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무제가 건국한 후한은 고조 유방이 세운 전한 시대의 연장선에 있다. 유방의 후손인 광무제는 이를 분명히 해 후한 창업을 한왕조 부흥(한의 재건)임을 분명히 했다. 우선 광무제는 낙양을 첫 도읍으로 정하고, 장안을 함락시킨 뒤에도 황폐한 장안으로 천도하는 대신 낙양을 그대로 도성으로 유지했다. 낙양이 장안의 동쪽에 있기때문에 전한을 서한, 후한을 동한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한 왕조를 화덕(火德)이라 여겼던 광무제는 낙양의 「낙(洛)」에 들어간 수(水)자 변을 싫어해서 낙양의 이름을 낙양(雒陽)으로 바꾸었다. 무엇보다 광무제 유수의 훌륭한 점은 백성들의 고통을 누구보다 잘 이해한 황제였다는 점이다.전한 말과 왕망의 신나라를 거치며 중국 전역이 피폐해져 전한 전성기에는 약 6천만 명에 달하던 인구가 광무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