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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제 10호 서울 한양도성 설명

올드코난 2016. 8. 8.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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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도성은 1396년 태조에 의해 축조되었다.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을 거치며 상당한 구간이 훼손되었으나, 1974년 복원사업을 시작으로 2013년 현재 총길이 18,627m 중 약 70% 구간이 남아 있다. 2012년 11월 23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신청자격이 부여되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되었고 2017년 6월에 세계유산에 등재될 가능성이 높다. 조선시대 한양을 둘러쌓았던 성곽 한양 도성에 대해 정리해 본다.


1. 개요

사적 제 10호 (1963년 1월 21일 지정), 주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누상동 산1-3번지 외

서울 한양도성(漢陽都城, Fortress Wall of Seoul)은 조선 시대 한양을 방어하고 경계를 위해 쌓았던 성곽이다. 조선 시대에는 한성(漢城)으로 불렸고 최근까지는 서울성곽으로 부르다 2011년부터는 한양도성(漢陽都城,)으로 공식화 되었다.


2. 한양도성 축성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1394년 태조 3년에 한양으로 천도한다. 1395년(태조 4년) 한양(지금의 서울)을 방위하기 위한 도성을 쌓으려고 도성축조도감(都城築造都監)을 설치하고 정도전에게 명하여 성터의 조사 측정을 실시하하고 다음해 1396년 음력 1월 9일 전국에서 징발한 장정 11만 8천 7백여 명을 동원하여 축성을 시작한다. 토성 12.7km 석성 6.1km 로 쌓았고 구간마다 천자문에 따른 번호를 하늘 천(天) 자부터 조상할 조(弔) 자까지 붙였다.

1396년(태조 5년) 9월 성문을 모두 완성한다. 정북(正北)쪽에는 숙청문(肅淸門), 동북(東北)쪽에는 홍화문(弘化門), 정동(正東)쪽에는 흥인문(興仁門), 동남(東南)쪽에는 광희문(光熙門), 정남(正南)쪽에는 숭례문(崇禮門), 소북(小北)쪽에는 소덕문(昭德門), 정서(正西)쪽에는 돈의문(敦義門), 서북(西北)쪽에는 창의문(彰義門)을 두었으며, 수문 1소(所)를 두었다.

1422년(세종 4년)에는 흙으로 쌓은 곳을 모두 돌로 다시 쌓는 등 봉족(奉足)과 잡색(雜色) 32만 2천 4백 명을 동원하여 38일 만에 대대적으로 성곽을 고쳤다. 1451년(문종 1년)에도 성을 고쳤지만 임진왜란 때 일부가 부서졌다. 1616년(광해군 8년)에 개수하였으나 병자호란 때 다시 부서졌다. 병자호란 때 청나라와 맺은 약조중에 성벽을 쌓지 않고 보수도 하지 않는다는 조항이 있어 부서진 채로 방치되다가, 1704년(숙종 30년) 이조판서 이유(李儒)의 주장으로 5군문(五軍門)의 장정을 동원하여 1711년(숙종 37)까지 수축하였으며, 1743년(영조 19년)에 다시 고쳤다. 그밖에도 효종·현종·영조·순조 시대에 부분적인 개수를 행해졌다. 현재 남아 있는 서울의 성곽은 대체로 태조·세종·순조 때의 것이다. 태조 시기에 지어진 성은 자연석을 거칠게 갈아서 사용했으며, 아래쪽은 큰 돌을 사용하고 위로 갈수록 작은 돌로 축성하였다. 세종 시기에 지어진 성은 좀더 직각사각형의 모습을 띄고 있으나, 돌과 돌을 갈아 자연스럽게 이으려 했으며, 숙종 또는 순조 시기에는 직사각형으로 돌을 잘라서 축성하였다.


3. 철거 및 파괴

1907년(고종 44년) 6월 이완용 등의 주장에 의해 도성을 철거하기로 결정한다. 같은 해 7월 30일 성벽처리위원회를 마련하고 9월부터 숭례문의 북쪽 성벽을 철거하고 남지를 매립하고 이듬해 1908년 3월에는 흥인지문의 좌우 성벽을 헐었다. 이는 전차 선로의 부설과 관련되어 있었다. 1908년 9월에는 소의문과 숭례문 좌우의 성벽 총 77간을 파괴한다.

을사늑약 이후 일제 강점기 서대문과 청량리 사이의 전차를 부설하면서 서대문과 동대문의 일부를 헐어내었고, 광화문과 용산 사이의 전차를 부설하면서 숭례문 부근을 역시 헐어내었다. 일제 강점기에는 산성을 제외한 평지에 있던 성곽은 모두 헐리고 현재의 모습과 같이 되었다.

해방후 한국 전쟁 시기에도 성문과 성벽이 많이 파괴되었다.


4. 복원

1974년 박정희 대통령의 국방 유적 보존 및 정비 지시에 따라 구자춘 서울특별시장이 본격적으로 복원사업을 시작한다. 1975년 광희문 문루 복원을 시작으로 훼손된 체성과 여장 복원, 주변 가옥 매입 등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1975년부터 삼청지구(창의문~숙정문) 복원에 이어 2012년 9월까지 진행된 인왕산 정상 구간까지 총 길이 18,627m 중 69%인 12,771m의 복원작업이 완료되었다. 2013년 5월 4일 숭례문 복구 기념식과 함께 숭례문 남동측 광장구간 성벽 복원까지 마무리되었으며 앞으로 남산 구간, 시장공관 구간이 추가로 복원될 예정이다.


5. 탐방 구간

총 6개 구간으로 나뉜다.

(1)백악구간: 4.7km 약 3시간

창의문-창의문 안내소-백악 돌고래 쉼터-백악 쉼터-백악마루-1·21 사태 소나무-청운대-암문-백악 곡성-백악 촛대바위-숙정문-말바위 안내소-우수조망명소-와룡공원-암문-서울과학고등학교-경신고등학교-혜성교회-두산빌라-구 서울시장공관-혜화문


(2)낙산구간: 2.1km 약 1시간

혜화문-한성대입구역 4번출구- 계단-가톨릭대학 뒷길-장수마을-암문-낙산공원 놀이마당-이화마을-한양도성박물관(서울디자인지원센터)-동대문성곽공원-흥인지문

(3)흥인지문구간: 1.8km 약 1시간

흥인지문-오간수문 터-이간수문-동대문역사문화공원(옛 동대문운동장 터)-동대문역사관-광희문-백구 컴퓨터 크리닝-천주교 신당동교회-장충체육관

(4)남산(목멱산)구간: 4.2km 약 3시간

장충체육관-장충체육관 뒷길(도성 바깥·안쪽 길)-우수조망명소(용산구 방향)-반얀트리클럽&스파서울-국립극장-나무계단길-남산공원 정류장-N서울타워-남산 팔각정-목멱산 봉수대 터-남산 케이블카 승강장-잠두봉 포토아일랜드-남산회현자락 발굴현장-안중근 의사 기념관-백범광장

(5)숭례문구간:1.8km 약 1시간

백범광장-남대문시장-숭례문-남지 터-대한·서울상공회의소-소의문 터-배재학당동관·배재공원-정동교회-이화여자고등학교-돈의문 터

(6) 인왕산구간: 4km 약 2시간 30분

돈의문 터-경교장-월암근린공원-홍파동 홍난파 가옥-편의점(구 옥경이식품)-암문-인왕산 곡성-인왕산 범바위-인왕산 정상-윤동주 시인의 언덕-창의문


6.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 등재

2012년 11월 23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되었다. 세계현존수도 중 최장기간인 514년(1396~1910)간 도성 역할을 수행했고 내사산의 능선을 따라 자연친화적으로 축조된 점 등이 세계유산적 가치로 평가받았다. 잠정목록에 오르면 1년 뒤부터 세계유산 등재신청 자격이 부여된다


7. 참고

한양도성 홈페이지 http://seoulcitywall.seoul.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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