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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민심서 1장 부임 1조 제배 (牧民心書 赴任 除拜) 원문 및 해석, 설명

올드코난 2015. 5. 5.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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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민민서 첫장은 부임(赴任)으로 임지에 간다는 뜻으로 수령이 먼저 알아야 할 내용으로 부임 육조는 제배(除拜), 치장, 사조, 계행, 상관, 이사 등 총 6조로 나뉘어 설명하였다. * 재배는 수령으로 임명되는 것, 치장은 임지로 가는 행장을 차리는 것, 사조는 임지로 가기전 조정에 올리는 인사, 계행은 임지로 가는 중의 태도, 상관은 첫 출근, 이사는 첫 업무처리를 의미한다. 

올드코난과 함께하는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 (牧民心書) 1장 부임(赴任) 1조 제배(除拜) 원문 및 해석

제1조 제배(除拜): 관직에 임명되다.


1.원문

他官可求 牧民之官 不可求也

除拜之初 財不可濫施也

低報下送之初 其可省弊者 省之

新迎刷馬之錢 旣受公賜, 又收民賦 是匿君之惠而掠民財 不可爲也


2.해석 및 설명

他官可求 牧民之官 不可求也니라.

음)타관가구나 목민지관은 불가구야니라.

해석)다른 관직은 구해도 가하나 목민관(수령)은 스스로 구해서는 안된다.

설명) 여기서 다산이 하고자하는 말은 다른 벼슬과 달리 목민관은 백성을 직접 대하며 정사를 보는 일이니만큼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과 위하는 마음이 없다면 목민관이 되려하지 말라는 충고를 담았는데, 이는 당시 고을 수령들의 부정부패로 백성들을 착취하는 상황을 목격한 정약용이 목민관은 누구를 위해 일을 해야 하는 지를 명심하라는 충고를 한 것이다.


除拜之初에 財不可濫施也니라.

음)제배지초에 재불가남시야니라.

해석) 수령으로 임명된 초기에는 재물을 함부로 나누어 주지 마라.

설명) 아직 그 고을(부임지) 사정도 모르면서 함부로 예산을 쓰게 되면 예산도 부족하게 되지만, 탐욕스런 자들에게 흘러 갈 수 있음을 충고한 것이다. 이는 당시 고을 유지(양반 사대부)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지역 예산을 쓰지 말라는 뜻도 담겨 있다. 나랏돈을 함부로 쓴다면 모든 피해는 백성들이 입게 되는 것이다. 이는 지금의 한국 유권자들이 명심해서 들어야 할 말로 정치인들의 선심성 공약 남발에 현혹되어서는 안된다는 뜻으로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低報下送之初에 其可省弊者는 省之니라.

음)저보하송지초에 기가생폐자는 생지니라

* 저보 [邸報] 조선 시대 경저에서 지방 고을로 띄우는 연락 보고 문서

해석) 경저에서 통지문을 내려보낼 때 폐해가 될만한 일은 생략하다.

설명) 당시 경저가 특정인들의 이권을 위해 일을 하는 곳으로 변질되었음을 알 수 있다. 경저를 이용함을 아끼라 불필요한 일로 예산을 함부로 쓰지 말라는 정도로 이해하면 될 듯.


新迎刷馬之錢은 旣受公賜인데, 又收民賦면 是匿君之惠而掠民財니 不可爲也라.

음) 신영쇄마지전은 기수공사인데, 우수민부면 시익군지혜이략민재니 불가위야라.

* 新迎(신영) 새 수령을 맞이함. *刷馬錢(쇄마전) 조선 시대, 지방 관아에서 쓰던 교통비

해석) 새 수령이 부임에 따른 비용은 이미 받았음에도(국가에서) 부임지 백성들에게 부담시키지 마라.

설명) 요즘말로 비용처리를 함에 있어서 2중으로 청구하지 말라는 의미로 해석하면 될 것이다. 공무원들 중 이런 짓을 저지르는 타락한 관료들에 대한 경고의 말이기도 하며, 지역 백성들에게 금전적인 피해를 주지 말라는 뜻이 담겨있다.


[참고]

*저보 [邸報] 상세설명: 중앙과 지방의 연락기관으로서 전국 각 군현의 저사(邸舍)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이를 경저라고 하였다. 이 경저를 맡아 운영하는 사람을 경저리(京邸吏)·저리(邸吏)·저인(邸人)·경저주인(京邸主人)·경주인(京主人) 등으로 불렀다. 이 제도는 고려 중엽부터 조선 말기까지 계속되었다. 원래 경저의 역(役)은 지방에서 향리를 상경시켜 일정한 기간 종사하게 한 뒤 교체하였던 것인데, 대동법 실시 이후에는 지방에서 상경하지 않고 서울사람들이 역가(役價)를 받아 경영하였다.

경저의 임무는 신임수령에 대한 금전의 대여 및 봉사, 상경하는 지방민 및 이례(吏隷) 등에 대한 숙식 등 편의제공, 중앙과 지방의 문서연락, 지방세공(地方稅貢)의 대납 등이었다.

경저리는 그러한 일을 한 뒤에 그에 대한 대가를 수령·지방민·이례 등에게 그 몇 배를 청구하여 이익을 취할 수 있었으므로 조선 후기 경저리의 역은 이권화하였고, 경저리의 자리는 비싼 값으로 매매되었다. 저보는 경저리가 그와 같은 일을 처리하면서 본군에 보고, 통지하는 문서이다. 신임수령의 부임날짜를 본군에 알리는 일도 경저에서 저보로 하였다. 현재 전해지는 저보의 원본은 찾아보기 어렵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글 작성/편집 올드코난 (Old Con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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