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國史(한국사) 연대표 (기원후 AD 1000년부터 1299년까지 한국의 역사 연대표 정리)
1002년 6위(衛)의 군영(軍營)을 새로 설치.
1004년 과거법(科擧法)을 개정.
1007년 화산분출로 탐라 해중에 산이 생겨남.
1009년 서북면순검사(西北面巡檢使) 강조(康兆)가 목종을 폐하고(980~) 현종(顯宗)을 즉위시킴(~1031).
1010년 제2차 거란침입. 순무사(巡撫使) 양규(楊規)가 곽주(郭州)에서 거란군을 섬멸.
1011년 거란군에게 개경(開京) 함락, 현종 나주(羅州)로 파천. 양규˙정성(鄭成) 등이 거란군을 파하고 여러 성을 회복. 현종 환도.
1012년 도절도사(道節度使)를 폐지하고, 5도호부(都護府) 75목(牧) 안무사(按撫使)를 둠.
1014년 흥화진(興化鎭)에서 거란군 격퇴.
1015년 거란군이 흥화진˙통주(通州)˙용주(龍州)에 침입.
1016년 곽주에서 거란군 격퇴.
1018년 제3차 거란침입. 강감찬(姜邯贊)이 흥화령(興化嶺)에서 거란군을 대파.
1019년 구주대첩(龜州大捷).
1020년 거란과 강화.
1024년 대식국(大食國:아라비아)의 상인 100여 명이 특산물을 가지고 무역하러 옴. 개경을 확장하여 5부(部) 35방(坊)˙314리(里)로 정함.
1029년 여진 해적선 30여 척의 침범을 격퇴.
1031년 국자감시(國子監試)를 신설.
1033년 북경(北境)에 천리장성 축조를 개시.
1034년 덕종 죽고(1016~), 정종(靖宗) 즉위(~1046).
1037년 거란의 병선이 압록강에 침입.
1044년 장주(長州)˙정주(定州)˙원흥진(元興鎭)에 축성함으로써 천리장성 완성.
1046년 정종 죽고(1028), 문종(文宗) 즉위(~1083).
1049년 동번(東蕃) 해적이 임도현(臨道縣)에 침입. 동여진 해적이 금양현(金壤縣) 진명(鎭溟)에 침입. 소굴을 소탕함.
1055년 최충(崔沖)이 사학(私學)을 일으킴(12公徒).
1058년 승려 해린(海鱗)을 국사(國師)로, 난원(爛圓)을 왕사(王師)로 함. 사면기광군(四面奇光軍)을 설치.
1061년 내사령(內史令)을 중서령(中書令)으로, 내사문하성(內史門下省)을 중서문하성(中書門下省)으로 고침.
1062년 호경(鎬京)을 다시 서경으로 고침.
1063년 국자감의 규율과 직제를 정비 강화. 거란, ‘대장경(大藏經)’을 보내옴.
1066년 거란, 국호를 요(遼)로 고침.
1067년 의천(義天)을 우세승통(祐世僧統)으로 삼음. 흥왕사(興王寺) 준공.
1068년 양주(楊州)를 남경(南京)으로 하고 신궁을 건립. 최충(崔沖)이 구제학당(九齊學堂) 건립.
1071년 김제(金悌)를 송나라에 사신으로 보내 국교를 회복.
1073년 동여진 15주, 서여진 2진, 여진족 12촌 등을 편입.
1076년 등과자(登科者)의 급전제(給田制)를 정함.
1080년 보병과 기병 3만으로 정주성 외곽의 여진족을 토벌함.
1083년 문종 죽고(1019~), 순종(順宗) 즉위(~1084). 순종 죽고(1047~), 선종(宣宗) 즉위(~1095).
1094년 선종 죽고(1049), 헌종(獻宗) 즉위(~1095).
1095 중추원을 추밀원(樞密院)으로 고침. 헌종이 숙종(肅宗)에게 선위(禪位).
1097년 국청사(國淸寺) 낙성. 천태종(天台宗) 일어남.
1101년 남경개창도감(南京開創都監)을 두고, 남경 신궁(新宮) 조영 착수.
1102년 고주법(鼓鑄法)을 제정, 해동통보 1만 5천 관을 주조하여 문무양반˙군인에게 나누어줌.
1104년 윤관, 서북면행영병마도통(西北面行營兵馬都統)에 임명됨. 윤관 여진과 싸워 결맹(結盟)하고 돌아옴.
1105년 숙종 죽고(1054~), 예종(睿宗) 즉위(~1122). 탐라국을 폐하고 군(郡)으로 함.
1107년 윤관을 원수, 오연총(吳延寵)을 부원수로 하여 여진토벌의 군사를 일으킴. 점령지역에 9성(城)을 쌓음.
1108년 여진토벌군이 포위되자 척준경(拓俊京)이 이를 구함. 여진이 웅주성(雄州城)을 포위공격, 오연총이 구원.
1109년 오연총이 길주를 구(救)함. 오연총이 공검진(公險鎭)에서 패전. 윤관 다시 길주를 구함. 9성을 여진에게 돌려줌. 국학(國學)에 7재(齋)를 둠.
1110년 제술(製述)˙명경(明經) 등의 과거과목을 제정.
1112년 혜민국(惠民局) 설치.
1119년 국학(國學)에 처음으로 양현고(養賢庫)를 둠.
1122년 이자겸(李資謙)이 중서령(中書令)이 되어 집권.
1128년 이자겸의 난. 궁궐을 태우고, 인종을 사가에 이어(移御)시킴. 혜민국(惠民局) 설치.
1129년 묘청(妙淸)이 칭제건원(稱帝建元)을 주장.
1131년 노장(老莊)의 학문을 금지.
1135년 묘청의 난.
1142년 8도에 어사(御史)를 보내어 주현(州縣)의 관리를 감찰.
1145년 김부식이 《삼국사기(三國史記)》 50권을 편찬.
1147년 처음으로 승보시(陞補試) 시행.
1149년 5군(軍)을 3군으로 변경.
1155년 완산(完山)에서 농민 반란.
1162년 이천(伊川) 등지에서 대규모의 민란 발생.
1163년 남도지방에 농민반란 발생.
1164년 의종, 인지재(仁智齋)에 행차. 야반까지 유연(遊宴), 시종 정중부(鄭仲夫) 등 공분(公憤).
1168년 탐라에서 농민반란 발생.
1169년 별궁 건축을 위해 별공(別貢)을 징수.
1170년 정중부의 난. 의종을 추방하고, 명종(明宗)을 세움.
1171년 궁궐에 불이 나서 전우(殿宇) 모두 불탐.
1172년 정중부, 서북면병마사(西北面兵馬使)가 됨. 서북면에서 민란 발생.
1173년 계사(癸巳)의 난, 동북병마사 김보당(金甫當)이 난을 일으킴. 문신 축출, 무인(武人) 임용.
1174년 서경유수 조위총(趙位寵)의 난. 서북방 40여 성이 호응. 정중부, 문하시중(門下侍中)이 됨.
1175년 관군, 연주(漣州)를 함락, 서경을 포위.
1176년 망이(亡伊)˙망소이(亡所伊)의 난. 남부지방에 민란 성행. 대규모 관군 조직.
1177년 망이˙망소이의 난을 평정.
1179년 경대승(慶大升), 정중부를 죽이고 반대파를 처형. 도방(都房)을 설치.
1180년 무신(武臣)들이 사병(私兵)을 두기 시작.
1184년 이의민(李義旼)이 정권 장악.
1193년 김사미(金沙彌)의 난.
1196년 최씨무신정권(崔氏武臣政權) 성립. 최충헌(崔忠獻)이 이의민(李義旼)을 멸하고 정권을 장악.
1197년 최충헌, 명종을 폐하고, 신종(神宗)을 세움(~1204).
1198년 만적(萬積)의 난.
1200년 최충헌, 사저에 도방(都房) 설치.
1202년 탐라민란 평정. 경주˙운문˙울진 등이 연합하여 민란을 일으켜 주군(州郡)을 장악.
1206년 최충헌을 진강후(晉康侯)에 봉하고, 부(府)를 흥녕(興寧)이라 함.
1209년 희종(熙宗), 최충헌의 집으로 옮겨갔다가 연경궁(延慶宮)으로 돌아옴. 최충헌, 교정도감(敎定都監) 설치.
1211년 최충헌이 희종을 폐하고 강종(康宗)을 세움(~1213).
1216년 몽골군에 쫓긴 거란유민이 영삭진(寧朔鎭)˙정계진(定戒鎭)에 침입하여 재물을 약탈. 거란병, 황주를 침공.
1217년 5군(軍), 태조탄(太祖灘)에서 거란병에게 대패.
1218년 거란병 재침. 조충 등이 거란병을 강동성(江東城)으로 패주시킴.
1219년 조충˙김취려(金就礪), 몽골 및 동진(東眞)과 함께 강동성을 공략. 최충헌 죽고, 아들 최우(崔瑀) 집권.
1222년 몽골에 대비하여 선주(宣州)˙화주(和州)˙철관(鐵關)에 축성.
1223년 처음으로 융기도감(戎器都監)을 둠. 금주에 침입한 왜구(倭寇)를 격퇴.
1225년 최우, 정방정치(政房政治) 시작(~1249).
1226년 경상도 거제(巨濟)에 침입한 왜구를 현령 진용갑(陳龍甲)이 격파.
1227년 경상도 웅신현(熊神縣)에 침입한 왜구를 격퇴. 왜국이 국서를 보내어 사죄하고 수호통상을 청함.
1228년 동진(東眞), 정주(定州)˙장주(長州)에 침입.
1231년 제1차 몽골군 침입. 살리타[撒禮塔]를 원수로 삼아 평주(平州)를 치고 개경에 육박.
1232년 강화도(江華島) 천도. 다루가치[達魯花赤]를 축출. 김윤후(金允侯)가 지휘하는 부곡민이 처인성(處仁城)에서 항전. 살리타를 사살.
1233년 필현보(畢賢甫)˙홍복원(洪福源) 등이 모반. 필현보는 처형되고, 홍복원은 요양(遼陽)으로 달아나 반고려세력을 형성.
1234년 최윤의(崔允儀)의 《상정고금예문(詳定古今禮文)》(50권)을 주자(鑄字)로 인행(印行).
1235년 몽골군, 용강(龍岡)˙삼등(三登)˙용진진(龍津鎭)˙동주성(洞州城) 등을 함락, 동경(東京)까지 침입. 야별초군(夜別抄軍)이 지평(砥平)에서 몽골군 격파.
1236년 개천(价川)˙죽주(竹州)에서 몽골군을 크게 격파. 이규보(李奎報),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지음. 이연년(李延年)의 난을, 김경손(金慶孫)이 평정. 강도(江都)에서 대장경의 재조(再雕) 시작.
1238년 몽골군에 의해 동경의 황룡사탑˙황룡사장륙상(皇龍寺丈六像)이 불탐. 조현습(趙玄習) 등이 몽골에 투항, 홍복원의 지휘를 받음.
1239년 몽골군 철수. 몽골 사신이 와서 왕의 친조(親朝)를 조유(詔諭).
1241년 족자(族子) 영녕공(永寧公)을 왕자(王子)라 칭하고 몽골에 보내어 볼모[禿魯花]로 삼음.
1247년 아모간(阿母侃)이 지휘, 제4차 몽골군 침입.
1249년 몽골, 고려왕의 출륙친조(出陸親朝)를 강요. 별초군, 동계(東界)에 침입한 동진군을 격파. 최우 죽고, 최항(崔沆)이 정권 장악.
1253년 야굴(也窟)의 몽골군이 제5차 침입. 고종 출륙하여 승천(昇天) 신궐(新闕)에서 야굴의 사자와 회견.
1254년 차라대(車羅大) 제6차 몽골군 침입.
1255년 차라대 제7차 몽골군 침입.
1256년 수군을 남하시켜 몽골군을 막게 함. 몽골의 차라대(車羅大), 고려왕자의 몽골방문 요청. 차라대 철군.
1257년 최항 죽고, 최의(崔誼) 집권. 차라대의 제8차 몽골군 침입.
1258년 최씨무신정권 붕괴. 충주의 별초군이 박달령서 몽골군 격퇴.
1259년 성주 기알성의 야별초군과 주민 몽골군 대파. 한계성(寒溪城)에서 몽골군 격멸. 고종 죽고(1192~), 태자 전(k) 몽골로 감.
1261년 몽골, 요양(遼陽)의 고성(故城) 수리, 안무고려군민총관부(安撫高麗軍民摠管府)를 둠. 동서학당(東西學堂)교역장 설치.
1269년 임연(林衍)이 원종을 폐하고, 안경공(安慶公) 창(I)을 세웠으나 반년 만에 원종이 복위.
1270년 강화에서 환도. 삼별초군(三別抄軍)의 항몽전(抗蒙戰). 삼별초군의 해산명령에 배중손(裵仲孫) 등이 항쟁 시작.
1271년 삼별초군, 합포(合浦)˙동래(東萊)를 공격, 금주(金州)를 점령. 세자 심(諶)을 몽골에 보냄.
1272년 세자 심이 변발(辨髮)과 호복(胡服)으로 돌아옴.
1273년 김방경(金方慶)이 원군(元軍)과 함께 탐라의 삼별초군을 공략. 탐라에 다루가치총관부[達魯花赤摠管府]를 둠.
1274년 원(元)이 전함 300척을 만들게 함. 제1차 여원연합군(麗元聯合軍) 일본정벌 실패.
1278년 충렬왕, 원의 관리와 원군의 철수 및 고려인 송환을 요구.
1280년 일본 정벌을 위해 정동행성(征東行省)을 둠.
1281년 제2차 여원연합군의 일본정벌 실패.
1285년 일연(一然) 《삼국유사(三國遺事)》 저술.
1287년 이승휴(李丞休) 《제왕운기(帝王韻紀)》 저술.
1290년 충렬왕, 강화로 피란. 국사˙문적(文籍) 강화로 옮김.
1291년 원의 군대와 함께 합단군을 연기(燕岐)에서 격파. 상서성(尙書省) 폐지, 다시 중서성(中書省)을 둠.
1292년 개경으로 환도.
1294년 원나라 세조(世祖) 죽고, 동방정벌 중지. 탐라에서 원나라 철수.
1295년 탐라를 제주(濟州)로 고침.
1298년 충렬왕 태상왕(太上王)이 되고, 충선왕(忠宣王) 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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