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재란 당시 명의 수군 장수로 참전한 진린은 초기에는 이순신에게는 골칫덩어리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결국 이순신 장군의 인품에 감탄하고 진심으로 존경을 하게되는데, 이순신 장군의 위대함은 진린의 태도 변화를 보면 알 수 있다. 진린에 대해 간략히 정리해 본다.
이순신의 인품에 고개를 숙인 명의 제독 광동진씨의 선조 진린(陳璘) 생애
1.생애 요약
진린(陳璘, 진인, 중국어: 천린, 1543년 ~ 1607년)은 중국 광둥성 사오관 출신의 무관이며 수군 제독(提督)이었다. 1562년 명나라 관직에 출사하고, 광동 수비대에 소속되었다 폭동을 진압한 공로를 인정받아 난아오현(南澳县)의 부사령관직을 맡게 된다. 1597년(선조 30년) 정유재란 시 어위도총관 및 전군도독부도독(前軍都督府都督) 직책으로 명의 수군 5천 명을 거느리고 조선수군과 연합한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 진린은 자신의 고향인 광둥성 지역에서 계속 군복무를 했는데, 먀오족(몽족)의 반란을 진압하기도했다. 64세로 병을 얻어 사망했다. 사후 태자소보(太子少保)에 추증되었다.
2.이순신과의 관계
처음에는 이순신(李舜臣)과 불화가 있었는데, 절이도 해전에서 조선 수군을 방해하거나, 전투에는 제대로 참여하지 않으면서 전공을 탐하는등 이순신 장군 입장에서는 골치덩어리였다. 이후 이순신이 진린에게 왜의 수급을 양보하는 등 공을 세우도록 도움을 주고 진솔하게 진린을 대하자 진린은 차츰 이순신 장군의 인품에 감복하여 진심으로 이순신을 존경하게 된다.
이후 명나라 조정에 이순신의 전공을 상세하게 보고하고 당시 명의 황제 만력제(萬曆帝)가 이순신에게 8가지 선물 영패(令牌), 도독인(都督印), 귀도(鬼刀), 참도(斬刀), 곡나팔(曲喇叭), 독전기(督戰旗), 홍소령기(紅小令旗), 남소령기(藍小令旗) 등을 보내도록 하는 데 일조를 한다.
3. 광동 진씨(廣東 陳氏)의 선조
진린의 손자 진영소(陳泳素)는 감국수위사(監國守衛使)를 지내던 중 명나라가 멸망하자 벼슬을 내려놓고 난징(남경)에서 배를 타고 조선으로 망명한다. 그리고 남해의 장승포에 표착하다가 조부 진린이 공을 세웠던 강진 고금도로 옮겨 살았다. 그 후 다시 해남현 내해리로 이주해 정착하고 광동 진씨(廣東 陳氏)가 뿌리를 내리게 된다. 광동은 진린의 고향 관동(廣東, 관둥)의 지명이고 광동진씨는 진린을 시조로 하고 있다.
4.올드코난이 생각해본 진린
정유재란에 참전한 진린은 초기에는 조선 수군의 입장에서는 민폐였다.
이는 당시 명나라가 조선 조정을 업신여겼다는 점, 조선은 명의 신하국이며, 조선군은 명군의 통제를 받는다는 점 등 여러가지 면에서 명나라 군이 거만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으며, 무엇보다 조선 조정이 무능했다는 점이 명의 장수들을 특히 기고만장하게 만들었다는 점을 지적해야 할 것이다.
진린 역시 다른 명의 장수들과 다를 바 없이 조선 수군을 업신여겼고, 이순신 장군을 무시했었다.
여기서 진린의 생존했던 당시 상황을 고려해 봐야 한다.
조선은 임진왜란, 명은 만주족(청나라)의 대치와 내부의 반란으로 멸망의 길을 가던 난세였던 시대였다는 점을 감안해 보면, 진린이 처음에 조선수군에게 대했던 무례함은 자신의 안위가 먼저였던 시대상을 반영한 것으로 생각해 볼 수있다.
중요한 것은 진린은 얼마되지 않아 이순신 장군의 인품에 감동을 받고 고개를 숙였다는 점이다.
이는 이순신 장군의 인간성이 훌륭하기도 하지만, 진린이라는 사람 자체가 악인은 아니라는 점을 알게 해준다. 본성이 악하다면, 선한 자들을 오히려 경멸하는 법이다.
진린은 이순신의 진면목을 아는 순간 진심으로 이순신을 존경했고, 그런점에서 진린은 본성은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점을 알 수있다. 단지 재물 욕심은 있는 편이었다.
마무리하자면 진린은 처음 조선 수군을 대할때는 잘못된 인식과 난세라는 시대상 때문이었지 사람됨이 나쁜 사람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고 진린이 행동을 보면 명나라 장수들이 조선을 업신여겼던 근본 원인인 선조와 조정의 무능이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글 작성/편집 올드코난 (Old Con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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