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국사-근현대

자서전) 백범일지 - 김구선생 일대기 18

올드코난 2010. 7. 10.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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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일지

김구선생 일대기

        

3. 방랑의 길

 

 옥에서는 나왔으나 어디로 갈 바를 몰랐다. 늦은 봄 안개가 자욱한 데다가 인천은

연전 서울 구경왔을 때에 한 번 지났을 뿐이라, 길이 생소하여 어디가 어딘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지척을 분간할 수 없는 캄캄한 밤에 물결소리를 더듬어서 모래사장을

헤매다가 훤히 동이 틀 때에 보니 기껏 달아난다는 것이 감리서 바로 뒤 용동

마루턱이에 와 있었다. 잠시 숨을 돌리고 휘휘 둘러보노라니 수십 보밖에 순검 한

명이 칼 소리를 제그럭제그럭 하고 내가 있는 데로 달려오고 있었다. 나는 길가 어떤

가겟집 함실 아궁이를 덮은 널빤지 밑에 몸을 숨겼다. 순검의 흔들리는 환도집이 바로

코끝을 스칠 듯이 지나갔다.

  아궁이에서 나오니 벌써 환하게 밝았는데, 천주교당의 뾰족집이 보였다. 그것이

동쪽인 줄 알고 걸어갔다.

  나는 어떤 집에 가서 주인을 불렀다. 누구냐 하기로 "아저씨 나와 보세요."하였더니

그는 나와서 의심스러운 눈으로 나를 보았다. 나는 김창수인데 간밤에 인천감리가

비밀히 석방하여 주었으나 이 꼴을 하고 대낮에 길을 갈 수가 없으니 날이 저물

때까지 집에 머물게 해 달라고 청하였다. 주인은 안된다고 거절하였다.   얼마를

가노라니까 모군꾼 하나가 상투바람에 두루마기를 걸치고 소리를 하며 내려왔다. 그는

식전에 막걸리 집으로 가는 모양이었다. 나는 또 사실을 말하고 빠져날갈 길을

물었더니, 그 사람은 대단히 친절하게 나를 이끌고 좁은 뒷골목 길로 요리조리 사람의

눈에 안띄게 화개동 마루터기까지 가서 이리 가면 수원이요, 저리 가면 시흥이니,

마음대로 어느 길로든지 가라고 일러주었다. 미처 그의 이름을 못 물어 본 것이

한이다.

  나는 서울로 갈 작정으로 시흥 가는 길로 들어섰다. 내 행색을 보면 누가 보든지

참말로 도적놈이라고 할 것이다. 염병에 머리털은 다 빠져서 새로 난 머리카락을

노끈으로 비끌어 매어서 솔잎상투로 짜고 머리에는 수건을 동이고, 두루마기도 없이

동저고릿바람인데, 옷은 가난한 사람의 것이 아닌 새 것이면서 땅 밑으로 기어 나올

때에 군데군데 묻은 흙이 물이 들어서 스스로 살펴보아도 평상한 사람으로 보이지는

아니하였다.

  인천 시가를 벗어나서 5리쯤 가서 해가 떴다. 바람결에 호각소리가 들리고 산에도

사람이 희끗희끗 하였다. 내 이런 꼴로는 산에 숨더라도 수사망에 걸릴 것 같으므로

허허실실로 차라리 대로변에 숨으리라 하고 길가 잔솔밭에 들어가서 솔포기 밑에 몸을

감추고 드러누웠다. 얼굴이 감추어지지 않는 것은 솔가지를 꺾어서 덮어놓았다. 아니나

다를까, 칼찬 순검과 벙거지 쓴 압뢰들이 지껄이며, 내가 누워 있는 옆으로 지나갔다.

그들의 주고 받는 말에서 나는 조덕근은 서울로, 양봉구는 배로 달아난 것을 알았고,

내게 대해서는 "김창수는 장사니까 잡기 어려울 거야. 허기야 잘 달아났지. 옥에서

썩으면 무얼하게."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의 주인이 누군지 나는 다 알 수

있었다.

  나는 온종일 솔포기 밑에 누워 있다가 순검이 누구누구며 압뢰 김장석 등이 도로 내

발부리를 지나서 인천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고야 누웠던 자리에서 일어나 나오니 벌써

황혼이었다. 나오기는 하였으나 어제 이른 저녁밥 이후로는 물 한 방울 못 먹어 보고

눈 한 번 못 붙인 나는 배는 고프고 몸은 곤하여 촌보를 옮기기가 어려웠다.

  나는 가까운 동네 어떤 집에 가서, 황해도 연안에 가서 쌀을 사 가지고 오다가

북성고지 앞에서 배 파선을 한 서울 청파 사람이라고 말하고 밥을 좀 달라고 하였더니

주인이 죽 한 그릇을 내다 주었다. 나는 누구에게 정표를 받아서 몸에 지니고 있던

화류 면경을 꺼내어 그 집 아이에게 뇌물로 주고 하룻밤 드새기를 청하였으나 거절을

당하였다. 그러고 보니 죽 한 그릇에 엽전 한 냥을 주고 사먹은 셈이 되었다. 그때

엽전 한 냥이면 쌀 한 말 값도 더 되었다. 나는 또 한 집 사랑에 들어갔으나 또

퇴짜를 맞고 하릴없이 방앗간에서 자기로 하였다. 나는 옆에 놓인 짚단을 날라다가

깔고 덮고 드러누웠다. 인천 감옥 이태의 연극이 이에 막을 내리고 방앗간 잠이 둘째

막의 개시로구나, 하면서 소리를 내어서 "손무자" "삼략"을 외웠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거지가 글을 다 읽는다."

하는 것은 상관없으나, 또 어떤 사람이,

  "예사 거지가 아니야. 아까 저 사랑에 온 것을 보니 수상한 사람이야."

하는 말에는 대단히 켕겼다. 그래서 나는 미친 사람의 모양을 하노라고 귀둥대둥 혼자

욕설을 퍼붓다가 잠이 들었다.

  새벽 일찍 일어나서 버리고개를 향하고 소로로 가다가 밥을 빌어 먹을 생각으로

어떤 집 문전에 섰다. 나는 거지들이 기운차고 넌출지게 밥을 내라고 떠들던 양을

생각하고,

  "밥 좀 주시우."

하고 불러 보았으나, 내깐에는 소리껏 외친다는 것이 개가 짖을 만한 소리밖에 안

나왔다. 주인은 밥은 없으니 숭늉이나 먹으라고 숭늉 한 그릇을 주었다. 그것을 얻어

먹고 또 걸었다.

  오랫동안 좁은 세계에서 살다가 넓은 천지에 나와서 가고 싶은 대로 활활 갈 수

있는 것이 참으로 신통하고 상쾌하였다. 나는 배고픈 줄도 모르고 옥에서 배운 시조와

타령을 하면서 부평, 시흥을 지나 그날 당일로 양화도 나루에 다다랐다. 강만 건너면

서울이건마는 날은 저물고 배는 고프고, 또 나룻배를 탈래야 선가 줄 돈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동네 서당을 찾아 들어갔다.

선생과 인사를 청한즉 그는 내가 나이 어리고 의관이 분명치 못함을 봄인지 초면에

하대를 하였다. 나는 정색하고,

  "선생이 이렇게 교만무례하고 어찌 남을 가르치겠소? 내가 일시 운수가 불길하여

길에서 도적을 만나 의관과 행리를 다 빼앗기고 이 꼴로 선생을 대하게 되었소마는

사람을 그렇게 괄시하는 법이 어디 있소. , 예절을 알 만한 이를 찾아온다는 것이,

어 참, 봉변이로고."

하고 일변 책하고 일변 빼었다. 선생은 곧 사과하고 다시 인사를 청하였다. 그러고는

그날 밤을 글 토론으로 지내고 아침에는 선생이 아이 하나에게 편지를 써 주기에

나룻배 주인에게 전하여 나를 선가 없이 건너게 하였다.

 (다음페이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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