하기

때문에 자연히 법이 엄하고 단결이 굳어서 적은 무리의 힘으로 능히 5백 년간 나라의

힘과 겨루어 온 것이었다.

  이 도적의 떼는 근본이 하나요, 또 노사장이라는 한 지도자의 밑에 있으나 그

중에서 강원도에 근거를 둔 일파를 '목단설'이라고 부르고, 삼남에 있는 것을

'추설'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러나 이 두 설에 속한 자는 서로 만나면 곧 동지로

서로 믿고 친밀하게 되었다. 이 두 설에 들지 아니하고 임시임시로 도당을 모아서

도적질하는 자를 '북대'라고 하는데 이 북대는 목단설과 추설의 공동의 적으로 알아서

닥치는 대로 죽여 버리게 되었다.

  노사장 밑에는 유사가 있고 각 지방의 두목도 유사라고 하여 국가의 행정조직과

방사하게 전국의 도적을 통괄하였다. 일년에 일차 '대장'을 부르니 이것은 한 설만의

대회였다. 대회라고 전원이 출석하기는 불가능하므로 각 도와 각 군에서 몇 명씩

대표자를 파견하기로 되었는데, 그 대표자는 각기 유사가 지명하게 되며 한 번 지명을

받으면 절대 복종이었다.

  '' 부르는 처소는 흔히 큰 절이나 장거리였다. 대소공사를 혹은 의논하고 혹은

지시하여 장이 끝난 뒤에는 으례 어느 고을이나 장거리를 쳐서 시위를 하는 것이었다.

  그들이 대회에 참예하러 갈 때에는 혹은 양반으로 혹은 등짐장수로 혹은 장돌림,

혹은 중, 혹은 상제로 별별 가장을 하여서 관민의 눈을 피하였다. 어디를 습격하러 갈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당시에 세상을 놀라게 한 하동장 습격은 장례를 가장하여

무기를 관에 넣어 상여에 싣고 도적들은 혹은 상제, 혹은 복인, 혹은 상두꾼, 혹은

화장객이 되어서 장날 백주에 당당히 하동 읍내로 들어간 것이었다.

  김진사는 이러한 설명을 구변 좋게 한 후에 내게,

  "노형, 황해도라셨지? 그러면 연전에 청단장을 치고 곡산원을 죽인 사건을

아시겠구려?"

하기로 아노라고 대답하였더니, 김진사는 지난 일을 회상하고 유쾌한 듯이 빙그레

웃으며,

  "그때에 도당을 지휘한 것이 바로 나요. 나는 양반의 행차로 차리고 사인교를 타고

구종별배로 앞뒤 벽제까지 시키면서 호기당당하게 청단장에를 들어갔던 것이요. 장에

볼일을 다 보고 질풍신뢰와 같이 곡산읍으로 들이 몰아서 곡산 군수를 잡아 죽였으니

이것은 그놈이 학정을 하여서 인민을 어육을 삼는다 하기로 체천 행도를 한

것이었소."

하고 말을 마쳤다.

  "그러면 이번 징역이 그 사건 때문이요."

하고 내가 묻는 말에 그는,

  "아니오. 만일 그 사건이라면 5년 만으로 되겠소? 기위면키 어려울 듯하기로 대단치

아니한 사건 하나를 실토하여서 5년 징역을 졌소이다."

  나는 그들이 새 동지를 구할 때에 어떻게 신중하게 오래 두고 그 인물을 관찰하는

것이며, 이만하면 동지가 되겠다고 판단한 뒤에도 어떻게 그의 심지를 시험하는

것이며, 이 모양으로 동지를 고르기 때문에 한 번 동지가 된 뒤에는 서로 다투거나

배반하는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이며, 장물(도적한 재물)을 나눌 때에 어떻게 공평하다는

것이며, 또 동지의 의리를 배반하는 자가 만일에 있으면 어떻게 형벌이 엄중하다는

것도 김진사에게 들었다.


 (다음페이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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