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국사-조선

왜(일본)의 제2차 침략 정유재란 발발 이유와 개요

올드코난 2015. 5. 3.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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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전쟁 중이던 명나라와 일본 간의 강화교섭이 결렬되자 풍신수길은 조선의 재침략을 명하고 다음해 1597년 3월 1일(정유년 음력 1월 14일) 가토 기요마사가 이끄는 일본군 선봉대가 조선의 부산을 재침하는데 이를 정유재란이라고 부른다. 가토에 이어 고니시 유키나가의 제2군이 웅천으로 상륙하여 북진하였다. 같은 해 8월 20일(음력 7월 8일) 일본의 후속부대가 경상도 남해안 지역에 상륙하였다. 다음해인 1598년 철군할때까지 1년가량 전투가 벌어진다.

왜(일본)의 제2차 침략 정유재란 발발 이유와 개요


1.임진왜란과의 차이점

정유재란과 임진왜란의 가장 큰 차이점은 임진왜란의 최종 목적이 명나라까지 점령하는 것이었다면, 정유재란은 전라도 일대를 점령할 목적으로 이루어졌다. 이는 공격 목표가 분명해졌기에 더 악랄하게 조선 백성을 유린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2.홧김에 벌어진 전쟁

이전에 언급했던 강화협상의 결렬이 결정적이었다. 이때까지 풍신수길은 조선 침략에 대한 뜻을 버리지는 않았지만, 그의 기세는 한 풀꺽인 상황이었다. 강화협상에 의존하지 않았지만, 협상을 벌였던 것도, 현실적으로 조선의 길을 빌려 명나라를 친다는 구상이 틀렸음을 본인도 인식하고 있었다. 단지, 인정을 하지 않고 있었을 뿐이었다. 근데, 여기서 협상을 주도했던 심유경이 왜를 기만하면서, 명나라에 속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풍신수길은 정말 홧길에 전쟁을 하게 된다. 이제 정유재란이다.


3. 주 공격목표는 전라도를 포함한 하삼도(전라도, 충청도, 경상도)

임진왜란 당시 왜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은 이순신의 조선 수군이었다. 여기에 보급로가 차단되면서 평양에서 후퇴를 하게 된다. 풍신수길은 1차 침공(임진왜란)과는 달리 2차 침공(정유재란)은 적국(전라도)을 비롯한 조선의 하삼도를 점령하라 명령한다.



4.보복성으로 자행된 학살

정유재란에서 히데요시가 내린 명령은 조선군의 코를 베라는 것이었다. 목이나 귀를 자르는데 대시 코의 숫자로 전공을 인정하겠다는 히데요시의 명령에 조선군은 물론 백성들의 코까지 베어가는 만행을 저지르게 된다.

코 뿐만이 아니라, 전투에서 조선군과 백성들에 대한 학살은 임진왜란 때보다 더 잔인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다시 말해, 임진왜란이 점령을 목적으로 전쟁이 벌어진 것이라면 정유재란은 지극히 감정적인 전쟁이었던 것이다.


5.일본 수군의 보강

임진왜란에서 왜군이 실패한 이유는 명나라의 파병, 의병과 이순신의 수군 등 크게 3가지로 볼수 있다. 이 중 가장 시급한 문제가 보급로 확보를 위한 왜 수군의 보강이었다. 시간이 짧아 조선 수군보다 우위를 점하지는 못하지만, 임진왜란에 비해서는 어느 정도 수군에 대비를 한 상태였다.


6.왜의 군사규모

당시 남해부근에 왜의 군사 2만이 주둔을 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여기에 가토의 1군과 고니시의 2군을 포함해 총 8군 약 12만 정예병이 참전 왜군의 당시 병력은 14만명으로 추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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