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천량 해전(漆川梁海戰)은 1597년(선조 30년) 8월 27일 (음력 7월 15일) 칠천도 부근에서 벌어진 정유재란의 첫 번째 해전이며 임진왜란 발발이후 조선수군 최악의 패전이었다. 이 전투에서 당시 수군을 지휘한 삼도수군통제사 원균을 포함한 수많은 조선 수군이 목숨을 잃었다.정유재란, 조선 수군 역사상 최악의 패전 칠천량 해전(漆川梁海戰)은 조선 수군의 전멸이 아니라 원균의 도주로 흩어졌던 것이다. 1. 이순신의 파면조선을 재침(정유재란)을 명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목표는 임진왜란과는 달리 전라도를 포함한 조선의 하삼도였다. 문제는 조선 수군이었다.그리고 임진왜란에는 고니시가 1군이었지만, 명과의 협상 당시 풍신수길을 기만한 죄로 간신히 목숨을 건진 탓에 정유재란의 1군은 가토였고 고니시는 2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