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세계사

1980년 12월 8일 비틀즈의 멤버 존 레논 살해 사건 요약

올드코난 2015. 12. 8.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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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12월 8일 사망한 비틀즈의 멤버 존 레논 살해 사건에 대해 요약해 본다.


1. 존 레논 개요

존 윈스턴 오노 레논(John Winston Ono Lennon, 1940년 10월 9일 ~ 1980년 12월 8일)의 출생명은 존 윈스턴 레논 (John Winston Lennon)으로 이후 오노 요코와 결혼 후 존 윈스턴 오노 레논(John Winston Ono Lennon)으로 개명했다.

비틀즈의 창립 멤버로 폴 매카트니와의 공동 작곡(레논-매카트니)을 통해 "로큰롤 역사상 가장 인기있는 음악을 썼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영국 싱글 차트에서 폴 매카트니에 이어 두 번째로 가장 성공적인 작곡가이며 「기네스 월드 레코즈」에서는 가장 성공한 작곡 팀의 한 명으로서 차트 1위의 곡이 미국에서 동료 폴 매카트니가 32곡, 레논이 26곡(공동 작곡은 23곡), 영국 차트로 레논이 29곡, 매카트니가 28곡(공동 작곡이 25곡)으로 소개하고 있다. 레논이 작곡에 참여한 비틀즈 곡로는 「I Want To Hold Your Hand」와 「She Loves You」, 리드 보컬이었던 「Please Please Me」 「A Hard Day's Night」 「Help!」 「Strawberry Fields Forever」 「All You Need Is Love」 「Across the Universe」 「Come Together」이 있다. 또한 솔로로는 「Love」 「Imagine」 「Starting Over」 등을 발표했다.

레논은 음악과 영화, 책, 회견과 인터뷰 등을 통해 반항적인 성향과 통렬한 재치를 드러냈으며 평화 운동과 그림 작품으로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비틀즈 해체 이후 레논은 《John Lennon/Plastic Ono Band》, 《Imagine》 등의 앨범과 〈Imagine〉, 〈Give Peace a Chance〉, 〈Love〉 등의 곡을 통해 성공적인 솔로 경력을 쌓았다. 1973년에 미국으로 건너가 1978년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였다.

레논의 마지막 앨범이 된 《Double Fantasy》는 1981년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올해의 음반' 수상작으로 선정된다.

레논은 사후인 1987년 작곡가 명예의 전당에, 1994년에는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으며 2008년에는 100명의 위대한 영국인을 묻는 BBC의 설문조사에서 8번째로 선정되었다. 《롤링 스톤》지는 2004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아티스트 50인”(The Fifty Greatest Artists of All Time) 중에서 레논을 38위로 선정했고, 2008년에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가수에 5위로 선정하였다.



2. 살인범 마크 채프먼

존 레넌을 암살한 마크 데이비드 채프먼(Mark David Chapman, 1955년 5월 10일 ~ )은 1955년 미국 텍사스 주 포트워스에서 태어나 조지아 주 애틀랜타 근교의 조용한 지역에서 생활했다. 9살 때 처음으로 비틀즈를 보고 비틀스의 팬이 되었다. 1975년 선교사로 레바논에 파견되었고 베트남 난민을 돕기도 했다.

1976년에 대학을 중퇴하고 애틀랜타에서 경비원으로 취직했다가 1977년에 하와이로 이주, 이후 신경쇠약증세로 2차례 자살을 시도하나 미수로 끝났다. 1979년 6월에 하와이 호놀룰루 경비원으로 지내면서 일본계 미국 여성 글로리아 아베와 결혼했다. 그러다 본인이 유명해지고 싶다는 망상에 빠지게 되고 정신병 증세로 인해 1980년 12월에 결국 미국 뉴욕에서 비틀스의 전 멤버 존 레논을 총으로 쏴 암살했다. 2급살인 혐의로 기소되어 아티카 교도소에 수감되어 종신형을 선고받았고 현재도 복역 중이다.



3. 존 레논 살인 사건

사건 당일 1980년 12월 8일 오전, 레논은 집인 다코타 빌딩에서 사진 작가 애니 리보비츠와 함께 「롤링 스톤」게재용 사진을 촬영햇다. 촬영을 끝내고 자택에서 잠깐 느긋하게 쉰 후, 17시에는 요코의 신곡 「Walking on Thin Ice」의 믹스 다운 작업 때문에 레논은 뉴욕 시내에 있는 레코딩 스튜디오 「더 히트 팩토리」에 나갔다.


더 히트 팩토리」에서 레논 부부는 라디오 프로그램과 인터뷰를 한다. 이 최후의 인터뷰에서 레논은 신작과 근황, 쿼리맨 시절, 매카트니와 해리슨과의 만남에 대해 말했다. 그리고, 「죽는다면 요코보다 먼저 죽고 싶다」, 「죽을 때까지는 이 일을 계속하고 싶다」 등의 말을 했는데, 이게 공식석상에서의 마지막 말들이었다.



밤 22시 50분, 스튜디오 작업을 끝낸 레논과 요코가 탄 리무진이 아파트의 앞에 도착했다. 2명이 차에서 내렸을 때, 그 자리에 기다리고 있던 ‘마크 채프먼’이 어두운 곳으로부터 “레논?”이라고 불러 세우는 것과 동시에 권총을 양손으로 잡고 5발을 발사했는데 이중 4발이 레논의 가슴, 등, 팔에 명중했다. 


레논은 “총에 맞았다! (I'm shot!)”라고 두 번 외친 후 아파트의 입구에서 몇 걸음 더 나간 뒤 쓰러졌다. 아파트 경비원은 즉시 911번에 전화했고 몇 분 뒤 센트럴 파크 경찰서 소속 경관이 도착했다. 경관이 도착했을 때 레논은 아직 의식이 있었지만 피를 많이 흘려 위중한 상태였다. 그 때문에 2명의 경관이 그를 경찰차의 뒤에 실어 근처 루즈벨트 병원으로 데려갔다. 1명의 경관이 빈사에 빠져 있던 레논의 의식을 유지하게 하기 위해 질문했을 때 작은 목소리로 자신이 존 레논인 것을 밝혔고 등이 아픈 것을 호소하였다. 

하지만 레논의 목소리는 점차 약해져 가고 병원에 도착한 후, 의사는 심장마사지와 수혈을 실시했지만 레논은 혈액의 8할을 잃어버리면서 저체액성 쇼크로 밤 11시 루즈벨트 병원에서 공식 사망한다. 레논의 사망시에 병원의 탄노이 스피커에서 흐르고 있던 곡은 비틀즈의 「All My Loving」였다고 전한다. 그의 나이 만 40세였다.

(차후 존 레논에 대한 생애와 음악 세계에 대해 정리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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