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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조직과 고용체계의 구조변화에 관한 논문

올드코난 2010. 6. 4.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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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조직과 고용체계의 구조변화

. 서론: 두 개의 가설

이 논문은 IMF사태 이후 진행된 기업조직과 고용체계의 변화를 분석하는 데에 목적이 있다. 이 연구가 입각하고 있는 논리적 구도는 비교적 간단하다. 세계화의 외압, 특히 한국의 경우 환란극복을 위한 국가주도의 구조조정은 기업조직과 고용체계의 변화를 촉발하고 그것은 다시 노동시장 구조에 일대 변화를 초래했다. 그런데, 그 결과에 대하여 두 가지의 가설이 대립한다. 하나는 세계화, 구조조정, 기업구조와 고용체계, 기업내부노동시장(FILM)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변화과정은 신자유주의적 관점에서 설명이 가능하다는 시각이다. 신자유주의적 논리에 따르면, 기업지배구조는 과점 내지 독점체제에서 주주 중심으로 분산되고, 경영진의 권한이 확대되며 종업원 해고/채용이 자유로워진다. 그 결과 기업조직과 고용관계에서 유연성이 증대된다. 제도적 개입요인을 철회하고 시장경쟁을 촉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한 국가의 역할도 제한될 수밖에 없다. 이른바 ‘금융중심형 자본주의’와 ‘시장지향적 고용체계’로 전환하도록 제도적, 법적 환경을 조성하는 데에 그 역할이 한정되는 것이다. 이를 ‘신자유주의 가설’(neoliberal hypothesis)이라고 명명하면, 구조조정, 고용체계, 그 결과적 현상으로서의 노동시장 구조간에는 일종의 강력한 인과관계가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주식시장에의 의존성을 높이는 금융시장 재편이 기업조직을 거쳐 노동시장으로까지 관철된다고 보는 입장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기존 제도와 관행의 탄력성에 비중을 두는 시각이 있다. 다시 말해, 구조조정이 아무리 신자유주의적 기조로 추진된다고 하더라도 기존 제도와 관행의 저항에 부딪혀 ‘의도하지 않았던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를 ‘제도적 저항가설’ 또는 ‘탄력성 가설’(resilience hypothesis)이라고 한다면, 위의 각 영역에서 시장경쟁적 요소가 급격히 도입되고는 있지만 한국의 기업지배구조가 시장경쟁적 형태로 완전히 전환한 것은 아니며, 고용체계 역시, 도어의 개념을 빌리면, ‘조직지향적 체계’에서 ‘시장지향적 체계’로 바뀐 것은 아님을 강조한다 (Dore, 1973).

실제로 IMF 사태 이후 지금까지의 변화는 신자유주의적 가설과 탄력성 가설이 각축전을 벌이는 양상을 띠고 있는 듯이 보인다. 또는 영역별로 두 개의 가설이 충돌하면서 新舊요소가 혼합된 일종의 절충적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고 가정할 수도 있다. 이 논문에서 주목하는 바가 바로 이 점이다. 신자유주의적 요소가 증대한 곳은 어떤 영역인가? 또는, 기업조직과 고용체계 모두 기존 제도와 충돌하는 과정에서 양자가 서로 섞여 일종의 혼합적 형태로 귀착되었는가? 아직 변화의 와중에 있기 때문에 ‘귀착’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이른 감이 없지는 않다고 말할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절충적 형태가 장기간 지속되면 급기야는 독특한 구조로 고착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논문의 초점은 최근의 변화상을 규명하여 두 가설의 적합성을 검증하는 데에 있다. 이 논문의 분석대상은 네 가지이다. 그것은, (i) 지배구조: 금융중심형 자본주의로의 이행과정에서 한국 기업의 지배구조는 미국형, 일본형, 독일형과 어떻게 다르거나 유사해졌는가? (ii)작업조직: 지배구조의 변화는 조직구조(작업조직)의 변화를 수반한다. 특히, 조직유연성이 강조되면서 수직적 위계질서가 수평적 구조로 바뀌고 직무구분과 직무배치의 원리가 동시에 바뀌었다면 그 구체적 양상은 어떠한가? (iii) 고용체계: 기존의 기업중심형 고용체계는 어느 정도 와해되었으며, 시장주의적 요소가 어느 정도 도입되었는가? 임금, 승진, 직무안정, 고용안정 등의 관점에서 FILM의 제도변화가 어떻게, 어느 정도 진행되었는가? 마지막으로, (iv) 비정규직과 정규직간 시장분절은 경영자와 노동조합의 행위양식과 어떻게 연관되는가? 이 네 가지 주제는 한꺼번에 다루기에 다소 무리가 없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앞에서 지적하였듯이, 지배구조와 기업조직, 고용체계와 FILM은 상호 긴밀히 연관된 하나의 체계이며, 이 논문의 목적이 변화의 미시적 측면보다 거시적 윤곽과 방향을 파악하는 데에 있다고 보면 좋을 것이다.

2. 분석 기준 으로서의 이념형

 

분석의 편의를 위해 세 개의 이념형을 설정하는 것이 유용하다. 기업조직과 고용체계에 있어 상호 뚜렷이 구분되는 세 개의 이념형이 존재하여 왔다는 것은 널리 주지하는 바이다. 미국형, 일본형, 독일형이 그것인데, 한국의 변화 양상은 이 세 가지 유형과의 대비 작업으로 파악될 수 있다. 물론, 미국, 일본, 독일 역시 세계화의 추세 속에서 변화를 꾀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미국은 기존보다 훨씬 더 강도 높은 경쟁적 유형으로 변모하고 있고, 독일은 시장경쟁적 요인의 도입에도 불구하고 라인모델의 장점을 유지하고 있으며, 일본 역시 ‘비교우위의 완전한 소멸’과 ‘성공의 위기’에 직면한 가운데에서도 대안 모델이 아직 가시화되지 않고 있다고 보면, 이념형으로서의 의미가 아직은 퇴색하지 않았다고 판단된다. 분석의 편의를 위해, 미국형 기업을 A-Firm, 일본형을 J-Firm, 독일형을 G-Firm으로 명명한다(Aoki 1988; Turner 1991).

 

1). 지배구조

 

한국의 기업구조는 1990년대 중반 이후 변화하기 시작하여 1997년 말 IMF사태를 계기로 급격하게 재편되었다. 그 결과적 양상은 대체로 ‘미국형 기업구조’에 접근하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 평가이다. 왜냐하면, 김대중정권이 추진하여온 구조조정이 금융중심형 자본주의로의 전면적 이행을 명시한 IMF와의 합의의향서에 입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은행의 부실여신을 정리하고 국제적 기준을 철저하게 적용하였던 금융구조개혁은 기업의 자본조달 방식과 은행-기업간의 관계를 바꾸는 획기적인 조치이며, 기업지배구조개혁은 경영과 소유의 완전한 분리, 소유의 상한선 설정, 부채비율의 축소, 상호지급보증의 금지, 경영투명성 강화 등의 원칙을 강제하여 재벌총수의 독단적 기업지배를 약화시키고 시장의존성을 강화하였다. 이런 조치들은 은행-기업-국가의 정치적 관계에 기초했던 국가주도자본주의의 형태를 지양하고 삼자관계를 시장합리성으로 재편하겠다는 정책적 의지의 표현이었다.

그런데, 4대 개혁, 특히 기업지배구조 개혁은 과연 어느 정도 진척되었으며 그것의 실질적 성과가 어떠한가에 대하여 이견이 분분한 실정이어서 이에 대한 정확한 평가작업이 요청된다(전창환, 조영철 2001). 기업지배구조를 중심으로 기업유형을 미국형, 일본형, 독일형으로 구분하고, 여기에 일본과는 유사성이 많지만 독자적 특성을 보이는 한국 유형을 대비시켜 각 유형의 특징을 간략하게 서술하면 다음과 같다.

 

■미국형(A-Firm): 기업의 총자금 구성 중 주식시장 비중이 현저히 높고, 기업가치는 주로 주식시세로 평가된다. 경영진은 주주의 단기이익을 올리는 데에 주력하며(주주자본주의), 경영실적에 따라 경영진의 유임과 교체가 결정되고 이사회가 최고 결정권한을 갖는다. 주식시장을 통해 소액주주들이 소유에 참여하므로 소유분산도가 대단히 높다. 금융시장에의 높은 의존도가 노사관계에 그대로 관철되어 정리해고와 신규채용이 자유롭고 노동시장의 유연성 역시 높다.

■독일형(G-Firm): 공채와 회사채 발행 외에 겸업은행을 활용하기에 주식시장의 영향을 덜 받는다. 주식이 활성화되어 있기는 하나, 겸업은행과 연금기금에의 의존도가 높고 소유분산도는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기업과 노동은 사회적 합의체제(corporatism)에 의하여 통제되어 노동의 정책적 보호가 가능하다. 거시적 수준의 중앙은행의 개입은 기업과 노동의 합의를 지원한다. 외견상으로는 노동시장이 경직된 것처럼 보이나, 사회적 합의를 통해 시장변동에의 적응력을 높일 수 있기에 제도적 유연성이 유지된다.

■일본형(J-Firm): 메인뱅크가 대기업의 주식을 상당 비율 보유하고 있으며, 국가와 은행의 합의에 의하여 기업의 장기적 투자전략이 가능하다. 종업원지주제가 발달되어 있지만, 메인뱅크의 투자, 기업의 주식상호보유, 재벌소유로 인하여 소유분산도는 낮다. 대기업 부문에서 기업과 노동은 협력체제를 유지하고 인력재배치 등의 일본적 관행을 통하여 정리해고의 피해를 최소화한다.

■한국형(K-Firm): 기업은 주거래은행과 정책금융을 통하여 자금을 조달한다. 재벌은 상호지급보증으로 기업군의 규모를 키우고 국가의 지원에 힘입어 전략산업에의 장기적 투자가 가능하다. 재벌소유 비중이 큰 반면, 소유분산도는 지극히 낮다. 재벌총수의 개인적 판단에 의존함으로써 경영비합리성과 정경유착의 위험이 증가한다. 장기고용과 기업복지를 일반적 관행으로 설정하지만, 노사관계는 적대적, 대립적이다. 소유자의 경영방침이 기업 운명을 결정하고, 그것의 폐해는 노동자에게 그대로 전가된다.

 

구조개혁의 결과 한국의 기업구조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이 질문이 이 논문의 첫 번째 과제이다.

 

2). 작업조직과 고용체계

 

지배구조의 재편은 기업의 조직구조, 고용관계 및 노동시장에 연쇄변화를 일으킨다. 네 개의 구조변수는 이른바 ‘생산체제’(production regime)의 핵심적 구성요소이다. 생산체제의 개념은 다중적이다. 생산과정을 정치적 산물로 보는 뷰라워이는 국가개입과 자본통제의 결합양상을 중시하는 데에 반하여(Burawoy, 1985), 규제론자들은 생산과정과 노사타협의 결합체제에 주목한다 (Boyer, 1995; Lipietz, 1995). 이 글에서는 생산체제를 자본시장의 성격, 기업구조, 고용관계, 노동시장이 결합된 체제, 그리하여 노동자의 생존양식을 결정하는 구조로 정의한다. ‘생산체제’를 구성하는 네 개의 요인간에는 일종의 구조적 친화력이 존재한다. 시장의존도가 높은 지배구조 하에서는 입직, 이직이 자유로우며 정리해고와 신규채용의 비용이 낮게 구조화되는 것이 보통이다. 채용과 해고에 대한 노동조합의 통제가 허용되어 있더라도 노조의 행위는 시장의 규칙을 거스를 수 없다. 기업의 파산신고, 인수와 합병이 활발하게 진행되는 자본주의 유형에서 장기고용관행이 형성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상호지급보증을 통해 부실기업의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제도에서 노조는 고용승계권의 확보를 통해 고용안정을 꾀하고자 한다. 작업조직 역시 그러한 제도적 특성에 영향을 받는다. 조합주의적 교섭장치가 발전되어 ‘작업장의 정치화’가 이루어진 독일 유형에서는 노동자의 개별적, 집단적 참여가 가능하도록 작업조직이 구조화되어 있다.

 

<표 1> 작업조직과 고용관계의 유형별 특성1)

구분

A-Firm

G-Firm

J-Firm

K-Firm2)

작업조직

▪직무구조

 

▪직무구분

 

▪작업조직

 

▪위계구조

▪노동자율성

종적 관계, 트랙내 경쟁, 승진 아니면 이탈

노동표준화, 기능적 분업

공정표준화, 모델교체 어려움, 개별작업

권한 집중

작업자의 판단 배제

기업정책 참여제한

횡적, 종적 관계 결합

팀별 순환배치

숙련기반 폭넓은 직무

기능적 유연성, 통합

공정 유연성, 모델 교체 용이, 팀작업

권한 분산

정보공유, 팀 자율성

기업정책결정 참여

종적 위계, 횡적 관계결합, 기능별 순환배치

숙련기반 폭넓은 직무

다기능강조, 통합

공정 유연성, 모델 교체 용이, 팀작업

위계적 통제

팀자율성 높음

작업장 수준의 참여

기능별 종적 위계, 승진지향

노동표준화,

기능적 분업

공정표준화, 모델교체 어려움,개별작업

권한집중

개인자율성 낮음

작업장참여제한

고용체계와 임금

▪고용안정과

충원

 

▪교육훈련

 

▪보상

 

 

낮음, 이직율 높음,

외부충원

 

개인책임

 

능력, 성과위주 연봉제

물질적 보상, 동기부여(스톡옵션), 사적 복지

높음, 낮은 이직율

내부 충원

 

국가책임, 직훈체계

기업 외부 도제제도

숙련급 및 집단성과급

국가복지

높음, 낮은 이직율

내부 승진

 

기업중심 OJT

 

연공급, 호봉제

집단성과급

기업복지

높음, 낮은 이직율, 내부 승진 (관리직/생산직 구분)

제한적 OJT ,

주로 Off-JT

연공급, 호봉제

기업복지

 

1) A-Firm, G-Firm, J-firm은 Aoki(1988)와 Turner(1991)를 참고로 작성, K-Firm은 필자.

2) 한국형의 경우 관리직/생산직간 뚜렷한 차별이 존재. 주로 대기업을 대상으로 함.

 

이렇게 보면, 미국의 작업장은 ‘시장의 지배’가 관철되는 유형이며, 독일은 국가의 정치적 개입을 바탕으로 작업장의 ‘정치적 지배’가 정착된 유형이다. 이에 비하여, 일본과 한국은 작업조직과 고용관계에 자본의 영향력이 뚜렷하게 실현되는 유형이면서 국가 개입의 성격에 따라 노동자 보호와 배제가 엇갈리는 중요한 차이를 만들어냈다. 이러한 특성을 몇 가지 기준으로 관찰하면 <표 1>과 같다.

<표 1>의 내용이 네 개 유형의 제반 양상을 모두 담아낸 것은 아닐 지라도, 대체적인 특성 파악에는 유용하다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구조조정의 결과 한국의 작업조직과 고용관계는 어떻게 변화하였을까? 이것이 이 논문의 두 번째 과제이다.

 

3. 분석자료

 

이 논문의 목적에 부합하는 조사자료는 한국노동연구원의 박우성, 노용진이 작성한 <경제위기 이후 경영환경 및 인적자원관리 변화조사>(이하 경영.인적자원관리조사)이다. 이 조사연구는 이 논문과 동일한 목적에서 출발한 것으로서 경영환경, 조직구조, 작업조직, 인사관리, 고용과 임금, 노조 및 노사관계 등에 관한 다수의 중요한 설문들이 담겨져 있다. 조사 시기도 2000년 6월이어서 변화의 폭과 심도를 가름하기에 적절하다고 판단되었다. 조사대상 기업은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379개 기업이며, 자료구조는 <기획 및 조직담당자>와 <인사담당자>로 이원화되어 있어 조직구조상의 개혁조치들과 인사관리, 노사관계의 변화를 폭넓게 측정하고 있다는 장점을 갖는다. 자료분석 외에도 분석의 객관성과 현실적합성을 높이기 위해 보조자료를 활용할 것이다.

3. 기업지배구조의 변화

 

지배구조는 미국이나 영국과 같이 주주의 이익극대화에 초점을 맞춘 ‘주주자본주의’ 유형과, 독일이나 일본과 같이 기업을 공적 자산으로 간주하고 생산참여자들의 공통적 이해증진에 초점을 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유형으로 대별된다. 이에 반하여, 재벌로 대표되는 한국의 대기업은 소유주의 이익극대화가 가장 핵심적인 관심으로 설정되고 소유주의 지배력과 의사결정 권한이 절대적이라는 점에서 독특한 지배구조를 발전시켜 왔다. 제왕적 소유주가 군림하고 그 밑에 친족이 계열사를 장악하는 구조를 ‘족벌자본주의’ 또는 ‘소유경영자주의’로 명명하기도 한다 (김동운, 1999; 김기원, 1999; 유석춘, 1997).

한국이 이런 지배구조로 경쟁력을 갖추어나갈 수 없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그렇기에, 김대중정부가 추진해온 지배구조 개선의 골자는 다름 아닌 ‘주주자본주의’로의 신속한 전환이었다. 구조조정 정책은 기업의 외부경영환경과 내부규율에 공통적으로 작용하였다(재경부, 2001; 전경련, 2002). IMF와의 합의이행서가 작성된 이후 <기업구조개혁의 5대 과제>가 강도높게 추진되었으며, 1999년 3월에는 재경부의 발의로 민간전문가 중심의 <기업지배구조개선위원회>가 결성되어 OECD의 규정에 맞춰 한국의 모범규준을 제정하기도 하였다.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이 기간 동안 새롭게 도입된 법령과 제도는 대단히 많고 의욕적인 것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2002). 그런데, 그 결과는 무엇인가? 과연 기업지배구조의 전반적 추세가 영미형으로 바뀌고 있는 것인가? 이에 대하여는 서로 다른 평가가 혼재한다.

상장기업 250개사를 대상으로 한 전경련의 조사는 긍정적이다(전경련, 2002). 정부의 조치가 경영투명성을 높이는 데에 기여하였다고 답한 기업이 전체의 94%에 달했고, 대주주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데에 효과적이었다고 답한 비율이 75.4%였으며, 역으로 소액주주권이 강화되었다고 답한 비율은 이 보다 훨씬 큰 82.6%에 달했다. 한편, 외국기업을 대상으로 한 조사도 이와 유사해서, 응답기업 35개사 중에서 90%이상이 한국기업의 지배구조와 경영투명성이 훨씬 향상되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위 보고서:62).

그러나, 이와는 상반되는 견해도 존재한다. 한국개발연구원은 구조조정의 결과를 이원적으로 제시한다. 즉, 5대 재벌 계열사의 경우 독립성은 약화된 반면, 6대 이하 재벌은 크게 향상되었다는 점, 경영권 장악에 의한 사적 이익의 규모는 구조조정 이전과 비교하여 약간 감소추세를 보이지만 절대적 수준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지배구조 개선의 성과가 아직 미약하다고 결론을 내린다(조성욱, 2000). 정부, 시민단체, 노조의 시각은 이보다 더 인색하다. 가장 핵심적인 요인인 재벌총수의 경영권 장악(소유/경영분리)과 생산자 및 주주의 이해관심이 배제되는 구조가 여전히 지속되고 있음에 주목하여 ‘지속적이며 실질적인 개혁’을 요구하는 것이다(김대환, 김균, 1999).

그렇다면, 몇 가지 핵심적 기준에 기대어 재벌 기업군의 지배구조의 변화를 평가하는 것이 필요하다. 대체로 학자들은 다섯 항목에 주목한다(김균, 1999; 장하성, 1999). 그것은,

(1) 소유구조: 30대 재벌의 소유구조는 총수를 위시한 친족들의 내부지분율에서 약간 하향세를 보이기는 하지만, 아직은 큰 폭의 변동이 나타나지 않는다. 공정거래위원회의 통계에 의하면, 총수의 지분율과 특수관계인(친족, 임원, 비영리법인 포함)의 지분을 합한 수치가 재벌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40%-67% 수준에 달한다(공정거래위원회, 2001). 내부지분율이 이 정도라면, 소액주주와 기관투자가의 의결권을 보장하는 신규법령이 도입되어도 주주총회에서 안정적인 권한을 행사하기에 충분하다.

(2) 경영전문성 제고 및 자율성 강화: 소유-경영의 분리, 경영자의 전문성과 자율성은 지배구조 개혁의 중요한 축이다. 정부는 지배주주의 대표이사 등재 의무화와 실제적인 사령탑 역할을 해오던 비서실 해체, 대주주의 의결권 제한 및 기업도산에 대한 부담을 강화하는 조치를 추진하였다. 또한, 외국인 주식투자 한도를 폐지하고 외국인 소유지분율 상한선을 폐지하였으며, 인수 및 합병이 자유롭도록 시장규율을 강화하였다. 그 결과 경영자의 전문성과 자율성이 ‘어느 정도’ 향상되었다는 것이 일반적 평가이지만, 그것이 ‘패러다임의 변화’까지를 수반한 것인가에 대하여는 여전히 회의적이다. 능력과 업적이 탁월한 최고경영진들의 외부 채용과 발탁이 늘기는 하였지만, 경영진의 결정권한이 지배 대주주를 압도하고 있다는 주장에 동의할 사람은 드물다.

(3) 경영투명성과 감사제도: 아마, 개혁조치 중에서 가장 성과가 두드러진 영역이 있다면 바로 이 것이다. 국내외 기업인들은 한국 재벌기업군의 경영투명성이 한층 높아졌다는 데에 동의한다. 그것은 결합재무재표 작성과 공시를 의무화한 새로운 규제에 힘입은 바 크다. 또한, 내부규율에 있어서도 사외이사제도의 도입과 사외 이사가 2/3이상 포함된 감사위원회 설치를 의무화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그 외에도 증권거래법, 공정거래법, 외감법이 강화되어 비공식, 비합법적 거래행위의 요소가 어느 정도 제거되었다.

(4) 재무구조 및 주식시장 중심성: 상호지급보증 및 출자금지는 재무구조의 건전성 향상에 상당히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부채비율의 감소가 대표적인 것이다. 이는 곧 한국의 재벌기업들이 금융시장의 변화에 어느 정도 적응하고 있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본시장의 유형 변화를 나타내는 기업의 자금조달 방식은 여전히 바뀌지 않았다. 영미형 자본주의의 주된 특징은 주식시장에의 의존도가 높다는 점이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기업들은 주식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정도가 지극히 낮으며, 그것도 1998년 이후 10%-13%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이 고작이다 (1997년에는 3%에 그쳤다) (재경부, 금융감독원, 2001). 자금조달에 있어 주식시장에의 의존도가 낮고 오히려 간접금융의 비중이 크다면 그것은 영미형 자본주의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뜻한다. 일반투자자들의 주식투자에 기업이 어느 정도 의존하는가가 지배구조의 가장 중요한 척도라는 주장에 기댄다면(Emmons와 Schmid, 1999), 한국은 ‘주주주의’나 ‘이해관계자주의’도 아닌 형태이며, IMF 개입 이전의 구조와 그다지 다르지 않은 형태에 머물고 있다는 뜻이 된다.

(5) 내부 지배구조: 앞에서 설명한 여러 가지의 조치들과 더불어 지주회사의 규제, 출자총액의 제한 등은 지배대주주의 내부지배력과 경제력집중을 약화시키려는 취지를 갖는다. 그 결과, 경영독립성이 향상되었고 지배대주주의 권한도 다소 약화된 측면도 발견된다. 그러나, 문제는 재벌기업의 경우 개별 기업의 관점에서보다는 기업집단지배구조(business group governance)의 관점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장덕진, 2001). 장덕진은 재벌기업 내부의 소유지분관계를 형성하는 연결망구조를 분석하여 외환위기 이전과 이후에 이렇다할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음을 밝혀냈다. 소유지분율의 소폭 감소가 지배권력의 구조변화를 초래하지 않는다는 점, 소유지분율이 낮아지더라도 소유관계의 중복위계에서 지배대주주가 차지하는 ‘위치’의 속성이 바뀌지 않는 한 지배구조는 변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상의 고찰로부터 지배구조에 관한 다음과 같은 결론이 도출된다. 첫째, 정부의 여러 개혁 조치들 중 가장 성과가 큰 것은 기업의 경영투명성과 재무구조에 관련된 것이다. 회계공시제도, 감사와 사외이사의 도입, 부채비율에 의한 은행여신 규제, 부실기업 퇴출 등의 조치로 기업의 거래행위는 법적, 도덕적 감시의 대상이 되었다. 이 조치들은 합리적 지배구조를 구축하는 데에 필요한 환경이다. 둘째, 그러나, 재벌 총수를 정점으로 하는 기존의 전횡적 지배구조는 이렇다할 변화를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소유지분율이 줄지 않았으며 주식시장에의 의존도도 여전히 낮다. 특히, 정부의 개혁조치들은 기업군간의 소유연결망에서 소유주가 점해왔던 ‘위치적 속성’을 약화시키는 데에는 무력했으며, 따라서, 경영전문성을 강화하는 중요한 조치들에도 불구하고 지배대주주의 영향력은 건재하다. 이는 IMF의 개입과 김대중정부의 구조조정 정책으로 한국의 기업지배구조가 미국형으로 전환하고 있다는 신자유주의적 가설이 적합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한국의 지배구조가 ‘주주자본주의’나 ‘이해관계자자본주의’ 유형으로 전환하고 있음을 나타내주는 증거도 희박하며, 단지 경영투명성이 향상되는 데에 성과가 나타났을 뿐이다.

재벌기업군의 실상이 이렇다면, 일인 소유주의 권한이 더 강하게 작용하는 독자대기업의 현황은 이보다 훨씬 못할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왜냐하면, 독자대기업은 정부의 강도 높은 감시망에서 비껴 있었으며, 재무구조가 단단하고 부실 징후가 없는 독자대기업이라면 지배구조 변화 압력을 거의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논문의 자료인 <경영.인적자원관리조사>의 분석결과가 그것을 말해준다. <표 2>는 500인 이상 대기업을 대상으로 경제위기 이후 변화된 ‘경영체제의 성격’을 분석한 결과이다. 우선, 전체적 수치를 보면(마지막 줄) 응답기업의 31.8%가 여전히 소유중심체제임을 지적하였으며, 자율경영체제라고 확신한 사례는 23.8%에 불과하였다. 그런데, 세 번째 항목은 조금 더 신중한 해석을 요한다. 전문경영체제가 갖추어져 있고 권한이 대폭 위임되었지만, 임원인사, 신규투자와 같은 중요사안의 결정권한은 여전히 소유주 소관이라면, 소유-경영의 완전 분리와는 거리가 멀고 지배구조의 분산도 그다지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봐야 옳을 것이다. 한편, 독자대기업이 재벌기업보다 소유주의 권한이 훨씬 강력한 전횡적 지배구조를 보이고 있으며 그런 만큼 소유경영체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앞의 추론과 일치한다. 전반적으로, 구조조정 과정에서 정부가 행사한 정치적, 경제적 압력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기업들은 (2)와 (3)의 유형에 머물러 있다. 경영자율성을 갖추었다고 답한 기업이 23.8%에 달하는 것에도 주목을 요하지만, 한국 대기업의 지배구조는 아직 ‘소유주 중심체제’라고 하는 편이 적합할 것이다. 즉, 구조조정의 결과 기업경영환경이 합리화되고 기업투명성이 향상되었지만, 지배구조는 신자유주의 가설과는 달리 기존과 별로 다를 바 없는 상태에 머물러 있다 (<표 2>에서 (4) 쪽으로 다소 이동하였다고도 해석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그것은 지배구조에 관한 한 ‘탄력성 가설’이 보다 적합함을 입증한다. 이것은 재벌을 위시한 대자본가들이 제도와 관행의 저항력을 동원하여 기존의 지배구조를 고수하는 데에 성공하였다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다.

 

<표 2> 지배구조의 변화: 경영체제의 성격

구분

질문: “귀사의 경영체제는 다음 중 어디에 가깝습니까?”

(1)소유주가 모두

결정하는 소유경영

체제

(2)전문경영자의 권한이 미약하고,

대부분 소유주가

결정

(3)전문경영자에게

권한 이양, 그러나,

신규투자 등 중요

사항은 소유주가 결정

(4)소유와 경영의

완전 분리, 자율적

경영

 

재벌대기업

 

독자대기업

 

1 (1.5)

 

37(23.9)

 

7(10.3)

 

26(16.8)

 

48(70.6)

 

49(31.6)

 

12(17.6)

 

41(26.5)

38(17.0)

33(14.8)

97(43.5)

53(23.8)

*500인 이상의 상장대기업, 앞의 수치는 사례수, ( )은 %; Pearson Chisquare=34.184(.000)

 

4. 작업조직, 고용체계, 임금구조의 변화

 

지배구조의 변화가 대단히 미약한 수준에 그쳤다는 사실에 비추어 조직구조, 고용체계, 임금구조는 상대적으로 큰 폭의 변화를 겪었다는 점은 흥미롭다. 즉, 한국의 기업은 구조조정의 과정에서 지배구조를 거의 그대로 놓아둔 채 FILM을 대폭 손질했다는 사실이다. 변화의 폭(width)과 심도(depth)는 구조조정 2년이라는 단기간에 비하면 크고 깊은 것이었다고 판단된다. 구조조정에 있어 한국의 경영진이 가장 많은 관심을 쏟았던 영역은 조직구조이고, 그 다음으로 임금구조와 고용체계 순으로 나타난다. 설문대상인 379개 상장기업 모두가 정도는 다르지만 구조조정의 성격과 방향이 대체로 한 가지로 수렴된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그것은 조직구조가 ‘사람중심에서 직무중심으로’, 임금규칙이 ‘연공중심에서 업적.능력위주로’, 고용규칙이 ‘전인주의(generalist)에서 전문주의(specialist)’로 이행한 점이다. <표 3>은 세 가지 영역에서 진행된 변화의 폭(width), 변화의 방향, 변화의 심도(depth)를 측정한 설문조사의 분석결과이다.

위의 결과는 연구의 대체적인 윤곽을 시사해준다. 조직구조상의 변화가 ‘가장 광범위하게’ 일어났지만 변화의 深度는 가장 작았음에 반하여(변량, 0.27), 임금제도는 중간 정도의 폭이지만 그 심도는 가장 깊었다(변량, 1.54). 반면, 고용조정의 진폭은 앞의 두 개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작았으나 전문성 강조에 의한 조정심도는 상당한 정도였다(변량, 1.16). 이를 폭과 심도를 곱해 변화의 총량을 계산하면, 조직구조의 변화가 70, 임금구조가 386, 고용체계가 251 정도이다. 이 수치는 상대적인 것이지만, 피고용자가 체감하는 변화의 충격은 임금→고용→조직의 변화라는 사실을 시사한다.

 

<표 3> 조직체계의 변화분석: 폭과 심도

영역

변화의 폭1)

변화의 방향 및 심도2)

1 2 3 4 5

 

조직구조

 

2.64

사람중심 직무중심

2.86 → 3.13

임금구조

 

2.51

 

연공중심 능력중심

 

2.28 → 3.82

고용체계

 

2.17

 

전인주의 전문주의

 

2.63 → 3.79

1) 3개 영역에서 추진된 변화의 상대적 폭을 측정하는 질문, 평균값 (4점 척도).

2) 경제위기 이전과 이후 변화의 방향과 심도를 묻는 질문, 평균값(5점 척도).

* 379개 상장사, 평균값의 two-tailed significance = .000

 

그렇다면, 변화의 내부 모습은 구체적으로 무엇이며, 변화의 결과는 어떤 유형인가?

1). 작업조직

 

<표 1>에서 요약한 것처럼, 기능별, 업종별 종적 체계, 승진지향, 기능적 분업과 엄격하고 세분화된 노동표준화, 상급자에 집중된 권한, 작업장에서의 제한적 참여 등이 K-Firm의 주요한 면모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구조조정 과정에서 이러한 면모는 어느 정도 바뀌었는가? <그림 1>는 조직구조 재편과 관련된 분석결과를 제시한 것이다.

<그림 1>에서 제시된 기준은 대체로 6 가지 세부항목으로 나눌 수 있다. ① 순환보직, ②내부 승진, ③기능적 유연성 보장, ④팀작업, ⑤권한 분산, ⑥작업장 참여가 그것인데, 비교유형별로 각 항목의 특성을 5점 척도로 측정하였다. 미국, 독일, 일본은 각 국의 사례연구(박영범, 우석훈 2000; 김훈, 김정한 2001) 및 비교연구(Aoki 1988; Turner 1991;Elger와 Smith, 1994)를 토대로 측정한 수치인데, ‘기능적 유연성’을 예로 들면, 노동표준화가 엄격한 미국은 2, 기능적 통합이 높은 독일은 5, 그보다는 약간 낮은 일본은 4의 점수를 주었다. 이에 비해, 한국의 수치는 절대적 통계치이다. 자료분석의 결과, 순환보직을 거의 모든 공정과 부서에서 일반적으로 실시한다고 답한 비율은 25.9%였는데, 이를 5점 척도에서 1.3으로 환산하였다. 같은 방식으로, 내부승진은 2.6 (52.6%가 내부 승진을 보편적 규칙으로 채택하고 있음), 기능적 유연성은 1.7 (35%만이 직무범위가 넓은 데에 반하여, 65%가 엄격한 직무. 기능구분에 적용됨), 팀작업은 3.4 (68%가 팀작업을 도입함), 권한 분산은 1.4 (28%가 불만과 쟁점을 제기하고 해결하는 공식 채널이 마련됨), 작업장 참여 1.5 (30%가 개인에 영향을 미치는 의사결정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음)로 측정되었다.

<그림 1>의 분석이 드러내듯, K-Firm은 조직구조에 있어 그다지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G-Firm과 J-Firm과는 뚜렷한 차이를 보이는 반면, 오히려 A-Firm에 더 가깝게 보인다. 그러나, 특기할 만한 것은 작업구조의 재편이 주로 수직축을 중심으로 왼편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하였다는 사실이다 (<그림1.4>의 화살표). 작업장 참여, 권한 분산, 팀작업에서 변화량이 크고, 순환보직, 내부 승진, 기능적 유연성의 영역에서는 상대적으로 소폭의 변화가 일어났다. 작업장 참여와 권한 분산(위계구조의 유연성)은 구조조정 이전에는 거의 0에 가까웠을 것이다. 그런데, 구조조정이 일어나면서(또는, 그 이전부터) 작업장 참여의 기회가 확대되었고, 권한분산이 어느 정도 진전되었으며(작업장 민주화의 진전), 2/3 이상의 기업에서 팀작업이 추진되었다. 전자는 노조의 교섭력 확대가 주된 요인인 반면, 후자는 생산공정이 일관공정(flow job)에서 묶음 공정(batch job)으로 전환한 것과 유연성증대를 위해 위계구조의 경직성을 부분적으로 완화한 경영혁신의 결과로 보인다. 분석결과를 몇 가지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직무구조와 직무구분: 개인의 직무범위는 여전히 좁고 다기능화나 기능적 통합 시도는 별로 진전되지 않았다. 직무가 엄격하게 구분되어 있으며, 순환보직이 제한적이다. 또한, 내부 승진제도의 일반성 역시 크게 축소되지는 않았다. 흥미로운 점은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에서 기능적 통합과 직무 범위의 확대가 더 활발하게 추진되었다는 사실이다.

둘째, 팀조직과 위계구조: 팀작업은 중소기업보다 대기업에서 보다 의욕적으로 도입되었는데, 종전과 같은 엄격한 직무구분을 바탕으로 한 것이어서 유연성 증대나 위계구조의 경직성

완화에 도움이 된 것 같지는 않다. 또한, 팀작업은 경영진의 관심사안인 데에 반해, 노조가주력하는 것은 결재라인과 직급단축으로 나타난다. 즉, 노조는 관리감독과 통제선을 짧게 만들려는 데에 관심을 둔다. 그런데, 이것이 권력분산과 위계구조의 수평화에 기여하는 바는 작아 보인다.

셋째, 권력분산과 참여: ‘권력분산’과 ‘작업장 참여’에 약간의 진전이 있었던 원인은 정보공유, 의사결정참여, 직무참여의 방식이 많이 개선되었기 때문이다. 비조직기업에서는 노사협의회를 통한 ‘정보공유’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조직기업에서는 단체교섭을 통한 ‘의사결정참여’가 활발하다. 한편, 대기업일수록 제안제도, 사고관리, 작업규칙 개선팀, 태스크포스팀 등을 통한 직무참여 기제가 활발하게 나타난다.

이렇게 본다면, 조직구조에서 일어난 가장 현저한 변화는 팀작업으로의 재편이다. 팀구조의 도입은 직무범위의 확대나 기능 통합을 수반해야 하지만, 직무배분에 있어 종전의 ‘인물 중심성’을 ‘직무 중심성’으로 약간 이동시키는 결과를 낳았을 뿐이며, 위계 구조를 완화시키는 데에도 그다지 실효를 거두지는 못했다. 오히려, 작업장에 민주적 관행이 다소 증대된 것은 노조교섭력 향상의 결과이다. 결재라인과 직급단축, 제안제도 도입, 정보공유와 의사결정

참여 등이 권위주의적 성격을 완화하는 데에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요약하자면, 조직구조는 변했다. 그러나, <그림 1>에서 보듯이 과거의 기본 골격을 유지하면서 노동참여와 팀작업의 측면에서 다소간의 진전이 있었다. 변화의 결과는 철저한 개별 작업에 기초한 시장경쟁적 유형인 A-Firm과도 다르고, 기능적 유연성과 내부 승진을 특징으로 한 J-Firm과도 다르며, 권력분산 및 기능 통합을 지향하는 G-Firm과도 다르다. 노동참여의 기제가 약간 향상되기는 하였지만, 여전히 K-Firm 패러다임에 갇혀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2) 임금구조

 

구조조정 효과가 가장 컸던 것은 임금부문이었다. 임금구조의 변화량은 작업조직의 4배, 고용체계의 1.5배에 해당한다. 그도 그럴 것이, 경제위기 이전부터 새로운 임금구조를 도입하려는 시도가 몇몇 대기업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지만, 본격적인 개혁이 추진된 것은 1998년-2000년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임금구조는 직급과 직위로 구획된 호봉제를 기초로 하고, 각 직급 내부에서는 근속년수에 따라 임금이 일정 비율로 상승하는 연공제가 결합된 형태였다. 그러므로, 호봉제와 연공제는 임금구조의 두 개의 축이었다. 외국에 비하여 수당과 상여금 종류가 다양해서 임금 제도가 대단히 복잡하다는 것이 일반적 견해이지만, 내부 원리는 비교적 간단하다. 우선은 직급과 직위의 교차표가 기본 골격이며, 각 직급내에서는 근속년수에 따라 일정 비율로 상승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구조조정의 핵심은 직급, 직위, 근속년수의 임금결정도를 완화시키고, 업적.성과.능력의 비중을 높이는 것이다. 이런 목적을 충족시키는 방법은 두 가지였다. 능력과 업적의 임금결정력을 높이는 것과 다양한 유형의 개인적 인쎈티브를 도입하는 것이 그것이다. 이는 임금구조에 경쟁요인을 도입하라는 신자유주의 이념과도 부합하며, 생산성을 상회하는 임금비용을 낮추는 방식이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기업들이 앞다투어 임금구조 개혁에 나선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그 결과, 연공제에서 연봉제로의 전환이 이루어진 것이다.

자료분석의 결과도 이러한 전환을 뒷받침한다. 첫째, 연봉제를 도입한 기업이 45.1%에 이르고 (대부분 1998년 이후 도입되었다), 향후 1년 내에 도입할 것이라고 응답한 기업도 22.7%에 달한다. 그러므로, 계획대로라면, 2002년 현재 거의 70%에 달하는 기업에서 연봉제가 실시되고 있다. 둘째, 다양한 인쎈티브제도가 도입되었다. 가장 많은 것은 ‘우리사주제’(ESOP)로 58.3%가 실시 중에 있다고 응답하였으며, 그 다음으로는 이익배분제(profit-sharing)가 40.6%, 팀인쎈티브가 26.1%, 집단성과배분제도(gain-sharing)가 23.7%, 스톡옵션이 16.6% 순이었다. 인쎈티브 도입기업이 아직은 절반 수준에 이르지는 못하지만, 지배적인 추세로 확산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연봉제는 A-Firm, 인쎈티브제는 G-Firm과 J-Firm의 주요한 특징이라면 한국의 임금구조는 두 유형의 특징을 선택적으로 결합한 형태로 바뀌고 있다는 뜻이 된다.

그러나, 이를 보다 자세히 관찰하면 ‘유형 전환’이라고 할 뚜렷한 증거는 그다지 발견되지 않는다. 즉, 새로운 제도가 매우 적극적으로 도입되기는 하였지만, 그것이 임금구조의 기본 골격을 대체한 것은 아니고 매우 제한적 범위에서 임금구조의 탄력성을 높이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는 점이다. 다음과 같은 분석결과가 그러하다.

첫째, 연봉제가 적용되는 직종이 사무관리직(31.4%), 영업직(24.1%), 기술직(17.7%)에 주로 분포되고, 생산직과 전산직의 적용비율은 10% 미만이다. 직위별로는, 대리급 이상의 적용비율이 높고 (17%-26%) 평사원은 15% 미만에 그친다. 다시 말해, 연봉제 도입 기업이 70%를 넘는다고 하더라도 전 직원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직종과 직위에 따라 제한적으로 실행되고 있다. 직급과 직위가 높을수록 연봉제 적용비율이 다소 높아진다.

둘째, 원래 연봉제란 능력과 업적을 기초로 한 총액 개념의 계약임금이다. 그러나, 한국의 연봉제는 총액개념이 아니라 임금 요소별로 약간의 유연성을 도입하는 수단이다. 그리하여, 임금요소별로 ‘기본급에 적용한다’는 기업이 32.1%이며, 정기상여금 28.8%, 법정수당 15.3%, 특별상여금 10.6%, 법정 외 수당 10.4%여서, 모든 임금 요소에 골고루 연봉제의 원리를 적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다시 말해, 임금제도의 기본 골격은 그대로 둔 채, 각 요소별로 지급범위를 설정하고 있는 것이 한국의 연봉제 개념이다. 두 가지 분석결과가 이 점을 뒷받침한다: ① 연봉제가 실시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기본급 비중이 평균 65.6%로 구조조정 이전과 유사한 수준이고, ② 동일 직급, 직위에서 연봉제 도입으로 인한 총액임금 격차는 평균 13%에 불과하다.

셋째, 기본급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여전히 근속년수이다. 이것도 학력별, 직종별로 달라서, 고졸사원(생산직)의 경우 57.8%, 대졸사원(사무관리직)의 경우 43%가 근속년수가 기본급 결정에 최우선적으로 고려된다는 것이다. 대졸사원의 경우에는 비율이 약간 낮아진 감이 없지 않지만, 직종(사무관리/생산직), 학력, 근속년수로 기본급이 결정되어온 기존의 관행이 연봉제 도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중요한 원리로 건재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이상의 분석을 간략히 도해하면 <그림 2>와 같이 된다. 우선, 구조조정 이후의 임금구조는 이전과 비교하여 기본 골격이 변하지 않았다. 다만, 직종에 따라 임금 총액에서 차지하는

기본급 비중이 약간 줄었을 가능성은 많다. 중요한 것은 연봉제가 각 임금요소별로 도입되어 탄력성을 약간 높였다는 사실이다. 오른 쪽의 타원형의 부분이 연봉제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능력과 업적에 따라 넓어지거나 축소된다(화살표). 단, 타원형이 차지하는 비중은 총액 임금의 13% 정도에 불과하다. 요약한다면, 구조조정의 충격이 가장 컸던 임금부문 역시 제도적 골격은 그대로 둔 채 연봉제라고 하는 경쟁적 요인을 부분적으로 접목하는 데에 그쳤다. 사실, 이것만으로도 임금경직성이 대단히 큰 한국에서 상당한 의미를 갖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임금부문의 변화 역시 패러다임적 전환이 아니라 K-Firm의 경계 내에서 일어난 부분적인 성격의 것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3) 고용체계

 

피고용자들이 느꼈던 고용체계의 변화는 임금부문보다는 작았지만 상당한 것이었다. 관리.사무직은 유례없는 정리해고와 대량 실업에 직면해야 했으며, 생산직 역시 아웃소싱과 분사와 같은 공정 분리조치에 의하여 극심한 고용불안정에 시달려야 했다. 지난 3-4년간 일어난 고용관행의 변화는 70, 80년대 고도성장기에 발생했던 변화량을 훨씬 초월하는 것처럼 보인다. 논자에 따라서는 한국의 고용관행이 ‘조직중심적 유형’에서 ‘시장지향적 유형’으로 전환했다고 진단하기도 하였다. 신규채용, 승진, 정리해고 등 고용과 관련된 모든 기업행위에서 직무효율성과 성과를 중시하는 분위기가 고조된 것은 그 중요한 증거이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직무중심, 능력과 성과중심의 고용규칙이 지배적 유형으로 정착되었는가? 분석결과에 의하면 이 영역 역시 패러다임의 변화임을 지지하는 증거는 그다지 발견되지 않는다.

K-Firm의 특징은 장기근속(장기고용관행), 고용안정(정리해고의 회피와 낮은 이직율), 내부승진, OJT와 OFF-JT의 결합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 네 가지 특징이 과거와 동일한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분명히 오류이지만, 모두 사라지고 새로운 원리로 대체되었다고 단언하기도 어렵다. 오히려 ‘부분적으로는 무너졌지만 대체적으로는 건재하다’고 말하는 것이 보다 적합하다. 자료분석의 결과가 그것을 입증한다.

우선, 대량감원 사태를 초래했던 정리해고는 노동법상 합법화된 조치이지만, 97년-98년의 경제위기시에 한시적으로 적용되고 그 이후부터는 정리해고를 회피하려는 노력이 보다 현저하게 나타난다 (응답기업의 65.2%가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경기회복에 따라 기업들이 고용규모를 다시 늘려야 할 필요성에 직면한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수요발생에 따라 필요인원을 채용하는 것보다 기업사정이 어려워도 노동력을 보유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일종의 관행이자 신규채용/해고의 비용을 낮추려는 기업의 합리적 선택이기도 하다. 경제위기 초기에는 사무.관리직이 정리해고의 주요 표적이 되었던 데에 반하여, 최근으로 올수록 생산직으로 옮겨가고 있는 것도 흥미롭다. 이는 앞에서 지적한 조직혁신과 관련된다. 공정단축, 분사, 소사장제, 외주 등이 보다 활발해지면서 생산직 인원을 조정할 필요성이 높아진 것이다.

둘째, 자발적 이직율도 하향추세를 보인다. 조사대상 기업의 경우, 1997년 평균 9.74%, 1998년 10.25%로 급증 추세를 보이다가 1999년에는 8.75%로 급락하고 있다. 사무관리직, 생산직 모두 직장 이동에 따르는 위험부담을 감수하기보다는 현재의 직장을 고수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판단에서일 것이다. 이런 추세는 내부 승진 규칙이 그다지 변화하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기인한다. 지난 3-4년간 외부 충원을 매우 ‘적극적으로 실행’하였다고 답한 기업은 25.8%에 지나지 않아서 대부분의 기업이 내부승진 제도의 골격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그렇다고 기업내 교육훈련(OJT)이 보다 강화된 것도 아니다. 어떤 형태로든 OJT를 실시하고 있는 기업은 조사대상의 62%에 달하여 비교적 높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는데, 이중 사내훈련이 29%, 사외 전문기관을 활용한 훈련(Off-JT)이 30.6%여서 외부 기관의존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교육훈련과 관련된 종래의 관행도 그다지 바뀌지 않았다는 증거이다.

셋째, 2000년 현재 고용규모는 경제위기 이전의 수준을 회복하였다. 실업율이 경제위기 이전 상태로의 회귀한 것도 이것과 밀접하게 관련되지만, 조사대상 기업의 평균 고용규모도 이 점을 입증한다. 396개사의 평균 고용규모는 2,206명(1997년)에서 1,926명(1998년)으로 급락하였다가 1999년에는 2,164명으로 다시 반등하였다. 고용규모의 외형상 변화는 그다지 눈에 뜨이지 않는 데에 반하여, ‘고용형태’는 빠르게 변화되었다.

넷째, 그것은 바로 비정규직의 급증이다. 조사대상 기업의 경우, 정규직 평균규모는 2,053명(1997년)에서 1,757명(1998년)으로 급락하였다가 1999년에는 1,903명으로 다시 반등하였음에 반하여, 비정규직은 동 기간에 5.4%, 7.1%, 8.9%로 지속적인 증가추세를 나타낸다. 고용형태의 변화, 즉, 비정규직의 지속적 증가현상은 사무관리직, 생산직을 막론하고 고용불안정을 촉발한다.

이런 점에서 고용조정의 최대의 목적이 시장경쟁적 규칙의 도입에 맞춰져 있었다는 주장은 재고되어야 한다. 고용체계에 있어 시장경쟁적 규칙은 부분적으로만 도입되었을 뿐 과거의 관행은 오히려 온전하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경제위기에 직면한 기업이 꾀했던 것은 과잉인력의 해소였다는 주장도 역시 재고되어야 한다. 기업들은 경제위기 이전부터 적정규모의 인력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위기극복의 와중에서 한시적으로 인원을 감축하였다가 다시 필요인원을 보충하는 상태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오히려 구조조정에서 기업이 원했던 바는 인력수요의 변동에 따른 경영권의 자유로운 행사였을 것이다. 정리해고가 합법화되었어도 노조의 막강한 저항에 부딪혀 사실상 경영권을 행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 대기업이 선택한 방식이 바로 고용형태의 유연화, 즉 ‘정규직의 비정규직화’이다. 비정규직화는 외주를 통한 생산공정의 분산이 보다 활발해지면서 생산직의 고용불안정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금융산업, 서비스산업을 중심으로 일부 사무관리직도 비정규직화의 대상이 되었지만, 주된 표적은 제조업분야의 생산직이라고 할 수 있다. 고용불안정은 사무관리직보다는 생산직에 집중되고 있으며, 고용형태의 변화에 의한 고용조건의 변화도 이 계층에서 보다 현저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고용불안정 추이를 관찰한 것이 도해한 것이 <그림 3>이다.

<고용불안지수1>은 고용불안정을 나타내는 세 개의 지수-인위적 인원감축 비율, 비정규직 비율, 자발적 이직율-를 합한 평균치이며, <고용불안지수2>는 여기에 ‘인위적 인원감축’을 제외한 평균치이다. 실업율은 1998년을 정점으로 지속적으로 하락하여 2001년에는 경제위기 이전의 수준을 회복하였다. 이것은 고용규모가 원래의 상태로 되돌아갔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고용불안정은 증가한다. <고용불안지수1>은 인위적 인원감축과 자발적 이직율의 감소에 의하여 약한 하향세를 보이지만, 인위적 인원감축을 제외한 <고용불안지수2>는 지속적인 상승세를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비정규직의 증가). 다시 말해, 지난 3-4년간의 고용조정은 고용형태상의 변화를 촉발하였고, 그 결과 특히 생산직에서 고용불안정이 급증했다. 고용규칙의 ‘미약한’ 변화와 고용형태의 ‘급격한’ 변화(비정규직의 급증)가 한국의 고용체계를 시장지향적 유형으로 전환시켰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다지 적합한 것은 아니다. 한국의 고용체계는 기존의 골격에 경쟁적 요소가 부분적으로 접목되는 형태로 변화했으며, 더딘 변화의 비용을 주로 비정규직 비대화로 상쇄시키는 전략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5. 제도적 저항 가설과 행위자간 흥정

 

이 글은 서두에서 구조조정 결과에 대한 두 개의 가설로부터 출발했다. ‘신자유주의적 가설’과 ‘제도적 저항가설’이 그것인데, 전자는 구조조정이 지배구조와 고용체계 전반에 강도 높게 적용되어 모든 영역에서 경영합리성과 효율성을 촉진하는 요소들이 광범위하게 도입되었다고 보는 시각이다. 이에 반하여, 후자는 기존 제도의 저항과 관성을 강조한다. 신자유주의적 개혁이 아무리 강하게 추진되었다고 할지라도 의도한 변화를 기대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정착, 발전된 제도, 관행, 의식은 단 기간에 변화되기 어려우며 오히려 新舊요인간 충돌이 일어나면서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초래된다고 보는 것이다.

이 글의 분석이 시사하는 바는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 세계화론이 상정하는 암묵적인 논리처럼(Rodrik, 1997),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이 지배구조, 작업조직, 고용관계에 연쇄적으로, 또는 순차적인 인과관계를 발생시키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구조조정의 외압에 직면하여 기업주들은 지배구조를 변화시키라는 정치적 요구를 수용하지 않을 수 없다. 2장의 분석에서 보듯이, 기업주들은 정부가 제시한 기준을 어떤 식으로든지 충족시키고자 한다. 그러나 그것은 기존의 기득권이 유지되는 한도 내에서의 변신이다. 정부 기준에 위배되지 않으면서 기존의 지배구조를 포기하지 않는 방법을 동시에 모색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행위자들간의 타협이 일어난다. 국가, 노조, 경영자간의 타협이 그것인데, 작업조직과 고용관계의 변화는 사실상 지배구조 개혁의 결과물이 아니라 주요 행위자간 정치적, 경제적 흥정(exchange)의 산물이다. 행위자간 서로 주고 받는 게임이 각 영역에서 동시에 발생하며, 그 총체적 결과가 변화의 최종 모습이다. ‘연쇄적 인과관계’가 아니라 ‘동시적 흥정’의 결과인 것이다.

둘째, 정치적, 경제적 흥정은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만들어낸다. 신자유주의적 가설이 시사하는 바와 같이 A-Firm으로의 전환이 의도한 결과라면, 지난 4년간의 변화는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A, G, J-Firm 어느 것과도 유사성이 없고 그렇다고 정확히 K-Firm이라고 단언하기도 어렵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도입된 새로운 요인들은 분명히 신자유주의적 가설과 부합하는 것들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기존의 골격은 그대로 유지된 채 부분적 접목이 이루어졌다. 각 영역에서 제한적으로 도입된 새로운 요소가 전체의 골격을 바꾼다면 그것은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형태일 것이다. 그러나, 이 글의 분석이 시사하는 바는 새로운 요소가 전체의 골격을 바꿀 만큼 강력하지도 않으며, 바꿔진 모양이 원래의 K-Firm과 별로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제도적 저항가설, 또는 탄력성 가설이 보다 적합한 것으로 나타난다. 변화량이 가장 큰 임금영역조차도 기본급, 수당, 상여금 구분이 변하지 않았고, 기본급의 결정 원리와 비중 역시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다만, 각종 인쎈티브제가 도입되었고, 임금의 구성요소에 유연성이 부가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탄력성 가설을 받아들이더라도 주의해야할 점이 있다. 사소한 변화라도 그것은 중요하다. 한국과 같이 제도적 관성이 큰 사회에서 이 정도의 변화가 일어났다면, 속도는 느리지만 무엇인가 새로운 것이 진행되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무엇인가에 대하여는 아직 판단하기 어렵다. 단, 이 글에서 상정한 3개의 이념형과는 다른 형태의 것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제도적 저항가설은 ‘정치적, 경제적 흥정’과정에서 구조조정의 목적 자체가 굴절될 수 있음을 함축한다. 구조조정의 원래 의도와 결과간의 격차를 측정하려면 행위자간 흥정과정을 보다 면밀히 분석해야 한다. 특히, 노조의 전략은 이런 관점에서 대단히 중요하다(이성균, 2002). 두 가지 점이 우리의 흥미를 끈다. 노조기업이 비노조기업보다 비정규직의 비중이 높고, 연봉제 도입 비율은 훨씬 작다는 점이 그것이다. 이런 차이는 경제적 위기상황에서 노조가 선택한 전략을 추론하는 데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즉, 1990년대 중반까지 한국의 노조는 집단이익대변의 기능에 충실했다. 그러나, 90년대 중반의 경영혁신을 겪으면서 서서히 독자적 이익을 추구하기 시작하였고 이후 경제위기 국면에서 독점기능을 강화한 흔적이 여러 면에서 발견된다. 특히, 대량 실업을 계기로 고용안정이 노사협상의 최대의 쟁점이 되자 노조는 내부자(insider)로 전환한 듯이 보인다. 경제위기가 가속화되고 구조조정의 외압이 거세지는 상황에서 내부자는 고용안정을 위한 안전판, 즉 외부자(outsider)를 만들어야 한다. 비정규직의 급증은 고용안정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노조가 선택한 전략적 산물이다. 그런데, 경영자와의 흥정에서 무엇이 교환되었는지를 알려면 두 행위자가 벌인 게임과정을 정확히 분석해야 한다. 그 속에 지배구조와 고용체계의 변화가 이런 형태로 귀결된 원인이 숨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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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요약

이 논문은 IMF사태 이후 한국에서 진행된 기업조직과 고용체계의 변화를 분석하여 구조조정의 결과에 대한 두 개의 대립된 가설을 검증하는 데에 목적이 있다. ‘신자유주의적 가설’과 ‘제도적 저항 가설’이 그것인데, 전자는 구조조정 정책이 기업지배구조와 고용체계를 영미형 자본주의로 재편하였다는 주장이고, 후자는 정부의 강력한 조치에도 불구하고 패러다임적 전환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본다. 즉, 기존의 제도와 관행이 정책효과를 무화시키거나 원래의 취지와는 다른 의외의 결과를 초래했다고 보는 것이다. 이 논문은 조사자료의 분석을 토대로 기업지배구조, 작업조직, 임금체계, 고용체계의 구조변화를 측정하였다. 분석결과는 대체로 ‘제도적 저항가설’을 지지한다. 경영투명성과 재무구조는 개선되었지만, 지배구조가 주주자본주의 형태로 전환하고 있는 증거는 희박하다. 이러한 관찰은 다른 부문에도 적용된다. 팀작업으로의 전환을 제외하고 작업조직상의 변화는 매우 미미해서 K-Firm 패러다임에 갇혀 있다. 임금구조와 고용체계의 경우에도 기존의 골격은 거의 변하지 않은 채 시장경쟁적 요소가 부분적으로 접목되는 형태를 보이고 있다. 새로운 요소가 전체의 골격을 바꿀 만큼 강력하지도 않으며, 바꿔진 모양이 원래의 K-Firm과 별로 다르지 않다. 이는 제도적 저항가설, 또는 탄력성 가설이 보다 적합함을 시사한다. 그러나, 한국과 같이 제도적 관성이 큰 경우 이 정도의 변화도 상당한 의미를 함축할 수 있기에 주목을 요한다.

 

Abstract

Title: The Structural Change of Firm Organization and Employment System

 

This paper is an analysis of recent structural changes of corporate governance, employment relations and wage system precipitated by structural adjustment policies. This paper attempts to verify two contradictory hypotheses regarding its effects: neoliberal hypothesis and institutional-resistance (or resilience) hypothesis. The neoliberal hypothesis argues that corporate governance and employment system are significantly transformed in ways which improve market competitiveness and flexibility. In contrast, the resilience hypothesis emphasizes persistence of institutions and customs deeply rooted in economic sphere and predicts little change in spite of government reform measures. The analysis of survey data supports the resilience hypothesis and provides fewer evidence in favor of the neoliberal hypothesis. The concluding remark carefully suggests that the new changes confirmed in the analysis are by no means negligible in terms of their future impact.

<핵심주제어>

구조조정, 기업지배구조, 고용체계, 임금구조, 신자유주의 가설, 제도적 저항가설

structural adjustment, corporate governance, employment system, wage, neoliberal hypothesis, institutional-resistance hypothe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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