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210년전인 1805년 10월21일 프랑스와 스페인 연합함대를 상대로 대승을 거둔 영국해군의 트라팔가르 해전은 세계 3대 해전에서도 첫 손가락에 꼽히는 해전으로 역사에 남았다. 10월21일 바로 오늘있었던 트라팔가르 해전을 간략히 정리해 본다.
세계 3대 해전, 나폴레옹의 영국 침략을 막은 트라팔가르 해전(Battle of Trafalgar: 1805.10.21.) 의미와 의의 설명
1.배경
해전이 발생할 시점인 1805년 당시 상황은 프랑스의 나폴레옹 황제가 거의 모든 유럽 국가들을 굴복시켰지만, 바다 건너 영국만은 예외였다. 당시 영국의 해군력은 세계 최강이었고, 영국은 프랑스 해상을 봉쇄하는데, 이는 영국이 프랑스를 자극하려는 의도보다는 나폴레옹이 영국을 침략하려는 의도를 막기 위한 일이었다.
하지만, 나폴레옹은 영국침공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리고, 객관적으로 프랑스 해군 단독으로 영국해군을 이기기는 어려웠다. 해서 나폴레옹은 당시 프랑스의 사실상 지배국인 스페인의 해군과 연합 함대를 편성하고 영국의 해상봉쇄를 돌파할 것을 명령한다.
2.양측 병력 및 상황
(1)영국: 지휘관 허레이쇼 넬슨 제독, 전함 27척
(2)프랑스-스페인: 지휘관 피에르 샤를 빌 뇌브 제독, 전함 33척(프랑스 18척, 스페인 15척)
영국은 경험 많은 유능한 해군 장교들과 잘 훈련 된 해군을 보유한 반면, 프랑스 해군은 프랑스 혁명 당시 많은 제독들이 숙청이 된 결과 유능한 지휘관들이 부족했다. 그나마 나은 인물이 프랑스 제독 피에르 샤를 빌 뇌브였는데 1978년 나일강의 전투에서 패배를 당한후 의기소침한 상태였다. 넬슨에 대한 두려움 또한 작지 않았던 것으로 여겨진다.
3.전투 직전상황
프랑스는 지중해의 Cádiz(카디스, 스페인 남서부 항구도시)에 프랑스 해군을 집결하고, 영국은 넬슨 제독에게 해군 지휘를 맡긴다.
영국 함대는 빅토리(HMS Victory)를 기함으로 하는 27척의 전함이 주축이었고, 프랑스는 제독 피에르 빌뇌브가 이끄는 프랑스-스페인 연합 함대는 부상테르(Bucentaure)를 기함으로 하는 33척의 전함이 전투태세를 갖춘다. 하지만, 이 당시 프랑스 함대는 배에 대한 수리도 제대로 못하고 여러 가지 공급과 지원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특히, 해군 장교는 물론, 해군병사들의 숙련도 역시 확연히 차이가 났다. 수적으로는 우위였으나 스페인 해군과 섞여 지휘 계통이 복잡하고, 사기나 숙련도가 낮고, 함재포의 발사 속도가 1발/3분 이었다. 그러나 영국 해군은 사기도, 숙련도도 높고, 발사 속도도 1발/1.5분 으로 우수했다. 객관적인 전력에서 이미 영국해군이 프랑스연합 함대를 앞도하고 있었지만, 이는 지금에서 파악된 내용이고 당시 영국과 프랑스 함대는 서로에 대해 확실한 정보와 전투력을 제대로 파악하지는 못하고, 단지 함대수와 병력수만을 알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래서 영국은 자신들이 열세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4. 전투 진행 및 결과
전투 상황을 간략히 요약해 보면, 오전 11시45분 "England expects that every man will do his duty"(영국은 우리들이 의미를 다할 것을 기대한다)를 외치며 깃발 신호를 올린다. 전투가 시작된 것이다. 이때 영국은 북쪽 방향에 있었는데, 이때 마침 북풍이 불었다. 바람을 등지고 영국해군이 2열 종대로 프랑스함대를 향해 진격하고 전투가 벌어졌다. (전투 진행의 상세한 내용은 위키백과 참조=> https://en.wikipedia.org/wiki/Battle_of_Trafalgar )
전투 결과는 영국측에서는 단 한척의 배도 침몰하지 않았고 전사 400명, 부상 1246명 정도였지만, 프랑스-스페인 측은 침몰 1척, 나포 21척, 전사 3,200여명, 부상 2500여명 포로 7,000명 이었다. 제독 빌뇌브는 생포됐다.
그리고 영국 해군의 지휘관 넬슨 제독은 교전 중 프랑스측 총탄에 저격됐고 피격후에도 4시간동안이나 지휘를 계속하다 전사했다.
[전사 직전 넬슨의 유언]
“Thank God I have done my duty (신이여 감사합니다. 나는 임무를 완수했습니다)”
5. 트라팔가르 해전의 의의
트라팔가르 해전은 당시 기세등등했던 나폴레옹의 자존심을 꺾은 전투로, 이 전투에서의 승리로 영국은 프랑스의 침공을 저지할 수 있었다. 만일 트라팔가르 해전에서 영국이 패했다면, 프랑스는 당시 세계 최강이었던 육군 병력을 이끌고 영국을 침략했을 것이다. 그리되면, 프랑스가 영국을 점령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당시 프랑스 육군은 절정기였음을 감안해 보면, 이는 충분히 타당한 예상일 것이다. 그리되었다면, 세계 역사가 바뀌었을 것이다. 나폴레옹은 전 유럽을 점령했을 것이다.
나폴레옹이 프랑스 왕정을 없애버렸고 그를 민주적인 지도자도 착각하고 영웅으로만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역사를 들여다보면 나폴레옹의 정치는 독재자의 면모를 많이 보이고 있다. 왕을 없애고 자신은 황제가 된 이중성에, 자신들의 일가를 유럽의 왕으로 앉혔던 나폴레옹을 (프랑스)국민을 사랑했던 애민군주로 잘못알고 있다. 나폴레옹은 정복자이며 침략자였다. 트라팔가르 해전은 나폴레옹 시대의 종말을 알리는 신호였다.
글 작성/편집 올드코난 (Old Con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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