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일지
김구선생 일대기
우리는 이튿날 강계를 떠나 되넘이고개를 넘어 수일 만에 신천으로 돌아왔다.
청계동으로 가는 길에 나는 호열자(콜레라)로 하여서 고 선생의 맏아들 원명의 부처가
구몰하였다는 말을 듣고 크게 놀랐다. 나는 집에도 가기 전에 먼저 고 선생 댁을
찾았더니, 선생은 도리어 태연자약하셨다. 나는 어색하여 말문이 막혔다. 내가 부모님
계신 집으로 가려고 하직을 할 때에 고 선생은 뜻모를 말씀을 하셨다.
"곧 성례를 하게 하자."
하시는 것이었다. 집에 와서 부모님의 말씀을 듣잡고 비로소 내가 없는 동안에 고
선생의 손녀, 즉 원명의 딸과 나와 약혼이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부모님은 번을
갈아서 약혼이 되던 경로를 말씀하셨다. 아버지의 말씀은 이러하였다.---
하루는 고 선생이 집에 찾아오셔서 아버지를 보시고 요새는 아들도 없고 고적할
터이니 선생의 사랑에 오셔서 담화나 하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어느 날 아버지께서 고
선생 댁 사랑에를 가셨더니 고 선생은 아버지께 내가 어려서 자라던 일을 물으셨다.
아버지께서는 내가 어려서 공부를 열심히 하던 일, 해주에 과거보러 갔다가 비관하고
돌아오던 일, 상서를 보고는 제 상이 좋지 못하였다고 낙심하던 일, 상이 좋지 못하니
마음이나 좋은 사람이 된다고 동학에 들어가 도를 닦던 일, 이웃 동네에 사는 강씨와
이씨들은 조상의 뼈를 파는 죽은 양반이지마는 저는 마음을 닦고 몸으로 행하여 산
양반이 되겠다던 일 등이었다.
어머님은, 내가 어렸을 때 강령에서 살 적에 칼을 가지고 그 집 식구들 모두 찔러
죽인다고 신풍 이생원 집에 갔다가 칼을 빼앗기고 매만 맞고 돌아왔다는 것, 돈 스무
냥을 허리에 두르고 떡을 사 먹으러 가다가 아버지께 되게 매를 맞은 것, 푸른 물감
붉은 물감을 온통 꺼내다가 개천에 풀어 놓은 것을 어머니가 단단히 때려 주셨다는 것
같은 것이었다.
이랬더니 하루는 고 선생이 아버지께, 나와 고 선생의 장손녀와 혼인하면 어떠냐고
말을 내시고, 아버지께서는 문벌로 보거나 덕행으로 보거나, 또 내 외모로 보거나 어찌
감히 선생의 가문을 욕되게 하랴 하여 사양하셨다. 그런즉 고 선생은 아버지를 보시고
내가 못생긴 것을 한탄 말라고, 창수는 범의 상이나 장차 범의 냄새를 피우고 범의
소리를 내어서 천하를 놀라게 할 날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리하여서 내
약혼이 된 것이었다.
나는 부모님의 말씀을 듣고 고 선생께서 나 같은 것을 그처럼 촉망하셔서
사랑하시는 손녀를 허하심에 대하여 큰 책임을 감당키 어렵게 생각하였다. 더구나
선생께서,
"나도 맏아들 부처가 다 죽었으니 앞으로는 창수에게 의탁하려오."
하셨다는 것과 또,
"내가 청계동에 와서 청년을 많이 대하여 보았으나 창수만한 남아는 없었소."
하셨다는 말씀을 듣자올 때에는 더욱 몸둘 곳이 없었다. 그 규수로 보더라도 그
얼굴이나 마음이나 가정 교훈을 받은 점으로나 나는 만족하였다.
이 약혼에 대하여 부모님이 기뻐하심은 말할 것도 없었다. 외아들을 장가들인다는
것만도 기쁜 일이거늘, 하물며 이름 높은 학자요, 양반의 집과 혼인을 하게 된 것을
더욱 영광으로 생각하시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비록 없는 살림이라도 혼인 준비에 두
집이 다 바빴다.
아직 성례전이지마는 고 선생 댁에서는 나를 사위로 보는 모양이어서 혹시 선생
댁에서 저녁을 먹게 되면 그 처녀가 상을 들고 나오고, 6, 7세 되는 그의 어린 동생은
나를 아재라고까지 부르고 반가워하였다. 이를테면 내 장인 장모인 원명 부처의
장례도 내가 조력하여서 지냈다.
나는 선생께 이번 여행에서 본 바를 보고하였다. 두만강, 압록강 건너편의 땅이
비옥하고 또 지세도 요새로 되어 족히 동포를 이식하고 양병도 할 수 있다는 것이며,
그곳 인심이 순후한 것이며, 또 서 옥생의 아들과 결의형제가 되었다는 것 등을
낱낱이 아뢰었다.
때는 마침 김홍집 일파가 일본의 후원으로 우리나라 정권을 잡아서 신장정이라는
법령을 발하여 급진적으로 모든 제도를 개혁하던 무렵으로서, 그 새 법의 하나로 나온
것이 단발령이었다. 대군주폐하라고 부르는 상감께서 먼저 머리를 깎고 양복을
입으시고는 관리로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모두 깎게 하자는 것이었다. 이 단발령이
팔도에 내렸으나 백성들이 응종하지 아니하기 때문에 서울을 비롯하여 감영, 병영
같은 큰 도회지에서는 목목이 군사가 지켜 서서 행인을 막 붙들고 상투를 잘랐다.
이것을 늑삭(억지로 깎는다는 뜻)이라 하여 늑삭을 당한 사람은 큰일이나 난 것처럼
통곡을 하였다. 이 단발령은 크게 민원을 일으켜서 어떤 선비는 도끼를 메고,
"이 목은 자를지언정 이 머리는 깎지 못하리라."
하는 뜻으로 상소를 올렸다. '차라리 지하에 목 없는 귀신이 될지언정 살아서 머리
깎은 사람은 아니 되리라'는 글이 마치 격서 모양으로 입에서 입으로 전파하여 민심을
선동하였다.
이처럼 단발을 싫어하고 반대하는 이유가 다만 유교의
'신체발부수지부모
불감훼상효지시야
내 온몸을 부모로부터 받았으니 감히 이를 상하지 않게 하는 것이 효의 시작이다.'
에서 나온 것만이 아니요, 이것은 일본이 시키는 것이라는 반감에서 온 것이었다.
군대와 경찰관은 이미 단발이 끝나고 문관도 공리에 이르기까지 실시하는 중이었다.
나는 고 선생께 안진사와 상의하여 의병을 일으킬 것을 진언하였다. 이를테면 단발
반대의 의병이었고 단발 반대를 곧 일본 배척으로 생각하였던 것이다.
회의는 열렸으나 안진사의 뜻은 우리와 달랐다. 이길 가망이 없는 일을 일으킨다면
실패할 것밖에 없으니 천주교나 믿고 있다가 시기를 보아서 일어나자는 것이 안진사의
의사였다. 그는 머리를 깎이게 되면 깎아도 좋다고까지 말하였다.
안진사의 말에 고 선생은 두말하지 않고,
"진사, 오늘부터 자네와 끊네."
하고 자리를 차고 일어나 나갔다. 끊는다는 것은 우리 나라에서 예로부터 선비가
절교를 선언하는 말이다.
이 광경을 보고 나도 안진사에 대하여 섭섭한 마음이 났다. 안진사 같은
인격으로서 되었거나 못 되었거나 제 나라에서 일어난 동학은 목숨을 내어놓고
토벌까지 하면서 서양 오랑캐의 천주학을 한다는 것부터도 괴이한 일이거니와, 그는
그렇다 하고라도 목을 잘릴지언정 머리를 깎지 못하겠다는 생각은커녕 단발할
생각까지 가졌다는 것은 대의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안진사의 태도에 실망한 고 선생과 나는 얼른 내 혼인이나 하고 청계동을 떠나기로
작정하였다. 나는 금주 서옥생의 아들을 찾아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천만염외에 불행한 일이 또 하나 생겼다. 어느 날 아침 일찍이 고 선생이
나를 찾아오셔서 대단히 낙심한 얼굴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어제 내가 사랑에 앉았노라니 웬 감기라는 자가 찾아와서 '당신이 고
아무개요?' 하기로 그렇다 한즉, 그 자가 내 앞에다가 칼을 내어 놓으며 하는 말이,
'들으니 당신이 손녀를 김창수에게 허혼을 하였다 하니, 그러면 첩으로 준다면 모르되
정실로는 아니 되리라. 김창수는 벌써 내 딸과 약혼한 지가 오래요.' 그러기로 나는,
'김창수가 정혼한 데가 없는 줄 알고 내 손녀를 허한 것이지 만일 약혼한 데가
있다면야 그러할 리가 있는가. 내가 김창수를 만나서 해결할 터이니 돌아가라.'고 해서
돌려보내기는 했으나 내 집안에서는 모두 큰 소동이 났네."
나는 이 말을 듣고 모든 일이 재미없이 된 줄을 알았다. 그래서 선생께 뚝 잘라
이렇게 여쭈었다.
"제가 선생님을 사모하옵기는 높으신 가르침을 받잡고자 함이옵지 손서가 되는 것이
본의는 아니오니 혼인하고 못하는 것에 무슨 큰 상관이 있사오리까. 저는 혼인은
단념하고 사제의 의리로만 평생에 선생님을 받들겠습니다."
내 말을 듣고 고 선생은 눈물을 흘리시고, 장래에 몸과 마음을 의탁할 사람을
찾으려고 많은 심력을 허비하여서 나를 얻어 손서를 삼으려다가 이 괴변이 났다는
것을 자탄하시고 끝으로,
"그러면 혼인 일자는 갱무거론일세. 그런데 지금 관리의 단발이 끝나고는
백성에게도 단발을 실시할 모양이니 시급히 피신하여 단발화(머리 깎이는 화)를
면하게, 나는 단발화가 미치면 죽기로 작정했네.".
하셨다.
나는 마음을 지어 먹고 고 선생의 손녀와 혼인을 아니 하여도 좋다고 장담은
하였으나 내심으로는 여간 섭섭하지 아니하였다. 나는 그 처녀를 깊이 사랑하고 정이
들었던 것이었다.
(다음페이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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