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명시 95

시) 만해 한용운(韓龍雲) – 슬픔의 삼매, 비방, 심은 버들

만해 한용운(韓龍雲)의 詩 슬픔의 삼매 하늘의 푸른빛과 같이 깨끗한 죽음은 군동(群動)을 정화(淨化)합니다. 허무의 빛인 고요한 밤은 대지에 군림하였습니다. 힘없는 촛불 아래에 사리뜨리고 외로이 누워 있는 오오, 님이여! 눈물의 바다에 꽃배를 띄웠습니다. 꽃배는 님을 싣고 소리도 없이 가라앉았습니다. 나는 슬픔의 삼매(三昧)에 '아공(我空)'이 되었습니다. 꽃향기의 무르녹은 안개에 취하여 청춘의 광야에 비틀걸음치는 미인이여! 죽음을 기러기 털보다도 가볍게 여기고, 가슴에서 타오르는 불꽃을 얼음처럼 마시는 사랑의 광인이여! 아아, 사랑에 병들어 자기의 사랑에게 자살을 권고하는 사랑의 실패자여! 그대의 만족한 사랑을 받기 위하여 나의 팔에 안겨요. 나의 팔은 그대의 사랑의 분신인 줄을 그대는 왜 모르셔요. ..

배움/시 2010.07.08

시) 만해 한용운(韓龍雲) – 당신의 편지, 예술가, 생명

만해 한용운(韓龍雲)의 詩 당신의 편지 당신의 편지가 왔다기에, 꼬밭 매던 호미를 놓고 떼어 보았습니다. 그 편지는 글씨는 가늘고 글줄은 많으나, 사연은 간단합니다. 만일 님이 쓰신 편지이면, 글은 짧을지라도 사연은 길 터인데. 당신의 편지가 왔다기에 바느질 그릇을 치워놓고 떼어보았습니다. 그 편지는 나에게 잘 있느냐고만 묻고, 언제 오신다는 말은 조금도 없었습니다. 만일 님이 쓰신 편지이면 나의 일은 묻지 않더라도, 언제 오신다는 말은 먼저 썼을 터인데. 당신의 편지가 왔다기에 약을 달이다 말고 떼어 보았습니다. 그 편지는 당신의 주소는 다른 나라의 군함입니다. 만일 님이 쓰신 편지이면 남의 군함에 있는 것이 사실이라 할 지 라도 편지에는 군함에서 떠났다고 하였을 터인데. 예술가 나는 서투른 화가(畵家..

배움/시 2010.07.08

시) 만해 한용운(韓龍雲) – 쾌 락, 거문고 탈 때, 밤은 고요하고, 꽃이 먼저 알아

만해 한용운(韓龍雲)의 詩 쾌 락 님이여, 당신은 나를 당신 계신 때처럼 잘 있는 줄로 아십니까. 그러면 당신은 나를 아신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당신이 나를 두고 멀리 가신 뒤로는, 나는 기쁨이라고는 달도 없는 가을 하늘에 외기러기의 발자취만치도 없습니다. 거울을 볼 때에 절로 오던 웃음도 나오지 않습니다. 꽃나무를 심고 물 주고 북돋우던 일도 아니합니다. 고요한 달 그림자가 소리없이 걸어와서 엷은 창에 소근거리는 소리도 듣기 싫습니다. 가물고 더운 여름 하늘에 소낙비가 지나간 뒤에, 산모퉁이의 작은 숲에서 나는 서을한 맛도 달지 않습니다. 동무도 없고 노리게도 없습니다. 나는 당신 가신 뒤에 이 세상에서 얻기 어려운 쾌락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이따금 실컷 우는 것입니다. 거문고 탈 ..

배움/시 2010.07.08

시) 만해 한용운(韓龍雲) – 잠 없는 꿈, 착인

만해 한용운(韓龍雲)의 詩 잠 없는 꿈 나는 어느 날 밤에 잠없는 꿈을 꾸었습니다. 『나의 님은 어디 있어요. 나는 님을 보러 가겠습니다. 님에게 가는 길을 가져다가 나에게 주세요, 님이여』 『너의 가려는 길은 너의 님이 오히려 길이다. 그 길을 가져다 너레게 주면 너의 님은 올 수가 없다』 『내가 가기만 하면 님은 아니 와도 관계가 없습니다』 『너의 님이 오히려 길을 너에게로 갖다 주면 너의 님은 다른 길로 오게 된다 네가 간대도 너의 님을 만날 수가 없다』 『그러면 그 길을 가져다가 나의 님에게 주셔요』 『너의 님에게 주는 것이 너에게 주는 것과 같다. 사람마다 저의 길이 각각 있는 것이다』 『그러면 어찌하여야 이별한 님을 만나보겠습니까』 『네가 너를 가져다가 너의 가려는 길에 주어라. 그리하고 쉬지..

배움/시 2010.07.08

시) 만해 한용운(韓龍雲) – 포도주, 진 주, 자유정조(自由貞操)

만해 한용운(韓龍雲)의 詩 포도주 가을 바람과 아침 볕에 마치맞게 익은 향기로운 포도를 따서 술을 빚었습니다. 그 술 괴는 향기는 가을 하늘을 물들였습니다. 님이여, 그 술을 연잎잔에 가득히 무어서 님에게 드리겠습니다. 님이여, 떨리는 손으로 거쳐서 타오르는 입술을 축이셔요. 임이여, 그 술은 한 밤을 지나면 눈물이 됩니다. 아아, 한 밤을 지나면 포도주가 눈물이 되지마는, 또 한 밤을 지나면 나의 눈물이 다른 포도주가 됩니다. 오오, 임이여! 진 주 언제인지 내가 바닷가에 가서 조개를 주웠지요. 당신은 나의 치마를 걷어 주셨어요, 진흙 묻는다고. 집에 와서는 나를 어린아이 같다고 하셨지요, 조개를 주워다가 장난한다고. 그리고 나가시더니 금강석을 사다 주셨습니다, 당신이. 나는 그 때에 조개 속에서 진주..

배움/시 2010.07.08

시) 만해 한용운(韓龍雲) – 길이 막혀, 달을 보며, 후 회

만해 한용운(韓龍雲)의 詩 길이 막혀 당신의 얼굴은 달도 아니건만 산 넘고 물 넘어 나의 마음을 바칩니다. 나의 손길은 왜 그리 짧아서 눈 앞에 보이는 당신의 가슴을 못 만지나요. 당신이 오기로 못 올 것이 무엇이며 내가 가기로 못 갈 것이 없지마는 산에는 사다리가 없고 물에는 배가 없어요. 뉘라서 사다리를 떼고 배를 깨뜨렸습니까. 나는 보석으로 사다리를 놓고 진주로 배 모아요. 오시려도 길이 막혀 못 오시는 당신을 기루어요. 달을 보며 달은 밝고 당신이 하도 기루었습니다. 자던 옷을 고쳐 입고, 뜰에 나와 퍼지르고 앉아서, 달을 한참 보았습니다. 달은 차차차 당신의 얼굴이 되더니 넓은 이마, 둥근 코, 아름다운 수욤이 역력히 보입니다. 간 해에는 당신의 얼굴이 달로 보이더니, 오늘 밤에는 달이 당신의 ..

배움/시 2010.07.08

시) 최남선 - 해에게서 소년에게, 봄길

최남선 作 해에게서 소년에게 1 처얼썩 처얼썩 척 쏴아아. 따린다 부순다 무너버린다. 태산같은 높은 뫼 집채같은 바윗돌이나 요것이 무어야 요게 무어야. 나의 큰 힘 아느냐 모르느냐 호통까지 하면서 따린다 부순다 무너버린다. 처얼썩 처얼썩 척 튜르릉 콱. 2 처얼썩 처얼썩 척 쏴아아. 내게는 아무것 두려움 없어 육상에서 아무런 힘과 권을 부리던 자라도 내 앞에 와서는 꼼짝 못하고 아무리 큰 물결도 내게는 행세하지 못하네. 내게는 내게는 나의 앞에는 처얼썩 처얼썩 척 튜르릉 콱. 3 처얼썩 처얼썩 척 쏴아아. 나에게 절하지 아니한 자가 지금까지 있거든 통기하고 나서 보아라. 진시황 나팔륜 너희들이냐. 누구 누구 누구냐 너희 역시 내게는 굽히도다. 나하고 겨룰 이 있건 오너라. 처얼썩 처얼썩 척 튜르릉 콱. ..

배움/시 2010.07.06

시)서정윤 시집 홀로서기 中 눈 오는 날엔

서정윤 시집 홀로서기 中 눈 오는 날엔 눈오는 날에 아이들이 지나간 운동장에 서면 나뭇가지에 얹히지도 못한 눈들이 더러는 다시 하늘로 가고 더러는 내 발에 밟히고 있다. 날으는 눈에 기대를 걸어보아도, 결국 어디에선가 한방울 눈물로서 누군가의 가슴에 인생의 허전함을 심어주겠지만 우리들이 우리들의 외로움을 불편해 할 쯤이면 멀리서 반가운 친구라도 왔으면 좋겠다. 날개라도, 눈처럼 연약한 날개라도 가지고 태어났었다면 우연도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만남을 위해 녹아지며 날아보리라만 누군가의 머리 속에 남는다는 것 오래오래 기억해 주기를 바라는 것조차 한갓 인간의 욕심이었다는 것을 눈물로 알게 되리라. 어디 다른 길이 보일지라도 스스로의 표정을 고집함은 그리 오래지 않을 나의 삶을 보다 답게 살고 싶음이고 마지..

배움/시 2010.07.06

시) 만해 한용운(韓龍雲) – 비밀, 거짓 이별, 참말인가요

늙은코난(OLD CONAN) 추천 문학, 시, 소설 만해 한용운(韓龍雲) 비밀 비밀입니까, 비밀이라니요, 나에게 무슨 비밀이 있겠습니까. 나는 당신에게 대하여 비밀을 지키려고 하였습니다마는, 비밀은 야속히도 지켜지지 아니하였습니다. 나의 비밀은 눈물을 거쳐서 당신의 시각(視覺)으로 들어갔습니다. 나의 비밀은 한숨을 거쳐서 당신의 청각(聽覺)으로 들어갔습니다. 나의 비밀은 떨리는 가슴을 거쳐서 당신의 촉각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밖의 비밀은 한 조각 붉은 마음이 되어서 당신의 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비밀은 소리 없는 메아리와 같아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거짓 이별 당신과 나와 이별한 대가 언제인지 아십니까. 가령 우리가 좋을데로 말하는 것과같이, 거짓 이별이라 할 지..

배움/시 2010.07.03

시) 만해 한용운(韓龍雲) – 오셔요, 가지 마셔요

늙은코난(OLD CONAN) 추천 문학, 시, 소설 만해 한용운(韓龍雲) 오셔요 오셔요. 당신은 오실 때가 되었어요, 어서 오셔요. 당신은 당신이 오실 때가 언제인지 아십니까. 당신이 오실 때는 나의 기다리는 때입니다. 당신은 나의 꽃밭으로 오셔요. 나의 꽃밭에는 꽃들이 피어있습니다. 만일 당신을 쫓아오는 사람이 있으면, 당신은 꽃 속으로 들어가서 숨으십시요. 나는 나비가 되어서 당신이 숨은 꽃 위에 가서 앉겠습니다. 그러면 쫓아오는 사람은 당신을 찿을 수는 없습니다. 오셔요. 당신은 오실 때가 되었습니다. 어서 이리 오셔요. 당신은 나의 품으로 오셔요. 나의 품에는 부드러운 가슴이 있습니다. 만일 당신을 쫓아오는 사람이 있으면, 당신은 머리를 숙여서 나의 가슴에 대십시오. 나의 가슴은 당신이 만질 때에..

배움/시 2010.07.03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