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세계대전

일본 제국주의 몰락의 상징 전함 야마토 침몰 설명

올드코난 2015. 12. 16.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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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미국 진주만에 기습을 하면서 태평양 전쟁이 시작된다. 얼마되지 않은 시점인 1941년 12월 16일 취역한 일본제국의 야마토(일본어: 大和 やまと) 전함은 야마토급 전함의 1번함으로서 당시 최대 전함이었고 오늘날의 항공모함과도 비교해 거대한 전함이었다. 하지만, 이 비효율적인 전함은 결국 허무하게 침몰하고 말았는데 오늘날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에 대해 정리해 본다.

제2차세계대전, 일본 제국주의 몰락의 상징 비극의 군함 전함 야마토 침몰 설명


1. 전함 야마토 개요 및 제원

야마토 함은 1937년11월4일 기공해 1940년 8월8일 진수했고, 1941년 12월 16일 배치된다.

야마토 제원은 기준배수량 65,000톤, 만재배수량 72,809톤, 길이 263m, 최대폭 38.9m, 증기터빈 4기 4축 추진으로 15만 마력에 최대속도 27노트, 항속거리 16노트에서 7,200해리, 연료탑재량 6,300톤, 준공시 승무원 2,800명(최종 3332명) 당대 최대 규모의 전함이었다. 야마토의 무장은 주포 460mm 3연장포 3기 9문, 부사포 155mm 3연장포 4기 12문, 고사포 127mm 2연장 6기 12문, 기관포 25mm 3연장 8기 24문, 13mm 2연장 2기 4문이라는 막강한 화력을 가지고 있었다. 취역 후 개장을 거치면서 방공능력을 높이기 위하여 155mm부포를 3연장 2기 6문으로 절반으로 줄이는 대신 127mm고사포를 2연장 12기 24문으로, 25mm기관포는 3연장 44기 132문, 13mm 기관포는 2연장 8기 16문으로 대대적으로 늘린다.

야마토 이외에도 자매함으로 무사시 및 시나노가 있는데, 야마토와 무사시는 전함으로 건조되었지만 시나노는 건조도중 항공모함으로 전용되었다가 처녀항해에서 미군 잠수함에게 격침당했다.



2. 전함 야마토 이름의 유래

전함의 이름 야마토(大和, ヤマト)는 일본(日本)의 옛이름으로 당시 일본왕이었던 히로히토가 지었다.


3. 운항

전함 야마토는 1937년 11월 4일 해군 구레 공창에서 기공하여 1940년 8월 8일 진수, 의장공사 후 1941년 12월 16일 준공되어 일본제국 연합함대 기함(1943년 2월 11일 무사시로 연합함대 기함 이전)으로 1942년 2월 12일 태평양전쟁의 개전을 맞는다. 야마토는 취역과 동시에 기함으로서의 역할을 하는데 사령부 시설 개량이 이루어졌던 동형의 함 무사시가 취역할 때(1942년 8월)까지 계속되었다.

이후 야마토는 미드웨이, 마리아나, 레이테 등등의 전장에 출격하였지만 이렇다 할 활약은 보이지 못했고, 연료를 많이 소모하는 대형전함이었던 야마토는 항구에 묶여있던 신세가 되고 말았다.



4. 야마토의 최후

1945년 초 미군이 오키나와 문턱까지 이르자 일본해군은 야마토의 460mm포로  지상포대로의 역할을 맡기도록 결정하고,(기쿠스이 1호 작전) 1945년 4월 6일 오키나와행 편도분의 연료 4,000톤과 1170발의 주포탄 및 각종 물자를 적재한 야마토가 경순양함 야하기와 8척의 구축함으로 된 함대를 이끌고 출발한다.(함장 아리가 고사쿠 대좌, 함대사령관 이토 세이이치 중장) 하지만 이미 미국은 야마토 함의 출격을 알고 있었고 다음날(4월 7일) 12시 37분 큐슈 남서쪽 약 200km해상에서 미 항모 베닝턴 및 호넷에서 출격한 132대의 전투기와 50 기의 급강하 폭격기, 98기의 뇌격기가 야마토를 발견, 공격에 들어갔다.


야마토는 수많은 대공포와 심지어 주포에서 발사할 수 있는 대공포탄까지 가지고 있었지만 야마토의 사격관제와 포탑의 회전속도가 느려서 대공사격에 매우 취약했다고 전해진다. 갑판에 명중한 4발의 폭탄으로 갑판에 대화재가 발생하였으며,이 불로 인해 부포 탄약고가 폭발하며 부포를 완전히 파괴한다. 거기에 좌현에 2발의 어뢰가 명중하여 침수가 시작되어 함이 좌현으로 기울자 급히 우측에 펌프로 물을 집어넣기 시작했고 13시 정각, 제 2파의 공격이 시작 되었다.


야마토는 폭탄은 한발도 맞지 않았지만 어뢰 두발을 얻어맞은 좌현에 재차 어뢰 4발이 명중되고, 좌측 엔진이 침수되고 그에 따라 엔진 두개가 정지하면서 속도 역시 18노트로 떨어지고 말았다. 침수는 심각한 수준이어서 함의 기울기는 좌현으로 16도나 되었고, 우현에 물을 집어넣어 좌현 5도까지 기울기를 줄이는데 성공했지만 야마토 함이 오키나와까지 항행한다는 것은 불가능했고, 전력을 다해 근처의 섬에 좌초시켜 해안포대로라도 사용하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제 2파 공격 종료 후 30분에 연합군의 공격이 다시 시작된다.


급강하폭격기가 투하한 폭탄 중 세 발이 상갑판에 명중하였으며 이미 파괴된 좌현에 또다시 3발의 어뢰가 명중, 여기에 우현 선미쪽으로 어뢰 한발이 더 명중하면서 야마토의 기울기는 다시 16도로 기울었고 이 선체를 다시 세울 길은 없었다. 이 때 야마토의 항진속도는 고작 8노트에 불과했다. 14시 정각에 야마토의 모든 엔진이 정지했고, 퇴함명령이 내려졌다. 14시 10분에 야마토의 주포 탄약고가 폭발(원인은 크게 두가지로 보는데, 함이 기울면서 격납되어있던 포탄이 서로 충돌하여 폭발하였다는 설과 상갑판의 화재가 탄약고로 옮겨붙었다는 설이 있다.)하고 함은 완전히 두 동강이 나버렸다. 함대사령관 이토 세이이치 중장과 함장 아리가 고사쿠 대좌 이하 3000명에 달하는 승조원 중 단 269명만이 구조 되었다고 한다.



5.뒷 이야기

일본에서는 야마토 함을 비극의 군함이라고 부른다. 일본인들에게 야마토 함은 군국주의의 상징으로서 야마토 함의 이름은 지금도 일본 문화에 깃들어 있는데, 대표적인 것인 애니메이션 우주전함 야마토이다. 1970년 처음 공개된 ‘우주전함 야마토’는 지금도 꾸준히 만들어지고 있는 대표적인 일본 애니메이션으로 2010년에는 실사로도 만들어 졌다.


6.무능함의 상징

일본인들에게 야마토 함이 추억이기기는 하지만 냉정하게 판단해 보면, 야마토 함은 비효율 관료집단 혹은 군국주의의 한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너무 커서 막대한 운항 비용이 들어가지만, 전투에서는 제대로 쓸모가 없었다. 

특히 당시 미군의 주력은 항공모함이었는데, 태평양전쟁당시에는 이 항공모함에 탑재된 전투기에 의한 공격력이 전함들보다 뛰어 났다. 기동성과 활동 범위에서 항모의 전투력은 막강했다. 일본은 그것을 제대로 읽지 못했는데 이유는 일본 제국주의의 말기로 갈수록 심해지는 독재정치가 과학자들마저 수동적인 관료집단으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잘못된 것 혹은 창의적인 생각을 가로 막은 결과 더 쓸모 있는 항공모함 대신 야마토라는 쓸모 없는 거함을 만든 것이다. 

물론 야마토를 만들 당시에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거대함에 그들 스스로 압도되어 오히려 자만심에 빠져버렸을 것이다. 야마토는 어리석음과 과대망상이 빗어낸 고철덩어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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