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중국

춘추시대의 시작 동주와 정나라의 전쟁.(정장공에 패한 주환왕)

올드코난 2015. 3. 5.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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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주(東周)는 기원전 771년 서주의 유왕이 견융의 침공으로 호경이 함락되고 피살되는 사건이 발생하였고 제후들이 평왕을 옹립하였고 평왕이 수도를 호경에서 낙읍으로 옮긴 이후의 시대로 동주 시대에는 주나라 왕실의 힘이 약화되고, 제후들이 주나라 왕실을 명목상으로만 남겨둔 채, 독립국가의 길로 나아가는데, 주평왕의 뒤를 잇는 주환왕과 정나라의 전쟁을 시작으로 춘추전국시대가 시작된 것으로 본다.


춘추시대의 시작, 동주(東周) 환왕과 정나라(鄭國) 정장공의 전쟁.


정나라는 선왕의 동생인 정 환공으로부터 시작된 제후국으로, 이제 개국한 동주 왕실과는 가장 가까운 사이였다. 환공은 유왕의 재상이었으며, 평왕은 환공의 아들이자 자신에게는 당숙인 정 무공을 재상으로 삼았다.


정나라는 강대국은 아니었지만, 동주시대 초 왕실과 혈연관계가 약해진 다른 제후국과 달리 가까운 혈연관계로 왕실에 대한 충성도가 높았고 동주 왕실 근처에 자리잡고 있어 왕실을 대신해 태산에 제사를 지내기도 했다. 정 무공은 주 평왕의 치세를 보좌해 동주의 초기의 기반을 다졌다.


평왕의 뒤를 이은 손자 희임이 동주 환왕으로 즉위를 하고, 정 무공도 평왕을 20여년간 보필한 후 죽고, 그의 아들 장공이 대를 이어 평왕을 보좌하다가 이제 환왕을 보좌하게 되었다. 하지만 혈기 왕성한 환왕은 동주 왕실의 핵심 세력이 된 정나라 세력을 탐탁치 않게 여겨 다른 친척 제후국인 괵나라 세력을 중용했다.



이러한 왕실 내의 세력변화에 정 장공은 환왕을 의심하게 되고 거리를 두게 된다. 정장공은 노나라에게 사신을 보내 주 왕실의 허락도 받지 않은 채 노나라 내에 있는 태산 근처의 땅을 노나라에게 양도하는 대신 정나라 내에 있는 노나라 영토를 병합했다. 이것은 정나라가 주 왕실의 재상 자격으로 태산에 제사지내러 가는 일을 포기하는 것과 같았으며, 이는 환왕의 분노를 샀다.


왕실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환왕은 자신이 중용한 괵나라를 비롯, 진(陳), 채(蔡), 위(衛)의 군사를 소집해 정나라를 토벌하기로 했다. 정 장공은 제중(祭仲), 고거미(高渠彌)를 파견해 이를 맞아 싸워 대승을 거뒀다. 이때 장공의 부하 중 축첨(祝瞻)이 쏜 화살이 환왕의 팔에 맞았다. 정 장공은 공격을 중지시키며 "윗사람을 공격하는 것도 꺼려지는 일인데 하물며 천자를 능멸할 수는 없는 일이다."며 사신을 보내 환왕의 부상을 위로하기도 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동주 왕실의 권위는 추락하고 본격적인 제후들의 시대인 춘추시대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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