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고사성어

징갱취제 (懲羹吹虀)[고사성어 유래, 뜻, 해석] 한 번 실패 한 데 데어서 모든 일에 지나치게 조심함

올드코난 2012. 10. 5.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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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명한 지 (Wise Wisdom) : 故事成語 배우기: 고사성어 유래, 뜻 설명

그랬구나

징갱취제 (懲羹吹)

 

 

:징계할 징. :국 갱. :불 취. :냉채 제.

[동의어] 징갱취채(懲羹吹菜), 징갱취회(懲羹吹膾).

[유사어] 징선기여(懲船忌輿), 오우천월(吳牛喘月).

[출전]楚辭》〈七章 惜誦

 

뜨거운 국에 데어서 냉채를 후후 불고 먹는다는 뜻으로, 한 번 실패 한 데 데어서 모든 일에 지나치게 조심함의 비유.

 

전국 시대 말엽, ()나라에 대항할 수 있는 세력은 초()() 두 나라뿐이었다. 그래서 진나라 재상 장의(張儀)는 초 동맹의 강화론자(强化論者)인 초나라의 삼려 대부[三閭大夫:()()() 세 왕족의 족장(族長)] 굴원[屈原:이름은 평(), B.C. 343?277?]을 제거하기로 작정하고 기회를 노렸다.

 

이윽고 초나라 회왕(懷王)의 총회(寵姬) 정수(鄭袖)와 영신(佞臣) 근상(勤尙) 등이 굴원을 증오하고 있다는 정보가 들어왔다. 장의는 곧 그들을 매수하여 굴원의 실각 공작을 폈다. 드디어 굴원이 조정으로부터 축출되자 장의는 회왕에게 제나라와 단교하면 진나라의 국토 600리를 할양하겠다고 제의했다.

 

그래서 회왕은 제나라와 단교했으나 장의는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다.

속았다는 것을 안 회왕은 분을 참지 못해 진나라로 쳐들어갔다.

그러나 대패하고 도리어 접경 지역의 국토까지 빼앗겼다.

회왕은 지난 일을 후회하고 굴원을 다시 등용했다.

 

그 후 10년이 지난(B.C.299) 어느 날 진나라로부터 우호 증진이란 미명 아래 회왕을 초청하는 사신이 왔다. 굴원은 믿을 수 없는 진나라의 초청에 응해서는 안 된다며 극구 방대했다. 그러나 회왕은 왕자 자란(子蘭)의 강권에 따라 진나라에 갔다가 포로가 되어 그 이듬해 객사하고 말았다.

 

초나라에서는 태자가 왕위에 오르고 동생인 자란이 재상이 되었다. 굴원은 회왕을 죽음에 이르게 한 자란에게 책임을 물었으나 이는 도리어 참소(讒訴)를 초래하는 결과가 되어 또다시 추방당하고 말았다. 이때 그의 나이는 46세였다.

 

그 후 10년간 오직 조국애에 불타는 굴원은 망명도 하지 않고 한결같이 동정호(洞庭湖) 주변을 방랑하다가 마침내 울분이 복받친 나머지 멱라(汨羅:동정호 남쪽을 흐르는 강)에 몸을 던져 수중 고혼(水中孤魂)이 되었다.

이후 사람들은 굴원의 넋을 ‘멱라의 귀[汨羅之鬼]’이라 일컫고 있다.

 

《초사(楚辭)》에 실려 있는 굴원의 작품 중 대부분은 이 방랑 시절에 씌어진 것들이다. 그는 늘 위기에 처한 조국을 걱정하고 나라를 그르치는 영신을 미워하며 그의 고고한 심정을 정열적으로 노래했는데 ‘징갱취제’는《초사》〈9장〉중 ‘석송(惜誦)’이란 시의 첫 구절이다.

 

뜨거운 국에 데어서 냉체까지 불고 먹는데 [懲於羹者 而吹(징어갱자 이취제혜)]

어찌하여 그 뜻(나약함)을 바꾸지 못하는가 [何不變此志也(하불변차지야)] ‥‥‥‥‥‥

‘석송’은 굴원이 자기 이상으로 주군(主君)을 생각하고 충성을 맹세하는 선비가 없음을 슬퍼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뭇 사람들로부터 소외된 것을 분노하며 더욱이 어쩔 수 없는 고독을 한탄하면서도 그 절조만은 변절하지 않겠다는 강개지심(慷慨之心)을 토로한 시이다.

 

B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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