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국사-근현대

자서전) 백범일지 - 김구선생 일대기 30

올드코난 2010. 7. 10.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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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일지

김구선생 일대기

 


이번 통에 잡혀 온 사람은 황해도에서 안명근을 비롯하여 신천에서 이원식, 박만준,

신백서, 이학구,유원봉, 유문형, 이승조, 박제윤, 민영룡, 신효범, 안악에서 김홍량,

김용제, 양성진, 김구, 박도병, 이상진, 장명선, 한필호, 박형병, 고봉수, 한정교, 최익형,

고정화, 도인권, 이태주, 장응선, 원행섭, 김용진등이요, 장연에서 장의택, 장원용,

최상륜, 은률에서 김용원, 송화에서 오덕겸, 장홍범, 권태선, 이종록, 김익룡, 장연에서

김재형, 해주에서 이승준, 이재림, 김영택, 봉산에서 이승길, 이효건 그리고 배천에서

김병옥, 연안에서 편강렬등이었고, 평안남도에서는 안태국, 옥관빈, 평안북도에서는

이승훈, 유동열, 김용규의 형제가 붙들리고, 경성에서는 양기탁, 김도희, 강원도에서

주진수, 함경도에서 이동휘가 잡혀와서 다들 유치되어 있었다. 나는 이동휘와는 전면이

없었으나 유치장에서 명패를 보고 그가 잡혀온 줄을 알았다.

  나는 생각하였다. 평거에 나라를 위하여 십분 정성과 힘을 쓰지 못한 죄로 이 벌을

받는 것이라고, 이제 와서 내게 남은 일은 고후조 선생의 훈계대로 육신과 삼학사를

본받아 죽어도 굴치 않는 것뿐이라고 결심하였다.

  심문실에 끌려나가는 날이 왔다. 심문하는 왜놈이 나의 주소. 성명 등을 묻고 나서,

  "네가 어찌하여 여기 왔는지 아느냐." 하기로 나는, "잡아오니 끌려 왔을 뿐이요,

이유는 모른다." 하였더니 다시는 묻지도 아니하고 내 수족을 결박하여 천정에

매달았다. 처음에는 고통을 깨달았으나 차차 정신을 잃었다가 다시 정신이 들어보니

나는 고요한 겨울 달빛을 받고 심문실 한구석에 누워 있는데 얼굴과 몸에 냉수를

끼얹는 감각 뿐이요,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없었다.

  내가 정신을 차리는 것을 보고 왜놈은 비로소 나와 안명근과의 관계를 묻기로 나는

안명근과는 서로 아는 사이나 같이 일한 것은 없다고 하였더니, 그놈은 와락 성을

내어서 다시 나를 묶어 천정에 달고 세 놈이 둘러서서 막대기와 단장으로 수없이 내

몸을 후려갈겨서 나는 또 정신을 잃었다. 세 놈이 나를 끌어다가 유치장에 누일

때에는 벌써 훤하게 밝은 때였다. 어제 해질 때에 시작한 내 심문이 오늘 해뜰 때까지

계속된 것이었다.

  처음에 내 성명을 묻던 놈이 밤이 새도록 쉬지 않는 것을 보고 나는 그놈들이

어떻게 제 나라의 일에 충성된 것을 알았다. 저놈은 이미 먹은 나라를 삭히려기에

밤을 새거늘 나는 제 나라를 찾으려는 일로 몇 번이나 밤을 새웠던고 하고 스스로

돌아보니 부끄러움을 금할 수가 없고, 몸이 바늘방석에 누운 것과 같아서 스스로

애국자인 줄 알고 있던 나도 기실 망국민의 근성을 가진 것이 아닌가 하니 눈물이

눈에 넘쳤다.

  이렇게 악형을 받는 것은 나뿐이 아니었다. 옆 방에 있는 김홍량, 한필호, 안태국,

안명근 등도 심문을 받으러 끌려나갈 때에는 기운 있게 제 발로 걸어나가나 왜놈의

혹독한 단련을 받고 유치장으로 돌아올 때에는 언제나 반죽음이 다 되어 있었다.

그것을 볼 때마다 나는 치미는 분함을 누를 길이 없었다.

  한 번은 안명근이 소리소리 지르면서,

  "이놈들아, 죽일 때에 죽이더라도 애국 의사의 대접을 이렇게 한단 말이냐."

하고 호령하는 사이사이에,

  "나는 내 말만 하였고 김구, 김홍량들은 관계가 없다고 하였소."

하는 말을 끼어서 우리의 귀에 넣었다.

  우리들은 감방에서 서로 통화하는 방법을 발명하여서 우리의 사건을 보안법 위반과

모살급 강도의 둘로 나누어서 아무쪼록 동지의 희생을 적게 하기로 의논하였다.

양기탁의 방에서 안태국의 방과 내가 있는 방으로, 내게서 이재림이 있는 방으로 이

모양으로 좌우 줄 20여 방, 40여 명이 비밀리 말을 전하는 것이었다.

  왜놈들은 우리의 심문이 진행됨을 따라 이것을 통방이라고 칭하였다. 사건의 범위가

점점 축소됨을 보고 의심이 났던 모양이어서 우리 중에서 한순직을 살살 꾀어 우리가

밀어하는 내용을 밀고하게 하였다. 어느 날 양기탁이 밥 받는 구멍에 손바닥을 대고,

우리의 비밀한 통화를 한순직이가 밀고 하니 금후로는 통방을 폐하자는 뜻을 손가락

필답으로 전하였다. 과연 센 바람을 겪고야 단단한 풀을 알 것이었다. 안명근이 한

순직을 내게 소개할 때에 그는 용감한 청년이라고 칭하더니 이 꼴이었다. 어찌 한

순직뿐이랴, 최명식도 악형을 못 이겨서 없는 소리를 자백하였으나 나중에 후회하여

긍허라고 호를 지어서 평생에 자책하였다. 그때의 형편으로 보면 내 혀끝이 한 번

움직이는 데 몇 사람의 생명이 달렸으므로 나는 단단히 결심을 하였다.

  하루는 또 불려 나가서 내 평생의 지기가 누구냐 하기로 나는 서슴지 않고,

  "오인형이 내 평생의 지기다."

하고 대답하였더니 종시 다른 사람의 이름을 부는 일이 없던 내 입에서 평생의 지기의

이름을 말하는 것을 극히 반가워하는 낯빛으로 그 사람은 어디서 무엇을 하는가 하고

정신을 바짝 차리고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천연하게,

  "오인형은 장연에 살더니 연전에 죽었다."

하였더니 그놈들이 대로하여 또 내가 정신을 잃도록 악형을 하였다.

  한 번은 학생 중에는 누가 가장 너를 사모하더냐 하는 질문에 나는 창졸간에 내

집에 와서 공부하고 있던 최중호의 이름을 말하고서는 나는 내 혀를 물어 끊고

싶었다. 젊은 것이 또 잡혀와서 경을 치겠다고 아픈 가슴으로 창 밖을 바라보니 언제

잡혀왔는지 반쯤 죽은 최중호가 왜놈에게 끌려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진고개 끝 남산 기슭에 있는 소위 경무총감부에서는 밤이나 낮이나 도수장에서 소나

돼지를 때려 잡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었다. 이것은 우리 애국자들이 왜놈에게 악형을

당하는 소리였다.

  하루는 한필호 의사가 심문을 당하고 돌아오는 길에 겨우 머리를 들어 밥구멍으로

나를 들여다보면서,

  "모두 부인했더니 지독한 악형을 받아서 나는 죽습니다."

하고 작별하는 모양을 보이기로, 나는

  "그렇게 낙심 말고 물이나 좀 자시오."

하고 위로하였더니, 한 의사는,

  "인제는 물도 먹을 필요가 없습니다."

하고는 다시 소식을 몰랐는데 공판 때에야 비로소 한필호 선생이 순국한 것과 신석충

진사가 사리원으로 끌려오는 도중에 재령강에서 몸을 던져 자살한 것을 알았다.

  하루는 나는 최고심문실이라는 데로 끌려갔다. 뉘라서 뜻하였으랴, 17년 전 내가

인천 경무청에서 심문을 당할 때에 방청석에 앉았다가 내가 호령하는 바람에 '칙쇼

칙쇼'하고 뒷방으로 피신하던 도변 순사놈이 나를 심문하려고 앉았을 줄이야. 그놈은

전과같이 검은 수염을 길러 늘이고 낯바닥에는 약간 노쇠한 빛이 보였으나 이제는

경무총감부의 기밀과장으로 경시의 제복을 입고 위의가 엄숙하였다.

  도변이 놈은 나를 보고 첫말이, 제 가슴에는 엑스광선이 있어서 내 평생의 역사와

가슴 속에 품은 비밀은 소상히 다 알고 있으니 일호도 숨김이 없이 다 자백을 하면

괜찮거니와 만일에 은휘하는 곳이 있으면 이 자리에서 나를 때려 죽인다는 것이다.


 (다음페이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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