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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민심서 - 자서 (牧民心書 自序) 원문 및 해석, 설명

올드코난 2015. 5. 5.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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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코난과 함께하는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 (牧民心書) - 자서(自序)

*주) 자서는 목민심서 첫장에 나오는 내용으로 다산 정약용 선생이 목민심서를 완성하고 세상에 책을 내놓은 심정과 목민심서에 어떤 내용이 담겨있는지를 직접 소개하는 인사말이다.


옛날에 순(舜) 임금은 요(尧)임금의 뒤를 이으면서 12목(12주의 제후)을 불러 그들로 하여금 백성을 다스르게 하였고, 주문왕이 정치제도를 세울 때 사목을 두어 목부라 하였고 맹자는 평륙에 갔을 때 추목을 백성을 기르는 데 비유하였다. 이로 미루어 보면 백성을 부양하는 일을 가리켜 목이라 한 것은 성현의 남긴 뜻이다.

성현의 가르침에는 원래 두 가지 길이 있다. 사도는 만백성을 가르쳐 각기 수신케 하고, 태학에서는 왕족 및 공경대부의 자제들을 가르쳐 각기 수신하고 백성을 다스리게 했으니, 백성을 다스리는 것이 목민의 일이다. 그러므로 군자의 학문은 수신이 반이고, 나머지 반은 목민이다.


성인의 시대는 너무 멀어서(죽은지 오래되어) 그 말씀이 희미해져서 그 도 또한 점점 어두워졌으니, 오늘날 백성을 다스리는 자들은 오직 거두어들이는 데만 급급하고 백성을 기를 줄은 모른다. 이 때문에 백성들은 여위고 시달리고, 시들고 병들어 쓰러져 진구렁을 메우는데, 그들을 기른다는 자들은 화려한 옷과 맛있는 음식으로 자기만을 살찌우고 있다. 어찌 슬프지 아니한가.


나의 선친께서 조정의 후한 대우를 받아 두 현의 현감, 한 군의 군수, 한 부의 도호부사, 한 주의 목사를 지냈는데, 모두 잘 다스린 공적이 있었다. 소자는 비록 못나고 어리석은 사람이지만 좇아 배워서 다소간 들은 바가 있었고, 보아서 다소간 깨달은 바도 있었으며, 물러나 이를 시험해봄으로써 다소간 체득한 바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귀양살이하는 몸이 되어 쓰일 데가 없게 되었다. 


먼 변방에서 귀양살이한 18년 동안에 오경과 사서를 반복해서 연구하여 수기의 학을 익혔으나, 생각해보니 수기의 학은 학문의 절반에 불과하다.

이에 중국의 23사와 우리나라의 역사서와 기타 저술 및 문집 등의 여러 서적에서 옛날의 사목이 백성을 기른 자취를 골라 위아래로 뽑아 정리, 분류, 수합하여 차례로 편성하였다. 그리고 남쪽 변두리 땅에서는 전세와 공부를 아전들이 농간하여 여러 가지 폐단이 어지럽게 생겨났는데, 나의 처지가 낮았기 때문에 듣는 것이 매우 상세하여 이것들 또한 종류별로 기록하였으며, 나의 얕은 견해를 덧붙여 기록한 것이 모두 12부인데 1부는 부임, 2부는 율기, 3부는 봉공, 4부는 애민이며 그다음은 (5부~ 10부)까지는 육전(이호예병형공)에 관한 사항이고, 11부는 진황, 12부는 해관이다. 12부가 각 6조로 구성되었으니 모두 72조이다. 여러 조를 합하여 한 권을 만들기도 하고, 한 조를 나누어 몇 권을 만들기도 하였으니, 통틀어 48권으로 하나의 저서가 되었다. 

비록 시대를 따르고 습속을 좇았기 때문에 위로 선왕의 헌장에 부합될 수는 없을망정, 백성을 기르는 데는 조례를 갖춘 셈이다.


고려 말에 비로소 오사, 즉 수령의 직무를 다섯 가지 방면으로 분류해 수령들을 고과하였고, 우리 조선에서도 그대로 하다가 후에 칠사로 늘렸다. 오사나 칠사 모두 대체의 방향만을 독려한 것일 따름이었다. 

수령이라는 직분은 관장하지 않는 바가 없으니, 여러 조목을 차례로 드러내더라도 오히려 직분을 다하지 못할까 두려운데, 하물며 스스로 생각해서 행하기를 바랄 수 있겠는가. 

이 책은 첫머리와 맨 끝의 2부를 제외한 나머니 10부에 들어 있는 것만 해도 60조나 되니, 진실로 어진 수령이 있어서 자기 직분을 다할 것을 생각한다면 아마 방향을 잃지 않을 것이다.


옛날에 부염은 이현보를 유이는 법범을, 왕소는 독단을, 장영은 계민집을, 진덕수는 정경을, 호태초는 서언을, 정한봉은 환택편을 저작하였다. 이 모두 이른바 목민에 관한 책이다. 오늘날 이런 책들은 거의 전해오지 않고 오직 음란한 말과 기이한 구절만이 일세를 횡행하니, 나의 이 책인들 어떻게 전해질 수 있으랴? 그러나 주역에 이르기를 "앞사람의 말씀이나 지나간 행적들을 많이 익혀서 자기의 덕을 쌓는다"고 하였다. 이것은 진실로 내 덕을 쌓기 위한 것이지, 어찌 꼭 목민에만 한정한 것이겠는가?


'심서'라 한 것은 무슨 까닭인가? 목민할 마음은 있으나 몸소 실행할 수 없기 때문에 '심서'라 이름한 것이다.


순조 21년 신사년 (1821년) 늦봄에 열수 정약용이 쓰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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