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세계사

비운의 여왕, 제인 그레이

올드코난 2010. 6. 7.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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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여왕, 제인 그레이(Lady Jane Grey: 1537.10~1554.2)

 

 

                                                                   들라로슈 작, [제인 그레이의 처형]

 

 

고래로 역사에는 수많은 비극이 존재했다. 무수한 사람들이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상처투성이로 최후를 맞았지만 이들 대부분은 일생에서 적어도 몇 번 씩은 자신들의 운명을 결정할 선택권을 갖고 그것을 행사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16세기 영국 왕실의 권력다툼의 와중에 개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꽃다운 나이로 스러져간 어린 소녀 제인 그레이에게는 그러한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에게 조금씩 다가오는 비극의 그림자를 일찍부터 감지할 정도로 영리하였으나 그에 대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옳고 그름에 대한 분별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겐 그릇된 길을 피해갈 모든 수단들이 박탈되어 있었다. 어린 나이에 최후를 맞은 왕실 유력자들의 이야기는 어느나라에나 많이 있었지만 적어도 이들 대부분은 어렸기에 영문을 모르고 최후를 맞아 번민의 시간도 그만큼 짧았다. 그러나 제인은 그렇지도 못했다. 그녀는 짧은 생애의 대부분을 야심에 눈먼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채 불안과 공포의 나날을 보내야만 했다. 비슷한 나이에 비극적 최후를 맞았던 유관순이나 잔다르크 등과는 달리 그에게는 철저한 수동성만이 강요되었다. 그의 한많은 삶은 엄격한 가부장제 하에서 인간성을 박탈당한 채 한낱 가문의 도구로 전락당했던 중세적 여성의 비극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불행했던 어린시절


"
어쩌면 당신이 놀랄지도 모를 진실을 한가지 말씀드리죠. 신께서 저에게 내려주신 가장 큰 은총 중의 하나는 그가 나에게 너무나 혹독하고 엄격한 부모를 내려주셨고 동시에 너무도 자상한 선생님을 보내주셨다는 것입니다. 부모님과 함께 있을 때 저는 말을 하든,
묵하든, 앉든, 일어서든, 가만 있든, 움직이든, 먹든, 마시든, 기쁘든, 슬프든, 바느질을 하든, 놀든, 춤추든, 무얼 하든간에 엄청난 중량감과 정확함을 가지고 마치 신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것처럼 완벽하게 수행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혹독하고 무자비한 꾸지람을 듣게 되고 꼬집히거나 찔리거나 매를 맞거나 아니면 그들의 명예를 위해 차마 말할 수 없는 방법들을 통해 벌을 받게 되므로 저는 스스로 지옥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그러나 시간이 되어 제가 Aylmer선생님 댁에 가 그분의 자상하고 친절하며 배움에의 열망을 자극시키는 수업을 들을 때면 저는 너무나 기뻐 달리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할 때가 되면 저는 바닥에 주저않아 흐느끼곤 합니다. 공부이외에 저에게 주어진 것은 괴로움과 공포와 냉대 뿐이기 때문입니다."

 -제인이 엘리자베스의 가정교사이자 당대의 석학이었던 Roger Ascham과 나눴던 대화 중에서(당시 13)


 
당시의 유력한 귀족(어머니는 헨리8세의 친동생)이었던 제인의 부모는 처음부터 제인을 권력과 부를 얻는 도구로밖에 여기지 않았다. 도박과 사냥을 즐겨 재산을 탕진하곤 했던 그들은 메리-엘리자베스-제인의 모친에 이어 왕위계승서열 4위였던 장녀 제인을 국왕 에드워드의 왕비로 만들어 부귀영화를 누리는 데만 관심이 있어 제인을 명문가의 규수로 만들기 위한 혹독하지만 애정없는 교육을 행하는 데 열을 올렸으며, 제인의 부친은 여러차례 제인을 왕비로 만든다는 조건으로 다른곳에 팔아치웠다가 약속이 깨지자 되찾아오곤 하는 과정을 되풀이하기도 했다. 성장하면서 점점 제인이 왕비가 될 가망이 희박해짐에 따라 제인에 대한 부모의 냉대도 점점 높아져 갔으며, 나중에 제인이 죽게 되었을 때조차 제인의 부모는 그녀를 살리기 위한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본래 조용하고 사색적인 성품이었던 제인에게 공부는 부모의 학대를 벗어날 유일한 탈출구였다.

 

  9살이 되던 무렵 제인은 신분이 높은 친척에게 자녀의 교육을 위탁하던 당시의 관습에 따라 헨리8세의 마지막 왕비이자 당시의 여성들 중 가장 지적이고 세련된 인물 중 하나였던 캐서린 파(Katherine Parr)에게 보내어져 몇년간 머물게 되었다. Parr의 저택은 당시 영국의 지적 중심지 중 하나였는데 제인은 여기서 그녀의 일생에서 얼마 되지 않았던 행복의 순간을 누리게 된다. 그녀는 물만난 고기처럼 철학과 문학, 음악에 흠뻑 빠져들었으며 특히 독실한 신교도였던 이모의 영향을 많이 받아 종교적 신념이 점점 깊어져 갔다. 그녀를 만난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녀의 총명함과 박식함에 혀를 내두르곤 했으며 도저히 어린 소녀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학문에 대한 조예가 깊은 것에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그녀는 5개국어를 자유롭게 구사했으며 하프와 류트 등 몇 가지 악기를 다루는 데도 뛰어났다.
 
 
그러나 이 행복의 시기는 또한 그녀가 궁정의 권력암투에 본격적으로 휘말리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했다. 헨리8세의 사후 캐서린은 그녀의 정부였던 토머스 세이무어와 재혼해서 함께 살고 있었는데, 이 세이무어는 어린 국왕 에드워드(참고로 소설 '왕자와 거지'에 등장하는 에드워드 왕자가 바로 이사람이다.)의 섭정이었던 서머셋 공()의 아우로 상당한 야심가였다. 그는 왕의 사촌이자 독실한 신교도인 제인의 가치를 금방 알아차렸다. 당시의 유럽은 온통 신구교의 갈등으로 인해 바람 잘 날 없는 상황이었는데 영국에서는 점차 신교가 주류로 자리잡고 있었다. 국왕과 제인은 동갑내기로 둘다 무척 조숙하고 명민하며 학문을 좋아하는 성품이 닮았는데 특히 무엇보다 열렬한 신교도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토머스는 제인의 후견인이 된 후 그녀를 국왕에게 시집보내 권력의 핵심부에 진입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제인의 부친을 설득하여 그녀의 혼인권을 사들였으며 그녀를 왕비로 만들기 위한 공작을 펼쳤다.

 

  세이무어의 계획은 오래 가지 못했다. 그의 지나친 야심과 형에 대한 시기심은 호시탐탐 권력을 노리는 다른 정략가들에게 좋은 사냥감이 되었다. 후에 노섬버랜드공이 되는 워윅백() 존 더들리(John Dudley)는 냉혹하고 모략에 능한 야심가였는데 그는 세이무어 형제의 불화를 이용하여 1549년 결국 그들을 권좌에서 축출하고 정권을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세이무어는 처형되었고 캐서린도 얼마전에 죽었기 때문에 결국 제인은 부모에게 돌아갔다. 국왕과의 혼인문제도 지지부진 가라앉고 말았다.

한편 국왕의 후견인으로 등극한 더들리는 왕의 환심을 등에 업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러 댔다. 그러나 1552년이 되자 문제가 생겼다. 평소 병약하던 왕의 건강에 결정적인 적신호가 온 것이었다. 에드워드의 치세 동안 호강을 누리던 신교파 귀족들 사이에는 비상이 걸렸다. 후사가 없는 왕이 죽을 경우 다음 왕위는 열렬한 구교도인 메리(후에 '피의 메리'라 불리우게 될 바로 그사람이다)에 의해 승계되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짧은 시간 동안 수많은 정적을 만들었던 더들리로서도 왕의 사후 자신의 권력을 보전할 방도를 강구하지 않으면 살아남기가 어려웠다. 결국 그가 취한 특단의 조치는 왕위승계서열을 뒤바꿔 스스로 꼭두각시 왕을 세우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정략의 희생양이 된 것이 바로 제인이었다.

 

  더들리는 서둘러 행동에 착수했다. 우선 그는 제인의 부모를 만나 그녀를 자신의 아들 길드포드와 혼인시키자는 제안을 했다. 국왕과의 혼사가 실패로 돌아가 좌절하고 있던 제인의 부모는 반색을 하며 동의했다. 그러나 부모로부터 이 소식을 전해들은 제인은 안색이 창백해지며 완강히 결혼을 거부했다. 그녀는 이 결혼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당시의 결혼, 특히 귀족들의 결혼은 본인의 뜻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었다. 야심과 재물에 눈먼 부모의 협박과 매질 앞에 제인은 어쩔수없이 승낙해야만 했다. 결국 1553 5, 길드포드와 제인은 혼례를 올렸다. 이들은 최후까지 함께 지낸 날도, 서로에 대한 애정도 별로 없었던 명목상의 부부에 가까왔지만 어쨌든 자신의 장래를 보장해줄 수만 있다면 더들리에게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이제는 제인을 국왕으로 만드는 일이 남았다. 더들리는 죽어가는 국왕의 신앙심에 호소하였다. 신교를 영국에 뿌리내리는 것은 국왕의 신성한 의무로 무슨 일이 있어도 저주받은 구교도가 영국을 다스리게 놓아둘 수는 없는 일이라고. 그렇찮아도 이점을 찜찜하게 여기고 있던 독실한 신교도 소년국왕은 순순히 더들리의 설득에 넘어갔다. 결국 그는 부왕이 정한 승계서열을 어기고 후계자로 제인을 지목하는 조서에 서명하고 말았다. 이 사실은 국왕이 죽기 직전까지도 공표되지 않았으나 6 3, 제인에게 그녀의 시어머니가 찾아와 자신이 차기국왕으로 지목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주자 제인은 그만 기절해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15세의 어린 소녀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일들이 너무나 빠르게 전개되고 있었다. 사흘 후 에드워드왕은 죽었다.


 

9일천하

 

  에드워드의 죽음은 본래의 왕위 계승권자인 메리의 준동을 막기 위해 며칠간 비밀에 부쳐졌다. 더들리는 제인을 즉위시키기 전에 메리를 먼저 제거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비밀이 새어나가 6 9, 노포크에서 메리는 스스로 왕을 칭하고 군사를 일으켰다. 같은 날 제인은 노섬버랜드공의 저택으로 불려나가 한 옥좌로 안내되었다. 아직 국왕의 승하사실을 모르던 제인은 모인 사람들이 그녀에게 연신 절을 하자 당황하고 혼란스러워했으나 점차 사태를 깨닫자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마침내 더들리가 제인의 즉위사실을 공표하자 제인은 바닥에 쓰러져 흐느끼며 "저는 왕 자격이 없습니다. 메리가 왕입니다."하며 울먹였다. 한참 후 평정을 되찾은 그녀는 모인 사람들 앞에서 연설을 하는 대신 신의 가호를 비는 기도를 한 후 마지못해 옥좌에 앉았다.

 

  다음날 제인은 런던탑으로의 입성식을 거행했다. 거리에 모인 군중의 반응은 물을 끼얹은 듯 차가왔다. 신교파 귀족들은 모르겠지만 영국 민중의 일반적인 감정은 폭군이었던 헨리8세로부터 갖은 고난을 겪었던 메리에게 동정적이었으며 당연히 메리가 왕위를 계승할 것이라 여기고 있었다. 억지로 급조된 왕이 그들의 환영을 받을리가 만무했다. 이러한 광경은 제인의 불안감을 가중시켰다. 궁전에 들어선 후 왕실의 재산관리인이 와서 왕관의 크기를 맞추기 위해 그녀의 머리에 씌우려 하자 그녀는 깜짝 놀라 왕관을 치우라고 하였다. 왕관은 그녀에게 공포의 상징이었으며 한번 그것을 쓰는 순간 돌이킬 수 없다는 점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옆에서 더들리가 2주 후 제인과 길드포드의 공동 즉위식을 거행할 것이라며 왕관을 써보라고 종용하자 마침내 제인의 분노는 폭발하고 말았다. 그녀는 자신은 더들리를 위해 왕이 된 것이 아니며 자신이 왕인 한 길드포드는 결코 왕위에 오르지 못할 것이라고 소리쳤다. 그러나 더들리는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그녀는 완전히 꼭두각시 왕이었다.

 

  한편 런던 밖에서의 상황은 점점 심각하게 변해가고 있었다. 민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메리는 급속도로 세력을 신장시키며 런던으로 진군중이었다. 더들리는 메리를 체포하기 위해 전함 6척을 파견했으나 이 전함들은 모두 메리 쪽에 붙어 버렸다. 결국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서는 -배신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군사를 이끌고 출진하는 수밖에 없다고 판단한 더들리는 3000명의 군사를 모집하여 런던을 떠났다.

더들리가 런던을 떠나자마자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다. 잇따른 메리의 승리 소식에 초조해하던 왕실 고문들은 결국 메리를 영국왕으로 선포하기로 결의한 것이다. 6 19, 제인이 왕위에 오른지 9일만의 일이었다.

 

  제인의 아버지 서포크공은 일단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메리의 추대선언서에 서명을 한 후 그날밤 딸에게 가서 폐위사실을 알려주고 함께 왕의 휘장을 걷어냈다. 제인은 조용한 음성으로 아버지에게 말했다. "부모님의 뜻에 순종한 것을 넘어 저는 막중한 죄를 지었습니다. 기쁜마음으로 왕관을 벗겠습니다. 이제 그만 집에 가도 되나요?" 서포크공은 대답없이 묵묵히 돌아서서 성을 나갔다. 제인은 혼자 쓸쓸히 성에 버려졌다.

 

쓸쓸한 최후

 

  메리가 런던에 도착했을 때까지 제인은 런던탑에 홀로 남겨져 있었다. 그녀는 이내 체포되어 남편과 따로 투옥되었다. 한가지 다행인 것은 훗날 공포정치로 '피의 메리'라는 불명예스런 별명을 듣게 될 메리가 본래는 인정많고 여린 성품의 소유자였다는 점으로, 그녀는 즉위하자마자 곧바로 더들리와 제인 부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을 사면시켜 주었다. 왕위찬탈자 제인에게는 당연히 사형이 구형되었으나 제인의 성품과 결백함을 잘 알고 있던 메리는 형 승인을 거부하였다. 제인의 결백과는 상관없이 국왕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선 처형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권고하던 신하들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메리는 어린 사촌 제인을 점차로 사면할 생각이었다. 메리의 측근을 통해 이러한 사실을 통보받은 제인은 안정을 되찾았으며 오히려 이제 지겨운 부모나 그 누구의 간섭에서도 벗어나 조용히 독서와 사색을 즐길 수 있게 된 사실에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삶에 처음으로 평화의 싹이 트는 듯 싶었다.

 

  그러나 운명은 이 기구한 소녀를 끝내 내버려두지 않았다. 즉위한지 얼마 안되어 메리는 정치적 난관들에 부딪히게 되었다. 신교가 주류인 국가에 구교 왕이 등극했으니 한바탕 회오리바람이 몰아칠 것임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메리는 영국을 다시 구교국가로 회귀시키고자 하는 열망을 품고 있었다. 이를 위해 그는 대륙의 카톨릭 강대국인 스페인과 손을 잡을 필요가 있었으며 따라서 자신과 스페인의 필립 왕세자와의 혼인을 추진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폐쇄적이고 고립적인 영국인들은 자신들의 여왕이 외국인을 부군으로 맞아들이는 것에 적대적인 반응을 보였고 나아가 신교도들은 이것이 스페인이 영국을 집어삼키려는 음모라고 선동하였다. 급기야 메리에 게 반대하는 대규모의 반란이 일어났다. 문제는 한평생 제인에게 도움 된 적 없는 어리석은 아버지가 이 반란에 가담하였다는 것이었다. 결국 반란은 진압되었고 제인의 아버지는 또다시 투옥되었다. 인정을 베풀어 사면했는데도 자신에게 칼끝을 겨눈 서포크공에 대한 메리의 배신감은 엄청난 것이었으며 그 불똥은 제인에게까지 튀었다. 제인을 죽이지 않으면 이러한 반란은 계속 일어날 것이라는 신하들의 설득은 이번에는 먹혀들었다. 메리는 제인의 처형장에 서명했다.

 

  형 확정 소식을 들은 제인은 담담했다. "제 불운한 날들을 끝마치게 된 것을 다행으로 여깁니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부친과 두 동생, 그리고 친구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조용히 최후를 준비했다.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아버지 덕분에 한많은 생애를 더욱 빨리 마감할 수 있게 되어 감사하다고 썼다. 여전히 제인에 대한 연민의 정이 남아 있던 메리는 마지막으로 제인에게 목숨을 구할 조건을 제시했다. 가톨릭으로 개종하면 살려준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경건하고 자존심 강한 소녀에게 목숨을 살리기 위해 변절을 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노릇이었다. 사실 종교가 이데올로기보다도 더 강한 구속력을 지닌 시대에 개종을 빌미로 목숨을 구걸한다는 것은 어지간한 철면피가 아닌 이상은 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메리는 또 마지막으로 제인에게 남편의 얼굴을 한번 더 볼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하였으나 제인은 "우정이 보다 즐거울 수 있는 곳에서 다시 만나길 기다린다"라며 이를 거부했다.

 

  결국 1554 2 12, 제인은 형장으로 끌려갔다. 자신의 처형 1시간 전 그는 자신의 방에서 남편 길드포드의 처형을 지켜보았는데같은 권력다툼의 희생양이라는 동병상련의 정을 느꼈는지 "아아 길드포드, 길드포드, 죽음이란 참으로 씁쓸하구나!"하고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마침내 제인의 때가 되어 형장으로 끌려갔으나 그녀는 끝까지 의연함을 잃지 않았다. 사형대에 이르러 그는 모인 사람들에게 작별을 고하는 연설을 하고 스스로 눈가리개를 한 후 참수대 위에 드러누우려 했으나 눈이 가려져서 참수대를 찾지 못했다. 당황한 그녀는 "어쩌지? 어디있지?"하고 외쳤는데 그 모습을 안쓰럽게 지켜보던 관중 하나가 그녀에게 다가와 그의 손을 붙잡고 형틀에 갖다 대었다.(이것이 바로 Paul Delaroche의 유명한 그림에 묘사된 장면이다.) 얼마 후 제인은 도부수의 도끼 아래 짧고 한많은 삶을 마감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겨우 16, 꽃다운 이팔청춘이었다.


 

부록: 레이디 제인(제인 그레이) 관련 동시대의 1차자료 모음(: 일부는 고어로 되어 있어 해석하기가 상당히 어려움)

 

<1>Roger Ascham의 기록

Yet I cannot pass over two English women, nor would I wish, my dear Sturmius, to pass over anything if you are thinking about friends to be borne in mind in England, than which nothing is more desirable to me. One is Jane Grey, daughter of the noble marquis of Dorset. Since she had Mary, queen of France as grandmother she was related very closely to our King Edward. She is fifteen years of age. At court I was very friendly with her, and she wrote learned letters to me: Last summer when I was visiting my friends in Yorkshire and was summoned from them by letters from John Cheke that I should come to court, I broke my journey on the way at Leicester where Jane Grey was residing with her father. I was straightway shown into her chamber: I found the noble young lady reading (By Jupiter!) in Greek, Plato's Phaedo, and with such understanding as to win my highest admiration. She so speaks and writes Greek that one would hardly credit it. She has a tutor John Aylmer, one well versed in both tongues, and most dear to me for his humanity, wisdom, habits, pure religion, and many other bonds of the truest friendship. As I left she promised to write to me in Greek provided I would send her my letters written from the Emperor's court. I am awaiting daily a Greek letter from her: when it comes I will send it on to you immediately."

 

- 엘리자베스의 가정교사였던 Roger Ascham이 스터미우스에게 보낸 편지 중 제인에 대한 언급(1550)
Roger Ascham
1550년경 제인을 만났는데 그녀의 학문적 열정과 식견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가 제인과 처음 만나는 장면은 그의 교육론인 저서 "The Schoolmaster"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Before I went into Germanie, I came to Brodegate in Lecetershire, to take my leaue of that noble Ladie Iane Grey, to whom I was exceding moch beholdinge. Hir parentes, the Duke and Duches, with all the houshould, Gentlemen and Gentlewomen, were huntinge in the Parke: I founde her, in   her Chamber, readinge Phadon Platonis in Greeke, and that with as moch delite, as som ientleman wold read a merie tale in Bocase. After salutation, and dewtie done, with som other taulke, I asked hir, whie she wold leese soch pastime in the Parke? smiling she answered me: I wisse, all their sporte in the Parke is but a shadoe to that pleasure, that I find in Plato: Alas good folke, they neuer felt, what trewe pleasure ment. And howe came you Madame, quoth I, to this deepe knowledge of pleasure, and what did chieflie allure you vnto it: seinge, not many women, but verie fewe men haue atteined thereunto. I will tell you, quoth she, and tell you a troth, which perchance ye will meruell at. One of the greatest benefites, that euer God gaue me, is, that he sent me so sharpe and seuere Parentes, and so ientle a scholemaster. For when I am in presence either of father or mother, whether I speake, kepe silence, sit, stand, or go, eate, drinke, be merie, or sad, be sowyng, plaiyng, dauncing, or doing anie thing els, I must do it, as it were, in soch weight, mesure, and number, euen so perfitelie, as God made the world, or else I am so sharplie taunted, so cruellie threatened, yea presentlie some tymes, with pinches, nippes, and bobbes, and other waies, which I will not name, for the honor I beare them, so without measure misordered, that I thinke my selfe in hell, till tyme cum, that I must go to M. Elmer, who teacheth me so ientlie, so pleasantlie, with soch faire allurementes to learning, that I thinke all the tyme nothing, whiles I am with him. And when I am called from him, I fall on weeping, because, what soeuer I do els, but learning, is ful of grief, trouble, feare, and whole misliking vnto me: And thus my booke, hath bene so moch my pleasure, & bringeth dayly to me more pleasure & more, that in respect of it, all other pleasures, in very deede, be but trifles and troubles vnto me. I remember this talke gladly, both bicause it is so worthy of memorie, & bicause also, it was the last talke that euer I had, and the last tyme, that euer I saw that noble and worthie Ladie. "

 

-Roger Ascham "The Schoolmaster"에 묘사된 제인과의 만남 부분. 고어라서 읽기가 좀 어려울 것이다. 본문에서 필자가 인용한 제인과 애셤의 대화는 여기서 발췌한 것이다. 이 부분의 말미에 애셤은 "이토록 고귀하고 가치있는 대화를 여인과 나눈 적은 한번도 없었다."고 제인과의 만남을 회상하고 있다.(고어를 읽을 때 한가지 팁: 철자보다는 발음을 위주로 읽어나가면 그럭저럭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2>제인의 용모에 대한 묘사들

 

This Jana Groia...is very short and thin, but prettily shaped and  graceful. She has small features and a well made nose, the mouth  flexible and the lips red. The eyebrows are arched and darker than  her hair, which is nearly red. Her eyes are sparkling...her colour  good but freckled...In all, a charming...person...very small and  short.

 

 -이탈리아의 상인인 Battista Spinola가 입성식 당시의 제인을 보고 묘사한 글. 그에 의하면 제인은 '키가 작고 여위었으나 예쁘고 우아한 자태이다. 피부색은 좋고 수두를 앓은 흔적이 없었지만 주근깨가 많으며 머리칼은 거의 붉은 빛이다. 눈동자는 초롱초롱하고 이는 희며 사랑스런 미소의 소유자이다. 아주 자그마하게 생겼지만 종합적으로 봤을 때 매력적인 용모이다.'

 

 

'...well made', and was impressed by her 'esprit cultive, dont la modestie rehaussait
extremement le merite.'

 

-제인과 면담했던 프랑스 사절 De Noailles의 기록: '잘생겼으며...' 뒷부분은 불어라 무슨뜻인지 잘 모르겠지만 번역기로 돌려보니까 대략 '특히 그의 종교적 세련됨, 대단히 겸손하고 예의바른 태도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는 내용인것 같다.

 

 

 

Bishop Godwin was not at first much taken with her appearance. He thought her features 'not
admirable', i. e. not striking, but considered her 'handsome, incredibly learned, very
quick-witted and wise both beyond her sex and above her age.'

 

-Godwin주교의 기록(원문은 못찾았다): 첫눈에 그녀는 특별히 눈에 띄는 용모는 아니었으나 멋이 있고, 놀라울 정도로 학식이 풍부하며, 상당히 재치가 있고 현명하여 그 나이와 성을 초월하고 있었다.


 

The contemporary reports of her appearance and conversation give the impression
that a lively, natural manner, combined with youthful freshness to make her appear better looking
than she really was.

-제인 관련 웹사이트 http://www.geocities.com/jane_the_quene/portraits.html에 실린 분석. 동시대의 기록들을 종합해 볼 때 제인은 용모보다는 생기있고 자연스러운 몸가짐과 때묻지 않은 젊음이 그 매력의 주요 원천이었던 것 같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3>제인의 편지들

 

Although it hath pleased God to hasten my death by you, by whom my life should rather have been lengthened, yet can I patiently take it, that I yield God more hearty thanks for shortening my woeful days.

 

-사형선고 후 제인에게 용서를 비는 아버지 서포크공의 편지에 대한 답장 중, 1554, "오히려 제 생명을 연장시켰어야 했을 당신에 의해 제 죽음이 앞당겨진 것이 신의 뜻이긴 하지만, 저는 이를 묵묵히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제 한많은 삶을 단축시킬 수 있게 된 것에 대해 신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Live still to die, that by death you may purchase eternal life.... As the preacher sayeth, there is a time to be born and a time to die; and the day of death is better than the day of our birth.

 

-런던탑의 간수 John Brydges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메시지, 1554

 

 


 I have sent you, good sister Catherine, a book, which although it be not outwardly trimmed with gold, yet inwardly it is more worthy than precious stones. It is the book, dear sister, of the laws of the lord: It is His Testament and Last Will, which He bequeathed unto us wretches, which shall lead you to the path of eternal joy, and if you, with a good mind read it, and with an earnest desire, follow it, it shall bring you to an immortal and everlasting life.  It will teach you to live and learn you to die.... It shall win you more than you should have gained by the possession of your woeful father's lands, for as if God prospered him, you shall inherit his lands.... [it holds] such riches as neither the covetous shall withdraw from you, neither the thief shall steal, neither let the moth corrupt.... And as touching my death, rejoice as I do and consider that I shall be delivered of this corruption and put on incorruption, for as I am assured that I shall for losing of a mortal life, find an immortal felicity. Pray God grant you and send you his grace to live in the love...
    Farewell good sister, put only your trust in God, who only must uphold you,
    Your loving sister, Jane Duddley'

 

-형장에서 제인이 동생 Catherine Grey에게 건넨 성서의 속표지에 적은 마지막 편지, 1554, 경건한 생활을 당부하고 있으며 죽음으로 자신이 마침내 해방되리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Although my fault be such that but for the goodness and clemency of the Queen, I can have no hope of finding pardon.... having given ear to those who at the time appeared not only to myself, but also to the great part of this realm to be wise and now have manifested themselves to the contrary, not only to my and their great detriment, but with common disgrace and blame of all, they having with shameful boldness made to blamable and dishonourable an attempt to give to others that which was not theirs...[and my own] lack of prudence...for which I deserve heavy punishment...it being known that the error imputed to me has not been altogether caused by myself. [The Privy Council]....who with unwontd caresses and pleasantness, did me such reverence as was not at all suitable to my state. He [Dudley] then said that his Majesty had well weighed an Act of Parliament...that whoever should acknowledge the most serene Mary...or the lady Elizabeth and receive them as the true heirs of the crown of England should be had all for traitors...wherefore, in no manner did he wish that they should be heirs of him and of that crown, he being able in every way to disinherit them. And therefore, before his death, he gave order to the Council, that for the honour they owed to him...they should obey his last will...As to the rest, for my part, I know not what the Council had determined to do, but I know for certain that twice during this time, poison was given to me, first in the house of the Duchess of Northumberland and afterwards here in the Tower.... All these I have wished for the witness of my innocence and the disburdening of my conscience.

 

-국왕 메리에게 왕위찬탈이 자신의 뜻과 무관했음을 밝히는 편지(편지 말미에 언급된 독살설은 제인의 망상으로, 그가 거의 신경쇠약 상태에 빠져 있었음을 보여준다.), 1553

 


'If justice is done with my body, my soul will find mercy with God. Death will give pain to my body for its sins, but the soul will be justified before God. If my faults deserve punishment, my youth at least, and my imprudence were worthy of excuse; God and posterity will show me favour.'

Jane's last farewell to the world of the living, contained in three sentences, the first in Latin, the second in Greek, the third in English - composed on the night of February 11th 1554

 

-제인의 고별사, 처형 전날 밤에 작성, "제 육신이 죄값을 치른다면 제 영혼은 신께 자비를 구할 것입니다. 죽음은 그 죄로 인해 제 육신에 고통을 주겠지만, 제 영혼은 신 앞에서 용서를 받을 것입니다. 설령 제 잘못들이 벌받아 마땅할지라도, 최소한 제 미숙함, 그리고 제 경솔함이 변명거리가 될 수 있다면, 신과 후세의 평가는 저에게 호의를 보여줄 것입니다."

 

 

'I think that at the supper I neither receive flesh nor blood, but bread and wine; which bread when it is broken, and the wine when it is drunken, put me in remembrance how that for my sins the body of Christ was broken, and his blood shed on the cross. ...I ground my faith upon God's word, and not upon the church...  The faith of the church must be tried by God's word, and not God's word by the church; neither yet my faith.'

 

-메리의 명으로 제인에게 마지막으로 개종을 권고했던 John Feckenham에게,1554,페큰햄은 제인과의 대화에서 감동을 받아 형장에까지 그녀와 대동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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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제인의 처형장면(본래 당시의 목격담을 수록하려 했으나 http://www.englishhistory.net/tudor/relative/janegrey.html에 실린 제인의 전기 부분이 훨씬 읽기도 쉽고 내용도 풍부해서 대신 실었음 - 따라서 1차자료는 아님)

 

It was now Jane's turn to face death. She wore the same black outfit she had worn at her trial.  She carried her prayer book in her hands; she was escorted by Sir John Brydges, the lieutenant of the Tower.  Her nurse, Mrs Ellen, and her attendant, Mrs Tylney, also accompanied her.  They both cried but Jane was calm and composed.  She had, after all, watched her scaffold being erected near the White Tower; her rooms provided an excellent view of its construction.  Since she was a princess of royal blood, her execution was private.  Only a small crowd had been invited. 

    At the steps of the scaffold, he greeted Feckenham: 'God grant you all your desires and accept my own hearty thanks for all your attention to me. Although indeed, those attentions have tried me more than death can now terrify me.' She then ascended the steps and addressed the crowd.  She admitted she had committed treason when she accepted the crown but 'I do wash my hands in innocency, before God and the face of you, good Christian people this day.'  She wrung her hands and asked that they witness her death, and affirm that she died a good Christian.  She ended with yet another indication of her strong Protestant faith; she said, 'And now, good people, while I am alive, I pray you to assist me with your prayers.'  Protestants, unlike Catholics, did not believe in prayers for the dead.  She then knelt and asked Feckenham, 'Shall I say this psalm?'  She read the fifty-first psalm in English and he followed her in Latin. 

    After the prayer, she told Feckenham, 'God I beseech Him abundantly reward you for your kindness to me.'  She then rose to her feet and completed her final duties.  She handed her gloves and handkerchief to her attendant, Mrs Tylney and her prayer-book to the lieutenant's brother, Thomas Brydges.  She then began to untie her gown; as was the tradition, the executioner stepped forward.  It was the custom that the victim's outer garments became the executioner's property.  Perhaps Jane did not know this; or perhaps she was simply terrified as that masked figure came toward her.  She stepped back and 'desired him to leave her alone.'  Her attendants completed the unlacing.  They then gave her a handkerchief to tie over her eyes.  Next, the executioner knelt before her and begged her forgiveness.  This, too, was a custom and one Jane had expected.  She gave her forgiveness 'most willingly.' 

    Now there was nothing to do but end it all.  The executioner asked her to stand upon the straw.  Perhaps she saw the actual block for the first time.  Her composure faltered for just a brief moment.  She whispered, 'I pray you despatch me quickly,' and began to kneel.  She hesitated and asked, 'Will you take it off before I lay me down?', referring to the blindfold.  The executioner replied, 'No, madame' and so she tied the handkerchief around her eyes.  She then knelt but, blindfolded, could not find the block.  Her arms flailed about for several moments and she cried out, 'What shall I do?  Where is it?'  Those standing on the scaffold were hesitant - should they help her?  A member of the crowd climbed the scaffold and helped her.  He guided her hands to the block.  She lowered her head and stretched forth her body; her last words were, 'Lord into thy hands I commend my spirit.'  The executioner swung his axe and severed her head.  Blood splattered across the scaffold and many of the witnesses.  The executioner then lifted her head and said, 'So perish all the Queen's enemies. Behold, the head of a traitor.'  It was the end of Lady Jane Grey. 

    Permission had to be granted for her burial at St Peter-ad-Vincula since the church had recently become Catholic again.  Feckenham was forced to go to court for the permission.  So Jane's body lay exposed and unattended for nearly four hours, spread obscenely across the blood-soaked straw.  The French ambassador reported seeing it there hours after the execution.  Her attendants kept watch, though they were not allowed to cover the corpse.  Finally, Feckenham returned and Jane's body was laid to rest between the bodies of two other headless queens - Anne Boleyn and Catherine Howard.  During the reign of her Protestant cousin, Queen Elizabeth I, Jane was celebrated as a martyr to her faith and she remains one of the most famous queens of Eng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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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히 애절한 장면으로 번역을 할까 했지만 귀찮아서 포기. 위에 인용한 수사투성이의 문학적인 글들보다는 훨씬 평이하니 재주껏 읽으시길(ㅋㅋ) 여기 나오는 시편 51편은 정화와 용서를 간구하는 내용임.

 

며칠 전 우연한 기회에 레이디 제인이라는 불쌍한 소녀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원래 귀족이나 정치모리배들간의 권력암투 따위엔 별 관심이 없는 필자였지만 왠지 이 이야기만큼은 그 처량함이 눈물샘을 많이 자극했습니다. 우리나라엔 거의 소개가 안된 이야기 같아서 인터넷에서 뒤진 자료들을 바탕으로 조금 끄적여 보았습니다. 불펌 환영~

 

[본문 내용에 대한 brunnhilde님의 지적: 제인 그레이의 어머니는 프랜시스 브랜든으로, 헨리 8세의 여동생 메리 공주와 그녀의 두번째 남편(첫남편은 프랑스 왕 루이 12) 서포크 공작 찰스 브랜든의 딸입니다. 따라서 제인은 메리 공주의 손녀로, 엄밀하게 따지면 에드워드의 사촌은 제인의 어머니 프랜시스입니다. 하지만 보통 자료들을 보면 제인이 사촌으로 표기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출처:http://blog.naver.com/qhdud15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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