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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285호 고려대학교 본관 건물 설명

올드코난 2016. 3. 20.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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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연대 고대를 일명 SKY라고 부른다. 한국의 3대 대학으로 수재들이 모이는 대학들이다. 이중 고려대학교 본관이 문화재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건축학적인 가치 때문에 사적으로 지정이 되었다. 간단히 정리해 본다.

고려대본관이 문화재라고? 사적 285호 고려대학교 본관 건물 설명

1.개요

고려대학교 본관은 1934년에 세워진 고려대학교 내의 건물로, 원래 보성전문학교(普成專門學校) 본관이었다. 보성전문학교는 1905년 4월 당시 내장원경(內藏院卿)이던 이용익(李容翊)이 박동(礡洞), 현 수송동의 노어학교(露語學校) 자리에서 법률과 실업교육을 목적으로 설립된 학교였다. 김성수(金性洙)가 1932년 보성전문 학교를 인수하고 1933년 9월 본관을 착공하고 1934년 9월 준공했다. 1981년 9월 25일 사적 제285호로 지정되었다.



2. 설계과정

설계자는 한국 근대 건축의 선구자인 박동진(朴東鎭)이고 시공자는 후지타 고지로(藤田幸二郞)였다. 박동진은 평북 정주 출생으로 1910년 정주의 오산학교를 졸업했다. 1919년 3ㆍ1운동에 참가 2년의 집행유예를 선고 받기도 했다. 1926년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를 졸업하고, 조선총독부의 건축부서에서 근무했다. 박동진은 고려대 본관 건물의 설계를 계동에 있는 김성수의 자택 2층에서 했다고 한다. 설계는 보성전문의 소유자인 김성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김성수는 1920년대 말에 해외 대학들을 시찰했는데, 가장 인상 깊은 건물이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 소재인 듀크 대학 본관이었다고 하는데 여러 명문대학 캠퍼스 건축을 참조하여 건립했다. 김성수는 구체적인 건축디자인 지침을 박동진에게 제시했고. 먼저 본관은 석조 건물로 한다는 것이었다. 이 당시만 해도 서울 시내에 석조건물이라고는 조선총독부 이외에는 전혀 없었을 때였다. 박동진은 김성수의 의견을 들어 최종 결정을 짓고 실설계(實設計)에 착수해 고려대학교 본관을 설계하게 된 것이다. 건물과 자연의 조화, 구조와 재료미의 일치의 형식을 강조했고 외관상 창구(窓口)의 배열이라든가 평면 구성의 억지가 있는 것은 김성수의 의견을 따른 것이다.


3.구조

본관은 정문에서 보면 운동장을 가로질러 뒷 숲을 등지고 서있다. 평면은 H자형으로, 중앙 현관을 중심으로 좌우 대칭이다. 평면 후면에 편복도가 있으며, 복도의 양끝에는 계단과 화장실이 있다. 남향한 각 실들은 사무실과 회의실이며, 4층 다락층에는 교수실들이며 정면의 중앙탑 1층 현관은 단순하게 처리된 튜더식 아치(tudor arch), 3층과 5층은 쌍아치 창, 2층과 4층은 장방형 창을 내었다. 중앙탑 네 모서리는 부축벽(flat buttress)를 붙였고, 그 꼭대기에는 중세 성관(城館)의 여장(女墻)으로 마무리하였다. 지붕 면에는 지붕 돌출창(dormer)을 설치하여, 다락방에 자연채광이 되도록 하였다.

2층 창은 수평 아치 속에 뾰족아치를 두어 섬세한 장식 수준을 보여준다. 내부시설로는 증기난방과 수세식 변소를 둔 그 당시에는 최신식 건물이었다.

미국 대학 캠퍼스 건물들의 성격 중 하나인 고딕풍 석조건축의 분위기가 이 건물에서 느껴지며, 중앙탑의 의장 구성, 뾰족아치, 경사지붕 등으로 판단할 때 고딕풍에 속하는 건물이다.


4.역사적 가치

일제 때 대학의 설립 주체는 크게 선교사학(宣敎私學), 일제관학(日帝官學), 민족사학(民族私學) 등이었다. 민족사학을 대표하는 보성전문학교 캠퍼스는 대표적인 선교사학인 연희전문학교 캠퍼스와 이화여자전문학교 캠퍼스나, 대표적인 일제관학인 경성제국대학 동숭동 ㆍ연건동 캠퍼스와 비교하여 손색이 없는 규모와 수준으로 건축되었다. 이 캠퍼스의 최초 건물인 현 고려대학교 본관은 일제 강점기 한국인이 설계한 빼어난 건축 수준의 건믈로 역사적 가치가 매우 높다. 1981년 9월 25일 사적 제285호로 지정되었다.


5.일화

고려대학교 본관 후분 돌기둥에 무궁화 한쌍이 그려져 있다. 일제가 이 무궁화를 문제삼자 설계자 박동진은 벚꽃이라고 속였다고 전한다. 새겨진 그림은 무궁화가 분명하며 박동진은 한민족의 자부심을 고려대 본관 건물에 불어 넣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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